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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팽년의 가문

작성자황룡|작성시간26.06.11|조회수2 목록 댓글 0

박팽년의 가문


사육신(死六臣) 중
유일하게 핏줄을 이어오고 있는 박팽년 가문의 이야기.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이겨낸 사육신의 유일한 혈육
순천 박씨.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낸 사건을 계유정난(1453)이라고 한다. 이 계유정난이 일어난지 3년 후,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된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를 역사에서는 '사육신'이라 부른다.
조카 단종을 폐하고 왕위를 찬탈한 숙부 세조에게 반기를 든 선봉에 사육신(死六臣) 이 있었다.
이들은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당했으니 당연히 직계 후손이 없다. 그러나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정공 박팽년(1417~ 1456년) 선생만은 예외로 현손이 건재하다.
집안이 화를 당하던 당시 임신 중이었던 둘째 며느리의 지혜로 살아남은 유복 손이 가문을 이어 564년 동안 그 맥을 이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마을에는 박팽년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홍살문의 사당과 현대 양옥으로 고친 종가가 있다.
종가에는 1973년 타계한 형님 대신 충정공 박팽년 선생을 영원히 제사 지내는 불천지위 (不遷之位)
제사를 모시고 있는 봉사손 박종덕씨와 부인 권영자씨가 살고 있다.
요즘에는 보기 드문 동짓날 사당에서 모시는 팥죽 제례를 지내면서
기구한 인연으로 살아 남은 박팽년(충정공) 가문의 고귀한 핏줄에 대한 전설 같은 실화가 있다.
이야기는 564 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조시대의 형벌이란 참으로 참혹했다.
역적으로 낙인 찍히면 본인은 물론 아비와 형제들 자식과 손자대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은 무조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시절이였다.
세조 임금이 참으로 어렵게 잡은 왕권인데 그 자리에 단종을 복위 시키려 하다 실패한 사건이니 사육신은 물론 그 가문은 모두 멸문지화를 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다행하게도 천지신명이 도왔는지 조상신이 도왔는지 충정공의 둘째 자부께서 수태(受胎)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때는 1456년 6월.
조선 6대 임금인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여 역적으로 몰려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함께 참혹한 최후를 맞이한 박팽년 가족들에게도 피 바람이 일었다.
죄인의 가족이라 하여 이조판서로 있던 아버지 박중림을 비롯한 동생 인년, 기년, 대년, 연년, 4형제와 아들 헌, 순, 분, 3형제 등 남자 9명은 극형에 처해지고
부인들은 공신들의 노비로 끌려가거나 관비가 되었다.
다행히 사형(死刑)을 면한 사촌 시숙들은 관노비가 돼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으나
둘째 며느리 성주 이씨는 아버지 이철근이 교동 현감으로 있는 경북 달성군 하빈면 묘리의 친정 동네인 대구 관비로 갈 수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둘째 며느리는 이때 뱃속에 아기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 해 늦가을 드디어 아들이 태어 났다. 칼 같은 어명에 따라 관가에 고하면 아들이면 죽임을 당하게 되고
박팽년 가문은 영원히 문을 닫게
될 처지였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때마침 친정집의 여종이 비슷한 시기에 딸을 낳았다. 며느리는 무릎을 쳤다.
아이를 서로 바꾸면 이 아이는 죽음을 면하리다!
박팽년 대감의 혈육은 이렇게 현감댁 노비의 아들 박비(朴婢)라는
이름으로 그 질긴 목숨을 잇게
된 것이다.
노비의 아들인양 비밀리에 키워진
그 박비가 17세가 됐을 때,
성종 3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모부 이극균이 처가인 묫골에 왔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막힌 사연을 들은 이극균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장성한 박비에게 자수할 것을 권유했다.
세조는 이미 죽어 세상을 떴고 그 손자인 성종이 권좌에 있을 성종 4년(1473년) 이었다.
정적이었던 정난공신이 거의 죽고 한명회와 정인지는 아직 생존했을 당시였다.
성종은 자수한 박비의 내력을 듣고는 무척 감동하며 사육신 중 유일하게 남은 옥구슬 이란 뜻을 담은 일산(壹珊)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노비신분도 풀어준 것은 물론이다.
이 사람이 바로 박팽년선생의 손자 박일산으로 충정 공파 파조가
되는 셈이다.

일산은 후에 후손이 없는 외가 재산을 물려받아 아흔아홉 칸 종택을 짓고 묫골에 정착했다.
그런 연유로 순천박씨 중 박팽년의 후손들을 지칭할 때 "묫골 박 씨"라고도 한다.
원래 박팽년은 순천박씨로 충청도 사람인데 둘째 며느리 李씨가 달성군 하빈면 사람이어서 그 후손들은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기적적으로 핏줄을 이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박일산의 모친 성주 이씨는 평생 수절하며 관노로 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묘리에서는 처음에 박팽년만 제사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박일산의 손자 박계창이 고조부 박팽년의 제사를 지내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다른 사육신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 후에는 후손들이 모두 끊어진 다른 사육신들의 제사도 함께 지내고 있다.
사육신들을 육신사(六臣祠)에 모시고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 우리가 알만한 사람은 김영삼정부 때 국회의장을 지낸 9선 의원 박준규씨와 이병철 삼성 창업주 부인 박두을여사 등이 박팽년의 후손이다(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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