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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답사자료

몽골인의 의상과 모자

작성자무심재|작성시간10.07.14|조회수4,422 목록 댓글 0

이안나 교수의 몽골인의 생활과 풍속 26
전통 의상 델
 
 

몽골의 전통 의상은 몽골의 변화가 심한 기후 조건, 종사하는 일, 관습화된 전통 뿐 아니라 역사적 시기의 특수성과 사회 상황을 반영하면서 변천해 왔다.

사람들이 사냥을 하며 살 때는 짧은 델을 입고 가벼운 고탈(구두)을 신었다면, 목축에 종사하면서 초원에서 덮개로도 사용할 수 있는 긴 델과 원추형의 모자, 코가 있는 구두를 착용하게 되었다.

몽골의 의상은 기후조건에 의해 많은 것이 조건화되었다. 몽골은 겨울이 매우 춥고 길기 때문에 특별히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의 형태가 발달했다.

몽골의 델의 소매가 매우 긴 것도 이러한 추위를 막기 위한 한 방편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옷의 재료도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것을 선호했다. 목자들은 겨울에 털 있는 염소가죽이나 어린 양가죽으로 만든 옷이 따뜻하다고 하여, 이러한 가축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었다. 아주 가난하지 않으면 대개 어린 양가죽의 델을 입었다고 한다. 몽골 민족의 의상의 특징 중 하나는 옷의 길이를 길게 하여 추운 날씨를 견디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굽은 다리나 상처 등의 신체적 결점을 감추어 주는 점이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고대 몽골 의상은 흉노족의 의상과 같다고 본다. 흉노족(기원전 3세기-기원후 1세기)들은 오른쪽, 왼쪽을 여미는 깃이 있는 옷을 입었으며, 코가 있는 가죽신을 신었고, 허리띠를 맸다. 또 그 후 흉노를 계승한 선비족과 유연의 옷도 흉노족의 그것과 유사했다고 본다. 6-10세기까지 몽골 땅에 살았던 투르크족들의 의상은 몽골 의상을 여러 면에서 변화시켰다.

거란족은 제의를 드릴 때 의상 및 국가, 공적 의례, 사냥, 장례 복장 등을 각각 달리 사용했다. 그들의 의상을 그림에서 보면, 앞섶을 여미는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며 코가 있는 구두, 머리에는 수건을 둘렀고 비나 바람을 막아주는 모자를 쓰고 있다. 13-14세기 평민들의 의상은 앞섶을 여미는 형태였으며 예전에는 가축의 털이나 가죽을 주로 사용했다면,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비단이나 공단류의 피륙으로 된 옷을 입게 되었다. 이때 복장에 대한 규례가 국가적으로 정해졌는데, 1252년 멍흐칸과 1275년 쿠빌라이칸 시대에 귀족, 병사, 평민의 의상 규례가 있었다.

17세기에는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만주족의 의상이 몽골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계급에 따라 다른 의상을 입었으며 황제는 4-5개의 발톱이 있는 용 문양의 황금색 옷을 입었고, 귀족들은 노란색 짧은 겉옷을 입었다. 그 다음 계급은 붉은색 겉옷, 그밖에 신하들은 검은 겉옷을 주로 입었다.

몽골 옷에는 색깔과 상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대로부터 붉은색 델을 많이 입었다. 고대 몽골 부족 사람들은 붉은색을 삶의 기쁨을 상징화한 태양과 불의 색이라고 보아 붉은색으로 장식을 하거나 붉은색 계통의 옷을 즐겨 입었다. 또 흰색의 가죽옷에 검은 색 테를 덧대는 형태의 대조적인 색채를 사용한 옷을 입었다. 일반적으로 고대에는 검은색으로 델을 만드는 것을 금기시했으나, 나중에는 검은색을 사용하여 옷의 장식을 넣는 방법이 생겨났다. 봉건주의 시대에는 의상의 색상에 따라 계급의 정도를 알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 푸른색의 옷을 주로 입었다면 스님들은 노란색 계통의 옷을 입었다. 국가 예복은 붉은색, 관리는 갈색, 왕은 붉은색 계통이나 녹색을 주로 사용했다.

나이에 따라서도 옷의 색깔을 달리 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수수하고 화려하지 않은 색의 옷을 입는 반면 젊은 사람들은 색깔 있는 옷을 입는다. 부족에 따라서도 주로 입는 옷의 색깔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할하 사람들은 푸른색과 갈색을, 부랴트 사람들은 푸른색과 약간 어두운 색상의 옷을 좋아한다.

여자는 결혼을 하면 소매가 없고 앞섶이 벌어진 긴 오오쯔라는 겉옷을 입었고, 상류층 여인들은 벅특이라는 높은 원추형의 모자를 썼다. 그밖에 남녀 모두 기본적인 델 의상 외에 조끼나 후름이라는 겉옷을 입기도 한다.

옷을 입는 태도에는 여러 가지 예법이 있다. 몽골 사람들은 모자와 델의 깃을 매우 중요시 하는데 델의 깃을 아래쪽을 향하게 두지 않으며, 그 위로 지나가는 것을 금한다. 낡은 옷의 깃은 그대로 버리지 않고 반드시 불에 태운다. 그리고 깃을 안쪽으로 꺾어두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과 싸우거나 말다툼을 할 징조라고 본다. 옷을 둘 때는 깃을 문 쪽으로 향해 두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그 옷의 주인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 델의 옷자락을 걷어 올리지 않으며, 앞섶을 아래로 접어놓지 않는다. 깃이나 앞섶을 접어놓으면 “누구와 싸울 거냐?”고 묻는다. 또 집안에 사람이 죽으면 일정 기간 동안 앞섶을 여미지 않고 제켜 놓고 지내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은 델의 허리 부분에 부스(허리띠)를 둘러매는데, 부스는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고리라고 생각하여 매우 중시하며, 정성들여 간수한다. 부스는 기마 생활 습속과 불가분의 연관을 갖는다. 흔들리는 말을 타고 먼 거리를 달릴 때 폭이 넓은 부스로 배 부분을 감싸듯이 매면 내장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부스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으나, 넓은 것은 1m가 넘는 것도 있다. 

이전에는 결혼한 여인들은 허리띠를 매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를 부스귀(‘부스를 매지 않다’라는 뜻)라고 했다. 성별과 나이에 따라 사용하는 부스의 길이와 굵기, 색에 차이가 있다. 부스를 매듭지어 묶지 않으며, 바른쪽으로 돌려 둘러져 있는 곳에 마지막 부분을 끼워 넣는다. 부스는 모든 벌어진 것을 단단히 조이고, 분리되고 흩어져 있는 것을 정리해 주는 완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우 존귀하게 여긴다. 부스는 자신의 생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부스를 바꾸어 매지 않는다. 그러나 의형제를 맺는 의식을 행할 때 서로의 부스를 교환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 일반 사람들에게 부스를 선물하지 않으며, 가장 친한 친구에게 선물을 한다. 예전에는 장인이 사위에게 부스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몽골의 의상은 부족마다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유사하다. 우선 델의 것은 끝이 둥글게 돌려 모양을 내었으며, 앞가슴의 섶을 오른쪽으로 낸다. 여기에 여러 가지 장식을 하고 무늬를 넣어 옷의 아름다움을 살린다. 때로 아이들의 옷의 섶을 왼쪽으로 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아이가 자주 유산되는 집에서 악귀의 해를 막기 위해 옷의 섶을 비일상적인 방향인 왼쪽으로 냄으로써 다시 생길지도 모를 재앙을 피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섶의 방향뿐 아니라 옷을 완전히 거꾸로 입히기도 한다.

옷을 간수할 때는 단추를 잠그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옷을 함부로 입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입을 옷의 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어떤 사람을 위해 만들어 놓은 옷을 다른 사람에게 입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옷 주인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본다.

델은 부족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고, 시대적 환경에 따라 변화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혁명 이후는 소맷귀가 없는 델을 입게 되었으며, 모자나 신발의 형태도 변화되었다. 현재 몽골 델의 종류는 야 400가지 정도기 되며, 부스(허리띠)는 약 10가지 정도가 있다.

남자들의 델의 형태는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여성들의 옷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몽골의 델 가운데 어깨에 봉을 넣어 높게 하고, 결혼한 여인의 머리를 과대하게 장식하게 된 전설이 있다. 몽골 사람들이 세 개의 돌을 괴어 화덕을 삼던 때에서 쇠로 된 화로(톨륵)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 만주는 이를 이용해 몽골을 노예화하고 가정의 온상을 없애기 위해 만주(청나라)에서 네 마리 까마귀를 보냈다고 한다. (이것은 실제로 톨륵의 네 받침의 위쪽 끝부분을 까마귀 부리 모양으로 고안해 만든 것을 의미한다.)

한 현자가 이를 막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즉, “불 옆에 있는 사람은 여인이니, 여인의 머리를 새의 왕 항가리드의 날개처럼 만들어 불 옆에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까마귀는 항가리드가 무서워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까마귀는 만주의 토템이었으며, 이러한 자신의 토템 새로 몽골의 가계(家系)를 장악하려 했던 역사*심리적인 사건이었다. 몽골 민족이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가정의 불을 지키지 못한다면, 나라의 불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결국 나라는 망한다는 생각에서 몽골의 한 현자는 이와 같이 여성의 머리 모양과 옷의 어깨를 높이는 방법을 고안하여, 민족 존립의 상징인 불을 지키게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옷과 장식은 시대적,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변수가 있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델의 단을 검은색으로 한 것은 만주로부터 독립을 잃은 것을 슬퍼하는 민중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몽골교민신문 이안나(울란바타르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장) 2008.9.13

이안나 교수의 몽골인의 생활과 풍속 27
모자 및 구두

모자는 의복과 함께 추위를 막고 아름다운 장식적 효과를 위해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몽골에서는 모자를 매우 중시하며, 비싼 모자라도 돈을 아끼지 않고 사는 경향이 있다.

지리적인 영향으로 매우 추운 기간이 오래 되기 때문에 모자는 추위를 막아줄 뿐 아니라, 머리라는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그 상징적 의미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머리가 있으면 모자가 있다.”고 하여 몽골인들은 모자를 머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본다.

모자를 잃으면 불행을 당하든가 생명에 위험이 닥친다는 속신이 있고, 실제로 그러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적지 않게 듣게 된다. 또 모자에 대한 금기도 많은 편이다. 모자를 밟거나 모자 위로 지나가는 것은 주인을 멸시하는 일이라고 보아 이런 행동을 금했다. 모자를 일단 잃어버렸으면 그것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고, 액땜했다고 생각한다. 또 모자를 줍는 것을 금한다. 모자를 다른 사람과 바꾸어 쓰지 않으며 주인의 허락 없이 사람의 모자를 쓰지 않는다. 낡은 모자는 그대로 버리지 않고 태운다. 모자를 거꾸로 뒤집혀 떨어지면 운이 좋지 않게 진행될 징조로 여긴다.

생활의 예절 가운데 모자의 비중은 가볍지 않다. 예를 들면 어떤 경우에도 하득을 잡고 가축의 젖을 드릴 때, 주인으로서 고기를 자를 때, 잔치용 술을 준비할 때, 축사나 축하인사를 할 때, 차강사르 때에 인사를 할 때 등 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모자를 쓰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의 예를 표시한다.

모자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귀가리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측한다. 귀가리개는 추위로부터 귀를 보호하기 위해 주로 안쪽은 다람쥐 털을 이용하고, 바깥쪽에는 여러 가지 문양을 넣어 만든다. 몽골 모자의 특징은 기후 조건과 종사하는 일에 적합하게 실용적으로 만들어진 것과 장식을 위한 것이 있다.

모자는 몽골 민족의 물질 문화적 특징을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 준다. 몽골 사람들의 모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각각의 부족 사이, 계급이나 재산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형태는 유사하다. 몽골은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며 사냥을 하며 살았던 민족이니만큼 가축의 털과 가죽은 좋은 모자의 재료가 된다. 겨울 모자는 고대로부터 양가죽, 양과 새끼 염소의 가죽, 털이 많은 담비, 늑대, 야생 고양이, 타르바간 등의 가죽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최근 100년 동안에는 모자의 끝이 원추형으로 되는 경향이 있어 왔다. 델과 마찬가지로 모자도 민중의 풍속을 반영하는데, 몽골 사람들은 자신들을 태양과 달의 민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자에도 이러한 상징성이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힐렝 모자 끝에 있는 삼핑이라는 둥근 매듭은 태양과 견고함의 상징으로 보았다. 또 모자 끝에서 아래로 32개의 봉재선으로 모양을 만드는데, 이것은 태양 빛을 상징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모자로는 러어워즈가 있다. 이 모자는 주로 겨울에 쓰며, 특징은 만들기가 쉽고 편하기 때문에 몽골 사람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모자이다.

모자 안쪽에는 여우나 새끼양털을 붙여주고 밖은 여러 가지 문양으로 장식한다. 터어르척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이며, 겨울이나 여름에 실용적인 목적 이외에 장식으로도 쓴다.

이 모자는 고대로부터 오늘까지 사용되는 모자의 하나이다. 이 모자는 여자나 남자 모두 쓸 수 있으나 여자 모자의 경우 뒤쪽 끝에 술을 늘어뜨려 장식한다.

장군 모자는 나담 때에 씨름 선수들이 쓰는 모자로 예전에는 토일치(서사시를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사람)나 유러치(각종 행사에 측시를 부르는 사람) 등이 썼다.

후레 모자는 주로 부인들이 쓰며, 장식을 넣어 정교하게 만든다. 주로 도시(후레)의 우아한 부인들이 썼기 때문에 후레 모자라 불렀다. 이 모자도 힐렝 모자처럼 모자 끝에 삼핑을 붙이고 32개의 봉재선으로 장식을 하는데, 이것 역시 태양과 빛의 상징성을 지닌다.

모자의 이름은 주로 만드는 재료에 준해 붙이는데, 호르강 모자(새끼 양의 털로 만든 모자), 보륵강(담비털로 만든 모자), 우누긍(여우털로 만든 모자) 등을 모자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몽골의 구두는 매우 독특한 모양과 문양을 가지고 있어 장식적인 효과뿐 아니라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신발의 고대 형태는 짐승의 네 다리의 정강이 가죽인 ‘고드’로 만든 조야한 상태의 발싸개였던 것이, 생활환경에 맞게 점차 발전되었을 것으로 본다. 학자들은 구두를 뜻하는 단어 ‘고탈’의 어원은 ‘고드’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몽골 사람들은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여 살아 왔기 때문에 풍부한 가축의 가죽을 이용하여 다양한 수공예품을 만들었으며, 발의 보호와 일의 능률을 위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신발을 가죽 재료로 하여 튼튼하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몽골의 겨울에 방한용 신발로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뿐 아니라 펠트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19-20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할하 지역에 널리 퍼진 신발은 <몽골>로 이름난 구두이다. 부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몽골의 구두는 굽이 없고, 앞발에 코를 높이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것은 말을 탈 때 발걸이에 코를 걸어 안전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며, 씨름을 할 때도 발을 땅에 거는 데 이용한 형태이다.

한국의 일부 언어학자들은 한국의 ‘구두’라는 단어가 몽골의 구두를 뜻하는 ‘고탈’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우리나라 예전의 신발이나 현재에도 신는 고무신의 코를 보면 실증적으로도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구두 안에 신는 목이 긴 양말을 보면 우리나라의 버선과 거의 유사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몽골 신발의 형태는 길고 짧은 것, 발바닥이 얇고 두꺼운 것, 신발의 코가 날카롭게 올라간 것, 약간 밋밋한 것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신발을 신는 방법으로는 양말을 신거나 천 등으로 발을 감고 신는 방법이 있다. 몽골교민신문 이안나(울란바타르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장) 2008.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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