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삶. 그리고 사람

매맞는 아내들의 분노

작성자유근석|작성시간03.03.16|조회수140 목록 댓글 0
여성 정체성의 정치학이라는 책에 담겨진 내용 중에 아내구타와 관련한 내용이다.


매맞는 아내들의 분노

시작하기 전에...
내용을 접하기에 앞서 눈에 거슬렸던 단어는 '매'였다. 왜 '폭행을 당하는' 이나 '가정폭력에 노출된' 등의 표현이 아니고 하필이면 '매맞는'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저자의 의도가 숨겨져있는 걸까?
'매'라는 표현은 동등한 관계에서는 좀처럼 쓰이지 않는 말이다. 주로 어른이 어린이를 혹은 웃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람이 동물을 대상으로 훈육의 목적으로 드는 것이 '매'이며 그 행위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폭력에서의 가해자는 남편인데 남편과 아내의 지위가 동등한 관계가 아니란 말인가?

1. 아내구타의 현황
최근 이경실, 손광기 사건으로 더더욱 불거진 아내구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문제로 야기된 것이지만 이경실, 손광기 사건이 그간에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은 이런 문제다. 일반적인 경우(과연 '일반적인'이라는 표현에는 다소 의혹이 있지만)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여부가 커다란 관건이었다. 경제적인 힘의 불균형이 구타를 당하는 현실을 감내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1984년 / 서울 / 708명의 가정주부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 여성의 전화
지난 한 해 동안 구타경험 - 14%
결혼 이후 한번 이상의 구타경험 - 42.2%

1992년 / 서울 / 1171명의 부부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지난 한 해 동안 폭력경험 - 28.4%
결혼 이후 한번 이상의 폭력경험 - 45.3%
지난 한 해 동안 아내로부터의 폭력경험 - 15.6%

같은 기간 미국의 경우를 보면 아내로부터 12.1% 남편으로부터 11.3%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크지 않으며 오히려 여성에 의한 폭력이 더 많음.
심한폭력(상처를 입히거나 목숨을 위협하는)의 경우도
한국은 남편으로부터 10.6% 아내로부터 4.7%
미국은 남편으로부터 3.0% 아내로부터 4.4%

한국의 부부간 폭력이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의 경우 폭력 발생시 경찰이나 사회기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대부분 친구나 친정식구의 도움을 받으며, 전혀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경우도 전체의 32.8%나 차지한다. 맞대응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과반수를 차지하여 미국과는 그 양상이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적인 한국사회
부부간의 폭력이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며 남편에 의한 아내폭력만이 절대적으로 위험하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적어도 2003년을 살아가는 한국사회에서 남편에 의한 아내구타는 그 수준이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처가식구가 있음에도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그것도 모자라 식칼을 찾았다는 손광기, 얼마 전에는 의처증이 심각한 남편이 아내의 손발톱과 이를 뽑고 그것도 모자라 배에 구멍을 뚫는 엽기호러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였고, 남편이 무서워 친정으로 도망친 아내를 공기총을 들고가 난사하는가하면, 아내의 옷을 벗겨 머리채를 휘어잡고 동네를 활보하는 등 도대체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대할 수 있는지 .....
극소수 정신나간 사람들의 엽기행각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는 듯 하다.

조선시대 이덕무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남편과 시부모가 성질이 포악해서 때리고 구박하여 집에 있지 못하게 하거든, 부인 된 사람은 다만 슬프게 하소연하여 차마 떠나지 못할 의사를 보여서 그들이 감동되어 불쌍히 여기기를 바라야 할 뿐이지, 노여운 기색을 지어서, '시원히 우리집으로 돌아가서 영원히 서로 보지 않는 것이 또한 나의 뜻이었소'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배반이 아니고 무엇이
겠는가?"

1983년 여름 두명의 주부, 남편을 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였으나 기각. "아내구타는 가정문제이고, 가정문제는 가족 내에서 해결되어야한다" - 동아일보 7. 17
"아내구타는 대부분 아내가 자극하여 구타로 이어지는 경우"이며, "아내는 현명하게 처신하여 남편을 잘 길들여서 얻어맞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조선일보 7. 17

이 외에도 부부간의 폭력의 경우 경찰이 신고를 받고도 출동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출동하더라도 그대로 돌아가기가 일쑤였다.

1993년 제정된 성폭력 특별법은 아내구타를 제외한 상태에서 제정.
1997년에 이르러 아내구타를 '가정 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여 함으로써 일반적인 폭력과는 구분하여 가정내의 문제로 묶어두게 됨.

1998년 7월 1일 ∼ 12월 31일 / 대구
총 278건의 가정폭력방지법 사건 접수 - 2건 구속, 276건 불구속.

남편에 의한 아내구타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만연하였으며, 오히려 그 원인제공의 책임을 아내에게 물으려는 남성중심 사회의 분위기가 엽기적인 폭력까지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각본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성폭력 가해자인 남성이 피해자 여성에게 먼저 유혹이 있었다고 덮어씌우는 것과 너무 닮아있다.


아내는 왜 남편을 떠나지 않을까?
경제적 독립의 불확실성, 이혼녀라는 사회적인 낙인, 자녀양육의 문제 등 이혼을 통해 생기는 많은 어려움들이 발목을 잡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인간 이하의 모멸감과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하면서까지 참을만한 가치가 과연 있을까?

베이트슨의 분열 이론 - 대칭적 분화와 보완적 분화
부정적 상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서서히 분열이 이루어짐.

어착의 7단계
1) 폭력을 인정하지 않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이유를 찾는다. 남편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내가 잘못한 것은 없나? 우발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 그래 이건 내가 맞은 게 아니야.

2) 폭력을 통한 쾌락
폭력가해자는 폭력을 통해 아내를 통제하려고 든다. 그러나 일상화되기 시작한 폭력은 아내로 하여금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게 만든다. 다만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남편을 떠나지 않을 뿐이다. 아니 집을 떠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남편과의 감정관계 외의 다른 부분에서는 보다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입지를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3) 남편, 아내, 그리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미움의 축적
이 시기는 폭력이 일반화됨은 물론 폭력에 대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인지하게 되는 경우다. 친정과 시집간의 갈등으로 문제는 확대일로를 걷는다. 그런데도 아내는 남편을 떠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힘을 실질적인 세력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경제력일수도 있고, 가족 내에서의 발언권일 수도 있으며(이는 자녀에 대한 통제력 강화 혹은 시집식구들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종교에 집착하는 형태로 발현되기도 한다.

4) 오해의 축적과 자아의 노출
가족 구성원 간에 의사소통이 단절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오해는 갈수록 싸여만 간다. 이제 서로간에 감출 것도 없고 배려할 마음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처절한 투쟁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5) 성적인 질투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대화 자체가 중단된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성관계이며 남편은 이것을 통해서나마 악화된 관계를 복원하려 하지만 이는 해결책일 수 없다. 자신이 이 여자의 남편이라는 객관적인 근거는 아내의 성을 통제하는 것이 전부인 상황에서 남편은 더 이상 선택할 카드가 없지만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아내의 입장에서 성관계는 남편만의 욕구일 뿐 더 이상 아내의 욕구가 아니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사용하고 아내의 결점을 잡아내려고 노력한다.

6) 이혼(체계 붕괴)
일반적인 경우 위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부부의 끝은 붕괴이다. 외부의 힘이 관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7) 폭력이 일상화된 가정
언제라도 폭력이 발현될 수 있는 위기감이 가정을 지배하게 되어버린 개념적 형태의 단계이다.

분노에 관하여
구타에 직면한 상황에서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분노의 화살은 엉뚱한 곳을 날아간다. 누구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은 순간적인 자기 방어일 수는 있지만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오히려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존재해서는 안될 구타가 일어났다면, 폭력이 일어났다면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어야한다.
거시적으로는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와 사회분위기를 바꿔내는 것이 시급하지만 미시적인 관점에서도 적절한 대처는 필수이며 이 경우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분노를 스스로의 안에 가두어두는 것은 가정의 평화를 위하는 길도 아니며, 자신이나 폭력 가해자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곧 닥쳐올 슬픈 미래를 잠시 덮어두는 것일 뿐이다.

마치며...
글머리에 느껴졌던 '매'라는 단어의 거북함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방적인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이미 동등하다거나 평등한 관계가 이미 깨어져버린 것이 아닐까? 폭력의 가해자는 더 이상 자신의 아내를 혹은 남편을 반려자가 아닌 길들여야 할 무엇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도 '매'라는 표현은 그래서 가능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가해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생이 아닌 공존의 입장에서 대등함이 무너진다는 것은 관계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혹여 오해가 있을까 부언하면 여기서의 대등이란 실제의 실력(power)이 비슷함이 아니라 존재자체의 존엄과 그에 대한 존중이 함께하는 대등이다.
한국과 미국은 우방이라고 어릴적부터 교육받아왔지만 미국의 군대가 한국 국민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상황인 지금 '우방'이 아닌 다른 표현을 찾아야하는 것도 같은 이치인 것처럼, 서로 존중할 수 없다면 부부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