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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사와 비평 사이에서-서문 / 부유섭 - 한국고전번역원

작성자햇살편지|작성시간17.07.04|조회수47 목록 댓글 0

찬사와 비평 사이에서-서문
번역문

   지난번에 보내 주신 문집(文集)의 서문을 받고 기쁘고도 감사했습니다. 이른바 문집의 서문은 어느 한 문집의 선구(先驅)인 것이며, 그 의미를 확대하면 작자가 쌓은 내공을 알려 주고 그것을 목적으로 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의 문집에 서문이 없을 수 없는 이유는 역시 이 때문입니다. …… 그대가 내 문집에 서문을 쓴 것에 대해 아무도 혐의쩍어할 자는 없습니다. 만일 공정하게 서문을 쓴다면 내 시문(詩文)의 경우에도 마땅히 눌러야 하고 높여서는 안 되고 또한 마땅히 물리쳐야 하고 올려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서문을 지으면서 도리어 억누르고 또 배척하는 이치는 만무한 것이니, 그대를 위해 방법을 말해준다면 다만 문집을 지은 연유의 본말을 말하는 것으로 또한 충분할 것입니다.

원문

昨蒙所貺集序。奉戴欣感。夫所謂集序者。一集之先驅也。引而伸之。導作者之蘊。爲之標的者也。古之人所以有集而不可無序者。蓋亦以此耳。……吾子之於僕。無嫌者也。若以公而敍之。則如僕之詩文。宜抑而不可抗。宜斥而不可躋者也。然爲人作序。而反抑且斥。萬無此理。則爲子計者。第言集之所作因由本末。亦足矣。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후집(後集) 권12 「시랑 이수에게(與李侍郞需書)」

해설

   우리는 서문이 또 다른 하나의 편견이라는 사실을 안다. 서문이 저자의 전적(前績)과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콘셉트를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문집 서문은 일화를 포함한 작은 약전[Capsule Biography] 혹은 인물평과 메타텍스트(다른 텍스트를 비평, 논평하는 텍스트)를 축으로 구성된다. 저자와 책의 가치와 의도, 구성, 출판 배경과 과정을 개괄함으로써 책의 존재 이유와 불멸성을 담지하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서문 찬자, 편집자, 저자와 모종의 역학 관계가 매개되어 있다. 무엇보다 서문 찬자의 권위적 해석을 빌림으로써 책의 완성과 함께 당도할 미래의 독자들에게 해석의 규범을 보여주고자 한다.

 

    ‘시는 천기(天機)다’, ‘시는 성정(性情)의 표현이다’ ‘글은 옛것을 본받아 새롭게 써내는 것이다[法古創新]’와 같은 문학에 대한 선언적 명제들, 김창협(金昌協)이 김석주의 『식암집(息菴集)』에 단 「식암집서(息菴集序)」, 박세당(朴世堂)이 김득신의 『백곡집(栢谷集)』에 단 「백곡집서(栢谷集序」처럼 전대(前代) 문학의 시문을 개황하고 저자의 위치를 비정하는 작업을 통해, 서문은 당대 문학의 통사(通史)를 전개하기도 한다. 이처럼 서양에서 워즈워스와 코울리지가 공동 저작하여 발표한 『서정민요집(Lyrical Ballads)』에 실린 워즈워스의 서문이 낭만주의의 선언문으로 읽히고, 예일학파로 불린 미국의 문학비평가들과 자크 데리다가 공동출판한 『해체와 비평(Deconstruction and Criticism)』(1979)에 달린 제프리 하트먼의 서문이 ‘예일선언(Yale manifesto)’으로 명명되어 해체주의 시대의 전망으로 읽히고 있는 것처럼 서문은 때로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선언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수(李需)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의 서문을 쓰면서 보여준 이규보와 이규보의 문장에 대한 총평은 결국 천여 년의 세월을 견디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규보가 왜, 어떻게 중요한 위상의 인물인가를 요약하고 논평한다. 특히 ‘문여기인(文如其人: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을 담고 있다)’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글을 해석하려는 관념은 서문에서 더욱 두드러져 약전에 기술되는 인물평이 문집 전체 글의 위상을 재고(再考)할 뿐만 아니라 제고(提高)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주희가 여러 사람의 문집 서문을 쓰면서 우선적으로 그 인물평을 기술한 관례는 주희 문학의 영향권에 있는 문집 서문 찬자에게 인물평을 키워드로 서문을 창작하려는 경향성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지난번 서문(「석은집서(石隱集序)」)을 보니, 전체 글이 격식에 맞지 않는 듯합니다. 말의 뜻이 또한 대부분 온당치 않아 불가불 글 하나의 구상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대체로 시문이 명절에 비해 여사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유집 서문의 문체는 마땅히 문사(文詞)를 위주로 써야 합니다. 공을 세운 부분은 서술을 간단히 하고, 아울러 그사이에 의론을 써서 글이 사람으로 인해서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문집 서문의 체제가 됩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글을 보면 ‘당시 내가 눈으로 살펴보았다’라고 한 부분 아래에 서술한 부분이 너무나 번다하여 행록이나 유사와 같은 종류가 되어버렸으니 아마도 이와 같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昨觀序文。全體恐似失格。語意且多未妥。不可不改構一本。蓋雖以詩文比名節爲餘事。然遺集弁卷之體。當以文詞爲主。於其所樹立處。簡易敍事。幷行議論於其間。以示文之因人而重。方爲文集序體段。而今高文。則時余目擊以下鋪敍大繁。有若行錄遺事之類。似不當如此。 - 박윤원(朴胤源, 1734~1799), 『근재집(近齋集)』 권12 「유여성에게[與兪汝成]」

   박윤원은 유한준(兪漢雋)이 쓴 유언민(兪彦民)의 문집 『석은집』 서문에서 지나치게 인물 중심 기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이면서, 서문이 행록과 유사와 같은 전기류 저술과는 달리 문학적 성취에 집중할 것을 지적한다. 간혹 서문을 읽으면서 무감(無感)과 무각(無覺)의 독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의 책에 앞에 놓이는 서문이 맹목적 찬사의 규례를 따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벨의 도서관』, 『사적인 도서관』 시리즈 등을 내면서 해당 작가의 해설을 맡아 다수의 서문을 쓴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는 한 인터뷰에서 왜 서문이 찬사이어야 하는지 나름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스발도 페라리: 에세이보다 수년 동안 존경해 온 작가와 책의 프롤로그에서 문학과 작가에 대한 애정을 훨씬 많이 표현하시더군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프롤로그는 비평 연구와 찬사 사이의 중간 장르이니 당연하지요. 사람들은 프롤로그에는 어느 정도 과도한 칭찬이 들어가게 마련이라고 여기고, 그래서 독자는 칭찬의 말을 무시한답니다. 동시에 프롤로그는 관대해야 하지요. 몇 년 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좋아하는 것만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부정적 비평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쇼펜하우어는 헤겔이 사기꾼이거나 얼간이거나 둘 다라고 생각했지요. 지금은 두 사람이 독일 철학사에 평화롭게 공존합니다. 노발리스는 괴테가 깊이 없고 그저 올바르고 우아한 작가라고만 생각했지요. …… 그는 괴테의 작품을 영국식 가구 제작에 비유했습니다. …… 지금은 노발리스와 괴테 작품이 모두 고전이지요. 칭찬하는 글이 다른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평하며 쓰는 글은 그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 보르헤스, 페라리, 『대담(Conversations)』 2), Seagull Books, 2015

   책을 쓴 저자와 글은 시대에 따라 그 평가가 변전한다. 따라서 서문 찬자를 그 시대에 한 명의 ‘독자’의 관점, 다시 말해 ‘하나의 편견’으로 읽음으로써 그 편견에 도전하고, 우리 시대에 옛 책의 독자로서 새로운 편견이 될지도 모르는 독서를 통해 해석의 무한한 가능성과 고전이 고전인 이유를 설명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부유섭
글쓴이부유섭(夫裕燮)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주요 역서
  • 『소문 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공역), 휴머니스트, 2011
  • 『일암연기』(공역),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6
  • 『형설기문(한밤에 깨어 옛일을 쓰다)』(공역),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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