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 위치, 자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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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중앙 아시아 고원지대 북부
 면적 : 156만 4160㎢
 인구 : 245만 7000명(2002)
 인구밀도 : 1.6명/㎢(2002)
 수도 : 울란바토르(Ulanbaator)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몽골어
 통화 : 투그릭(Tugrik)
 환율 : 1,116Tugrik = 1달러(2002.9)
 1인당 국민총생산 : 390달러(2000) 면적은 156만 4160㎢, 인구는 245만 7000명(2002)이다. 인구밀도는 1.6명/㎢(2002)이다. 정식명칭은 몽골인민공화국(Mongolian People's Republic)이다. 수도는 울란바토르이여, 몽골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국경은 북서쪽으로 러시아 연방과 접하고, 남동쪽으로는 중국과 경계를 이루며 이전부터 '외몽골'이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몽골은 국토 전체가 아주 높은 지대로, 해발고도 약 1,600m의 고원국가이다. 지형은 대체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1967년의 통계에 따르면 최고점은 서부 알타이산맥 중의 묀흐하이르한산(4,366m)이며, 최저점은 동부 도르노드 지구의 552m이다. 국토 중앙부에서 동부에 걸쳐 목축에 알맞은 대초원이 전개되고, 서쪽으로 갈수록 높고 험준하지만 이 지역도 천혜(天惠)의 고원성 초원지대를 이루어 목축이 가능하다.
북서에서 남동부에 걸쳐 몽골알타이, 고비알타이의 두 산맥이 이어지고, 중앙부에 한가이·헨티이산맥이 완만한 높이로 이루어지며, 북부에는 탄울 및 사얀산맥이 형성되어 있다. 수계(水系)는 북부지역을 관류하는 셀렝가강(江), 동부지역을 흐르는 오논강, 수도 울란바토르 주변을 흐르는 툴강, 중앙지대를 북류하는 오르혼강, 서부지역의 자브한강·테스강·호브드강·이데르강 등이 주요 하천이다.
하천의 유속(流速)은 비교적 빠르고 물은 맑고 차다. 기후는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여름은 덥고 겨울은 혹한이 계속되는데, 여름의 더위는 내륙이기 때문에 습기가 없어 한국과 같은 무더위에 비해서 견딜 만하고, 겨울의 추위는 수도 울란바토르 등지에서도 -40℃로 내려가는 일이 많다. 봄은 5·6월의 2개월로, 이즈음 몽골 초원의 아름다움은 여행자를 즐겁게 하지만 기압의 변화가 심하고 때때로 돌풍이 일어 추위가 심하다. 9·10월은 몽골에서 가장 기후가 안정된 시기이다. 강수량은 적은 편으로 연간 350mm를 나타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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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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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인 울란바타르(Ulaanbaatar "붉은영웅")는 몽골의 중앙에 위치하고 동서로 크고 넓은 골짜기가 펼쳐져 있다. 이 골짜기를 통하는 주 도로를 Enkh Taivny Orgon Choloo 이나 영어로 Peace Avenue 라고 부른다.
도시는 9개의 구역으로 나우어져 있다. 울란바타르는 1639년에 세워졌으나 옛 몽골 제국이 수도를 여러 번 이동한 끝에 1778년 이곳에 정착을 하였다. 도시의 이름도 몇 번 바뀌었는데 1639년부터 1706년까지 우르지(현재 울란바타르시보다 420km 떨어진 곳에서 위치했었다.) 그리고 이흐 후레, 1911년부터 1923년까지 니스렐 후레, 마지막으로 1923년부터 울란바타르가 되어 정치, 경제, 문화와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았다.
수도의 인구는 2000년 현재 70만이며 인구의 68%가 30살미만의 젊은이들이다. 즉, 전체국민의 1/4이 수도에 살고 있으며, 그들 중 대략 70%가 아파트에, 나머지는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에 살고 있다.
울란바타르는 국가 산업생산의 42%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기공업, 경공업과 식품 생산 분야에 집중되어있다. 산업과 주거공간, 문화 시살들이 이 도시에 인구를 집중시켰으며 마침내 70만이 넘는 인구의 대도시로 되어다. 1990년, 사회주의가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와 다당제가 도입되어 세계의 자유 시장으로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외국의 앞선 현대 문화와 기술, 시스템들의 유입과 함께 커다란 변화가 울란바트르에 있게 되었습니다.
울란바타르의 명소는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싸이산 톨고이, 희귀한 소장품과 거대한 공룡 화석을 소장하고 있는 자연사 박물과, 몽골의 문화와 역사를 볼 수 있는 역사 박물관 등의 여러 박물관의 미술관,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상을 소장하고 있는 간단 사원과 몽골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초이진라믄 솜" 사원, 마지막 왕이었떤 복드간의 겨울궁 들이 있다. 또한 오페라, 발레, 연극, 서커스 극장에서 세계 클래식 예술작품과 몽고의 전통 춤을 감상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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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언어, 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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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 몽골에 거주하는 민족은 크게 할카 몽골, 카자흐, 부리야트 등 10여가지 소수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할카 몽골은 전 인구의 79&를 차지하고 있으며 바양얼기를 제외한 22개 아이막에 거주하고 있다. 부리야트계는 몽골 중세 때 부각된 부족으로 바이칼 호수 부근에 거주하며 이들은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에 의해 러시아로 편입 <브리야트 공화국>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편입에 반대한 일부 사람들은 몽골의 북부지대로 이주하여 현재 몽골의 동북부 지대인 셀렝게, 힌티, 도르노드 등의 아이막에 거주하고 있다.
몽골에 거주하고 있는 카자흐족은 소수 민족으로서는 가장 많으며 전 인구의 6%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몽골의 서부 지대인 바양얼기 아이막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언어나 종교, 풍속이 할카 몽골족과는 상이한 회교로 볼 수 있다. 바양얼기 아이막은 몽골에서 유일하게 카자흐어와 몽골어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몽골 전역에 거주하고 있는 카자흐 민족을 제외하고는 부족들 간에 언어나 문화면에서 서로 구별이 없으며 단지 사투리로 그 지역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몽골은 다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로는 이례적으로 민족간의 구별이나 갈등이 없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우선 몽골 영토가 넓고 각 종족간의 인구수가 적어 주업인 유목을 하는데 큰 갈등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종교적, 정치적인 면에서도 큰 갈등이 없는 편이다. 따라서 몽골 국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부족간의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거의 부족 간의 구분이 없는 다민족국가라고 볼 수 있다.
언어 : 몽골어는 우랄알타이어족(핀어, 터키어, 카자흐, 우즈벡과 한국어가 포함됨)에 속한다. 세계에서 몽골인들, 내몽골인들, 부랴트, 칼므크와 투바인들을 포함해서 7백만 명이 몽골어를 쓴다.
몽골말은 코나 후두보다 혀, 이, 입천장 및 입술을 많이 사용하여 소리를 낸다. 몽골말에는 어휘수가 많아, 외국어를 다양한 표현과 용어로 번역할 수 있으나 반대로 몽골의 독특한 생활, 풍습과 환경 때문에 몽골 말을 다른 말로 번역하기는 힘들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생활양식과 관계되는 많은 속담들이 있다.(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인간관계 폭을 넓히고, 말이 있을 때 먼 곳으로 가서 구경하라)
인구의 90% 이상이 몽골어(할하 몽골)를 사용하고 있으며 바양울기 등 카자흐족이 살고 있는 일부지역에서는 카자흐어와 몽골어가 혼용되고 있다. 제2외국어는 70여 년 동안 러시아어였으나, 요즘은 서구 자본주의의 유입과 더불어 영어, 독일어, 불어, 한국어, 일어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문자 : 몽골 고유 활자는 5개의 주요 모음과 22개의 자음을 이루어 져 있으며 수직으로 쓴다. 빠르게 흘려 쓸 수 있어 속기와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문자와 발음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영어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복잡성 때문에 몽골인들은 1269년에 Square(Pags-pa)문자를, 1648년에 Soyombo문자를, 그리고 1941년도 이후에는 키릴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키릴 문자를 사용한 이후 국민들의 문맹률을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몽골 키릴 문자는 모두 35개의 글자로 되어 있다. 1990년도 초반에 몽골 고유 문자를 소생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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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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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Mongol)이란 본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였으나, 징기스칸에 의해 통솔된 몽골부(部) 발전에 따라 민족의 이름 "Mongol" 및 지역의 이름 "Mongolia" 로 변화되었다. 몽고(蒙古)라는 이름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북방 민족으로부터 전쟁에 시달려 온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비하(卑下)하기 위해 '우매할 몽(蒙)' 과 '옛 고(古)'를 사용한데서 비롯되었다. 본래 1924년 11월 26일 사회주의 혁명으로 수립된 정부는 국호를 "몽골 인민공화국(Mongolian People's Republic)"으로 정하였으나 1992년 1월 개방 정책의 상징으로 국호를 몽골 공화국으로 고쳤다. 보통 우리가 "몽골" 하면 대개 외몽골(外蒙古, 몽골 공화국)을 말하는 것이며, 내몽골(內蒙古)이라고 부르는 내몽고 자치주(自治州)는 중국 국경 안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분단 국가다. 그러나 분단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민족적 친근감이나 통일에의 의지는 거의 없는 편이어서 한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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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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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의 명소는 울란바타르 시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짜이산 톨고이, 희귀한 소장품과 거대한 공룡 화석을 소재하고 있는 자연사 박문관, 몽골의 문화와 역사를 볼 수 있는 역사 박문관 등의 여러 박문관과 미술관, 중아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상을 소재하고 있는 간단 사원과 몽골의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초이진라믄 사원, 마지막 왕이었던 복드칸의 겨울궁등이 있습니다. 또한 몽골의 전통 노래와 춤을 감상할 수 있는 전통 공연과 오페라, 발레, 연근, 서커스 등을 관람하실 수 있다.
하라호린 (Kharakhorum)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하라호린은 1220년에 건설돼, 북방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우랑시아아 각지에서 사절, 전도사, 상인이 모여 번성하였다. 불교의 백팔버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흰기둥에 둘러싸아니 외벽이 정방형을 이루며 각면에서 4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몽골의 첫 사원인 엘데쭈 사원을 둘러싸 있다.
고비사막 고비 사막은 거대한 사막 지대이며 몽골 국토의 30%를 커버한다. 이 지역은 지구의 다른 사막들처럼 생물이 살지 않는 곳이라 생각하지만 사막의 대부분은 초원이며 야생 생물과 식물이 부유한 낙타 방목자들의 고향이다. 몽골인들은 33 개의 다른 고비가 있다고 생각하며 모래사막은 전체 지역의 3%밖에 안된다.
허브스건 호스(Lake Lhovsgol) 흑진주라고 알려진 몽고의 가장 크고 깊은 호수인 허브스걸은 북쪽 지방에 자리잡고 있다. 허브스걸 호수는 바이칼 호수의 가장 큰 지류이다. 허브스걸 호수는 해발 1645m에 있으며 겨울에 1월부터 4월까지 언다.
야마르바야스까란트 사원 (Amarbaysgalant Monastery) 야마르바야스가란트 사원은 울란바타르에서 36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1727~1736년 사이에 지어진 이 불 교 사원은 하라호린의 에르덴쭈 사원 뒤에 두번째로 중요한 사원이다.
데렐지 휴양지 (Terelj Resort) 울란바타르에서 동남쪽 84km 떨어진 데렐지는 주위의 흐드러지게 피어난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게 된다. 초원과 산, 강과 바위를 지나면 여기저기에 공룡 모형을 배치하여 공원을 조성하였고 고개를 넘어가면 몽골 현지 주민이 사용하는 거르 스타일의 휴양지가 기다리고 있다.
칸 헨티(Khan Khentii) 칭기스칸의 태어난 이 곳은 숲, 수림 지대 및 산으로 유명하다. 이 곳은 문학의 유물인 "Secret History Of Mongols"책에 나와 있다. 보호구역이며 수도의 동북쪽에 있다.
허러그 화산 (Khorgo Volcano) 아르한가이 지방에 있는 허러그 화산은 휴화산이며 현무암으로 덮여 있다. 이는 국립공원인 테리힌 차간 호수 동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몽골과 티벳에서만 볼 수 있는 야크 방목하는 사람들을 이 곳에서 만날수 있다.
만치르 사원 (Manzshir Monastery) 만치르 사원은 터브 아이막에 (중앙도)있는 보그드산의 골짜기에 위치한다. 이것은 1733년에 20사원과 300명의 스님으로 설립됐다. 만치르 사원은 1932년에 파괴됐고, 남은 유일한 사원은 복구되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사원의 역사를 보여준다.
바양 올기 (Bayan Ulgii) 지구의 지붕이라고 알려진 높은 산과 (몽골 아리타인 산맥의 타완 보그드 봉우리 4,373m높이 ) 급류, 빙하의 지역이다. 이곳에는 몽골의 소수민족인 카자흐족이 살며 야크와 염소를 기르며 훈련시킨 독수리를 가지고 사냥한다.
| 자료 : 한몽우호협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