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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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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규
2024. 2. 2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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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영웅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왜소하고 자그마한 아빠지만
우리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거인 같아요"
아이들이 써놓은 일기장을 보며
내일을 버텨갈 힘을 모아보던 아빠는
홀연히 먼저 떠난
아내가 잠든 밤 하늘가를 올려다봅니다
"여보…. 잘 있지?
거기선 아프지 마!….
우리 얘기들은 내가 잘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신음소리처럼 내뱉은 아빠의
울먹이는 마음을 잠든 척 듣고 있던
세 남매는 소리낼 수 없는 눈물만
밤새 흘리다 일어난 오늘은
아빠가 쉬는 날이라는데요
우산도 없이
장대같이 오는 비를 몸으로 튕겨내며
대문 옆에 놓인 녹슨 전동 휠체어를
다듬고 매만져 보지만
되살아 날 기미도 없어 포기한
아빠의 눈에
언제부터 지켜보았는지
세 남매의 눈물이 매달려 있는 걸
보고는
"늦잠 자지 왜 일어들 났어?"
"아빠..
라면 콜?"
"좋지…."
아빠에게 들킨 눈물이 옮겨붙어
아빠마저 울까 봐
눈물을 감추고 얼른 부엌으로 간
세 남매는 두 개 밖에 없는 라면에
물만 가득 부어 가져다 놓고는
"아…. 배 아파 나 변소 갈래"
"나두 "
"아빠 먼저 천천히 먹고 있어"
세 남매는 알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에게 양보하느라
지켜만 볼 거란 걸요….
라면이 불어 터져 떡볶이가 된
냄비 안에 퍼내도 퍼내도 담겨있는
행복을 건져 먹으며
오늘도 행복 별 하나를 엄마에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
비도 오고 공쳐서
주머니에 버스비를 빼고
천 원밖에 없었던 아빠는
"아주머니 붕어빵 세 마리만 주세요"
천원에 세 마리 하는 붕어빵을
우산 속에 꽁꽁 숨겨온 아빠는
"오늘은 아빠가 니네들 줄려고
붕어빵 사 왔어"
"그런데 우리 아빠건 없네"
"아빤 오다가 배가 고파
버스에서 먹었어."
행복과 가난 사이에서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는 게
모두 못난 자신의 탓인 것 같은 아빠는
행복은 천천히라도
반드시 올 거라고 믿으며
마주잡은 두 손을
꼭 쥐어 보고 있었습니다
8월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여름 방학이 되면
늦잠 자고 신나게 놀 수 있다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세 남매는 아빠 일을 도울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라 말하고 있었는데요
잘 못 걷는 아빠 대신
인근 사무실로 신발을 받으러 가는 일은
첫째가
다 닦아 놓은
구두를 가져다주는 일은 둘째가
아빠 옆에서
얼굴에 숯검정이 묻혀가며
구두 닦는 일을 하는 셋째까지
별 같은 하루를 보내던
네 사람에게 찾아온
-점심시간-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 앞에
빙 둘러 앉은 아빠와 세 남매는
중간에 놓인 김밥을 서로에 입에 넣어주며
이런 게 행복이라는 미소를
찬으로 때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아빠….
매일 이렇게 힘들게 일해?"
"아빠는 하나도 안 힘들거던"
우리가 떠들고 웃는 동안
아빠는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게 미안해서인지
지친 아빠라는 이름 위에 놓인
고마움 하나를 얹어보고 있었습니다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 세 남매는
아빠를 앉힐 빈자리가 없나
두리번거리기에 바빠 보이는데요
(((삐)))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
할머니 자리에 냉큼 앉은 첫째는
"아빠…. 여기.."
띄엄거리며 다가온 아빠에게
냉큼 자리를 양보하고는
차창 틈 사이로 바람 한 점이라도
아빠에게 불어올까 봐
달을 지키는 별들처럼 둘러서서
재잘거리며 행복을 실어 나르고 있었답니다
다음 날
새벽별 보고 먼저 출근 한 아빠를
도와주러 한 낮을 걸어간 세 남매는
무엇을 본 건지 숨 쉴 틈 없이
뛰어가더니
"왜 우리 아빠 괴롭히는 거예요"
"어린놈들이 어디 어른한테…."
아빠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벽처럼 막아선 세 남매는
"우리 아빠를 힘들게 하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누나….
경찰에 신고하자"
그 말에 뒤꽁무니를 빼며
멀어진 남자가 점이 되자 마자
"아빠….괜찮아?"
"너네들은 괜찮아?"
성급히 대답한 아빠는
뛰어오느라 풀린
세 남매의 신발 끈을 묶어주며
"이번 가을 운동회에서 달리기
꼭 일 등 할 거지?"
"일등 해서 연필이랑 노트
꼭 받아 올게"
별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간 자리에
찾아온 가을 운동회 날
((자 지금부터는 아빠와 다리 묶고
...... 뛰기 순서입니다.))
"우리 아빠 힘내라"
"우리 누나 힘내라"
차츰차츰 꼴찌로 처지던 아빠가
힘에 부쳐 그만 넘어지는 바람에
누나까지 덩달아 넘어져 일어서지
못하는 걸 보며 뛰어간 두 동생은
넘어진 아버지를 일으켜 세워
양손을 나누어 잡고는
느리지만
한걸음 두 걸음 결승선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괜찮아…. 괜찮아 ))))
사람들이 보내주는 응원의 함성을
들으며 한 발 한 발 결승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두 계절이 가고
봄이 만개한 거리엔 화사한 꽃들이
저마다 뽐을 내고 있었고
세 남매는
대문 앞에 서서 아빠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아빠 뭐해….
바람이 훔쳐 가면 어떡해"
세 남매가 지저귀는 소리에 이끌려
출근을 준비하던 아빠는
. 신발도 채 신지 못한 채
떠밀려 나오더니
"어...어…. 어"
연거푸 신음소리 같은 감탄사가
입가에서 흘러나오고
세 남매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호성 같은 박수를 치고 있었는데요
" 아빠가 준 용돈 모으고"
"셋이서 빈 병이나 폐지 모아서
산 거야"
"아빠 얼른 타봐"
낡은 전동 휠체어가 고장이 나
목발을 짚고 버스를 타면서도
한마디 불평 없는
아빠의 얼굴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주던 세 남매의 손에 이끌려
전동휠체어에 앉아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여보….
나 혼자 행복해서 미안해"
무엇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한
미안함만 매달고 멀어지는 아빠를
보며 세 남매는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아빤 !
우리에게 영원한 영웅이라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