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사와 비평 사이에서-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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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문이 또 다른 하나의 편견이라는 사실을 안다. 서문이 저자의 전적(前績)과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콘셉트를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문집 서문은 일화를 포함한 작은 약전[Capsule Biography] 혹은 인물평과 메타텍스트(다른 텍스트를 비평, 논평하는 텍스트)를 축으로 구성된다. 저자와 책의 가치와 의도, 구성, 출판 배경과 과정을 개괄함으로써 책의 존재 이유와 불멸성을 담지하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서문 찬자, 편집자, 저자와 모종의 역학 관계가 매개되어 있다. 무엇보다 서문 찬자의 권위적 해석을 빌림으로써 책의 완성과 함께 당도할 미래의 독자들에게 해석의 규범을 보여주고자 한다.
‘시는 천기(天機)다’, ‘시는 성정(性情)의 표현이다’ ‘글은 옛것을 본받아 새롭게 써내는 것이다[法古創新]’와 같은 문학에 대한 선언적 명제들, 김창협(金昌協)이 김석주의 『식암집(息菴集)』에 단 「식암집서(息菴集序)」, 박세당(朴世堂)이 김득신의 『백곡집(栢谷集)』에 단 「백곡집서(栢谷集序」처럼 전대(前代) 문학의 시문을 개황하고 저자의 위치를 비정하는 작업을 통해, 서문은 당대 문학의 통사(通史)를 전개하기도 한다. 이처럼 서양에서 워즈워스와 코울리지가 공동 저작하여 발표한 『서정민요집(Lyrical Ballads)』에 실린 워즈워스의 서문이 낭만주의의 선언문으로 읽히고, 예일학파로 불린 미국의 문학비평가들과 자크 데리다가 공동출판한 『해체와 비평(Deconstruction and Criticism)』(1979)에 달린 제프리 하트먼의 서문이 ‘예일선언(Yale manifesto)’으로 명명되어 해체주의 시대의 전망으로 읽히고 있는 것처럼 서문은 때로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선언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수(李需)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의 서문을 쓰면서 보여준 이규보와 이규보의 문장에 대한 총평은 결국 천여 년의 세월을 견디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규보가 왜, 어떻게 중요한 위상의 인물인가를 요약하고 논평한다. 특히 ‘문여기인(文如其人: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을 담고 있다)’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글을 해석하려는 관념은 서문에서 더욱 두드러져 약전에 기술되는 인물평이 문집 전체 글의 위상을 재고(再考)할 뿐만 아니라 제고(提高)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주희가 여러 사람의 문집 서문을 쓰면서 우선적으로 그 인물평을 기술한 관례는 주희 문학의 영향권에 있는 문집 서문 찬자에게 인물평을 키워드로 서문을 창작하려는 경향성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박윤원은 유한준(兪漢雋)이 쓴 유언민(兪彦民)의 문집 『석은집』 서문에서 지나치게 인물 중심 기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이면서, 서문이 행록과 유사와 같은 전기류 저술과는 달리 문학적 성취에 집중할 것을 지적한다. 간혹 서문을 읽으면서 무감(無感)과 무각(無覺)의 독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의 책에 앞에 놓이는 서문이 맹목적 찬사의 규례를 따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벨의 도서관』, 『사적인 도서관』 시리즈 등을 내면서 해당 작가의 해설을 맡아 다수의 서문을 쓴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는 한 인터뷰에서 왜 서문이 찬사이어야 하는지 나름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책을 쓴 저자와 글은 시대에 따라 그 평가가 변전한다. 따라서 서문 찬자를 그 시대에 한 명의 ‘독자’의 관점, 다시 말해 ‘하나의 편견’으로 읽음으로써 그 편견에 도전하고, 우리 시대에 옛 책의 독자로서 새로운 편견이 될지도 모르는 독서를 통해 해석의 무한한 가능성과 고전이 고전인 이유를 설명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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