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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인의 작자와 주인공의 대화(150)

작성자조흥제|작성시간26.06.18|조회수12 목록 댓글 0

                                    (150) 임옥인의 作者와 主人公의 對話

 

                                                                                                          조 흥 제

 

  A씨!

빗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들으며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방의 온도는 알맞고 기분도 비교적 명랑합니다.

행복한 시간이 있다면 이럴 때가 아닐까요? 그리고 마음에는 잔잔한 빗소리처럼 들려오는 당신의 음성이 있습니다.

“내 눈앞엔 비가 내려요!”

언젠가 이 삭막한 인정의 벌판에서 온통 꿈을 잃고 기갈에 못견디어 통곡한 나날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유한한 시간 속에서—더욱 짧게 느껴지는 남은 시간에의 애착 때문인지, 다시 그런 통곡은 되풀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괴롭더라도 조용한 손길로 가슴을 달래면서 맑게 씻긴 하늘을 쳐다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A씨!

저녁 6시30분, 교회 구내의 비 새는 천막교실을 찾아 왔습니다. 사무실 앞 화단에는 제때를 맞은 다알리아, 굴라디오라스며, 황련이 참으로 싱싱하게 피어 있습니다. 빈민굴에도 꽃이 있는 한 우리는 항상 풍성하고 자랑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 ‘비 내리는 날, 비 내리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지으라고 뿌연 흑판에 묵묵히 써 놓고 찌그러진 의자에 앉아 저도 펜을 뽑아들고 이 글을 씁니다.

A씨!

저는 이렇게 이야기의 대상이 있다고 어려서 좋은 물건을 가졌을 때처럼 자랑하고 싶군요. 이런 글이 당신께 공감을 얻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저의 독단일지는 몰라도.

“작품을 읽으면서 행복을 느꼈습니다.”

라고 하시던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행복이라는 값비싼 어휘를 쓰시던 말씀이 제게는 상당히 희귀하고 또 즐겁게 들렸던 것입니다.

생명의 고동이 없이는 일(작품)할 수 없겠지요.

“소설 속의 나는 비현실적인 인물이 되지 않을까요?”

라고 당신은 물으셨지만 물론 그가 어떻게 살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소설은 꿈만이 아니요, 진실이기 때문에 구현하려는 인간의 모습이 ‘정’일 수많은 없겠습니다. 주인공에게 작자가 너무 가까우면 작품과의 일정한 거리를 가질 수 없을까 염려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A씨! 지난 일주일간은 무척 긴 것같이 느꼈습니다. 주말에 별다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현실의 空隔을 조금씩조금씩 메워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에게도 행복이란 어휘를 쓰게 해 주십시오. 그날 국화꽃 한 다발 안겨 드렸더니, 묵묵히 갖고 가셨습니다.

A씨!

당신은 자신을 차고 딱딱한 석조전이라고 하셨지요? 생기없이 굳어버린 인간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저의 작품의 여주인공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차고 견고한 석조전 옆에 한그루의 나무가 되어 싱싱한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었으면……”

라고 이 현실, 상식세계에서 그윽하고도 찬란한 꿈이 때가 묻을까 걱정업니다. 조심스레 소중하게 받들어 가꿔야지요.

A씨!

밝은 불빛 아래, 소중해서 자들기도 아쉬워하는 내 심정을 허물지 마십지오. 그를 위해 빌어야 하겠습니다. 그를 위해 일하고, 그를 위해 자라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영원히 갈고 닦아야 하겠습니다.

항상 내 곁에 계셔서 눈길로, 음성으로, 그리고 침묵으로 지켜주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언제부터냐구요? 그것은 측정할 수 없는 때부터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안녕히 주무십시오.

주여! 당신 없이 그를 생각할 수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 분과 더불어 당신이 제 곁에 계시옵소서.

A씨!

저는 지금 죽음을 실감했습니다. 의식이 있는 죽음을 실감하면서 참으로 눈 감아버렸습니다. 어디선가 곡성이 아련히 들려왔습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의식의 정지상태였습니다.

빗소리였습니다.

“아아……”

저는 그 죽어가던 자신으로부터 깨어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겁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A씨!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의사 왕진,

오늘은 원고도 못쓰고, 학교도 결강입니다. 머리가 띵할 뿐입니다. 그러고 저어 창 너머 하늘의 구름발 위에 애닲은 마음을 얘기합니다.

 

주여! 제가 걸어갑니다.

저 나무가 서 있듯이

저 강물이 흐르듯이……

주여! 제가 생각합니다.

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

저 강물이 넘실거리듯 ,

주여! 언젠가 이 거리에서

모두를 잃고, 모두를 버렸다고 생각한 저였습니다.

주여! 이제 구름 속에서

이제 그 우주 속에서

나의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렵니까?

나의 영원을 보시렵니까?

주여! 조율이 끝나면

힘차게 울게 하소서.

그리고 아름답게 지게(造花)하옵소서,

A씨! 작가 K를 만났습니다.

 

“허 참, 그 일기를 놓치다니……그야말로 신부에게 고백하듯 써 내려간 ‘내가 크리스찬이 되기까지’는 어느 처녀의 일기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아깝거든요?”

“왜 놓쳤어요?”

“그때는 그래야만 될 것 같아서요. 지금 생각하면 그건 그대로 작품일 수도 있었죠. 조금 각색만 하면……”

“그렇게 實人生을 작품화하려고 애쓰니까……작가는 소박한 사랑도 못할 것 아녜요?”

하고 저는 뱉아버렸습니다. 작가는 그 자의식 때문에 누구를 열중해 사랑한다는 것도 어려울 거라고 말하니까,

“허허허……그런 것두 아니죠. 기가 막히니까, 쓰는 거죠.”

K씨도 생활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작품을 쓸거라고 했습니다. 현재 여러 대학에 출강하는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되기에 시간과 정력을 버리고 사느냐—하는 문제는 적어도 자기의 일을 가진 누구나가 느끼는 것일 것입니다.

A씨!

“선생님 함께 사진 찍으세요.”

하고 졸업반 학생들한테 포위 당했습니다. 비에 젖은 마무를 등지고 싱싱한 잔디 위에 섰습니다. 여기는 구 운현궁 D대학입니다. 서서 찍고 , 앉아서 찍고, 그것을 기화로 요새 다시 카메라 취미가 생겼나 봅니다. 다시 ‘모습’을 모아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며 사는 기간의 사람의 모습은 어떻게 반영이 되나? 내 얼굴에 그 분의 마음이, 영상이, 그리고 영혼이 찍혀지는가를 보고 싶은 것입니다.

오랜 비가 걷히고, 나무에 석양이 비끼니 참 곱습니다. 이런 고운 잔디 위에 앉아 음악같이 울려오는 당신의 얘기를 한없이 듣고 싶군요. 바람이 뺨을 건드립니다. 벌서부터 가을을 맞을 일이 앞질러 생각됩니다. 가을이래야 두어 달 후의 일이지만요.

벤치에 걸터 앉았느라니,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마다 하나같이 젊고 예쁘고 싱싱합니다.

“모두 모두 예뻐, 젊어서 그런가?”

허리도 가늘고, 목과 다리도 가늘고, 그러나 가슴은 풍만하고, 눈은 모두 생동합니다. 낳고 죽고 하는 인생에서 젊은 육체란 바라보는 편이 더 즐거운 노릇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젊음의 구가는 예술의 본령처럼 되어 왔습니다.

여전히 젊음을 잃지 않으려는 자기탁마와 성장에서 갈망이 있으므로 시간은 항시 충일되는 것일까요?

A씨!

사랑하는 사람만이 늙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아아 바람이 이는군요. 싱그러운 바람이! 맛 있는 바람이……

풀속에 앉아 고운 낙조를 바라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던져진 고독한 자리에서 “당신(神)없는 나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고 절규하는 영혼 있는 이들의 진실도 이런 시각에 생각을 더 해 주는 것입니다.

세계와 대중 속에 묻어버린 자아를 찾자는 시도이며 허무를 해결하려는 방법으로서 존재의 요기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A씨! 문득 창작 노우트를 펼치니, 낙서의 한 구절이 눈에 띄었습니다.

“귀염받는 가축은 기름집니다. 사랑받는 여자는 화기가 있습니다. 사랑받는 아내는 윤택합니다.”

햇빛처럼 드리우는 하나님, 사랑에 굶주린 사람에게 무슨 소망이 있을 것입니까?“

햇빛을 향하여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A씨! 또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빗소리 속에 파묻혀 비리면 좋겠습니다.

이런 시간이 길이 계속될 수는 없을까요? 어리석은 소원이 바로 피조물의 실태인가 봅니다. 순간을 영원히 살 수도 있고 영원을 순간으로 사는 것이 인간일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풍성한 생명입니까?

어째서 이런 아쉬운 목숨입니까?

낙조를 받아 잎지는 최후처럼, 황홀한 비애가 넘쳐 흐릅니다. 거리 한복판 다방에 있어도 당신과의 대화에 열중해 있으면, 그곳이 마치 밀림 속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A씨! 앞으로의 대화도 끊어지지 않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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