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걷다 마주치는 보물들
[연재] 나팔꽃 아니에요 메꽃입니다
기자명 최석훈 시민기자
입력 2026.06.13 17:00
수정 2026.06.13 19:38
인천을 걷다 마주치는 보물들 (175)
시조로 함께 보는 우리 메꽃
인천투데이=최석훈 시민기자 | 부평역전 화단 경계에 서 있는 회양목을 부여잡고 제 집인 양 넝쿨진 풀이 나팔 모양 큼직한 분홍 꽃을 피우고 있다.
부평역전 메꽃
이 들꽃은 아메리카에서 온 나팔꽃이 아니라 토박이 메꽃이다. 한낮에도 지지 않는 우리 메꽃의 사연을 시조 다섯 수에 얹어 읽는다.
부평역 한 귀퉁이 분홍 꽃이 하늘하늘
쳐다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팔꽃이라네
그럴 리가 있으리오 지금 해가 중천이오
눈부신 태양에 맞서는 메꽃. 서울 이촌동
이 연분홍 꽃을 지나는 이들은 거의 다 '나팔꽃'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꽃은 메꽃이다. '메'는 본디 제사 때 올리는 밥을 가리키니, 흉년에 밥 대신 캐 먹던 뿌리를 갖고 있어 메꽃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동의보감》(1613)에도 나온다.
나팔꽃은 새벽 열고 한낮에는 입 닫지만
메꽃은 볕이 따가워도 환한 낯 그대로라
이 꽃은 모닝글로리 그 이름이 아니외다
메꽃을 가려내는 가장 손쉬운 단서는 꽃이 피는 시간이다. 나팔꽃은 새벽에 피었다가 반나절도 못 가 꽃잎을 오므린다. 영어 이름이 모닝글로리(morning glory)인 까닭이 바로 아침에만 피어서다.
메꽃은 뙤약볕 아래에서도 태연히 활짝 펴 있다. 그러니 한낮에 나팔 모양 연분홍 꽃을 봤다면 메꽃이라 보아도 좋다. 꽃은 6∼8월에 피며, 덩굴을 뻗어 다른 나무나 풀을 감고 오른다.
하트잎 세 갈래는 바다 건너 온 손이요
길쭉하고 귓불 단 잎 이 땅의 토박이
땅속줄기로 땅 붙들어 봄이면 다시 오네
왼쪽 사진은 미국나팔꽃의 잎. 나팔꽃은 덜 패인다. 인천 부평동. 오른쪽이 메꽃의 잎. 길쭉하고, 잎 아래가 귓불처럼 생겼다. 춘천 서상리.
잎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나팔꽃 잎은 둥근 하트형이거나 세 갈래로 깊이 갈라지지만, 메꽃 잎은 길쭉하며 밑동이 귓불처럼 처졌다.
사는 햇수도 다르다. 나팔꽃은 한해살이고, 메꽃은 여러해살이로 흰 땅속줄기를 사방으로 뻗는다. 열매를 잘 맺지 않아 씨앗 대신 땅속줄기로 번진다. 화려한 나팔꽃은 아메리카에서 관상·약용으로 들여온 외래종이고, 메꽃은 우리나라와 일본·중국에 자생하는 토박이다.
흉년이면 뿌리 캐서 주린 배를 채워주고
말리면 선화(旋花) 되어 약손이 되어 주니
들꽃이 거둔 살림 임금 곳간 못지않아라
메(메꽃의 뿌리, 정확히는 땅속줄기) 사진 출처: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쓰임새도 많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녹말이 든 땅속줄기는 삶거나 쪄서 먹었다. 춘궁기에는 이 뿌리가 곧 식량이었다. 동요 〈햇볕은 쨍쨍〉(최옥란 작사, 홍난파 작곡) 2절에서 "호미 들고 괭이 메고 뻗어가는 메를 캐어 엄마 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이라 노래한 그 '메'가 이 메꽃의 뿌리다.
한방에서는 꽃을 선화(旋花)라 하여 기운을 북돋고, 오줌 못 가리는 데 약으로 썼고, 뿌리는 선복근(旋覆根)이라 하며 금속에 난 상처를 치료하고 정기를 더하는 약으로 썼다.
부평역 지나는 이여 한낮 연분홍 보시거든
나팔꽃 아니랍니다 가만히 불러 주오
이 꽃은 메꽃이라오 그 이름 메꽃이라오
부평역전 메꽃
누가 잡초라고 뽑지만 않는다면, 이 분홍 꽃은 여름내 부평역전에서 연분홍 나팔을 불며 하늘거릴 것이다. 제 이름을 잘못 부르는 사람들에 아랑곳없이. 그래도 한낮에 핀 분홍 꽃 앞에서 한 번 멈춰 그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시오. 나팔꽃 아니오, 메꽃이라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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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루미 530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7 https://m.cafe.daum.net/moosimjae/4cPJ/19144?svc=cafe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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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벗~ 작성시간 26.06.18 소박하고 여린꽃 애기메꽃이 수줍게 피였네요
분홍나팔꽃 같아요.
메꽃을 보면 메싻을 캐서 쪄먹었던 어릴때 생각이 납니다
간식이 귀하던 시절이라 싱아, 까마중, 목화송이까지 마구 먹었었네요
저도 지난 송지호해변에서 갯메꽃을
보았지요
마음같아선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는데 갈길이 바빴어요~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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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루미 530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9 아주 오래전에
박완서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었는데,
서울이 고향이라
'싱아'가 무엇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어요.
산벗님처럼 어린 시절,
이런 추억이 있으신 분들이 저로서는
참 부럽습니다.
덕분에
메싹, 까마중도 몰라서 찾아보았어요.
송지호해변의 연분홍 갯메꽃도
참으로 곱고 예쁘네요.이미지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