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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Poetry)
감독 이창동출연 윤정희제작 2010 대한민국, 139분 -
이창동 감독의 <시>,를 보았습니다. 칸에서 수상소식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제가 영화를 보던 날 마침 칸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각본상을 안깁니다. 윤정희의 여우주연상이나 황금종려상을 내심 기대했던 국내의 영화 관객들은 조금 실망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시>가 각본상을 수상했다는 건 영화를 보는 또하나의 관점을 저에게 주더군요. 칸은 왜 <각본상>을 안긴걸까요?
<시>는 무색무취한 영화입니다. 화장을 하지 않은 여성의 맨얼굴을 본 듯한 느낌, 우리의 일상을 비틀고 포장하지 않는 듯한 감독의 연출력을 높게 보아주고 싶은 영화지요. 이 영화의 줄거리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여주인공 윤정희는 여전히 그 고상한 아름다운을 품고 있긴 하지만, 표면적으론 이웃집 할머니처럼 친숙하게 늙은 모습입니다. 일상의 어떤 부분을 조합해 스크린안으로 떼어 놓은 느낌, 이창동의 <시>에서 받은 가장 낯익지만 가장 신선한 모습입니다.
<시>는 제목만큼이나 고상합니다. 영화 내내 시와 시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줍니다. 시와는 담쌓고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는 2시간 20분 동안 학창시절 이후 처음으로 `시'와 `시의 작법'과 `시의 효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 듯 합니다. 그러므로, 솔직히 재미나 흥미가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활자로 된 것은 신문기사건, 소설이건, 광고지건 다 좋아하는 저도 쉽게 시를 좋아한다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시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며, 시를 왜 써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 영화는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에, 작은 파문과 의문을 던져줍니다. 이런 질문 어떻습니까? 당신은 살아가면서 시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습니까? 시를 일상속에 담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뭐, 비유가 부적절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마인드와 식물의 마인드 만큼이나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그 이유가 전 시가 가진 거대한 힘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는, 언어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정점이죠. 언어의 조탁을 거쳐 시는 완성됩니다. 그러나 시는 언어 이전에 인간의 위대한 직관력과 깨달음이 앞서야 한다는 점에서 심오한 철학이고, 생의 흔치 않는 진실입니다. 이창동은 항상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관객에게 할 줄 아는 용기를 지닌 감독입니다. <밀양>이 종교적 구원과 용서의 어려움을 묻는다면, <시>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밀양>보단 조금 거칠고, 조금 불친절합니다. 이 차이는 주연배우의 연기력이나 각본의 차이에서 온다고 해야겠죠. 가볍지 않은 질문을 영화를 통해 할 줄 아는 이창동 감독은 그래서 딱 제 스타일입니다.

서민아파트에 할머니와 손주가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이름은 미자(윤정희)입니다. 그들의 공간은 누추합니다. 좁고 낡은 아파트의 물건들은 이들의 가난을 대변하지요. 중학교에 다니는 손주는 모범생으론 보이지 않습니다.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이 모두, 반항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 아이는 충실히 그 반항적 기질을 보여줍니다. 미자는 외출 할 땐 언제나 챙이 긴 예쁜 모자를 쓰고, 옷차림도 한껏 멋을 내 평범한 할머니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미자의 겉모습은 그녀의 누추한 아파트완 대조를 이룹니다. 자신의 계급을 대변하지 않는 미자의 옷차림은 그녀가 현실에 매몰돼 밀착한 인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대개 그 사람의 외피로 우린 타인을 평가하곤 하는데, 미자로 치자면 우린 그녀를 영락없이 `나이든 시인'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한 존재가 거처하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인간의 모습이 부조화를 일으키는 경우, 관객의 시선은 불편함을 느낍니다.

미자는 어느날 갑자기 근육통증으로 병원을 찾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알츠하이머를 예비적으로 진단합니다. 미자는 손주를 맡기고 한번도 자신과 아들을 찾지 않는 `딸'에게 살갑게 전화를 겁니다. 물론 알츠하이머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무거운 얘기따윈 하질 않죠. 이 영화속에서 미자는 이혼하고 혼자 객지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딸에게 한번도 원망이나 도움을 청하진 않습니다. 답답할 정도로 모든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는데, 사실 그건 해결도 아닙니다. 딸,은 철저히 미자와 손주가 감당하고 있는 가난과 일상의 궁지에서 빗겨납니다. 그것은 딸의 무관심과 무책임함을 의미하는데, 여학생의 자살 소식에 넋을 잃는 미자와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타인의 모습에서 그건 또 세상의 무관심과 무책임을 상징하기도 하지요.

늙고, 병든 몸은 문제아 손주의 뒷바라지를 감당해야 합니다. 미자는 어느날 문화강좌에 등록합니다. 시를 배우기 위해서죠. 김용탁(김용택) 시인에게 시 강의를 듣습니다. 시를 쓰려고 애써도 시가 써지지 않는다며, 선생님께 시쓰기의 방법을 묻습니다. 실제 시인이기도 한 김용탁은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건, 미자에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관객이 최초로 이 영화에서 진지하게 시,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출발점입니다.
" 여러분은 살면서 몇 번이나 사과를 봤습니까? 수천 번? 수만 번이요? 아닙니다. 우리는 한번도 사과를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사과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무슨 말을 하나 귀기울여보고 주변에 깃드는 빛도 헤아려보고 그러다 한입 깨물어보기도 했어야 진짜 본 것입니다."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미자의 투정에 김용탁 시인은 이렇게 답하지요.
"시상은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찾아가 사정해도 올동말동 한데요."
영화는 미자의 빈궁한 삶과 손주의 비행, 한 여학생의 비극적인 자살과 어른들의 해결 과정을 겉껍질로 두르면서, 이렇게 관객에게 시를 쓰는 방법과 시를 쓰는 과정을 미자와 함께 학습하도록 이끕니다. 미자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시상을 잡기위해, 언제나 작은 메모장과 볼펜 한자루를 가지고 다니지요. 그 모습이 어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까요? 사람의 나이가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 윤정희가 보여줍니다. 장미 정원에 앉아 꽃을 관찰하거나, 소녀가 자살한 교각 위에 서거나, 그리고 버들가지 하늘거리는 서민아파트의 공터에서도, 그는 시상을 위해 세상의 모든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가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합니다. 물론, 몸이 불편한 강노인(김희라)의 수발이라는 자신의 누추한 직업에 충실하면서 말이죠.

영화 중간중간에 관객은 예쁜 시편 하나씩을 선물처럼 받습니다. 이 영화가 각본상을 받은 이유랄까요 ? 관객에게 들려주는 한 편의 시는 서정적인 화면과 조화를 이뤄 영화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그 중 조영혜 시인의 시 한 편을 옮겨 봅니다.
시를 쓴다는 것/조영혜
시를 쓴다는 것은
동지섣달 이른 새벽
관절이 부어 오른 손으로
하얀 쌀 씻어 내리시던
엄마 기억하는 일이다
소한의 얼음 두께 녹이며
군불 지피시던
아버지 손등의 굵은 힘줄 기억해내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밤 잠 깨어 홀로임에 울어보는
무너져 가는 마음의 기둥
꼿꼿이 세우려
참하고 단단한 주춧돌 하나 만드는 일이다
허허한 창 모서리
혼신의 힘으로 버틴
밤새워 흔들리는 그 것, 잠재우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퍼내고 퍼내어도
자꾸만 차 오르는 이끼 낀 물
아낌없이 비워내는 일이다
무성한 나뭇가지를 지나
그 것, 그 쬐끄만한
물푸레 나뭇잎 만지는
여백의 숲 하나 만드는 일이다
이 영화에 독특한 볼거리는 없습니다. 여우주연상을 20여회 이상 수상하며, 한국 영화사의 전설로 남은 여배우 윤정희는 이제 너무 늙었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의 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이 전해올 뿐, 클러즈업 될 수록 잔주름만이 민망하게 강조되어 보입니다. 성형 미인들이 수두륵하고, 풍만한 육체를 자랑이라도 하듯 시원스럽게 잘 벗는 여배우들만 보아오던 관객들은 어쩌면 이 영화속의 주연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영화는 특별히 재미있는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외피를 감싸는 사건들이 역동적인 흐름을 보여주지도 못합니다. <밀양>이 깊이와 흥미를 동시에 충족시킨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깊지도 흥미롭지도 않죠. 그러나, 감독은 관객에게 이 영화를 통해 한가지를 요구합니다. 빠르게만 흐르는 우리들의 삶에 쉼표를 찍어볼 것을 속삭이죠. 시를 쓴다는 것은 현대인에겐 별난 취미가 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은 갈수록 책을 읽지 않고, 더군다나 시따윈 관심도 없습니다. 손안에 인터넷인 스마트 폰의 보급으로 우린 걸어다니면서도 인터넷을 하지만, 걸으면서 책을 읽는 사람은 쉽게 찾기 힘듭니다. 시가, 죽기에 최선의 토양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젊은 시인 황병승을 빌려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 같은건 죽어도 싸!"

그러나 시가 죽은 세상에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시를 쓴다는 것은 가장 가난한 행위입니다. 시는 이 세상에서 더이상 돈이 될 수 없습니다. 돈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시같은걸 쓰는 행위죠. 그래서 사람들은 모였다하면, 돈을 버는 비상한 재주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술자리에선, 펀드니 주식이니 경매니 부동산이니 선물이니 옵션이니 하면서 제 나름의 제테크 고수들은 열을 올려 연구하고 토론합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물질과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란 언제나 자아에 대한 응시로부터 멀어지는 최선의 지름길 같은 거죠.
세상 사람들은 물질적으론 부유해졌지만, 분명히 정신적으로 가난해졌습니다. 여전히 이 땅에는 4대강 공사 같은걸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문수스님처럼 자신의 온 몸을 태워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일부가 자연의 모든 것을 훼손할 근거가 없다는 걸 고발하는 깨달음의 선각자들도 있는 법이죠. 자아를 응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인간적 삶이 아닌, 생물적 삶에 만족하게 됩니다.
인간은 누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높고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 꿈을 망각하는 일이 잦고, 그건 너무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죠. 본능은 항상 욕망을 부릅니다. 시,는 이 천방지축인 본능을 담대하게 제어할 수 있는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주위의 사물을 잘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김용탁 시인의 조언은 삶에 쉼표를 찍고 일상이 추함과 아름다움이라는 이종의 차원으로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얻으라는 얘기와 같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시인은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존재를 명상하는 사람입니다.
미자는 이 영화의 끝자락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뒤늦게 찾아온 미자의 딸은, 사라진 엄마의 공간을 허탈하게 바라보지요. 그리고 가난한 현실, 때묻은 소년, 죽어버린 소녀나 이해에 눈이 밝은 어른들 사이에서, 결국 시 한 편을 스승에게 남기고 미자는 마지막 수업을 대신합니다. 이 영화는 영상으로 시 한 편을 짓는데, 그 시에는 바로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이웃의 누추하고 비릿한 풍경에서 건져올린 정수같은게 담겨 있죠. 시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지만, 시의 토양은 그 반대라는걸 우린 여기서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현실이 아무리 누추하더라도 우리는 시처럼 더렵혀지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이 비정한 세계속을 허우적 거리는 우리가 `시' 한편으로 구원될 수 있다, 는 것 ! 이 얼마나 큰 위안과 희망을 주는 영화의 메세지인가요 ?
아네스의 노래, 를 빼고 이 영화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아네스의 노래, 한 편를 짓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아네스가 누구인가요? <시>는 하나의 궁금증을 남깁니다. 이 영화속 다리 난간 위에서 떨어져 죽은 소녀일까요? 아니면 1년전 부엉이 바위 위에서 몸을 던진 그분일까요? 참여정부시절,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이창동 감독은 기자들의 짓궂은 질문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습니다.

아네스의 노래
이창동 (양미자)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2010.6.6
개츠비의 영화 읽기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