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보다 깊은 끝 사랑/노자규작가

작성자仁影|작성시간26.06.18|조회수26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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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규
2023. 10. 4. 8:17


첫사랑보다 깊은 끝 사랑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다

아내의 인기척이라도 나면

벌떡 일어나 앉는 남편


아침 회진을 하는

의사의 입만 쳐다보던 남편이


“좋아졌네요”

라는 의사의 한마디에 그만

눈물이 맺히고 맙니다


남편은 우두커니

아내 몰래 흘린 눈물이 모아진

복도에 나와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면서

들숨엔 한숨과 날숨엔 아픔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아내 앞에선

의사에 그 말에 신이 난 척


“여보...저녁밥 먹고

병원 앞 노래방에 한번 갑시다 “


“주책이야 !환자복 입고 가면

노래방 주인이 욕해요.. “


해가 쉬 넘어간 자리에

별님들 사이로 숨바꼭질 하 듯

구름에 숨었다 다시 얼굴을 내민 달님이

비춰주는 길을 따라 노래방에 왔습니다


먼저 아내가


“ 청춘을 돌려다오”


라는 노래를 불러봅니다



노래가 끝난 뒤 남편은


“그렇게 모깃소리만 하게

불러가지고 청춘이 온 단가.. “


라며

다시 같은 노래를 누릅니다


“청춘을,..... ♪돌려다오...

♥. 젊음을 다... ♬오 “


지는 해에 실려 보낸

청춘을 불러서라도 세울 듯

목젖을 보이며 악다구니까지 해대는 남편


굽이굽이 소리쳐 살다 보면

표백된 시간 너머로 한 박자 쉬어가는 법을

이렇게라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등 붙인 곳 없는 아내가 잠들면

틈틈이 책을 꺼내어 무언가를 적고 있는데

66세의 늦은 나이인데도

요양 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하신답니다


왜 하냐 물으면

“내 아내는 내가 돌봐야죠”

라며 멋쩍게 웃으며 말하는 남편은

잠든 시간 빼고는 내 삶에 이유인

아내에게 시선을 맞춰놓고 있답니다


누워만 있다 보니

답답해하는 아내를 위해

물에 젖었다 말라버린 골판지 같은

아내 등을 세워 오늘도 눈물이 떠밀어준

휠체어를 밀고 나갑니다


남편도 비걱거리는 성치 않은 다리로

링거줄에 희망을 매달고


한걸음에 고난과

두 걸음에 행복을


뒤져보면서

휠체어가 지나는 자리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고

새겨놓고 있었습니다


새벽녘 내리는 눈물 속에서 끙끙거리다

겨우 잠든 아내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는데

아내도 잠결에 남편의 손길을 느낍니다


“아프지 마소,,,,사는 날까지..

등 긁어줄 자네가 아프면 어찌하는가... “


아내에게서 건너온 아픔이

남편의 가슴에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가난과 병만 남겨준 것 같아

남편의 소리 없는 눈물은

헝클어진 매듭 하나 풀어내듯 밤새 사발로

아픔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같은 날에 태어난 두 사람은

올 때도 갈 때도 같이

함께하기를 굳게 약속을 했답니다


자식들

공부시키랴 결혼시키랴

휘어진 등줄기 따라 아내의 긴 투병

생활까지 겹쳐 남은 집까지 팔고선

오갈때가 없어진 이 부부에게는

가난이 질퍽거리는 거리밖엔 기다려주는 곳이

없기에 이 병원이 집이 되어버렸습니다


겨울이면 히터가

여름이면 에어컨이 나오는 여기가

호텔이라 말하며 애써 웃어 보이는 남편


“부부 침대도 따로 있고 말이야,,”


구두 뒤창처럼 닳아가는 시간 속에서

앉은뱅이 햇살 한 줌이라도

아내가 있는 이곳이 천국이라 면서 말이죠


식사가 나오면

밥과 국 앞에 놓인 수저 두벌


“간호하는 사람이 튼튼해야죠….”


라며

늘 국을 남편에게 양보하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잘 먹어야 빨리 낫지”


라며

빨리 국에 밥부터 말아놓고

숟가락에 이것저것 희망을 올려놓은 찬으로

아내가 식사를 끝마친 뒤에야

남은 밥과 찬으로 끼니를 대신한지가

벌써 5개월이 되어갑니다


원래 짜게 잡수었던 양반이

맹탕국 같은 찬을 말없이 먹는 걸 보면

더 마음 아프다는 아내


처음엔

자주 오던 자식 놈들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뜸해져 가더니

어쩌다 오는 날에는 병문안 온 자식들끼리

병원비로 싸우는 목소리가 복도 끝자락에서

들려오자 부부는 두 손을 맞잡은 채 나갔다

시린 바람만 안고 들온 듯 고개만 숙이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이러다 아버지까지 병나겠다며

요양원에 보내자는 말을 건네지만

나의 하늘에 첫눈 같은 아내를

여태 고생시키고선 늙고 병들었다고

어떻게 요양원에 보낼 수 있겠냐며


“ 아픈 네 엄마지만 난 그 옆에 있는 게 좋다.”


당신 없이

핀 꽃은 꽃이 아니라는 듯

지나온 길 마디마디 서러움을

그렇게 심고 있었습니다


병실 안에서는

대화를 거의 할 수가 없습니다


잠든 환자와

책을 읽는 환자들 속에 선

저무는 하루를 병실에 걸어둔 채

부부는 카톡 문자로 대화를 합니다


“여보

첫사랑이 아름다울까

끝 사랑이 아름다울까 “


라는

아내의 문자에


남편은


“첫사랑은 아름답지만

더 깊은 건 끝 사랑이지...”


이모티콘도 보내고

답변이 늦는 아내에게 발로 채근도 해대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을 글로써 표현하며

달달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답니다


할일 없는 손이 미안해서 시작한 일이

매일 저녁 아내의 발을 시켜주는 일이었는데요


비누로

아내의 발바닥을 문지르면

통증에 겨워하는 아내가 유일하게

길가의 풀꽃처럼 웃는 시간이 이때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감기는 것도 남편의 몫입니다


간호사에게 얻은 손 난로를

가져와서는 아내 손에 얹어놓고선

겨울 햇살에 감은 머릿결 따라

곱게 써 내려가는 남편의 사랑도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눈물이 진 자리에

사랑으로 다시 떠는 이 자리가

제일 행복하다면서요....


부부의 일생과

지나온 추억 길 따라 돌이켜 보면

저 바다에 수많은 모래알처럼

사연도 참 많았답니다


“내가 다시 태어나면

그땐 진짜 행복하게 해줄게 “

잠들려는

아내에게 혼잣말처럼 건네 봅니다


아내는 빙긋이 웃으며

“그땐 당신이 아파요

내가 병간호해주면서

당신한테 받은 사랑을 다 돌려줄게요 “

서로에겐

묵은 사랑이 있는 한

힘들 때 돌아가고 싶은 곳이

네가 있는 그곳이라 말하고 있는 두 사람은


늙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운명이지만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서로가 있었기에


영원한

사랑을 지켜왔던

노부부의 사랑 마침표는


첫사랑보다

더 깊은

끝 사랑인 것 같습니다


기적은

머리에서가 아니라

가슴에서 일어날 거라 믿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바로

“여보” “당신”

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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