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관(柳寬, 1346년(충목왕 2년) ~ 1433년(세종 15년))은 고려,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초명은 관(觀), 자(字)는 몽사(夢思), 경부(敬夫), 호(號)는 하정(夏亭),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371년(공민왕 20년)에 과거에 급제해 고려 말 봉산군수, 성균사예(成均司藝) 등을 지냈다. 조선 개국 후 공신이 되어 사헌중승(司憲中丞), 강원도관찰사 및 전라도관찰사, 대사성, 형조전서, 대제학를 지냈다. 1409년 8월 28일~1413년 3월 22일《태조실록》편찬에 참여, 1419년 9월 20일 ~ 1424년 8월 11일《고려사》를 수정(修正)하고, 세종(1424년(세종 6년) 우의정이 되고 그 이듬해 사직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백리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언젠가 한 달이 넘도록 장마가 져서 집에 비가 삼줄기처럼 새어 내렸다. 공은 방 안에서 우산을 들고 비를 피하며 부인을 돌아보고, "우산이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디겠소?" 하니 부인은, "우산이 없는 집은 반드시 미리 방비가 있을 겁니다." 하여 공은 웃었다. 방안에서 우산을 써야 했던 청백리 류관, 정계서원(程溪書院)의 배향(配享), 저서로는 《하정집》(夏亭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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