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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스크랩] 행복/청마 유치환 ...우체국앞에서

작성자무심재|작성시간09.01.11|조회수559 목록 댓글 0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로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이 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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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5월 17일 오후 3시부터 경상대학교 남명학관에서 "청마의 시론"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다. 홍익대학교 명예교수이신 문덕수(文德守, 1928.12.8~) 교수가 강의하였다.
올해가 77세라고 하셨다. 연로하심에도 최근 "청마 유치환 평전"이라는 책을 내셨다고 한다.
유치환(柳致環, 靑馬, 음력1908.7.14~양력1967.2.13)은 인생파, 생명파 시인으로 알려졌는데,
순수시를 주장했던 김춘수(金春洙, 1922.11.25~2004.11.29)와 대비된다.
극작가 유치진의 동생이다. 유치환은 한국전쟁에서 종군했던 유일한 문인이라고 한다.
그때 남긴 시들을 1951년 9월 "보병과 더불어"로 출간했다.
청마는 이승만의 3선개헌에 반대하였고 최초로 이승만 정권을 "이승만 정권"이라고
불러 주었다고 한다.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는데 이승만 정권은 유치환에게
무엇으로 다가갔을까? 꽃인가? 여러가지 꽃이 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정보를 가지게 되었고 분류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의 가치 또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물을 볼 때, 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보는 것과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보는 것은 다르다. 사전 지식이 없다면 보아도 볼 수가 없다.
이것은 불교적 깨달음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깨달음을 얻기 전이나 후의 객관적인
세상은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세계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벽암록(碧嚴錄)에서 "한 송이 꽃이 피니 세계가 일어난다(一花開 世界起)"라는 것도 꽃이
피는 것은 일상적인 사건이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을 나타낸 것일 게다.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라고 했고 또 정조때 학자인 유한준(兪漢雋)의 말을 인용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했는데 정보의 중요성을 잘 나타낸 말이다.)

청마는 1955년부터 경주고에서 교장으로 계셨는데 그때 교훈이
"큰 나의 밝힘"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나란 나의 힘으로 생겨난 내가 아니다"
    "나란 나만으로서 있을 수 있는 내가 아니다"
    "나란 나만에 속하는 내가 아니다"
설명이 전부 "나는 ~가 아니다"라는 식의 부정문이다.
나(我)라는 존재는 수 많은 인연의 결합에 의해서 생겨났고(생성, genesis, 존재 원인),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으며(존재양식, being, 현재 상태),
여러가지 맡겨진 역할을 하면서 살아간다(행함, role, 임무)는 말인 것 같다.
모든 사물은 홀로 있지 않고 다른 것과 관계를 맺으며 있게 된다.
그래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또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인간이 독립적으로 있다가 차차 사물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관계속에 태어나서 관계속에 있다는 것을 차차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사회화된다는 것도 관계를 알아간다는 것일 게다.

시조시인 이영도(李永道, 정운 丁芸, 1916.10.22~1976.3.5)와 20년간 주고 받은
5000여통의 편지는 남여상열지사가 아니라 시를 매개로 한 순수한 사랑이었다고
문덕수 교수는 주장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개소리도
있는데 청마가 남긴 글을 보면 독자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륜이던지 순수한 사랑이던지 청마의 마음은 상당히 애뜻하였던 듯 하다.
청마는 해방후 통영여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었는데(1945.10~1948.3)
여류시조시인 정운은 가사 교사로 같이 근무했었다고 한다.
1946년부터는 문학 동인 "죽순(竹筍)"에서도 같이 활동한다.
처음 만났을 때 청마는 37세였었고 정운은 29세로 21세에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청마는 부인 권재순 여사와 살고 있었는데도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그에게 편지를 쓰고 시를 썼다.
내용과 형식으로 나눠보면, 내용은 순수했지만 형식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반희정이라는 여성과도 이런 순수한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부인과 만나게 된 것도 편지였었다는 것이다. 어려서 주일학교에서 만난
후배 여학생에게 편지를 보내 사귀게 되었고 1928년(당시20세)에 결혼한다.
청마는 신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때 꽃을 들고 있던 소년이
나중에 "꽃"이라는 시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당시6세)이라고 한다.
청마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 후배 여학생에게 편지를 보내던 시기가 아닐까 한다.
이들은 슬하에 인전(仁全, 1929?~), 춘비(春妃, 1932?~), 자연(紫燕, 1935?~)를 두었다.
단테는 젬마와 결혼하였지만 어릴 때 알게 된 베아트리체는 영원한 연인으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녀에 대한 사랑의 시를 쓴다.
19세기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생뵈브는 유명한 소설가인 위고의 아내
아델 푸세와 연인관계를 유지했는데, 정신적 사랑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위고는
심한 마음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문 시간에 인생파와 순수파의 시론이 서로 부족한 것이 있지 않냐는 질문에
문덕수 교수는 개인적으로 시의 내용보다 형식을 중시한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시쓰기에서 경지에 오른다면 내용이니 형식이니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서정주를 예로 드셨다.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고 할 때, 그것은 서정주의 소리가
아니라 소쩍새의 소리일거라고 하신다.
서정주의 "문둥이"라는 시도 시인이 문둥이의 소리를 내는 거라 하신다.
위대한 시인은 개인을 뛰어넘어 마음대로 다른 존재로 변하여 그의 마음을 느끼고
그의 소리를 그보다 더 잘 낼 수 있는 것 같다.
유치환의 시 "행복"이 생각나서 옮겨 적어보았다.
하나만 덩그라니 있는 것은 쓸쓸해서 다른 시인의 시도 적어둔다

 

국립경상대학교 윤석주
1996.8.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이학박사
1992.2.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이학석사
1989.2.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물리학과 이학사
1985.2. 문산고등학교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소재)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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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 1967
극작가 유치진의 동생.
경남 통영(충무) 생.
동래고보 수학. 연희전문 중퇴.
1931년 [문예월간]에 <정적(靜寂)>을 발표 등단. 1936년 [조선문단]에 <깃발>발표.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 시인
이른바 생명파의 한 사람으로 동인지 [생리]를 간행, 그러나, [시인부락] 동인으로는 활동 하지 않음.
경향 : 허무를 극복하려는 남성적, 의지적인 시.
- 사람의 삶 어디에나 있는 뉘우침, 외로움, 두려움, 번민 등의 일체로부터 벗어난 어떤 절대적인 경지를 갈구했으며, 그 해결의 길은 일체의 생명적인 것에 대한 허무주의적 자각에서 찾았다.


- 곧, 강렬한 허무적 의지는 그 밑바닥에 생명의 뜨거운 꿈틀거림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간직한 것 때문임
1960년대에 부산에 정착, 부산고, 경남여고 등지에서 교사, 교장으로 근무
시집 : [청마시집](1940), [울릉도](1948), [보병과 더불어](1951) 등
유적지- 유치환시비
- 바위시비(부산진역앞 수정가로 공원, 영도남여자상업고등학교)
- 깃발시비(에덴공원)
- 그리움시비(용두산 공원 '시의 거리')

●생명파(生命派) : <시인부락>(1936) 동인과 <생리>(1937)를 발간한 유치환을 중심으로 하여 인간 생명의 의지를 추구한 1930년대 문학인을 통틀어 일컫는 말. '시문학파'의 기교주의와 '주지주의시파'의 문명에 대한 시에 반발하여 생겨났다. 생명파의 대표 작가로는 서정주, 유치환, 김동리 등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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