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84)
조 흥 제
전제익 부대가 불시에 진지를 에워싸고 들이치자 일본군 수비대 잔류 병력은 무라다 소총 여섯 정만으로도 제법 매섭게 대항하였다. 십년 간격으로 청일전쟁, 노일전쟁에서 잇따라 이겨 기세가 오를대로 올라 있는 제국의 군대다운 데가 있었다. 거기다가 작은 구릉지 위에 자리 잡은 진지도 돌과 양회를 섞어 마음 먹고 구축한 국경 수비대 보루였다. 일본군 수비대는 거기에 의지해 스무 배가 넘는 의병들의 포위 공격을 받으면서도 한동안은 잘 버텼다. 하지만 워낙 중과부적이었다. 총격이 시작된 지 한 식경도 안돼 진지의 총안 두 개가 조용해지더니 이어 진지의 총안 전체가 침묵에 빠졌다.
“적이 달아납니다. 언덕 옆으로 난 참호를 따라 뒤로 빠진 것 같습니다.지기 보십시오. 벌써 유효사거리를 벗어났습니다.”
한동안의 불길한 침묵 뒤에 조심스러운 눈길로 수비대 진지를 살피고 있던 의병 장교 가운데 하나가 소리쳤다. 모두가 놀라 그 장교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일본군 대여섯 명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한편으로는 서로 부축하여 끌며 다른 한편으로는 총을 안고 사주를 경계하여 구룡 뒤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뒤쫓아라.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어서 적을 뒤쫓아라. 생포하지 못하면 사살하라.”
엄인섭이 그렇게 외치며 의병들을 내몰았다. 그 소리에 의병대 일부는 일본군 수비대가 사라진 곳으로 쫓아가고 나머지는 벌써부터 조용해지니 진지를 그제야 덮쳤다. 짐작대로 진지 안에는 일본군 시체 두 구와 조선인인 듯한 양복차림 하나가 죽어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나머지는 더 버틸 수 없다고 여겨 부상자들을 이끌고 의병들의 눈에 띄지 않는 참호를 통해 진지를 빠져 나간 듯했다. 하지만 어지간히 다급했던지 죽은 병사들의 소총과 탄약뿐만 아니라 진지 안의 다른 군수품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출동한 부대의 크기에 비해 전과가 썩 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승리는 승리였다. 모두가 환호하며 노획한 군수품들을 헤아리고 있는데 일본군을 뒤쫓아 갔던 의병들이 돌아와 알렸다.
“왜적들을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새 저희 병참소까지 달아난 적 패잔병들은 거기서 말과 수레를 끌어내 나눠 타고 남쪽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부상병까지 싣고 가느라 빠르지는 않았으나 우리가 도보로 따라 잡기는 이미 글렀습니다.”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저녁밥을 지어 먹고 하룻밤 숙영한 뒤에 움직인다. 모구 정탐과 척후를 풀어 사방을 널리 살피도록.”
전제익이 그렇게 명령해 점령한 일본군 진지에서 느긋한 하룻밤 숙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이 깊어 장탐을 나갔던 의병 하나가 어떤 개똥 모자를 쓴 양복차림 하나를 데리고 안중근과 엄인섭을 비롯한 장교들이 묵고 있는 곳으로 찾아와서 말했다.
“이 사람은 일본군 수비대에서 군속으로 일하던 사람입니다. 비록 왜놈 군대에 빌붙어 그 손발 노릇을 해 왔지만 오늘 국내로 진공한 우리 의병대의 위용을 보고 깨달은 바 컸다고 합니다. 이 길로 우리와 함께 할 결심을 하고 찾아 나섰는데 특히 지휘소에 급히 알려 줄게 있다고 하기에 이리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 말에 장교들은 마침 순찰을 돌고 있는 전제익을 불러들여 그 사내를 만나보게 했다.
“급히 알려줄 게 무엇이오?”
불려온 전제익이 아직도 미심쩍어 하는 눈길로 사내를 살피며 물었다.
“제가 듣기로 일본군은 이번 의병을 연추와 간도의 연합으로 잘못 알고 국경 북변인 회령을 요충으로 여겨 병력을 그리로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지금 경흥이 비다시피 하였으나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간도 쪽 의병 움직임은 없는데 연추의 부대들이 장고봉을 돌아왔다는 말을 들으면 회령에 집결했던 일본군 수비부대들이 다시 남하할 것이며 한편으로 남쪽에서는 나남에서 급한 소식을 듣고 지원병이 올라올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머뭇거리다가는 아래 위로 적을 맞는 꼴이 나고 맙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눈길을 보니 일본군에 군속으로 부역한 게 켕겨 괜히 해 보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전제익도 얼굴이 누그러져 그 말을 받아들이며 장교들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때 안중근이 나서 말했다.
“兵(병)을 발했으면 총검이 부딪는 것은 정한 이치. 그렇다고 한 번 싸워보지도 않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소. 우리도 기민하게 움직여 적의 빈틈을 노리면 반드시 길이 있을 것이외다. 오늘 여기 일이 적에게 알려졌다 해도 아직 모든 게 속속들이 밝혀진 것은 아닐 터이니 회령의 일본군 부대도, 나남의 사단도 오늘 내일 결단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오. 연추를 떠나올 때 이미 고된 유격전은 각오한 터. 차라리 적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몇 군데를 휘저어 그들을 한껏 격동시킨 뒤에 무산으로 빠지는 게 어떻겠소.”
그러자 이번에는 동의회 계열만 남은 탓인지 장교들 모두가 찬동하였다. 이에 점령한 일본군 수비대 진지에서 하룻밤을 쉰 전제익 부대는 다음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경흥으로 쳐들어갔다. 경흥 수비대 역시 상리 수비대와 마찬가지로 남은 병력이 많지 않았다. 거기서 안중근 부대는 다시 일본군 몇 명을 사살하고 진지를 점령하여 부술 수 있는데 부수고 불사른 뒤에 떠났다.
그 다음 일본군 수비대는 신아산 부근의 홍의동에 주둔한 부대였다. 이미 소문이 들어갔던지 원래 다른 곳보다 수비병이 조금 많이 남아 있던 홍의동 수비대는 인근의 일본 민간인들을 끌어들이고, 경흥 관아의 지원까지 받아 의병들을 맞을 채비를 갖추었다. 관아의 지원이라 하급관속이나 使丁(사정)들을 끌어다가 싸움을 보조하게 한 일이 그랬다.
하지만 워낙 주력이 빠져나간 탓에 아무리 보강을 해도 홍의동 수비대로 전제익 부대를 막아내는 것은 어림없는 무리였다. 사움이 앞서보다 조금 치열하고 길어졌다는 것 뿐, 끝내는 홍의동 수비대 진지도 온전한 중대 병력이 넘는 의병부대의 공격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발악하며 버티던 일본군 여섯과 함께 날뛰던 민간인 여남은 명이 죽고 일본군 서너 명과 주로 국경 근처에서 암거래하던 장사꾼들인 민간인 대여섯 명이 생포되었다. 거기다가 멋 모르고 끌려와 일본군의 탄약을 나르고 진지 보수공사를 했던 경흥 관아의 관속과 사정들도 한 두릅에 엮여 끌려 나왔다.
안중근은 끌려온 포로 중에서 먼저 근골이 크고 멀쑥한 조선인 하나를 골라 물었다.
“당신은 누구며 어쩌다가 저들 일본인과 함께 포로가 되었소?”
저는 경흥 관아에서 사정 노릇을 하던 이덕칠이란 자이온데 군수님의 명령을 받고 여기 와서 일본군의 짐을 져 주가다 함께 잡혀오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안중근은 다시 곁에 있는 조선인에게 같은 물음을 해 보았다. 대여섯 모두가 어슷비슷한 대답이었다. 그러자 안중근은 그들을 풀어주게 하고 말했다.
“당신들이야말로 힘없는 나라를 둔 죄밖에 더 있겠소. 풀어줄 테니 다시는 일본인들을 도와 죄 짓지 마시오. 그리고 그동안 지은 죄는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 짐꾼이 되어 우리를 도와주고 씻으시오.”
그때만 해도 다른 장교들은 별말 없이 그런 안중근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