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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인의 설걷이 (148)

작성자조흥제|작성시간26.06.16|조회수6 목록 댓글 0

                                                 (148) 잔치와 설겆이

 

                                                                                                          조 흥 제

 

  잔치의 즐거움은 마련하는 흥분과 진행하는 긴장에 있는 것 같다. 어떤 잔치건 그 잔치에 참여하는 이들은 그 흥성거리는 흥분과 포식과 화려함을 기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 그 잔치가 끝난 뒷면 거기가 어떠한 장소건, 어느 때이건, 살벌하고 지저분하기 마련이다. 잔치 진행중에는 사람 앞에서 들락거리며 시중들던 이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흥겹게 떠들던 이들도 싱겁게 사라지는 것이 예사다. 그렇게 진행했던 때의 탄력성과 흥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추풍낙엽처럼 휴지와 지저분한 찌꺼기가 흩어져 있고 남은 사람들도 맥을 잃고 망연히 잔치의 뒷 그림자를 쫓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 서글픈 것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잔치의 뒷 풍경처럼 서글프고 어수선한 것도 드물 것이라고 자주 생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람 사는 형편이, 아니 인간 일생이 그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매사에 우리는 유종의 미라는 것을 일러 왔고, 그것을 참으로 갈망해 왔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실천은커녕 우리 사회에는 이 말조차 거의 없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시작은 있고 나중은 없다는 얘기다. 용두로서 서직했지만 뒷모양은 사미 꼴이 된다는 말이다. 꽃은 피더니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굴은 말쑥하던데 인간성은 맹탕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서글픈 일이 또 있을까? 이리하여 맛과 멋을 상실한 인간세상이 되어버렸는가 보다.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나 보다. 염기잃은 세상인가 보다.

나는 한때 거의 소금기 없는 식생활을 해야만 하는 병상에서 느낀 바가 있다. 진실로 사람이 살아간다는 자체가 맛, 곧 맛은 염기요, 염기는 사는 멋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세상 모두가 자신의 것이라 해도 소금 맛을 거부당한 존재라면 그는 이미 살아 있다는 대열에선 물러나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데 있어서, ‘설겆이와 철학’을 몸에 지닌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잔치의 뒷바라지보다도 ‘설겆이의 철학’에 있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무대의 각광을 받기는 좋아하지만, 막후에서 생색 없는 일은 하기 싫어하는 것이 사람들의 실정인 것 같다.

하지만 잔치마다 일마다에, 아니 하루 종일 세끼의 식사 후엔 설거지라는 중요한 작업이 있다. 식사 자체는 중요시하지만 설거지는 귀찮아한다. 그런데 설거지의 정신은 생색 없고 무시당하는 일이지만 실상 이것이야말로 우리 생활의 핵심이어야 된다고 하겠다. 설거지의 정신은 참말로 희생이나 봉사의 자연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좋은 일에는 한몫 끼지만 궂은 일에는 손 싸매고 도피한다면 이러한 이기심으로 가득찬 존재에게 축복이 임할 리가 있겠는가? 설거지를 즐겨 하는 손길은 남을 돕기에 앞서 이미 축복받은 마음씨와 손길의 소유자가 아닐까? ‘궂은 일은 내가 먼저……’라는 것이 설거지의 통한다면 ‘즐겨서’ 수고를 담당하는 사람은 이론이 없이 십자가가 무엇임을 터득한 것이다. 십자가가 표지나 말로서가 아니라, 그 심정에 그 생활에 머문다면 어떠한 조건에서건 이미 승리를 약속 받은 것이다. 승리의 약속없이 생활의 맛과 멋을 찾을 수도 즐길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느 주부는 식사 전의 가사는 남의 손에 의존하지만, 설거지만은 꼭 자기가 한다는 얘기를 듣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는 걸 보기도 했다. 설거지는 불결한 걸 청결케, 무질서한 것을 질서있게 정돈하는 것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간수할 것은 잘 간수한다. 그릇들을 이용하는 것도 주인의 심정이다. 남의 세간을 자기 것처럼 다루는 손길은 드물다. 설거지의 정신은 주인의 정신이다. 알뜰한 살림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여대생들과 수련회를 가지면서 한 사람씩 설거지하는 정경을 바라보면서 설거지가 단순한 설거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배움의 기본이요, 일의 출발이란 걸 깨달았다. 설거지를 합리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그밖의 것은 미루러 알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우리 사회에 설거지의 철학이 번졌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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