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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의소설

불멸 (88)

작성자조흥제|작성시간26.06.21|조회수16 목록 댓글 0

                                       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88)

 

                                                                                                                 조 흥 제

 

                                                 제 18장 다시 부름을 기다리며

 

  발 아래 수십 길 벼랑 바닥은 삐죽삐죽한 바위가 솟은 계곡이었다. 안중근은 그 벼랑 끝 굵은 떡갈나무 등걸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어이 여보게들 날 좀 구해 주게……. 안중근이 벼랑 위쪽을 보고 힘을 다해 목청을 짜내 보았으나 소리는 입밖에 새어 나오지 않고 팔의 힘은 점점 빠져 갔다. 게다가 매달려 있는 떡갈나무 등걸도 안중근의 몸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푸슬푸슬 흙과 청석가루를 나리며 뽑혀 나오고 있었다.

그때 문득 아버지 안태훈이 중근의 머리 위 비탈길을 지나갔다. 아버지는 평소의 도도한 걸음걸이로 발밑에는 안중에도 없는 듯 먼 하늘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버님 소자이옵니다. 구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버지는 눈길 한 번 흐트러짐 없이 안중근의 머리 위로 풀숲을 지나갔다. 이어 어머니 조마리아가 아내 아려와 함께 봉우리를 넘어 나타났다. 봄나물이라도 캐러 왔는지 작은 바구니 하나씩을 든 그들 고부는 안중근의 머리맡에 이르러 바구니를 놓고 마주 앉았다. 어머니 소자입니다. 사람을 불러 주십시오.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러나 조마리아는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안중근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어찌 보면 듣고도 그같은 안중근의 나약함이 못마땅해 미간을 찌푸리고 못들은 척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보우, 준생 어머니, 내 말이 들리지 않소. 어서 치마 끝이라도 풀어내려 주시오. 안중근은 다시 아내 아려에게 소러쳤다. 안중근의 다급한 외침을 알아들었던지 머리를 숙이고 조마리아와 함께 나물을 캐고 있던 아려가 이번에는 반짝 고개를 들어 중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늘 그렇듯 수심과 두려움이 자우룩 어린 듯한 눈길로 가만히 바라볼 뿐, 움직일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이대로 가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소. 어서 방도를 내 보시오. 안중근이 다시 그렇게 다급하게 외치는데 우두둑하며 떡갈나무 등걸이 청석 틈에서 뽑혀 나오며 안중근의 몸이 둥실 허공으로 떴다. 안돼. 나는 아직 할 일을 다 하지 못했소. 이대로 끝날 수는 없소…….

“작은 서방님, 작은 서방님 이만 일어나십시오. 아제 어지간히 주무셨습니다.”

누가 그러면서 안중근의 어깨를 가만히 흔들었다. 안중근이 눈을 떠 보니 낯익은 늙은이 하나가 자신을 깨우고 있었다.

“가위 눌리신 게지요. 잠자리가 길면 꿈이 사나워지는 법입니다. 이만 일어가 점심이나 드시지요.”

안중근이 아직도 어지러운 시선을 모아 살피니 윤 영감이었다. 퍼뜩 자신이 경신현 금당촌 윤영감네 집에 와서 눕게 된 경위를 떠올렸다. 두만강을 건너고도 며칠 낯선 곳을 헤매며 무턱대고 국경에서 멀어지던 안중근 일해은 훈춘현 깊숙히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이제 위태로운 지경은 벗어난 듯하니 여기서 이만 헤어집시다. 세 사람이 몰려 다녀봐야 서로에게 짐이 될 뿐이오. 각기 흩어져서 먼저 피폐한 몸을 추스른 뒤에 다시 큰일을 도모하도록 합시다. 그때 대한독립의 전선에서 건강하게 만나게 되기를 천주님께 기원합니다.”

세 사람은 그런 말로 작별하고 각기 의지할 곳을 찾아 달리 길을 잡았다. 안중근은 윤 영감이 있는 경신향 금당촌이 멀지 않은 걸 알고 그리로 갔다. 천근 무게로 꺼져 내리는 몸을 이끌고 다시 하루를 더 걸어 윤영감 집에 이르자 안중근의 기력은 다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음식 같은 음식을 차려 내온 상을 받아 허겁지겁 비운 것을 마지막으로 안중근은 혼절과도 같은 잠에 빠져 들었다. 끼니때마다 정성들여 내온 상을 받았지만 잠결 먹고 다시 잠들어 기억조차 아슴푸레한 꿈이나 다름없었다. 겨우 거기까지 거억 해 낸 안중근이 아직도 휑한 머리로 물었다.

“내가 며칠이나 잤소.”

“오늘이 나흘쨉니다. 대강 듣기는 했습니다만 참으로 고단한 길을 다녀오신 듯하구만요. 수저만 놓으면 바로 혼절하듯 주무셨습니다. 예전 갑오년에 신천의려의 선봉장으로 나가셨다가 돌아와서도 한 열흘 이리 곤하게 주무신 적이 있지요. 하지만 가위 눌리신 걸 보니 이제 잠은 어지간한 듯합니다. 우선 점심부터 드시고 몸을 추슬러 한 번 일어나 보시지요.”

윤 영감이 그러면서 방 한 구석에 들여 놓았던 상을 안중근 앞으로 밀어 놓았다.

안중근은 다시 무슨 강박과도 같은 배고픔에 내몰려 나물 한줄기 남김없이 상을 비운 뒤에야 정신을 가다듬어 보았다. 조금 전의 가위 눌림이 정말로 회복과 소생의 기미였던지 이번에는 밥상을 물린 뒤에도 무너지듯 이부자리에 들지 않고 앉아 버틸 수 있었다.

“더 주무시지 않아도 버티실만 하거던 앞 개울로 나가 목욕이나 하시지요.옷 한 벌 마련해 두었으니 지금 입고 계신 것은 개울가에 버리고 오셔도 됩니다.”

윤 영감이 가만히 안중근의 상태를 살피더니 진작 장만해 둔 듯한 옷 한 벌을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안중근은 갑자기 온몸이 스멀스멀 하는 느낌과 함께 야릇한 냄새가 코끝을 찔러오는 듯했다.

윤 영감이 방을 비워준 뒤 옷을 벗어 살펴보니 헤지고 찢어진 게 누더기나 다름없는데 그나마 힘주어 털면 부스러진 옷이 푸슬푸슬 흘러내릴만큼 썩어 있었다. 거기다가 더 지독한 것은 거기 붙은 이였다. 봄 이(春(춘)蝨(슬))가 사나운 호랑이 같다 하더니 오뉴월 다 보낸 여름 이가 보리알만 하게 굵어 솔기마다 득시글거렸다.

안중근이 윤영감이 시키는 대로 개울로 나가 몸에 더께 앉은 때를 씻고 돌아오니 윤 영감 내외가 방안의 돗자리를 털고 말린다. 이불 홑청을 뜯어 씻는다. 부산을 떨다가 안중근에게 새로 누울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아직 온전하게 회복되지 못한 안중근은 거기서 다시 이틀을 더 수며 몸을 추스른 다음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청나라 훈춘현의 경신항 금당촌을 떠난 안중근이 국경을 넘어 노령 연추로 돌아간 것은 양력으로 8월도 중순이었다. 아직 몸이 부실해서인지 군데군데 마차를 얻어 타고도 안중근은 사흘이 걸려서야 연추에 이를 수 있었다. 가만히 헤아려 보니 김무성 대장의 기치 아래 연추를 떠난 날로부터 무릇 한 달 반만이었다.

그동안 안중근은 단 하룻밤도 집안에서 자 본 적이 없고 줄곧 한데서 밤을 새운 데다 장마철이라 며칠을 빼고는 비에 젖어 지냈으니 그 고초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허술하나마 의병부대로서의 보급은 처음 며칠뿐이었고, 나머지는 쫓기면서 낯모르는 동포들에게 빌어먹은 터라 구걸도 그보다 더한 구걸은 없었다. 특히 그 가운데 보름은 겨우 잡곡밥 세끼로 견딜 만큼 안중근의 몰골과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겨우 연추 땅에 들어서면서 안중근은 몇 번이나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을 만났으나 아무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다 용케 안중근을 알아 본 친구는 두 손을 부여잡고 눈물부터 글썽였다.

“이게 누군가. 참으로 고초가 심했나 보이. 피골이 상접한 게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형상이 아닐세. 이렇게 살아 돌아 온 게 천명일세.”

연추로 돌아 와 안중근이 맨 먼저 찾아 간 최재형도 안중근을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한동안이나 놀란 눈으로 안중근을 쳐다보다가 안중근이 몇마디 인사를 건네고야 겨우 아는 체를 했다. 그러나 안중근을 맞이하는 태도는 떠날 대와 아주 달랐다.

“그래도 명은 길어 살아서 돌아왔구먼. 돌아오지 못한 동지들 때문에 민망하겠소이다.”

그런 첫 마디 부터가 차갑기 그지없었다. 안중근은 영문을 모르는 가운데도 敗軍之將(패군지장)의 죄목 하나로 그런 최재형의 냉대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뒤이어 몇 사람을 만나면서 그 까닭을 알고 울적한 심사에 빠져 들었다.

열에 한둘밖에 살아 돌아오지 못했으리라는 짐작과는 달리 안중근과 함께 국내로 진공했던 의병들은 뜻밖이다 싶을 만큼 많은 수가 성하게 돌아와 있었다.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안중근의 의형인 엄인섭의 부대였는데 그들은 벌써 보름 전에 몇 사람만 잃고 거의가 온전하게 돌아와 있었다. 의제 김기룡도 부대원 대부분과 성하게 돌아와 있었으며 이경화나 최천오 같은 장교로 소대를 지휘했던 사람들도 모두 닷새 전에는 그 부대원 태반과 함께 연추에 낯을 비쳤다. 다만 회령에서 헤어진 우덕순만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나 그 소대원 하나가 돌아와 몇몇만 일본군에게 잡혀 갔을 뿐 태반은 노령으로 돌아와 헤어졌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나중에 들어 안 일이지만 엄인섭을 비롯한 전제익 부대의 장교들은 모두 연해주 의진의 국내 진공전 실패를 안중근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안중근이 일본인 포로들을 놓아주어 의병부대의 전략과 이동 경로, 편제 따위를 적에게 노출시킨 일이 회령 전투에서 패전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었다. 그 바람에 그 출진에 가장 많은 것을 댄 최재형도 안중근을 전처럼 믿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척이 천리라고 해삼위는 또 달랐다. 유인석이 대장으로 앞세운 김두성 부대는 안중근 부대와 마찬가지로 회령 부근에서 크고 작은 전투를 벌여 몇 번이나 일본군 수비대에게 타격을 주고 나서야 후퇴했다. 따라서 연해주로 되쫓겨 나오기는 해도 그들에게는 안중근 부대의 초기 활동이 남쪽에서 적의 전략을 분산시켜 준 효과를 본 셈이었다. 이범윤의 창의회 소속 부대도 그런 면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그 바람의 최재형의 동의회 세력이 강한 연추와는 달리 해삼위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안중근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연추에서 다시 열흘 넘게 묵으면서 심신을 달랜 안중근이 해삼위로 가자 어떻게 알았는지 그곳 동포들이 크게 환영하는 잔치를 마련해 놓고 안중근을 불렀다.

“패전한 장수가 무슨 면목으로 여러분의 환영을 받을 수가 있겠소?”

안중근이 그러면서 극구 사양했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싸우는 사람에게 언제나 있는 일이니 부끄러워할 게 없소. 그런데도 안 참모중장께서는 그같이 위태로운 곳에서 이렇게 무사히 살아왔으니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우리에게는 이 어찌 환영할만한 일리 아니겠소?”

그래서 안중근은 어찌하는 수 없이 몇 번 그 자리에 불려갔으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그해 5월 일본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폐간하게 된 海(해)趙(조)新聞(신문)을 인수하여 창간한 大東(대동)公報(공보)의 편집을 맡고 있던 李(이)剛(강)이나 주필인 정재관과 같은 사람들도 안중근의 공을 높이 치하했고 이위종이나 장지연 같은 망명객들도 안중근을 패군지장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그라나 한 번 연추에서 상처를 입은 탓인지 안중근의 울적한 심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때 유인석이 김두성을 시켜 안중근을 불렀다. 안중근이 찾아가자 유인석이 안중근의 두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세상이 무어라 말하든 나는 자네가 옳았음을 믿네. 그리고 잘 싸웠네. 너무 상심하지 말고 가던 길을 가게. 이제 연해주 의진은 파했으나 총대장 김무성의 이름으로 자네에게는 독립특파대장의 직함을 남겨 두겠네.”

그런데 유인석의 그와 같은 말이 뜻밖에도 안중근에게 힘이 되었다. 독립특파대장의 직함과 가던 길을 가라는 말에 퍼뜩 정신이 든 안중근은 다시 의병 전쟁의 치열한 투지를 되살렸다. 비록 연해주 의진은 흩어졌으나 안중근에게는 홀로 싸움을 계속할 근거가 마련된 까닭이었다.

다음 날 연추로 돌아간 안중근은 다시 용기를 내어 최재형을 찾아보고 연해주 의병 독립특파부대의 결성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미 안중근을 믿지 못하게 된 최재형은 무겁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지난 번 출진 때 내놓을 수 있는 건 다 내놓았네. 지금 내 형편에 군자금은커녕 쌀 한가마 내 놓기 어려울 것이네. 거기다가 독립특파부대를 결성한다 한들 누가 그대를 믿고 따라 주겠는가.”

이에 안중근은 이범윤을 찾아가 보았지만 그도 최재형과 크게 바를 바 없었다. 지난번에 일본군 포로르 놓아 준 일을 드러내 놓고 빈정거리지는 않았지만 안중근을 따로 내세워 일본군과의 싸움을 서둘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독립특파부대를 꾸미는 일은 이제 노서아 땅에 흩어져 사는 여러 동포들에게 호소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黑龍(흑룡)江(강)의 물결은 반년 전 안중근이 의형제인 엄인섭 김기룡와 함께 바라보던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희끗희끗 떠다니던 해빙기의 얼음 조각은 보이지 않았으나 머지않은 결빙을 앞둔 검푸른 물결은 지난 봄 알지 못할 감동으로 바라보았던 그 물결이었다. 그러나 기선 갑판에 나와선 안중근은 그때의 안중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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