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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담고 마음으로 그리네 / 김효동 - 한국고전번역원

작성자햇살편지|작성시간26.06.17|조회수17 목록 댓글 0
시에 담고 마음으로 그리네


성근 빗방울 잠시 그치고
따뜻한 바람 불어올 때엔
맑은 향기 잡을 수 있다면
멀리 그리운 이에게 보내야지


疏雨乍晴後       소우사청후
暖風初動時       난풍초동시
淸香如可掬       청향여가국
千里寄相思       천리기상사


 - 이명한(李明漢, 1595~1645), 『백주집(白洲集)』 「꽃 아래 독작하며 벗을 그리워하네[花下獨酌懷友生]」


  이명한은 당대 제일의 문사로 꼽힌 이정귀(李廷龜)의 아들로 그 또한 문명(文名)을 떨쳤다. 호탕하고 너그러운 성격으로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 이 시에서는 그의 다정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드문드문 내리는 비에 꽃잎이 촉촉해지면 싱그러운 내음이 바람에 실려 더없이 향기롭다. 청아한 향기를 벗과 함께 즐기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시에 담아 보낼 뿐이다. 잡을 수 없는 향기나마 애써 담아 보려는 마음에서 벗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짧은 편폭에 꾹꾹 눌러 담노라니 그 내음이 더욱 진해진 듯하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향기는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명한은 당대의 문사들과 두루 교유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학맥과 혈연으로 친교가 두터운 절친들이 있었다. 이명한의 처남 박미(朴瀰)가 그 멤버인 정홍명(鄭弘溟), 최명길(崔鳴吉), 장유(張維), 신익성(申翊聖), 이명한을 「오자시(五子詩)」 읊은 바 있는데, 이들은 모두 서인계 문인으로 광해군 대에는 정치적 시련을 겪고 인조 대에는 호란을 겪는 등 시대의 고난을 함께하였다. 시정(詩情)을 매개로 깊은 문교(文交)를 나누었으니 서로 주고받은 시에서 그리움의 정서가 꽤나 짙게 드러난다. 장유가 이명한의 시를 읽지 못해 입에 냄새가 날 정도라며 그리움을 담아 시를 보내자, 이명한은 그 시를 온종일 음미하느라 배고픔도 잊었다고 화답하였다.


  이명한의 시적 재능에 대해 당대 문사들은 입을 모아 칭찬하였다. 장유의 문장은 모방할 수 있겠지만 이명한의 시는 흉내 내기 어렵다는 최명길의 극찬이 전해질 정도다. 그러나 그런 천재성도 결국 사람에 대한 진솔한 마음과 애정이 지탱하고 있기에 이렇게 응축된 시어로 조탁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로 피란을 갔을 때 적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마침 배를 대는 지인을 보고 도움을 요청하러 갔는데, 그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 버렸다. 그럼에도 훗날 그가 누군지 묻자 잊어버렸다며 끝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고보면 그의 자(字) 천장(天章)도 천부적인 문장력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넉넉한 인품이 문장으로 드러나는 삶을 살도록 한 이정표가 아니었을까.

  소식이 뜸하던 벗이 꽃을 찍어 보내 왔다. 참 편한 세상이라 휴대폰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면 끝이지만, 그런 소소한 마음을 내는 일은 오히려 어려워진 듯하다. 그래서 일부러 낸 마음이 꽃보다 향기로웠다. 마음으로 그린 풍경을 시에 담고 편지에 담아 벗에게 보내야겠다. 


 글쓴이 김효동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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