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7대 순종의 유릉(裕陵) (Ⅰ)
○ 순종의 생애
순종(1874~1926)은 조선의 마지막 왕인 27대 왕이다. 이름은 척, 자는 군방, 호는 정헌이다. 1874년 2월 창덕궁의 관물헌에서 고종과 명성왕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탄생 다음 해 2월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882년에 민씨(후의 순명효황제)를 세자빈으로 맞았다. 1897년 대한제국의 수립에 따라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04년 새로이 윤씨를 황태자비로 맞이하였다.
1907년 7월에 일제의 강요와 일부 친일정객의 매국 행위로 왕위를 물러나게 된 고종의 양위를 받아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고, 연호를 융희로 고쳤다. 황제(皇弟)인 영친왕을 황태자로 옹립하였고, 거처를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4년간에 걸친 순종의 재위기간은 일본에 의한 한반도 무력강점으로 국권이 점차적으로 약해지고 있었다.
일제는 1909년 7월 각의에서 ‘한일합병 실행에 관한 방침’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한국과 만주문제를 러시아와 사전협상하기 위해 이토를 만주에 파견하였다. 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하여 사살되자 이를 기화로 한반도 무력 강점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일제는 이러한 침략의도에 부하뇌동하는 친일매국노 이완용·송병준·이용구 등이 중심이 된 매국단체 일진회를 앞세워, 조선인의 원에 의하여 조선을 합병한다는 미명 하에 위협과 매수로 1910년 8월 29일 이른바 한일합병조약을 성립시켜 마침내 대한제국을 멸망시켰다.
당시 순종은 친일 매국 대신들 사이에서 국가 최고의 수렴자로서의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다. 대한제국이 일제의 무력 앞에 종언을 고한 뒤, 순종은 황제의 위치에서 왕으로 강등되었다. 창덕궁 이왕으로 예우하고 왕위의 허호는 세습되도록 조처되었다.
폐위된 순종은 창덕궁에 거쳐하며 망국의 한을 달래다 1926년 4월 25일에 승하하였다. 6월에 국장을 치러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유릉에 안장되었다. 순종의 인산례를 기해 6·10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 유릉의 조성
순종의 황후인 순명효황후는 1904년 9월 28일에 33세로 승하하였다. 같은 해 11월 29일 양주 용마산 내동 묘좌 언덕에 예장하였고, 원호를 유강원이라 하였다. 1904년 유강원을 조성할 때는 조선의 왕릉 격식대로 석물을 갖추었다.
1907년 황후로 추봉되었고, 1926년 4월 25일에 현재의 유릉으로 천봉하여 합장하였다. 천봉하면서 유강원의 구 석물들과 청량리 홍릉의 구 석물들은 일부는 가져가서 능상 석물로 사용하고, 일부는 두고 왔다. 순종은 1926년 3월 14일 53세로 승하하였다. 같은 해 5월 2일에 양주 홍릉 왼쪽 묘좌의 언덕에 장례하였다.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유릉의 국장 절차는 삼도감이 아닌 일본인 건축가 이토 추타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때 석인은 일본인 조각가 아이바 히코지로에 의하여 새롭게 조성되었다.
계후 순정효황후는 1966년 1월 13일 73세로 승하하였다. 같은 해 1월 23일에 유릉에 합장하였고, 석물들에 대한 변동사항은 현재까지 없다.
○ 입지
유릉은 경기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일원 홍유릉 지구에 있으며, 면적은 약 367,052평이며, 고도 62m에 위치해 있다. 유릉은 조선의 제27대 왕이자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과 순명효왕후 민씨, 순정효왕후 윤씨의 동봉삼실형 합장릉이다. 정궁인 경복궁으로부터 직선거리 약 21.3km에 입지하고 있다.
유릉은 묘적산을 주산으로 하여 홍릉 서쪽으로 뻗은 능선 허리 해발 70m에 북서방향으로, 부모의 능원인 홍릉에서 좌측으로 뻗어나간 능선 300m 전방의 좌측 60m 부근 정서쪽 방향에 능침이 위치하고 있다.
용맥은 한북정맥(운악산)→주금산→천마산→백봉→수리봉으로 이어진다. 유릉은 태조산(백두산), 중조산(주금산), 소조산(천마산)을 조산으로 하고 있으며, 수리봉을 주산으로 하고 있다.
○ 공간구성
㉮ 진입공간
유릉은 황제릉제로 외금천교와 외재실이 능역의 북서측에 있으며 외재실은 현존하나 전사청 등 일부 시설은 멸실되었다. 유릉의 삼문을 통과해 우측 석교를 지나면 진입로 좌측으로 곡장이 없는 제정과 곡장이 있는 어정이 있다. 홍살문에서 남서쪽으로 어재실이 있으며, 행각과 전사청 등의 시설이 있다. 유릉의 재실은 문간채, 좌측 재실과 우측재실, 양쪽 재실을 연결하는 연결채와 고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제향·전이공간
어재실에서 의관을 갖춘 헌관은 홍살문 북동측에 있는 금천교를 지나 홍살문에 이른다. 헌관들은 홍살문 앞에 이르러 홍살문 앞 좌측에 있는 제례의 시작을 알리는 판위에 선다. 이 판위에서 혼백을 부를 때 4배를 한다.
홍살문 앞에는 얇은 돌을 깔아 만든 긴 돌길인 향어로가 정면의 정자각까지 직선으로 포설되어 이어진다. 유릉의 향어로는 가운데 길인 향로만 향로만 가장자리 경계가 뚜렷하고, 양 옆의 길은 박석이 깔려 있으나 경계가 없어 홍릉과 같은 삼중로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다.
향어로를 중심축으로 홍살문과 침전 사이에는 석마, 석양, 낙타, 사자, 해태, 코끼리, 기린의 석수상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어서 무석인, 문석인의 순으로 석인상이 배치되어 있다. 석상들은 향어로를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게 설치되어 있다.
향어로에서 곧바로 월대에 오르도록 전면에 각각의 계단이 놓여 있는데, 이는 고종 홍릉의 예와 같다. 유릉 월대의 계단은 침전 앞 월대 정면에 3개, 오른쪽에 2개, 왼쪽에 2개가 있다. 유릉은 홍릉과 같이 황제릉 양식에 따라 배위청 없이 월대가 넓게 조성된 앞면 5칸 측면 3칸의 일자각의 침전이 놓여 있다.
비각은 침전 우측면 북서측에 설치되어 있는데, 비각 안에는 전면에 ‘순종효황제 유릉, 순명효황후부좌, 순정효황후부우, 우측면에 대한을 음각 전서체로 새긴 표석이 설치되어 있다.
제례를 마친 헌관은 월대의 서북측 어계를 거쳐 내려와 침전 남동측에 있는 제례 의식을 마치는 행위인 지방을 태우고 묻는다. 이곳이 예감이다. 유릉의 예감은 월대로부터 약 2.5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유릉의 홍살문 남서측에 수복방이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존재하고 있으며, 수라간은 홍살문의 남동측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멸실되어 없다.
㉰ 능침공간
둥근 봉분은 보통 방위를 나타내는 12방의 병풍석과 난간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릉의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갖춘 우계비중황제좌정비의 삼실동봉합장릉이다.
유릉의 봉분 주변에 석양과 석호는 없으며, 석상과 장명등, 망주석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앞에 석상 1좌가 있고, 석측 상계 전면에 망주석 1쌍이 좌우에 설치되어 있다. 원형인 봉분을 중심으로 석물이 놓인 곳을 능침의 상계라 하며 사자(능주)의 중심공간이다.
유릉의 능침 상계 앞의 한단 낮은 곳은 황제릉의 원칙에 따라 중계와 하계를 통합하여 중간 전면에 장명등을 배치하였다. 유릉의 장명등은 사각으로 되어 있다.
하계 앞은 20여 미터 정도의 평지를 이루다가 경사를 이루어 골을 이루며, 전면에 1.2m 높이의 안산형의 축산이 조성되어 있다.
○ 역사경관림
유릉 능침 주변에 식생 배치는 곡장 뒤 미사의 지형 너머로 소나무 등의 수목이 잘 배치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우측에는 벚나무 등의 잡목이 배식되어 있다.
(순종 유릉 1부 끝)
<출처 : 2015 조선왕릉 종합학술보고서 [Ⅸ], 순종 유릉, 국립문화재연구소>
2019. 12. 21.
순종의 유릉을 다녀와서
사빈 하 창 락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