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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렇게 영토가 넓은 러시아에 사투리가 없다고?

작성자황룡|작성시간26.06.07|조회수1 목록 댓글 0

[그렇게 영토가 넓은 러시아에 사투리가 없다고?]

러시아는 서쪽의 칼리닌그라드부터 동쪽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11개의 시차가 존재하는 지구상 가장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국가다.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이 정도로 광활한 땅이라면 지역 간 언어 장벽이 존재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자연스럽다. 인접한 중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만 보더라도 수십, 수백 개의 방언이 존재하며 심한 경우 같은 국민끼리도 통역이 필요할 정도다. 하지만 러시아는 예외다. 1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전역의 언어적 균질성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러시아에 사투리가 없다는 세간의 소문은 언어학적으로는 반은 틀린 말이지만, 실생활을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맞는 말에 가깝다. 러시아어에도 방언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격차가 극히 미미하여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이할 정도로 통일된 언어 환경은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기획된 역사적, 정치적 산물이다. 과거 제정 러시아 시절까지만 해도 지역별 방언의 차이가 꽤 뚜렷했으나, 20세기 소련의 등장과 함께 거대한 언어 평준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1920년대 소공화국들을 대대적으로 통합하며 시작된 문맹 퇴치 운동은 표준 러시아어 보급의 시발점이었다. 소련 정부는 교육 체계를 완전히 중앙집권화하여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모스크바식 표준어만을 가르치게 했다. 뒤이어 보급된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 국영 미디어 역시 오직 정제된 표준 발음만을 송출하며 전국적인 언어 동질화를 가속했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대규모 후방 대피와 전후 시베리아 개척을 위한 국가적 인구 이주 정책이 더해졌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면서 각 지역 고유의 언어적 색채는 자연스럽게 희석되었고 고유의 사투리들은 생명력을 잃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학자들이 분류하는 러시아어의 방언 구획은 존재한다. 이들의 차이는 주로 모음의 발음 방식인 '오까니예'와 '아까니예'의 대립으로 설명된다.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하는 중부 방언과 보로네시 등지의 남부 방언은 강세가 없는 'O' 발음을 'A'에 가깝게 흘려 발음하는 '아까니예' 현상을 공유한다. 반면 아르한겔스크나 볼로그다 같은 북부 방언 지역은 강세가 없더라도 글자 그대로 'O'를 명확하게 '오'로 발음하는 '오까니예'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남부 지역에서는 자음 'G'를 표준어의 파열음 대신 우크라이나어나 영어의 'H'와 유사한 부드러운 마찰음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한국의 제주도 방언이나 영국의 스코틀랜드 방언처럼 아예 단어 구조가 바뀌는 수준이 아니라, 단지 아주 미세한 억양이나 모음조화의 차이에 불과하다. 외지인이 유심히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 만큼 미약한 수준이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사투리보다 더 대중적인 언어적 차이는 지역별 억양이 아닌 특정 도시 고유의 어휘 선택, 즉 '레지오날리즘'에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러시아의 두 심장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어휘 대결이다. 과거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문화적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모스크바 중심의 표준어와 다른 단어를 고집스럽게 사용한다. 보도블록이나 인도를 뜻하는 단어로 모스크바에서는 '트로투아르'를 쓰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포레브릭'을 사용하며, 건물의 출입구를 부를 때도 각각 '포드예즈드'와 '파라드나야'로 다르게 표현한다. 닭고기를 뜻하는 단어조차 표준어인 '쿠리차' 대신 '쿠라'라는 고유의 표현을 선호한다. 시베리아나 우랄 지역 역시 기후 환경이나 특유의 빠른 말 연사 속도 때문에 생겨난 고유의 은어나 접미사들이 존재하지만, 이 역시 표준어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변주에 가깝다.
​현재 러시아 사회에서 방언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인터넷과 SNS, 유튜브 등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은 젊은 세대의 언어를 완벽하게 모스크바 표준어로 수렴시키고 있다. 더욱이 러시아 사회 내에서 심한 지방 억양을 사용하는 것은 교육 수준이 낮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사회적 편견을 주기 쉽기 때문에, 지방 출신자들조차 공적인 자리에서는 의식적으로 표준어를 구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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