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쪽/ 윤동주
저쪽으로 황토 실은 봄바람이
호인(胡人)의 물레바퀴처럼 돌아 지내고
아롱진 사월 태양의 손길이
벽을 등진 설운 가슴마다 올올이 만진다.
지도째기 놀음에 뉘 땅인 줄 모르는 애들이
한뼘 손가락이 짧음을 한(恨)함이여
아서라! 가뜩이나 엷은 평화가
깨어질까 근심스럽다.
음지식물
번쩍이는 볕들이 내리쬐고 나면
이파리가 검게 탄 얼굴처럼 변하고
따사로웠던 5월의 손길도 이제는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 같다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 잡고
추위에 떨던 때가 어제인 듯도 한 대
앞으로 다가올 뜨거움을
어찌 피할가 걱정스럽다
몇 번째 봄/이병률
나무 아래 칼을 묻어서
동백나무는 저리도 불꽃을 동강동강 쳐내는 구나
겨울내내 눈을 삼켜서
벚나무는 저리도 종이눈을 뿌리는구나
봄에는 전기가 흘러서
고개만 들어도 화들화들 정신이 없구나
내 무릎 속에는 의자가 들어 있어
오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리느라 앉지를 않는구나
몇 번째 여름
7년간을 땅속에서 살다 깨어난 매미는
뜨거운 여름도 추워서 맴맴하고 우는구나
바다에서 웃는 소리가 거슬려
검은 구름 잔뜩 찌푸리고 태풍은 달려오는구나
여름에는 가을에 떠난 사람 생각에
땀도 눈물처럼 마를 날이 없구나
내 머릿속에는 생각이 많아서
밤새 뒤척이며 잠을 잘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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