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정연희의 그러나 거듭 念願을
조 흥 제
나는 늘 혼자였다.
혼자여야 하는 그 자리는 목숨만큼 뚜렷하고 죽음처럼 단단히 약속되어 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내 가슴이 빈 자리였을 때. 섬겨야 할 사람을 찾지 못하여 촛대에 불은 당겨지지 않고 무릎 꿇을 자리가 써늘하기만 할 때. 나는 텅 빈 아픔으로 혼자였었다.
그러나 귀한 한 분을 섬기어, 심령의 불꽃이 흩어짐 없이 한 곳만을 밝힐 때도, 나는 그것이 어떻게 모진 아픔이요 외로움인가를, 아무와도 나눌 수가 없음을 깨달은 혼자였었다.
귀한 분을 섬기는 마음의, 오히려 크낙한 오로움.
한분을 섬긴다 함은 다른 모든 것과의 단절일 수밖에 없는 것.
한분을 섬기는 길은 참으로 외롭고 서러운 혼자의 길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가슴이 비어 있을 때도 나는 혼자였고, 그 가슴이 섬김으로 가득찼을 때도 나는 혼자였다.
나는 늘 나 혼자서 누릴 나만의 영토가 필요했었다. 늘 혼자 있고 싶어 했고 혼자이길 원했으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었었다. 靜謐(정밀), 정밀이 필요했다. 정밀에 굶주려서 타인에게 침해받지 않을 나만의 영토를 걸터듬질 하려 들었다. 무덤과 같은 정밀을 찾아서 남들이 무심한 얼굴로 흡사 주검처럼 잠든 밤을 그 얼마나 독차지하려 했었던가.
그 안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무엇을 하고 싶었더냐고 물어도 대답이 있을 수 없다. 정밀을 차지하고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그저 나 아닌 무엇에게도 나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니까 대단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도, 나는 정말 얻어다 기른 아이일지 모른다는 공상 속에서 아무도 몰래 실컷 서러워했었다. 나는 그 공상을 좋아했다. 자라면서도 나는 딱정벌레 노릇을 했다. 어느 누구도 다치지 못하게 했고 다치기만 하면 무섭게 맞서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했다. 결혼을 하고도 혼자이고자 했다. 나는 늘 내 스스로가 그 생활의 외곽체이기를 원했다. 더불어 함께 한다는 것이 참으로 끔찍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하루하루 더 뼈저리게 아파하였다. 어쩔 수없이 그것을 견뎠었다.
緣故者.
어떤 때, 그 이름처럼 소름끼치도록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연고자. 차라리 그 있음으로 해서 몸부림치도록 해주는, 질기디 질긴 사슬.
한 남자의 아내였으면서 나는 늘 혼자이기를 원했고 거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그 내용에는 일일이 꼽을 수 없도록 많은 상호간의 불일치와 불합리가 많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 생활의 그 노릇 속에서 끔찍하도록 혼자가 되기를 갈망했었다.
인간은 과연 고립되어진 존재일까? 참으로 어느 것과도 절연된 채로 살 수 있는 것일까? 정말 남이 다칠 수 없도록 혼자되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그런 문제를 놓고 성실하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혼자이고 싶다는 너무도 강한 열망은 슬기의 눈을 멀려 버렸었다.
그래서 그 시간, 거실의 난로는 쾌적했다. 기세 좋게 끓는 물이 난로 위에서 따뜻한 증기를 뿜고 있었다. 벽에 걸린 르노와르의 그림속 여인이 그 뽀오얀 김 속에서 차츰차츰 움직이는 것 같았다.
두 손으로 감싸듯이 찻잔을 받쳐 들고, 나는 그 따뜻함을 있는대로 누리며 멀리 건너다보이는 솔밭을 바라보았다. 자욱한 공간에서 눈은 송이송이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였다. 늘 그렇게 혼자였다. 그러면서 나는 아내라는 배역을 걸머진……혼자일 수 없는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눈 내리는 벌판을 혼자서 지켜야 했고, 때 아닌 봄장마의 잿빛 얼크러진 빗소리를 줄곧 혼사서 새기며 운무의 솔밭을 막막한 눈으로 지켜야 했다.
나는 가족을 가지고 있었지만 늘 혼자였다.
그러면서 참으로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벗어날 수 있을까를 병 앓듯이 생각했다. 그 혼자되고 싶다는 소망은 지병처럼 늘 나를 잃게 했다. 나는 그때 그 상태에서 죽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었다. 죽음 그것에의 불안보다 나의 상태가 겁났었다. 나의 주검 위에 덮일 오해의 시선들이 겁났다. 그 가족의 일원으로, 누구의 누구로, 그대로 혼자 있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는 나에 대한 오해의 해석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그때 죽어서는 안되리라고 고집했었다.
현실적인 생활에서는 혼자가 아니었으면서도 늘 혼자이고자 했고, 그 염원은 나를 그지없이 외롭게 만들었지만 그 강한 집념이 외로움을 덜어 갈 때도 있었다.
무어의 작물과 흡사한 청동빛 조각 작품이 있고, 몇 점의 이조자기들이 진열되어 있던 거실. 솔밭과 부흥주택과 몇 개의 무덤과 채석장을 전망하는 유리문이 있고, 마당의 나무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 전화가 있지만 오는 일 이외에 걸만한 일이 있어 본 일 없었던 시간들. 다정한 친구가 있었지만 오고 갈 일을 잦게 한 일도 없었다. 설사 전화를 빌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의 통화가 가능했다 하자. 쌓였던 이야기를 주고받고 애틋한 사연이 흘로 오갔다 하자 . 그 전화는 어느 때고 끊어야 하는 것, 그것이 끝났을 때 텅 빈 제자리 저 혼자 있는 그 자리에, 갑자기 비정의 덩러리가 된 듯 서늘한 표정이 되어 침묵할 전화기의 모양과, 그 옆에서 눈 둘 곳을 몰라 할 자기자신을……나는 그것이 무섭다. 그 무서움은, 그 일을 수없이 겪어온 데서 배운 엄격한 스승인 것이다. 다정한 친구의 내방이 어떤 즐거움인가를 안다. 그러나 그가 나를, 일모의 빈 방에 떨쳐 두고 제집 제 사람들의 저녁을 위하여 훌훌히 돌아간 뒤끝의 그 빈자리를 ……그 자리를 지키며 한 동안 서성대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단단치 못한 마음을……나는 나 혼자서 해 저물음에 돌려 세워진 듯한 자리.
나는 일모가 무섭다. 그것을 혼자 견딘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해는 날마다 진다. 그렇게 하여 다음 날은 있어지고, 그 다음 날은 또 다시 저무는 시간을 펼쳐 준다. 하루도 거르는 일없이 거듭되어지는 것은 중병처럼 아프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집안에서나 거리에서나 다를 것이 없었다.
해가 실핏해지면 나는 우선 헐벗긴 것처럼 견디기 어렵도록 허전해 진다. 그것은 아무리 해도 짚어지지 않는 허전한 심연이었다,
廢園과도 같은 가슴. 차마 손 댈 길이 없어 눈물이나 한숨조차 엿볼없는……일모는, 끔찍한 상처에 필요한 안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집에 있을 때면, 그 시간에 저녁 준비의 부엌 소리를 멀게 들으며 침윤해 드는 방안의 어둠 속을 서성거린다. 조금씩 몰키든가 안개처럼 자리잡은 薄暮(박모). 그것은 마치도 죽음과 어떤 영원한 이별에 대한 슬픈 선지자와 같은 숨결을 가진 시간이다.
이웃집에서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어머니의 소리, 귀가하는 사람들의 문 두드리는 소리, 밤을 맞이하는 온갖 소리들이 어렴풋이 움직일 때, 나만은 완전히 질서를 잃고 그 일모 앞에 서 내 목숨의 졸아드는 아픔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 무서웠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글을 쓸 수도, 무슨 일을 정리할 수도, 허드렛일에 손을 댈 수도 없이, 그저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져 가는 듯한 나의 내부를 따라 허황지왕 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때는 거실 의자에 파묻혀서 끝없이 무연하게 박모의 들을 바라보는 때도 있었다. 건너편 언덕 솔밭의 하늘이 한치한치 가까워지듯 진해져가고, 아스라이 미끄러져 내릴듯한 별돋음을 보기도 한다. 멀리 아랫길로 분주하게 내왕하는 차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전기 가게, 약국, 양장점 집에서 켜 놓는 불빛들을 볼 수도 있었다.
제한된 방안을 벗어나고자 하여 뜰로 나서면, 우선 크게 자리잡고 있는 산그늘을 어깨에 느껴야 한다. 담그늘 진한 구석에, 늘어진 나무들의 어두운 모습이 마음을 눌러 오고 .
황매화며 철쭉이며 덩굴장미가 잎눈을 뜰 때거나, 국화가 사무치도록 정성껏 피어났을 가을이거나, 어슬녘의 뜰에서 내가 얻은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나누어줄 것이 없는, 쪼개어지지 않는 나 하나에 대한 어기찬 먹구름.
그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도록 아프고 무서운 자기자신에의 심문이요, 숨길 도리 없는 답변이었다.
어느 때, 그 형벌과도 같은 시각을 견디기 어려워서, 마치 대항이라도 하듯이 커어튼을 미리 치고 불을 있는대로 밝히며 수선을 떨어 보았지만, 나의 마음, 커어튼 틈 사이에 서성거리는 뿌우연 저녁빛을 모른체 하기 어려웠고, 나의 그짓거리는 결국 눈물겨운 것이 되어가고 만 일이 있었다.
어느 것도 내게 와지는 것을 피할 길은 없다. 피해서는 안될 뿐더러 정직하고 참다랗게 겪어내지 않아서는 안될 것을 알것 같았다.
그 시간쯤 집으로 돌아오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의 서성거림 속에서 나도 차를 기다려야 한다. 아직 어둡지 않았어도 불들은 바쁘게 켜지고, 사람들은 하루에서 놓여난 듯이 혹은 가볍게 혹은 지쳐서 오고 가고, 거리는 계산을 끝낸 주판처럼 다시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려는 얼굴인데, 정작 하늘은 아직도 그 빛을 거둔 것이 아니다. 잡담을 이룬 사람들, 소란한 불빛들, 그리고 그것들을 굽어보는 높직높직한 빌딩 그 너머에 머물고 있는 박모. 아직 다하지 않은……그래서 가슴 아프게 머뭇거리는 마음이듯.
정거장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 틈에 어깨 겨누듯 서서 우두커니 그 하늘을 올려다 볼 때, 갑자기 헐벗듯이 시려드는 마음. 어느 한곳 기댈 수도 없고, 어느 한 점 닿이지 않을 텅 비어드는 마음. 저려드는 아픔에 가슴이 밀려 올때, 그것이 정녕 외로움임을 알 수 있었다. 식품점에 들러 이것저것 골라서 꾸려든 꾸러미가 갑자기 눈물겨워졌다. 내가 먹고자, 나를 위하여 이것저것 골랐던 물건. 갑자기 그것이 부끄러워지고, 내가 나를 위하여 꿈지럭거렸던 그 행위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사람들은 무수하게 오고 갔다. 거리로, 육교 위로, 지하도로. 그러나 그 많은 사람중에 나의 사람은 있지 않았다. 단 하나. 단 하나이면 될 그 한 사람이.
나는 나누어 갖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움을 죄처럼 느끼면서 그저 하늘을 보았을 뿐이다. 왜 나는 혼자인가. 나누어 가질 것이 왜 없을까. 나누어 받을 그가 왜 왜 내게는 없는 것일까.
日暮 앞에, 나의 마음은 폐원.
일모를 더불어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사람이 그리웠다. 사람이—
나는 그 거실의 유리창을 통하여 함박눈을 맞기도 했고, 영롱한 별들을 헤아려 본 일도 있으며, 그믐달의 지친 길을 함께 따라가 본 일도 있었다. 하염없는 비구름에 하루 종일 마음을 적셔 보기도 했고, 고추짜아와 코스모스 위의 하늘을 가슴에 물들이기도 했으며, 폭풍의 노여움을 지키기도 했었다.
대개가 혼자였었고 나는 절실하게 혼자이고 싶었고, 그렇게 혼자일, 나는 어떻게 하면 그 혼자를 벗어나서 섬기는 여인이 될까를 구슬프게 공상했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일 수 없었고 혼자이기를 허락받지도 못했다.
나는 연고자가 있으므로 혼자가 아닌데도 늘 혼자였고, 그런가 하면 혼자 아닌 혼자 속에서 아주 혼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것을 소망하다 보면 나의 혼자는 좀체로 허락되어 지지 않는 모순 속을 행군해야 하는 고난이 길이었다.
그 혼자가 되기 위해 나는 한번의 죽음을 치루었었다. 그때의 나는 참으로 죽어버렸다. 생물적인 생명 이외에 죽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피를 많이 흘렸고 끔찍스러운 칼질에 상했으며, 출구가 형편없이 좁아서 그것을 깨뜨리기에 정신은 허물어졌었다. 그러나 내가 죽은 것이 그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내 스스로가 죽기를 원했었고 그래서 죽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해서 나의 영토를 드디어 쟁취해 놓았다. 그리고 생활은 시작된 것이다.
바로 이마 위에 北岳을 두고, 산의 중허리에 파묻혀 있는데다가 몹시 낡고 헌 집이었다. 바닥이 암반이어서 수도를 묻지 못하는 집이다. 기둥들이 기우뚱거려서 문짝은 하나도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퇴락해 가는 고옥이었다. 남향이긴 했지만 바로 문전이 아카시아 숲을 이루고 있는 깎아지른 언덕이어서 해는 한낮 잠깐 뿐이고, 산그늘 나무 그늘에 늘 파묻혀 있다시피 했다.
너무 낡고 우중충하다 하여 형제들이 반대를 했지만, 당사자인 내가 망설임없이 작정해 버렸다.
음력 초하루 보름마다 朔望奠(전)을 올려야 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靈駕(영가)를 모신 절이 몇걸음 아래 쪽으로 건너다보이는 위치였고, 문전 손 닿는 곳에 약수가 있어서, 불전에 옥수를 길어 올리기에 좋은 점도 있었지만, 나를 몽롱하게 한 것은 그때 한창이던 아카시아의 향기였고 보랏빛 산그늘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향기에 취해서 그곳에 머물기를 작정했는지도 모른다.
이사짐을 옮길 때, 짐군들은 너무 꼬중백이라면서 군시렁거렸다.
그래도 나는 그 산속에서 시작되는 생활이 어떤 것일까 하는 긴장과 기대로 하여, 그리고 구름처럼 안개처럼 햇살처럼 일렁대는 아카시아의 꽃향기로 하여, 이미 저 바닥에서의 잡사에서는 벗어난 듯한 느낌뿐이었다.
굳이 쫓아오는 일들이 많았던 것도 아니지만, 무엇인가를 좀 피해보고 싶던 마음이 이렇게 해서 산간고옥을 찾아들게 했다.
함께 살던 시중군이 저의 집 일 때문에 아주 작별하고 간 뒤에도 나는 사람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있어 나의 허드렛일을 덜어주는 편리보다는, 그 한 식구에 대하여 소모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의 신경이 부당할만치 시달리는 것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부엌에서 설겆이를 한다든가, 마당에서 그릇을 닦는다든가, 오면서 가면서 부딪는 소리 등에 번번이 긁히는 나의 여린 신경을 미워해 보기도 해보았지만, 쓰레질하는 비질에까지 지쳐버리는 신경 앞에서는 내가 나에게 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는 아직 성장하지 못한 채 상주가 된 동생을 돌본다는 뜻에서 합솔을 했었는데 그 동생에게 지방 근무가 차례 와서 그가 제 방을 비우게 되자 나는 정말 혼자가 되어져 버렸다.
참새들이 서까래 틈새에다 둥지를 틀고, 다람쥐는 허술한 담을 동그란 표정으로 넘나든다.
향기가 가시더니 아카시아는 길길이 무성했다. 여름날 기나긴 해조차도, 그 숲 등너머에 머물다 가는 것이어서 마당은 늘 이끼 빛의 그늘이었다.
영창을 열면 바로 이마에 산이 와서 닿았고, 빨래들은 산정기를 묻히면서 싱그럽게 잘 말라 주었다. 빨래터는 골짜기 깊은 곳에 있었다. 오리나무 그늘이 깊고, 덤불 풀과 억새잎들이 휘휘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깝도록 맑은 물줄기가 고이면서 흘러가고, 여름새 빨래들은 푸른기가 돌도록 때가 잘 빠졌다.
그러나 그 무성한 숲이 헐벗기 시작했을 때, 적막은 제 모습을 갖추고 정작 나를 가두어 놓으려고 가까이 왔다.
외출이 부득이한 경우, 나는 대문을 겉으로 채우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늦은 시간에 대문앞에 설 때, 등 뒤 언덕의 아카시아 그늘이 휘청휘청 덮여와서 자물쇠를 더듬는 손은 어쩔 수없이 떨릴 때가 많았다. 나는 어둠이 미어지도록 가득찬 집속으로 삼켜지듯이 들어가야 한다. 텅빈 집의 새까만 뜰에서 담을 넘어든 가랑잎들이 메마르고 허전한 몸부림을 커다랗게 던져 왔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나의 마음 자리를 이윽히 쓸어보았다. 누구인가 와서 거할 그 자리임을 눈물겨움으로 알아냈다.
달이 있을 때면 빈촌의 얕은 들창에서 흐르는 불빛이 시린 달빛을 더불어 비비대기도 하는 언덕에, 이따금 산꿩이 가랑잎 더미를 들썩거리는 소리가 누군가의 발소리처럼 들리는 밤이었다.
나는 그 기어지는 밤을, 문방사우를 곁에 하고 먹으로 시간을 갈고는 했다. 밤이 깊을수록 먹빛은 진해졌고, 먹빛이 진할수록 밤은 조용했다. 한획 한획 글씨를 이루면서 별로 들볶이지 않을 정도의로 지난날의 일들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날 어머님이 내게 주시던 나무람이 떠올랐다.
“그렇게 사람이 싫거든 북악산 상봉에다 움이나 파고 들어 앉거라. 사람이 사람을 꺼리면서 무슨 재주로 산다더냐?”
내 방을 들락거리며 어지럽힌 동생들로 하여 성미를 부리던 나를 어머님은 그렇게 나무라셨다. 어머니 말씀대로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였다. 그렇게 나무라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는 이미 이 땅 위에 계시지 않고, 나는 나이를 어지간히 헤아리게 된 문 뒤에 앉아 이렇게 사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정말 내가 바랐던 혼자란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그것은 하나의 터닦음이었다. 내가 나를 바쳐 무릎 꿇을 제단을 마련하고자 했던 값진 아픔이요, 외로움의 순례였다.
어느 날 햇빛이 가득 차 버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살아 있다는 기쁨을 뻐근하도록 한 아름 안을 수가 있었다.
인간이 제각기 혼자여야 한다는 그 당연한 사실조차 기쁜 긍정이 되어 나를 신선한 느낌 속에 떠있게 했다.
그날. 가을 색이 짙은 산 언저리의 아침 햇빛은, 기도와 축복이 끝난 뒤에 무구한 감사처럼 순하고 맑고 투명했으며 그지없는 기쁨으로 빛났었다.
끌리듯이 산으로 갔었다.
몇몇 집의 대문 앞을 거쳐서 약수터를 지나고, 다람쥐에게 간지럼을 타고 있는 상수리나무 숲을 뚫고 물줄기가 마르지 않은 바위들의 골짜기와 등성이를 올랐다. 어느 집 가을걷이 마당엔 국화만이 남겨져서 향기를 뿜는 곳에서 잠간 머물렀다가, 감나무의 주락을 바라보았다. 얼룩져버린 두꺼운 잎들이 땅에 누워있었지만 그곳에는 아픔을 견뎌낸 복종의 기쁨이 있었다.
그 아침의 산은 조용한 환희였다.
솟구쳐 오는 소나무, 버텨 있는 홰나무, 각가지 나뭇가지로 덮인 숲 사이에, 해무리하는 아침 해의 뽀오얀 빛들이 넘치는 기쁨으로 엇갈려 있었다.
흐르는 물 위로 무겁게 젖은 가랑잎이 떠 내려왔다.
물가에는 산딸기 덩굴이 무성했다. 억새풀이 하얗게 쇠어가고 가시덤불과 칡덩굴이 아직도 줄기찼다.
절벽 가에 보랏빛의 자잘한 까치밥이 앙증맞게 열려 있었다. 빛깔이 하도 고와서 몇가지 꺾어 들었다. 새끼 사슴의 무섬 타는 눈처럼 새까만 머루알도 찾아냈다. 언덕 여기저기에 구절초의 하아얀 꽃이 남아 있었다.
산을 내려올 때, 까치밥과 구절초 꽃이 한웅큼 내 손에 꺾여져 있었다.
그 곷은 꽤 오랫동안 내 밤을 지켜 주었다.
가을이 이울고, 어느 날 비바람에 가을산이 빛을 잃고 숨져 버렸어도 그 꽃은 남아 있었다.
드디어 첫눈이 오던 어느 날.
나는 그 꺾여진 꽃 앞에서 사람과 죽음과 사랑을 배웠다.
사람은 저마다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누구나가 죽는다는 것을. 그 필연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왜 우리는 제각기 혼자여야 하는지. 왜 우리는 모두가 죽어야 하는지. 왜 우리는 그래도 사랑해야 하는가를.
산에서 꺾여져 온 산꽃들은 아직 이 방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겨울로 덮이는 산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꺾여져 온 그 꽃들은 필연으로 간다. 죽음을 곁에 하고 있으며 죽음 속에 있다. 그러면서 어둡고 추운 산소식을 서러워하고 있다.
나는 그때 그 순간.
나도 그렇게 꺾여져 나온 한 가쟁이의 까치밥, 한 줄기의 연한 구절초임을 알았다.
나는 어쩌다가 꺾여져 나와 있는 자연의 한 부분. 그래서 필연적으로 시들거나 죽어갈, 꺾여진 나뭇가지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누구나가 꺾여진 나뭇가지.
우리들의 귀의는 자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꺾여진 채 곧 시드는 나무이고 싶지 않음을 함께 알았다.
나의 목숨을 담구어 줄 한 그릇의 물이 있어야 함을 알았다.
그것은 나의 목숨을 이어가게 해 줄 손길. 섬김속에 있어지는 기쁨.
섬겨야 하는 아름다운 까닭을 배운 것이다.
왜 혼자여야 하는가를 알았고, 한 사람을 섬기는 길의 참으로 외롭고 서러운 길도 왜 혼자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가를 배웠다.
나는 늘 혼자임을 안다.
그러나 거듭 염원을. 섬김을 위한 여인으로 나는 늘 혼자이기를— (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