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꽃이 필 때
이형권
보랏빛은 슬픈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꽃밭에 가면 마음이 들뜨기 마련이지만
보랏빛 라벤더밭에 가면
발길이 멈춰지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아련한 기억 속의 바람 한 줄기가 살아나
가슴 한 곳을 스치고 간다
나의 생은 어느 길목을 지나가는 것일까
아침에 또 한 사람의 부고가 날아왔다
그의 향기는 라벤더꽃처럼 깊고 슬펐지만
소멸은 무정하고 냉정한 법
잠시 피었다 지는 꽃처럼 잊힐 것이다
2천 미터의 고봉이 펼쳐지는 설산에 가면
한 철을 짧게 살다 가는 꽃들의 나라가 있다
시린 눈송이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홍적기의 밤처럼 무거운 침묵이 흐를 때
그 시간의 파문을 견디며 살아난 꽃들이
축일을 열고 어여쁜 노래를 부른다
생은 눈부시게 피었다가 소멸하는 꽃들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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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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