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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 시집 (삶은 팍팍하고 생은 울컥한다)2025

작성자사마난추|작성시간25.11.25|조회수65 목록 댓글 0

 

 

 

김연종 시집 (삶은 팍팍하고 생은 울컥한다)

 

김연종 시인의 외면은 시류를 따라가는 듯 범속해 보이나 사실 그의 내면은 일상의 탁류를 증류하는 추상의 물결로 일렁인다. 걸쭉한 해학과 날랜 재담의 행간에서 그의 유심은 변방의 지장(知將)처럼 삶의 경계선 너머를 날카롭게 응시한다. 의학 용어와 철학 개념이 무시로 의식의 문턱을 넘나드는 가운데 그의 안팎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끊임없이 뒤바뀌는 양상을 드러낸다.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대구(對句)는 종종 경구적 함축미를 띠면서 그의 지적 추동력을 발현하나 그의 언어는 예지가 번득이는 방식에서보다 해묵은 욕구가 꿈길을 헤매는 방식에서 더 곡진하게 매력적이다. 몸짓이 언어를 능가하는 문장의 행간에는 결핍에 허덕이는 소년의 순수가 땅거미처럼 너울거린다 . 그의 시적 열정은 극락강과 화정동 인근에서 약관의 나이에 이립(而立)한 후 생의 정점에서 인류의 가능성과 한계를 내다보는 출사의 변을 토하다가 이제 이순(耳順)의 변곡점을 지나 운명의 길이 일으키는 현기증을 앓고 있다. 출발점과 종착점이 수시로 교차하는 김연종의 시는 그의 시적 경력이 외길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알려준다. 그 길은 처음부터 무한을 향해 뻗어 있었으므로 막다른 골목은 언제나 새로운 길에 대한 허기를 일으켰을 듯하다. 왜, 라는 물음으로 살아가는 서울의 자라투스트라는 문학의 신기루를 좇는 사람이 더는 아니다. 김연종 시인은 현실을 직시하면서 어떻게 그 부조리와 불협화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 생을 초월하기보다 견뎌내는 데서 초인의 정신을 찾는 사람이다. 시인의 운명은 꿈과 좌절의 영원한 반복이라는 형벌 속에 있는지 모른다. 영혼의 흉터 조직이 갈수록 단단해져 가는 즈음에서 김연종 시인은 어떻게 시지프스의 운명을 긍정할 수 있을까, 어찌 시를 붙들고 씨름할 수 있을까, 시에서 어떻게 용기와 행복을 구할 수 있을까, 쉴새 없이 반문하고 있다. - 양균원(시인·대진대 영문과 교수)

 

김연종은 의사이자 시인이고, 시인이자 의사이다. 따라서 ‘시집’과 ‘청진기’는 사실상 사내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개의 자아인 셈이다. 그것들은 논리적으로는 구분되지만 실제로 분리할 수는 없다. …… 하나의 신체에서 공존하고 있는 ‘시인’과 ‘의사’라는 두 개의 자아를 화해시키는 일은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두 자아 둘 모두를 긍정하면 타협이 가능하지만, 그 경우에도 ‘시인 의사’와 ‘의사 시인’ 가운데 어느 쪽이 적확한 표현인지 의문은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인 의식, 그러니까 두 영역 모두에 속해 있으므로 정작 어느 한 세계에 온전히 포함되지 못한다는 의식은 김연종의 시의 한계가 아니라 특이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한계가 아니라 시적 발화의 조건이다.

- 고봉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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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다

 

머리숱은 줄고 배 둘레는 늘었다

혈압이 오르고 당수치도 간당간당한다

 

겉은 멀쩡한데

내면의 몰골은 처량하다

 

감정의 찌꺼기가 혈관에 남아

소소한 일상에도 뒷목이 뻣뻣해진다

 

조금만 관심이 떨어져도 오금이 저리고

신용불량의 관절 마디엔 마찰음이 요란하다

 

잔고장이 많아

수시로 지갑을 보충하고 스마트폰을 충전한다

 

사이드미러엔

솔깃한 명함이 따라붙는다

 

스킨십의 온도가 높지 않아

사소한 격려에도 온몸이 팔랑거린다

 

이마와 뱃살을 어루만져

카톡의 프사를 다시 바꾼다

 

새벽 존엄은 사라진 지 오래

 

육십갑자에도

조동버릇은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근시안이라 마음을 살필 여유조차 없다

 

적자투성이 육신은 원래부터 약골이었다

 

- 「중간결산」 전문

 

늘어진 청진기를 목에 두르고 있다

빛바랜 와이셔츠에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하늘색 단추가 느슨하게 풀려 있다

출퇴근도 휴식 시간도 명확하지 않다

벽시계의 초침은 미동도 하지 않는데

진한 하품 소리가 대기실까지 전염된다

거식증인지 폭식증인지

묻기도 전에 바람의 몸무게를 잰다

이제 막 사랑을 끝낸 중년 부부처럼

이미 잠든 사람을 깨워 수면제를 권한다

철 지난 잡지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푸른색 다이아몬드를 찾아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텅 빈 진료실엔

아직 목숨을 의탁할만한 가벼운 안도감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다

 

은폐가 불가능한 새끼고양이 수염처럼

자꾸 만져도 자라지 않는 토끼 인형처럼

만질수록 쭈그러드는 방울토마토처럼

 

시詩든 것들은 모두 바람에 날리기를 원한다

 

- 「폐업 직전 늙은 의사의 진료실 풍경」 전문

 

김연종 시인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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