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재미있는 이야기

[스크랩] 한국전쟁 당시 북한인민군의 47%는 조선족부대 1

작성자황룡|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한국전쟁 당시 북한인민군의 47%는 조선족부대 1]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의 47%는 실전 경험 풍부한 중국 동포들로 구성된 정예부대였다 중국 동포 부대는 중국의 국공내전의 주요 전투에서 풍부한 실전 경험을 겪었다.
국공내전에서 장개석의 군대가 치룬 주요 전투마다 
대패하고 대만으로 쫓겨 간 해가 1949년.
중국 대륙에는 모택동에 의해서 "중화 인민 민주공화국"이 탄생하였다. 이제 사냥은 끝났고 할 일 없는 사냥개가 된 조선족 군대는 모택동이 내심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부대가 되었다. 반면 한반도의 북쪽을 차지했던 김일성은 모택동의 성공을 보고 한반도에서 공산 통일 정부를 세우려는 야심을 품는다.

일제의 수탈정책으로 만주까지 흘러 들어가 살길을 찾던 동포들이 황무지를 개간하여 살만할 때 만주국의 실제 통치세력인 일본이 패망하고 물러가고 만주는 한동안 힘의 진공지대가 되었다. 일본이 패망하자 중국인들은 재빠르게 비적 떼를 조직해서 일본인들을 습격했다.
그들은 일본인 개척촌을 습격해서 분탕질을 하기도 하고 피난길에 오른 일본인들을 학살하고 재물을 털기도 했다.
중국 비적들의 만행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이들의 손에 죽은 일본인 부모들이 만주 땅에 남겨놓은 일본인 고아들이 무려 5만 명이나 되었던 사실로도 증명된다.
비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인 습격도 끝물이 되고 추수기가 되자 논농사를 짓는 조선인 촌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만행을 잘 보아왔던 조선인들은 촌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무기를 준비하고 자치단을 조직했다. 일본이 패망하자 장개석은 만주의 
주요 도시에 군대를 진주시켜 일본군과 만주군의 항복을 접수하고 만주 장악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장개석의 국부군이 선수를 친 덕택에 만주가 국부군이 장악하는 것이 되나 하였다. 그러나 모택동도 이 만주가 갖는 전략적 가치를 주목하고 있었다.
우방 공산국 소련과 긴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지원을 받기도 좋았을뿐더러 일본이 15년간 갈고 닦은 경제 개발 덕분에 만주의 공업생산력은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 대륙보다 더 높았다. 모택동은 자신의 근거지 연안을 포기 하더라도 만주만은 먹어치우기로 하였다.
모택동 군은 끈질기게 싸운 끝에 만주에서 국부군을 내몰았다. 모택동이 만주 점령을 가능하게 한 것은 만주에서의 조선족이 역할이 컸고, 1940년의 일본 만주군 대토벌로 소련으로 도주한 이후 공간으로 남아 있는 만주 조직을 재건코자 연안의 모택동 정권이 비밀리에 파견했던 조선인 이상조의 노력도 역할을 했다.
그는 나중에 휴전회담의 북한 대표로 나와 남한에 얼굴을 알렸고 나중에 소련주재 대사를 할 때 김일성에게 숙청당할 기색을 알아채고 소련으로 망명했다.
(이상조는 망명 후에 한국전쟁 당시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그는 지하 활동을 하다가 일본 항복 후 표면에 나와 활동을 개시했다. 목표는 조선 젊은이들의 포섭이었다. 그에게 조선인 촌락마다 이미 비적 대비를 위해서 조직하여 놓은 무장 자위대는 차려놓은 밥상과 같았다. 그는 이들 젊은이들을 부지런히 모택동 군에 편입시켜갔다.  더구나 농촌에서 농사일 빼놓고는 별다른 장래 전망이 보이지 않던 조선인 젊은이들을 혁명이니 해방이니 투쟁이니 하는 피를 끓게 하는 공산주의의 단어들이 자석처럼 유인하였다. 더해서 만주 농촌의 젊은이들 사이에 모택동과 공산주의가 들불처럼 퍼져나가던 중국 대륙에서 전파된 사회풍조도 있었다.
이상조의 조직적인 노력의 대상이 아닌 남만주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공산군에 투신했다. 이들 조선 젊은이들이 모택동 군에 합세한 숫자는 50,000명에서 60,000명으로 추산한다. 일본의 만주 국군의 크기가 총 20만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점을 보면 이는 대단한 숫자이다.
공산군이 된 조선인들은 한족을 능가하는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하였다. 전투력이 강했던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한족 농민출신 장병들에 비해서 높았던 조선인 청년들의 교육 수준도 큰 역할을 했다.
중국 통일이 된 마당에 조선족 부대가 별로 필요 없게 된 모택동은 이 조선족 부대를 모두 김일성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결국 이들 중국 인민해방군의 조선족 부대는 통채로 북한에 들어와 북한 군복으로 갈아 입고 북한군의 정예부대로 편성된다.
이들은 남침 북한군의 최선봉에 선 주력부대였으나 그 병력을 이끈 지휘관들은 후에(50년대 말) 김일성이 벌인 연안파 숙청과정에서 대부분 생을 마감하게 된다.-펌글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6070 낭만길걷기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