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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오지

Re:제주 포도호텔

작성자무심재|작성시간11.12.12|조회수437 목록 댓글 0

이토록 위대한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포도호텔은 우리보다 세계에서 먼저 인정한 환경 친화적인 하나의 예술 작품. 제주도 속의 작은 제주를 느낄 수 있는 포도호텔에서의 1박 2일, 그 특별한 여정을 따라가 본다.


>> 늪지대에서 한실 룸 쪽을 바라본 해질녘 풍경. 룸의 테라스를 통해 드넓은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포도호텔의 최대 장점이다.

2년여 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 포토그래퍼와 함께 각종 무거운 카메라 기자재를 양손에 들고 어깨에 둘러멘 채 렌터카를 빌렸다. 짐을 풀고 렌터카 조수석에 앉고 나서야 제주도의 파란 하늘과 야자수, 삼다도라 불릴 수밖에 없는 제주의 거센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현관문 쪽에서 바라본 한실 디럭스 룸. 일반 호텔의 디럭스 룸보다 훨씬 큰 평수(약 17평형)를 자랑하며 창호지를 바른 격자문과 천장을 가로지르는 서까래가 특징이다.

제주공항에서 포도호텔로 향하는 약 40여 분간의 여정은 너무 평화로워 나른하게까지 느껴지는 풍경의 연속. 시야를 가로막는 변변한 건물 한 채 없어 마치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하며, 가끔씩 등장해 풀을 뜯고 있는 조랑말은 다가가 말을 걸고 싶어질 정도로 사랑스럽다.


포도호텔 사장이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구입해 온 핸드메이드 나무젓가락.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포도호텔의 처마.

이때쯤 등장하는 것은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돌고래처럼 보이는 제주의 상징인 오름. 마치 돌고래가 물을 뿜어내듯 펼쳐진 오름 곁 억새밭도 포도호텔로의 여정을 즐겁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가 이국적이고 신비롭게 다가오는 건 이렇듯 탁 트인 전경과 내륙에서는 접할 수 없는 천연 자연의 수혜 때문이 아닐는지.


>> 나무 자체에 약리 성분이 포함된 히노키 욕조. 포도호텔에서는 욕실에 온천수를 공급하고 있다.

포도호텔은 그런 제주도 가운데에서도 가장 환경 친화적인 공간 속에 자리하고 있다. 포도호텔에 다녀온 사람들이 저마다 ‘마치 제주 속의 작은 제주를 다녀온 듯하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런 연유일 터. 또한 세계 유명 인테리어 잡지와 건축가들은 포도호텔의 디자인에 놀라움과 극찬을 보내고 있다. 한반도 최남단의 마라도와 산방산, 장엄한 한라산이 바라다 보이는 경관 속에 위치한 친환경적 건축물 포도호텔은 왜 이리도 찬사를 받는 것인가.


>> 포도송이를 닮은 호텔의 지붕과 유려한 곡선의 호텔 처마에 시선이 머문다.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역작

지난해 9월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재일동포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의 개인전이 열렸다. 이때 메인 전시 작품으로 선정된 것이 바로 포도호텔.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먼저 포도호텔의 예술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전통 초가의 모양새가 자연스레 녹아든 단층 건물이 포도호텔을 대했을 때 가장 먼저 드러나는 특징이며, 포도송이를 닮은 듯한 지붕 마감은 오름의 등성이를 보는 듯 소박하고 고즈넉해 동양적인 멋이 한껏 배어난다.


>> 호텔 외관은 제주의 상징인 하루방과 항아리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브라운 컬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은백색 자작나무도 시선을 끈다.

호텔 건물 앞쪽으로는 제주의 전통 밭이 조성되어 있어 봄이면 유채와 보리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천연 늪지대를 그대로 살려 놓았기 때문에 인공적인 연못에서는 찾기 힘든 지형과의 조화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포도호텔에서만 찾을 수 있는 재밋거리. 이런 이유로 서양인들은 포도호텔을 동양의 멋이 제대로 드러난 건축물로 여기고 끊임없는 찬사를 보내는가 보다. 건축가 이타미 준이 포도호텔 김홍주 사장에게 쓴 편지를 보면 이 건축물에 담긴 건축가의 의도를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지리라.


한실에는 전통 찻잔과 평상을 마련해 제주도의 풍광 속에서 따뜻한 차를 즐길 수 있다.
세 개의 나무기둥을 이용해 집 안의 상황을 알리는 제주 전통 정낭. 정낭이 하나만 걸쳐 있으면 집 안에 사람이 없으나 곧 돌아온다는 의미이고, 두 개의 정낭이 걸려 있으면 이웃동네에 가 있으나 오늘 안으로 돌아온다는 표시이며, 세 개의 정낭이 모두 걸쳐져 있으면 집에서 먼 곳으로 출타했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걸쳐 있지 않으면 집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

“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지형과의 조화, 지형에 거슬리지 않는 배치입니다. 또한 제주 마을의 본질과 민가의 모티프를 부상시키면서 자연 발생적 식물인 포도의 모양을 통해 전체 건축물의 조닝(zoning, 지역 나누기)에 들어갔습니다. 공간 하나하나를 계획할 때는 판소리의 리듬 속 본질이기도 한 연속과 불연속을 도입해 보기도 했지요. 제주도의 바닷바람을 의식하고, 현무암을 있는 그대로 쌓아나가 작은 마을을 형상화한 이번 건축물은 아직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기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


>>  한실 로열 룸(약 40평형)의 거실 풍경. 좌식 테이블과 의자, 서까래 등 한옥 스타일 요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나이 예순을 훌쩍 넘긴 건축가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프로젝트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커다란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갖게 하는 순간이다.  이타미 준은 이 호텔을 구상하면서 몇 가지의 공간적인 이미지들을 도입했다고 한다. ‘틀어박히다, 비어 있다, 열다, 닫다, 혼재하다…’ 등. 이 단어들을 이미지화한 포도호텔은 그래서인지 세속에서 떨어져 틀어박히기 좋은 곳으로,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듯하지만 어느 룸이든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열려진 공간으로, 제주의 전통미와 현대미를 적절히 혼재한 건축물로 탄생한 것이다.

 


>> 포도호텔에서는 외부의 빛과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이러한 건축 요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포도호텔에서 찾을 수 있는 특별한 배려들

포도호텔은 크게 18홀의 골프 코스를 갖춘 핀크스 클럽과 객실, 레스토랑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중 핀크스 골프 클럽은 세계적인 골프장 설계가인 테오도어 로빈슨(Theodore G. Robinson)이 설계했는데, 모든 코스에서 한라산과 바다가 보이는 자연 지향적 공간이며 골프장 곳곳의 억새풀을 베지 않고 그대로 두어 제주도만의 여유로운 풍경을 뽐낸다. 미국 골프 전문 잡지인 <골프 다이제스트 Golf Digest>는 2년마다 각 나라별 베스트 코스를 선정하는데, 2001년에는 핀크스 클럽이 2위에 뽑히기도 했다.


>>  천장을 뚫어 빛과 바람, 비와 눈이 그대로 통하게 만든 캐스케이드.

건물 자체가 단층인 관계로 호텔 룸은 총 26실에 불과하지만 모든 룸은 테라스를 통해 외부 자연 환경과 직접 연결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17평형 크기의 넓은 디럭스 룸은 일반적인 호텔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함이다. 룸은 한실과 양실로 구분되는데 한실 객실의 가장 큰 특징은 천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서까래와 창호문, 그리고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꾸며진 욕실이다.

욕실에는 일본의 전통 히노키 욕조를 도입했는데, 히노키나무는 자체에 뛰어난 약리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목욕하면서 삼림욕을 한 것 같은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히노키나무는 국가에서 특별법으로 보호해 키울 정도로 신성 시되고 있다고. 히노키 욕조는 살균 작용은 기본이고 혈액 순환 촉진, 모근 활성화 등의 효과까지 있어 예로부터 일본 황실의 욕조로 사용되어 왔다. 게다가 포도호텔은 모든 룸에 온천수가 공급되고 있다고 하니 금상첨화란 표현이 적절히 어울릴 수밖에.


호텔 입구는 직선 위주의 건축 기법과 울퉁불퉁한 현무암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연출한다.
 주물 소재로 제작한 포도호텔의 간판. 굳이 눈에 띄려 크게 만들지도, 요란하게 디자인하지도 않은 마음 씀씀이가 드러나는 소박한 호텔의 상징.

이와 같은 한실의 특징과 달리 양실은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로 꾸며졌다. 테라스로 통하는 문은 모두 루버 형태로 디자인되었으며 식탁과 테이블, 소파와 의자 등은 ‘아메리칸 컨트리 스타일’쯤으로 이름 붙이기에 알맞다. 특이할 만한 점은 이런 가구와 욕조까지도 건축가 이타미 준이 직접 선택했다는 것.


>>  제주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호텔 내 레스토랑. 이곳에 앉으면 멀리 산방산을 바라볼 수 있다.

촬영 때문에 끼니를 훌쩍 넘긴 시간에 레스토랑을 찾았다. 메뉴 북에는 제주도에 왔음을 또다시 느끼게 해주는 요리들로 가득 차 있다. 제주 은갈치 조림, 제주산 흑돼지 수육, 옥돔회, 돼지고기 샤브샤브 등. 레스토랑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니 저 멀리 산방산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탁월한 경관을 자랑한다.


>> 양실 로열 룸(약 40평형)의 거실 전경. 브라운 컬러 루버 문짝과 아메리칸 스타일로 단장한 가구 및 소품이 눈길을 끈다. 로열 룸은 더블 베드가 네 개 있고, 욕실이 두 개라 대가족도 편안히 묵을 수 있다.

세상과 단절된 또 하나의 세상

촬영 당일 일본에 태풍이 온 터라 제주도에도 태풍에 근접할 만한 심한 바람이 불었다. 중심을 잡지 못할 정도로 심한 바람이라 포토그래퍼가 애를 쓰고 잡고 있는 카메라가 흔들려 나머지 촬영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프런트에서 각자의 방을 배정받는데, 히노키 욕조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한실을 고집했다. 방에 들어서 테라스 문을 열자 나타난 경치는 수풀이 무성한 늪지대와 편안한 산책로, 그리고 현무암으로 조성된 뛰어난 조경들. 마치 제주도란 섬 하나가 통째로 내 집 정원이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넓고 광활한 풍광을 자랑한다.


>> 양실 로열 룸의 침실 테라스를 통해 외부로 나갈 수 있다. 테라스에 배치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바라보면 제주도가 모두 내 것인 듯 느껴지는 풍경.


양실과 레스토랑을 함께 바라본 풍경. 룸 앞쪽으로는 제주 전통의 밭을 형상화했다. 
너무 정갈한 이 재떨이에 어떻게 담배꽁초를 버릴 수 있단 말인가.

피곤이 어느 정도 가시는 듯해 호텔 로비와 클럽하우스를 이제 에디터의 관점이 아닌, 관광객의 마음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호텔 로비에는 구멍 뚫린 지붕을 통해 빛이 쏟아지는 캐스케이드(cascade)가 가장 먼저 시선을 끈다. 처음 오픈할 당시 캐스케이드는 하나의 무대였다. 사람들이 캐스케이드 안에서 공연을 하면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 관람할 수 있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열린 공간으로 꾸미고자 했던 것. 지금은 그 자리를 공연단 대신 억새풀이 대신하고 있기는 하지만.


>> 캐스케이드를 통해 들어온 물이 흐르는 공간. 물에 반사된 햇빛이 천장에 물그림자를 만든다.

발걸음을 클럽하우스로 옮겼다. 프런트와 로비에는 동양화가 이왈종 선생의 <생활 속의 중도>와 <제주 산남 지도>의 작품이 걸려 있고, 골프장에는 도예가 김미영 선생의 작품이 티 마크(tee mark)로 사용되고 있으며, 호텔 정원 곳곳에서 대목장 박용훈 선생의 원두막과 조선마루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간 어느 한 곳도 허투루 쓰지 않은 건축가와 건축주의 깊은 배려를 감상하는 동안 제주의 매서운 바람에 휘청거리는 자작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출처 : 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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