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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스크랩] 정지용의 시세계 엿보기

작성자무심재|작성시간12.02.05|조회수953 목록 댓글 0

정지용의 시세계 엿보기

 

                                                                  유기영

 

 

1. 들임말

 

  근래 두어 달 동안 정지용 시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의 원본 시집과, 대표적인 논문들을 찾아 공부하면서 정지용의 시세계를 조금은 엿본 듯하여, 이를 우리 민들레동인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 글을 쓰게된 계기이다.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정지용시인은 『정지용시집』(1935년)과 『백록담』(1941년)을 통해 감각적 언어로 이미지즘 시의 지평을 열었다. 정지용 이전의 1920년대 우리 문단의 시들은 대체적으로 리듬을 중시하고, 감정의 토로가 직접적이었다. 이에 비해 정지용은 언어로서의 시를 자각하고, 감각적 언어를 극도로 조탁하였으며, 감정을 지성으로 절제하고, 청각적 리듬보다는 시각적 이미지즘을 중시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는 1920년대부터 서구에서 성행한 모더니즘 시에 연결되는데, 특히 이미지즘 시와 영미주지주의 시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카톨릭에 귀의하여 카톨릭 종교시를 선보였고, 후기에 들어서는 자연주의 동양사상에 그의 시를 접목시켰다.

 

  여기서는 정지용의 시세계는 『정지용시집』과 『백록담』을 중심으로 초기시와 카톨릭시, 후기시로 크게 나누고,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을 소개함으로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고, 우리의 詩作 활동과 작품 감상 능력 배양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또한 정지용의 원본 시편들은 고어와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 한자 등으로 요즘의 우리가 쉽게 감상하기 어렵기에 부분적으로 지금의 맞춤법에 맞춰 수정하여 소개하였음을 일러둔다. 정지용 시에 대해 좀더 깊이 공부하고자 한다면 원본 시집을 구입해서 읽어보기를 바란다.   

 

2. 초기시

 

  정지용의 초기시는 1935년 시문학사에서 박용철이 편집하여 출판한 『정지용시집』수록 작품들로, 정지용의 일본 동지사 대학 유학시절 전후에 창작한 고향과 조국에 대한 의식이 표출된 시편들과 시문학동인으로 활동하던 시기의 감정이 절제된 주지적 이미지즘 시편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향수> 전문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고향> 전문

 

 

    

  <향수>는 정지용이 일본 동지사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쓴 글로 알려져 있다. 고향을 떠나는 시점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표현했는데, 노래로 불리울 만큼 시적 운율감이 뛰어나고, 시어의 아름다움과 정감이 그리운 고향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시를 찬찬히 살펴보면 당시 고향의 헐벗고 어려운 현실이 또한 시 속에 담겨있다. 시인은 밤물결, 검은 귀밑머리, 사철 발 벗은 아내, 모래성, 서리까마귀 우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 등의 시어를 통해 암울하고 헐벗은 고향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아주 정감어린 어조로 노래하고 있기에 독자들이 간과하기 쉬울 뿐이다.

 

  두번째 글 <고향>은 정지용이 일본 동지사대학을 졸업한 후에 귀국하여 쓴 글로, 씁쓸한 고향상실의식이 드러나 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이었건만, 돌아온 고향에서 시인은 고향의 옛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고향을 잃어버린 마음이 변함없는 자연과의 대비로 표현되었는데,  2행구조와 음보율로 운율감이 있지만 <향수>에서 보다는 그 정도가 떨어진다. <향수>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진하게 표출된 글이라면, <고향>은 상실된 고향의 씁쓸함을 상당히 담담한 어조로 표현한 글이다.

 

  이 글들 외에도 <오월소식>, <압천>, <석류>, <카페 프란스> 등의 글들은 대부분 정지용이 일본 동지사대학에 유학중 쓴 작품으로 감각적인 시어들로 고향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식이 표면에 드러난다.

특히 <카페 프란스>에서는 '나는 나라도 없고 집도 없단다 / 대리석 테이블에 닷는 내뺨이 슬프구나!'라고 조국상실의식이 직접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지용의 초기 시편들은 가족, 고향, 조국에 대한 시인의 정서가 아직 숨어들지 않았던 시기로, 정지용 자신의 詩作 방향을 찾는 모색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유리창1> 전문

 

 

     바다는 뿔뿔이

     달아 날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

 

     이 앨쓴 해도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희동그란히 받혀 들었다!

     지구는 연잎인양 오므라들고.... 펴고....

 

                            - <바다2> 전문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정지용은 모교인 휘문학교의 영어교사로 부임하고, 김영랑, 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동인활동을 하게되면서 그의 시세계는 한단계 변모를 한다. 즉, 고향상실의식을 철저히 겪은 정지용은 마치 더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움추리는 자폐아처럼, 자신의 감정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시킨 것이다. 

 

    <유리창1>은 정지용이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쓴 글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에서는 그 슬픔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자식과의 단절의식, 죽음과 삶의 단절의식이 유리라는 차가운 광물질에 의해 표현되었고, 그 슬픔이 물먹은 별, 보석으로 구체적 사물 속에 숨어있다. 마지막 행에서 그나마 시인의 슬픈 정서가 조금 표출되는 정도이다.

 

  두번째 글 <바다2>는 바다의 모습이 도마뱀떼, 연잎 등의 사물로 표현하여 회화적 심상을 극대화하였다. 거기에 시인의 정서는 보이지 않는다. 굳이 찾고자 한다면 '흰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불고 슬픈 생채기'에서 아주 조금 시인의 정서를 엿볼수 있을 뿐이다.

 

  <정지용시집> 1부에 실려있는 <바다1>, <바다2>, <유리창1>, <유리창2>, <난초>, <해협> 등은 정지용 초기시의 주류를 이루는데, 시인의 정서를 시적 대상과 단절시키고, 시적 대상을 감각적인 언어로 구체적 사물을 통해 묘사함으로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회화적 심상을 자아낸다. 운율 무시, 의식 부재, 감각적 언어, 회화적 이미지 등으로 특징 지어지는 이러한 정지용의 詩作 태도는 지성으로 감정을 절제한다는 영미주지주의 시와 감각적 언어로 회화적 심상을 만들어내는 이미지즘 詩作 태도에 가깝다. 또한 구체적 사물로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그의 시는 사물시라고 할 수있다. 그래서 정지용을 모더니즘 시인이라 일컬으며, 당시 모더니즘 시운동을 주도한 김기림에 의해 대단한 찬사를 얻는다. 그러나 서정시에 있어서 내면의식의 부재는 후에 정지용 시에 있어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이 된다.

 

 

3. 카톨릭 시

 

  정지용이 활동한 시기는 일제 점령하의 암흑시기였다. 그 시기를 살아가는 문인으로서 정지용은 정신적 방황을 카톨릭에 귀의함으로 찾고자 했다. 『정지용시집』 제4부는 그러한 정지용의 신앙과 직접 관련이 있는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얼굴이 바로 푸른 하늘을 우러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위로!

     어느 모양으로 심기어졌더뇨? 이상스런 나의 몸이여!

 

     오오 알맞은 위치! 좋은 위아래!

     아담의 슬픈 유산도 그대로 받았노라.

 

     나의 적은 연륜으로 이스라엘의 이천년을 헤었노라.

     나의 존재는 우주의 한낱 초조한 오점이었도다.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아 입을 잠그듯이

     이제 그리스도의 못 박히신 발의 성혈에 이마를 적시며-

 

     오오! 신약의 태양을 한 아름 안다.

 

                                        - <나무> 전문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안에서 나의 호흡이 절로 달도다.

 

     물과 성신으로 다시 낳은 이후

     나의 날은 날로 새로운 태양이로세!

 

     뭇사람과 소란한 세대에서

     그가 다만 내게 하신 일을 지니리라!

 

     미리 가지지 않았던 세상이어니

     이제 새삼 기다리지 않으련다.

 

     영혼은 불과 사랑으로! 육신은 한낱 괴로움.

     보이는 하늘은 나의 무덤을 덮을 뿐.

 

     그의 옷자락이 나의 오관에 사무치지 않았으나

     그의 그늘로 나의 다른 하늘을 삼으리라.

 

                                       - <다른 하늘> 전문

 

  윗 글 <나무>에서는 시인 자신을 나무에 빗대어 신앙을 노래하였고, <다른 하늘>에서는 어떤 시적 대상을 내세우지 않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노래하였다. 이 글 외에도 <불사조>, <또 하나 다른 태양>,<임종> 등이 그의 대표적 신앙시로 거론되고 있다. 

  정지용은 우리나라에서 카톨릭 시의 처음을 열었다. 그러나 정서를 억제하고 감각적 표현으로 회화적 심상을 추구하는 그의 詩作태도는 종교시와 접목이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종교란 일종의 관념이고, 정지용의 시의 본령은 사물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지용의 종교시는 『카톨릭 청년』誌를 주재한 193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2,3년 만에 더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중단된 것으로 보여진다.

 

 

4. 후기시

 

  정지용의 후기시는 1941년 문장사에서 출판된 시집 『백록담』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정지용시집』의 시편들이 대부분 바다를 소재로 했던것에 반해서, 『백록담』의 시편들은 산을 소재로 한 글들이 대부분이며, 산문시가 주류를 이룬다.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여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메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멧새도 울지 않아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종이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다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

     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내음새를

     줍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란다    차고 올연

     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 <장수산1> 전문

 

 

     1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 키가 점점 소모된다. 한 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 마루

     우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종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처럼 판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맛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처럼 난만하다. 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거기서

     기진했다.

 

     2

       암고란 환약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

 

     3

       백화 옆에서 백화가 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룽이, 도채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 육천 척 위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 소를, 송아지가 어미 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어진다.

 

     6

       첫 새끼를 낳느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읜 송아지는 움매애 움매애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

     어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7

       풍란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아솨아 솔 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신 칡넌출 긔여간 흰 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주친 아롱점말이 피하지

     않는다.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삿갓나물 대풀 석용 별과 같은 방울을 다른 고산식물을 새기며

     취하며 자며 한다. 배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어 산맥 우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소나

     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이겨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긔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 온 실구름 일말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

 

                                                                       - <백록담> 전문

 

 

  <장수산1>은 우선 띄어쓰기가 눈길을 끈다. 서너칸을 건너 띈 띄어쓰기는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마치 하나의 행을 구분한 듯한 효과를 준다. 긴 휴지로 호흡을 조절함으로, 산문시이지만 어느정도의 리듬을 느끼게 한다. 정지용은 생전에 자작시를 즐겨 음송하고, 음송실력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 시를 씀에 있어서도 음송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리 없다. 그래서 그의 여러 시편들은 구두점, 쉼표, 휴지, 그리고 음상 등을 통해서 소극적인 운율이 보인다. 즉, 정지용의 시는 운율을 무시했다고 하기 보다는 운율보다 회화적 심상에 주력했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장수산1>은 시집 『백록담』에 맨처음 수록된 글로, 장수산 깊은 곳에서 고요와 대면하여 자연과 일체가 되고자 하는 고투가 담겨져 있다. 벌목소리는 고요를 강조하기 위해서 가상으로 등장시킨 소리이다. 고요 앞에서 심하게 흔들리는 내면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은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는 열망이며, 조찰히 늙은 수도승의 냄새를 줍고 싶다는 것도 자신도 그러한 수도승과 같이 되고 싶다는 표현일 것이다. 

 

  시집 『백록담』의 표제시 <백록담>은 정지용시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시가 완전히 산문시의 형태를 띄였고, 시적 화자가 한라산에 등반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 등반여정은 단순한 등반이 아니라 정신적 상승의 도정을 의미한다. 시인은 뻐꾹채 꽃 키가 점점 작아지는 것으로 한라산 등반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데, 뻐국채 꽃은 뻐꾸기를 연상케하여 동적인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그 뻐꾹채 꽃이 화문이 되고, 별로 변용되는 과정은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다. 백록담에 이르러 시인은 마소와 어울리고 완전히 자연과 일체가 된다. 카톨릭 신자인 시인이 기도조차 잊을 만큼 자연에 몰입하는데, 이는 동양의 자연주의 사상에 가깝다. 그래서 정지용의 후기시는 동양정신에 경도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사실 정지용은 한시에 상당히 깊은 공부가 있었다고 한다. 한시의 특징에는 자연 지향적인 면 외에도 시인과 대상과의 거리를 상당히 떨어뜨리고 관조하는 입장을 취하는 면이 있다. 이는 정지용시 전반에서 추구하는 감정의 절제와 직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지용의 시는 후기시 뿐만 아니라, 초기시부터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주장이 많은 힘을 얻고 있다.

 

  시집 『백록담』에 실린 <장수산1>, <장수산2>, <인동차>, <비로봉>, <옥류동> 등은 대부분 산을 시적 대상으로 하고 있고, 산문시 내지는 상당히 산문화된 시편으로, 모두 한 폭의 산수화, 한 편의 한시를 연상케 할만큼 자연주의 동양정신에 경도되어 있다. 

 

 

5. 맺음말

 

  정지용 시를 공부하면서, 그의 감각적인 시 언어에 감탄하고 감탄했다. 비록 내면의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시를 언어로서 자각하고, 감각적 언어와 구체적 사물로서 회화적 이미지를 형성해내는 능력은  천재라는 찬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정지용은 <시와 언어>라는 산문에서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다. 시는 언어와 Incarnation적 일치다. 그러므로 시의 정신적 심도는 필연으로 언어의 정령을 잡지 않고서는 표현제작에 오를 수 없다.'라고 서술하고 있고, <시의 威儀>라는 산문에서는 '안으로 熱하고 겉으로 서늘옵기란 일종의 생리를 압복시키는 노릇이기에 심히 어렵다. 그러나 시의 威儀는 겉으로 서늘옵기를 바라서 마지않는다.'고 서술하고 있다. 시어로서의 언어의 자각과 감정의 절제를 뜻하는 이들 문장이 정지용의 시세계의 핵심을 가장 정확히 표현해주는 서술이라고 생각된다. 

 

  정지용의 시는 소재가 거의 바다와 산에 국한되어 있다. 그래서 『정지용시집』을 바다의 시, 『백록담』을 산의 시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는 묘사를 주요 기법으로 하는 그의 詩作방식에서 어쩔수 없이 나타나는 한계라고 볼수 있다. 그의 초기시에서 보여주는 바다는 평면적인 바다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수직적인 바다이다. '해협이 천막처럼 퍼덕이오' <바다1>에서 나오는 이 구절은 바다의 역동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한편, 산은 구도자들이 깃드는 어떤 정신적인 정점일 수 있다. 이러한 바다에서 산으로의 시적 대상의 이동은 정지용의 시세계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연합일이라는 정신적인 궁극에 다달았다는 뜻일 수 있고, 그의 글을 비판적 안목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현실인식이 결여된 그가 자연 속에 숨어버렸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어떤 각도로 정지용의 시를 보는가는 각자의 관점에 따른 것이지만, 정지용의 시가 그 이전의 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시의 세계를 보여줌으로 현대시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지용 시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의 시 속에 숨 쉬고 있는 치열한 작가의식, 끊임없는 시어의 조탁과 형식의 실험정신 앞에 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시를 쓴다고 하는 내 자신의 안일한 자세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해방 후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 납북되어 실종된 비운의 시인 정지용, 만약 그가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시 문학사는 얼마나 더 비옥해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201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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