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바라 2 - 운젠온천에서 소 지옥을 보고 버스로 시마바라에 가다!
어제 2025년 12월 8일은 아마쿠사에서 사키츠 崎津(기진) 마을 오에천주당과 사키츠 성당에
도미오카시로아토를 보고 레이호쿠 마치 苓北町(영북정) 를 지나 오니이케항
(Onike Port 鬼池港) 에서 페리를 타고 시마바라 반도 구치노쓰항 (口之津港) 에 상륙합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오바마쵸 (小濱町) 마을에 도착해 온천 마을을 구경하고는 30분 후에
버스를 타고 산을 올라가서는 운젠 온센 ( 雲仙 溫泉 ) 에 도착했는데....... 높은
산이라 기온이 낮아 춥고 바람까지 거세게 부는데 캄캄한 밤이라 호텔을 찾는게 어려습니다.
가게로 들어가 주인에게 호텔 운젠 후쿠다야 雲仙福田屋 / 山照‐別邸‐ 를 물으니 저 아래쪽인데
10분은 걸어내려 가야한다기에 추위를 무릅쓰고 걸어내려오는데 “소 지옥” 에서 유황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지라 피해서 온천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후 대중탕에서 온천욕을 하고 하룻밤 잡니다.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2025년 12월 9일 아침에 다시 지하로 내려가 대중탕에서 온천욕을 하고는 야외에 있는
노천탕까지 구경하고는 돌아와 체크아웃 후에 오르막길 언덕을 부리나케 달려 올라가 소지옥 산책로
입구에 이르러 가쁜 숨을 헐떡이는데.... 바람이 부는지라 유황연기에 눈을 뜰수도 없고 숨을 쉬기도 힙듭니다.
원래 계획으로는 여기 나무 데크 다리 산책로를 40~ 50분에 걸쳐 천천히 둘러
보려고 했지만 이젠 5분 이상을 보지 못하고 다시 내려가야 하게 생겼습니다.
운젠은 질 좋은 온천으로 유명한 마을이니 나무 데크를 걷는 젠지고쿠 (地獄 巡禮 지옥 순례) 가
인기가 있으며, 운젠 스파 하우스 비드로 미술관은 온천 시설인 운젠 스파 하우스와 19세기
유리 예술품을 모아 놓은 비드로 미술과을 병설한 복합 시설로 유리 불기 체험도 할수 있습니다.
온천수에 밀가루와 설탕, 달결을 섞어 반죽해서 얇게 구운 “온천 센베” 는 은은한 단맛이
일품이며.... 또 온천 달걀은 뜨거운 열을 이용해 삶았으니 맛이 일품이라고 합니다.
나가사키에서 가까운 시마바라 반도의 운젠은 1792년 분화시 일본 최악의 화산 재해가 있었던
곳이며 최근에 일어난 분화는 1990년과 1995년 사이로, 이때 생겨난 화산쇄설류로
인해 일본에서 가장 최근에 생겨난 화산인 헤이세이 신잔산 (1,483m) 이 형성 되었습니다.
악명에도 불구하고 운젠산은 놀라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품은 곳이니, 니타 산길 전망대에서는 산길 입구와
케이블카를 찾아볼 수 있고... 헤이세이 신잔산은 불안정한 괴상 용암으로 인해 방문이 제한되어 있지만,
후겐산(1,359m) 의 정상으로 올라가 헤이세이 신자산의 연기가 뿜어오르는 봉우리를 감상할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케이블카를 타고 산비탈 중간에 자리 잡은 전망대로 갈 수 있는데..... 운젠산은
분홍색 규슈 철쭉과 일본 꽃산딸나무로 덮여있는 봄철에 특히 풍경이
아름다우며, 여름에는 지역으로 이주해 오는 황금새와 작은 뻐꾸기들을 볼수도 있답니다.
운젠 지고쿠 온천 지대는 운젠산의 기슭에 자리해 있는데..... 지고쿠 (地獄) 는 "지옥"
이라는 뜻으로 황량한 바위와 유황이 함유된 증기가 솟아나는
모습과 거품이 끓어오르는 산성 분기공은 분명 지옥과 비슷한 형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분기공 주변을 도는 산책로를 걸으며 이 지글지글 끓는 암석 지대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으며.... 그리고 일본 적송과 온천 조류와 같은 인근의
다양한 식생도 발견할 수 있으며 화산과 온천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입니다.
운젠산의 마그마 저장지에 있는 1,300년 역사의 온천 마을 오바마 온천에서 치유의 효능이 있는 온천수
에 몸을 담글수도 있는데, 화산에서 나오는 염소가스, 해수와 지하수가 섞여 있는 드문 구성의 온천
으로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온천 중 한 곳으로 명성이 자자한데 이 마을은 다치바나만이 내려다보입니다.
그 외에도 시간만 있다면 저 위쪽 버스 정류장인 운젠온천의 거리를 구경할수도 있고 차로 30분
거리에 운젠로프웨이 니타고개 (仁田) 가 있으니 로프웨이(케이블카)를 타고
운젠후겐다케 (普賢岳) 에 오를수 있으며 그 외에도 시라키타노이케 (白北の 池) 연못도 볼만합니다.
운젠온천 에서는 나가사키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편수가 많지않아 09시 10분,
13시 10분, 16시 10분 (토일 11시 10분) 에 출발해 1시간
40분이 걸려서 나가사키 현영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는데 요금은 1,850엔 이랍니다.
또는 운젠 온천에서 버스를 타고 90분 만에 이사하야 (諫早 간조) 에 도착해서 JR
기차를 타고 나가사키로 갈수 있다는데 시마테쓰 버스 ( 島鉄 バス) 는
1,540엔이며 09시 54, 11시, 12시 14, 13시 09, 14시 45, 15시 39 분에 출발합니다.
나가사키로 가는 세 번째 방법은 운젠온천에서 40분이 걸리는 시마바라에 가서 시마바라성
과 시내를 구경하고는...... 사철로 이사하야 (諫早 간조) 로 가서 JR 기차를 타고
나가사키로 갈수 있는데 버스는 9시 09분, 10시 26분, 11시 11분, 12시 31분에 출발합니다.
네 번째는 시간만 충분하다면 하루 6회 운행한다는 버스를 타고 니타토케 (仁田 인전) 에 가서 로프웨이
(케이블카) 로 妙見岳(묘견악)을 오른후 내려와 위 3가지 방법 중에 하나를 선택해 나가사키로 갑니다.
우리 부부는 다시 부리나케 달려 내려와서는 호텔로 들어가 맡긴 배낭을 찾아 메고 도로를 건너 버스 정류장
에 가니 채 1분도 안돼 오바마에서 출발한 버스가 오는지라 올라 타니 2정거장을 가서 운젠온천에 섭니다.
여기서 다시 7~8명이 올라타고는 버스는 마을을 뒤로 하고 고개를 넘어가서는 다시 지그재그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오래토록 내려가서는 드디어 서는데 보니 여긴 시마바라항 입니다.
크고 무거운 가방 캐리어를 끄는 중국인들이 7~8명이 여기서 내리는 것을 보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배를 타고는 바다를 건너 구마모토로 갈 예정인 모양 입니다.
그러고는 버스는 출발해 시마바라 시내를 가로 질러 한참을 달려서는 드디어 종점에 도착하는데
여긴 시마바라 역이니 우린 역 코인라카에 배낭을 넣고는 시마바라 성을 보라 갈 생각입니다.
1637년 도쿠가와 마부 시절에 시미비라의 난 당시 많은 주민들이 반란에 참여하고
일부는 진압군 쪽에 가세해 처절한 격전이 이루어졌으며 반란군 측은
이탈한 인원을 제외하곤 전멸했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 인구는 4만입니다.
선임 영주인 아리마 나오즈미가 전봉된 후에 새로 들어온 마츠쿠라 가문의 마츠쿠라
시게마사는 엄청난 거성을 지어 버린 결과 영민을 가혹하게 착취,
고문했는데 이는 기독교 탄압과 함께 시마바라의 난의 주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마바라의 난으로 인해 반란에 동참한 다수의 영민들이 전멸하였으며 이후 잔존 신자
들을 소탕하고 포교를 막기 위해 후미에를 실시하고 개종한 사람들의 후손
들을 수 대에 걸쳐 감시하며 연좌제를 적용해 주민들 스스로도 서로를 감시하게 합니다.
마츠쿠라 카츠이에는 잘못된 통치로 반란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1638년에 가이에키 당했으며
새로 부임한 고리키 다다후사는 인구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지의
농민들을 이주시켰지만 뒤를 이은 고리키 다카나가도 실정을 저지르다가 1668년에 가이에키 당합니다.
이후 마츠다이라 가문이 1669년부터 1749년까지 5대 동안 통치했고 도다 가문이 1749년~1774년까지
잠깐 맡았다가 다시 마츠다이라 가문이 돌아와 1774년부터 1871년까지 8대 동안 통치했습니다.
도쿠가와 방계 가문이 변방 소영지를 맡게 된 이유는 워낙 큰 사건을 저지른 지역이고 카쿠레키리시탄의
완전 소탕에 실패했으니 불안한 막부에서 마츠다이라 가문에게 맡기고 싶었을 것으로 보이며,
전 영주의 실정으로 농민들이 들고 일어선 곳에서 새 번주가 또 실정을 저지르니 봐줄수 없었을 것입니다.
폐번치현 초기 잠깐 동안 시마바라현이 만들어진 적 있었지만 다시 나가사키현에
편입되었고 1940년 시마초, 안나카무라, 스기타니무라 등이 합병해
시마바라시가 되었으며.... 1956년 미에무라, 2006년 아리아케초를 편입했습니다.
시마바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운젠산이니 1792년 대분화로 15,000여명이 사망한후
한동안 조용했는데 20세기말 대분화가 일어났으니, 1990년부터 분화를 시작해 1996년
까지 계속됐던 화산활동으로 인해 시마바라시와 미나미시마바라시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화쇄류에 매몰된 주택들 중 일부가 기념관 및 보존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보다 이전인
17세기에는 운젠의 끓는 물을 키리시탄 고문에 쓰다가 큰 난리가 나기도 했다. 한편
으로는 운젠 지옥과 오바마 온천등 화산의 산물이 관광 산업의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마바라반도에 위치하며 인접한 운젠시와 마찬가지로 시의 대부분은 운젠산이다. 바다의 가까운 부분은
평야지대이며 시가지가 발달했다. 서쪽으로 운젠시, 남쪽으로 미나미 시마바라시와 접하고 있습니다.
시마바라는 키리시탄이었던 아리마씨가 전봉된후 마츠쿠라씨가 들어오면서 천주교도를 무지막지하게
탄압했고 농민에게 엄청난 세금을 물린데다가 키리시탄의 본거지인 필리핀의 루손을
공격하겠다면서 전쟁세 까지 부과하며 운젠 지옥(雲仙地獄) 고문 이라 부르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아마쿠사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옛 영지로 가톨릭이 융성했지만 테라자와가 들어와 종교박해를 자행하자 1637
년말 시마바라의 키리시탄 농민 2만여명이 무장 봉기를 일으키니 아마쿠사에서도 반란이 일어나고,
지도자는 하느님의 대리인이라 불리던 세례명 '예로니모' 의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 라는 16세 소년이었습니다.
또한 막부의 영지 재배치로 인해 주군을 잃고 낭인이 되어 떠돌던 기독교 신자 사무라이들도 대거
참가했으니 반군의 병력은 3만 7천의 기리시탄 이었다는데, 시마바라번에서 3천명의 군대를
보냈지만 참패당하고 혼도성이 포위되니 주민들이 궐기해 반란군에 합류하니 혼도성이 함락됩니다.
천주교도 반란군은 나가사키 까지 장악해 막부군과 장기간 농성전을 계획해 도미오카성을
공략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폐성이였던 하라성을 보수해서 농성전을 시작하는데....
이후 3번의 공세 끝에 이타쿠라 시게마사가 이끄는 진압군을 궤멸 시키자, 에도 막부는 병력을
무려 12만명으로 증강시켰고... 마츠다이라 노부츠나를 새로운 사령관으로 임명합니다.
마츠다이라는 육지와 바다 양쪽으로 포위하여 하라성 자체를 봉쇄 했으며 닌자 들을 성내로
잠입하고 정찰시키니 식량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해초로만 연명하게 될 지경이 되자
총공격을 감행하니 4개월 만인 1638년 4월에 하라 성이 함락되는데 반군은 단 1명도
항복하지 않고 전부 전사 했는데 막부군도 10,800명이 전사하고 11,000명이 부상 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