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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자료

고향

작성자무심재|작성시간09.01.14|조회수1,987 목록 댓글 0

백석(고향) /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ㄹ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삼천리 문학} 2호, 1938.4)

- 북관 : 함경남도

- 관공 :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



■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작품의 화자는 고향이라는 공동체의 품 속에 깊이 침잠해 있다. 이러한 고향이라는 현실적 세계와 대립(공동체의 세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현실)됨으로써 삶의 풍요로움을 더해 주는 세계로 형상화된다. 따라서, 이 시가 환기시키는 정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 고향이 불러 일으키는 따스한 정이다 

 ․ 성격 : 서정적, 서사적, 회고적

 ․ 심상 : 감각(시각, 촉각)적 심상

 ․ 어조 : 친근하고 다정다감한 어조

 ․ 구성

      제1연 : 의원을 만나봄

      제2연 : 의원이 고향을 물어봄

      제3연 : 아무개 씨와 막역지간이라는 의원

      제4연 : 아버지의 친구인 의원

      제5연 : 의원의 손길에서 느끼는 육친과 고향에의 그리움

 ․ 주제 : 육친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鄕愁)

 ․ 출전-<사슴>(1936)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여우난 곬족>의 연장선에 선 작품으로 백석 특유의 고향 정서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백석의 시는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원초적인 고향 개념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의 시가 보여 주는 토속적 사투리와 현대적 가족 제도, 풍물의 세계는 단순한 풍물이 아니라 반드시 인간이 개입된 풍물로, 그는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을 감동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는 민족 정서가 점차 상실되어 가는 일제 치하에서 더욱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백석의 시 세계의 주인공은 항상 공동체의 품속에 깊이 침잠해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공동체적 세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시인의 현실적 세계와 대립됨으로써 고향이라는 공동체는 삶의 풍요로움을 더해 주는 세계로 형상화된다.

이 시가 환기시키는 정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 고향이 불러일으키는 따스한 정이다. <여우난 곬족>에서는 고향을 무대로 그 곳에서 벌어지는 토속적이고 원형적인 삶의 모습을 서사적 구조를 통해 고향 정서를 보여 준 데 반해, 이 시는 인물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와 시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서술하는 기법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연 구분이 없는 전 17행의 단연시 구조의 이 시는 내용상 4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이 시는 시적 화자가 타향인 '북관'에서 병을 앓아 '의원'을 찾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첫째 단락인 1·2행은 바로 그러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부분으로,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는 화자가 병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각별해진 향수를 느끼게 해 준다. 둘째 단락은 3·4행으로 화자가 의원을 찾아가 첫 대면한 '의원'의 풍모와 인상을 시각적 묘사로 표출하고 있다. 5행부터 15행까지의 셋째 단락은 '의원'이 화자인 '나'를 진맥하는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그 서술은 화자의 주관적 감정을 최대한 억제한 채, 진맥하는 '의원'의 행위와 표정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의원'과의 극적이고 생생한 대화를 통해 전개시키고 있다. 넷째 단락은 16·17행으로 화자의 내면 세계를 보여 주는 독백 부분이다. '의원'에게서 부드럽고 따스한 정을 느끼게 된 화자가 마침내 그에게서 고향과 아버지를 느끼게 되었다는 감정의 토로는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는 평범한 서술로 나타나 있다. 화자의 이 같은 직접적인 감정 토로는 특별한 시적 수사 없이도 절실한 감동의 울림을 주고 있다. 그것은 셋째 단락에서 화자를 진맥하는 의원의 행위와 그와 함께 나눈 대화를 통해 그러한 정서가 충분히 환기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백승호


■ 연구문제

1. 이 시가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 고향이 불러일으키는 따스한 정


2. 화자의 내면 정서가 독백으로 나타난 부분은?

⇒  16행과 17행에서 직적 서술을 볼 수 있다. 앞부분에서 충분히 표현했기에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3. 백석의 시 <고향>의 이미지와 정지용의 <고향>의 이미지를 비교해 보자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백석의 시 '고향'에서, 시적 자아는 낯선 타향에서의 힘든 삶에서 병을 얻어 의원을 찾는다. 우연히 의원으로부터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을 받고 , 시적 자아는 자신의 부친과 의원의 부친이 막역한 친구임을 확인한다. 낯선 타향에서 외로운 신세에 놓여 있던 시적 자아는 그 순간 잊고 있던 고향을 떠올린다. 순간 고향은 자신의 출생지이며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유대로 묶인 상징적인 공간으로 확대된다.

 한편 정지용의 시 '고향'에서, 고향은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관념적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곳은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고향과 대비되면서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서 상실되기에 이른다. 이 순간 현실 속의 힘든 삶을 극복하는 계기로서 시적 자아의 현재와 과거를 이어 주던 관념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은, 현실과의 단절을 겪고 기억 속의 공간으로 후퇴한다.



백석과 이용악 시에 나타난 고향 의식 고찰


Ⅰ. 序論

 1930년대는 일제 식민 통치와 더불어 가혹한 수탈로 인해 우리 민족들은 궁핍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고 토지와 삶의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조차도 버리고 타향으로, 이국 땅으로 유랑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삶으로부터 고향 의식은 저절로 문학 속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고 이 시기에 형성된 시들은 대부분 주권을 잃은 민족의 설움과 고향 상실의 슬픔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시인들은 사상과 검열의 강화로 점차 외적인 현실보다는 내면의 세계를 그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문학과 현실이 분리되고 그것은 순수성의 회복이나 내면 의식의 표출로 나타났고, 주제에 있어서는 상실감이나 유랑 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고향을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으로 노래하고, 그러한 시골을 배경으로 잊혀져 가는 전래 풍습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식민지 시대, 특히 1930년대 이후의 시인들에게 있어서‘고향’은 보편적인 이미지였다. 그것은 마치 낭만주의 문학에서의‘자연’의 개념처럼 시대의 정신적, 감정적 경향과 맥박의 전체를 집약하는 중심적인 문화적 개념이었다. 그것은 강한 정서적 울림을 가진 말이었다. 대부분의 시인들에게 고향은 그들 자신의 뿌리뽑혀진, 망가뜨려진 삶에 대한 위안으로서 또는 삶의 훼손을 측정하는 잣대로서, 기억을 통하여 환기되는, 지금은 상실되어버린 원초적인 통합의 경험이었다.1) 따라서 국토를 잃은 설움을 고향 상실감으로 나타내며, 식민지 현실에서의 상실의 아픔을 주된 시적 정서로 삼게 되었다. 이는 강화된 일제의 압제로 더욱 궁핍해진 현실의 공간에서 고향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짐으로 인해서 시에서도 주로 과거 공간에 대한 애착이나 향수, 또는 상실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1930년대 시인들 중에서 고향을 중요한 시적 대상으로 삼고, 고향 의식에 바탕을 둔 작품 활동을 한 백석과 이용악의 시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Ⅱ.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 상실 의식 - 백석

1) 고향 재현과 향수 의식

 백석에게 있어서 유년의 고향은 지극히 평화롭고 온전한 삶이 가능한 공간이다. 일제 강점기의 삶이 어둡고 암담하므로, 동심의 세계인 유년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고향집을 배경으로 가장 평화로운 한 때가 재현되는 시에서는 현실로 인한 생활고나 가족 구성원의 부재로 인한 불안함과 같은 부정적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시에서 재구성된 고향은 유년의 화자가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며,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살아있는 원형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 공간은 백석의 의식 속에서 형성된 정체성의 세계이며, 식민지 현실과 대립되는 이상 세계이다.

 고향에 관련된 인간의 심의경향을 통틀어 고향 의식이라는 말로 함축한다면 그 고향 의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의 특징을 드러낼 것이다. 첫째는 고향과 순수한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며, 둘째로는 고향의 자족적이고 인정스런 세계가 사라진 데서 오는 상실감일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고향 상실감을 메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심리적 방법의 동원2)이 될 것이다. 백석의 시에서는 어린 아이를 화자로 하여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을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하지만 현실에서는 단지 회상만이 가능하다는데서 오는 상실감을 느끼지만 그것의 극복을 통해 민족 공동체로서의 의식을 잊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명절 날 나는 엄마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 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중략)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운 잔디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 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막국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 <여우난골족> 부분



승냥이가 새끼를 치기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나타났다는 가즈랑 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山너머 마을서 도야지을 잃는 밤 즘생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중략)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 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山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 <가즈랑집> 부분


 위의 두 시는 화자를 어린 아이로 설정을 하여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우난골족>은 시골 명절날 부모님을 따라 진할머니의 집으로 가서 만나는 친척들의 모습을 어린 화자로 하여금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고향의 명절날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식민지 체제 하 궁핍한 시대에 풍요로움을 드러내 고향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가즈랑집>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가즈랑집'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백석은 어린 아이를 화자로 설정하여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과 향수 그리고 고향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풍요롭고 따뜻한 삶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어린 아이를 화자로 하여 고향을 재현함으로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조시키고 고향 상실이라는 현실과의 반대되는 상황을 작품 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잃어버린 고향은 언제나 돌이켜지고 생동하는 고향일 것이다. 따라서 그는 유년의 눈을 통하여 잃어버린 고향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것이다.

 기억은 체험을 새로운 의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백석은 기억을 통해 과거 체험을 재구성함으로써 잃어버린 세계를 회복하고 회복된 세계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려 한다. 이는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고 극복해 나갈 수 있게 하는 중심이 된다. 백석은 재구성된 원형적 고향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공포와 두려움, 미래에 대한 암담함을 벗어버리려 한다. 그는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시켜, 과거의 소생은 물론 미래까지도 전망하려 하는 것이다.


2) 고향 상실과 내면 의식

 백석의 시에서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통해 고향의 모습만을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처녀작 <정주성>은 고향 상실의 쓸쓸함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백석의 고향에 있는 정주성의 밤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객관적으로 대상을 뵤사하고 있는 것이 이 시의 특징이지만, 시선의 변화에 따라서 펼쳐지는 풍경들 속에는 시적 화자의 내면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멀리 보이는 원두막에는 인간의 움직임은 느낄 수 없고, 불빛만이 외롭다. 또한 원두막에 있는 호롱불이 줄어드는 소리가 들릴 듯 하다는 표현을 통해 고향이 적막감에 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무너진 정주성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무너진 정주성은 온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고향이 모든 것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외부 풍경으로 인하여 우울하고 쓸쓸한 정조가 드러나면서 그것은 실향의 공간에서 느끼는 백석의 내면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석의 시에서는 1930년대의 시인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국토를 잃은 설움이 고향 상실감으로 나타나며, 식민지에서의 현실에서 상실의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시대적 표랑 의식’으로써 자의식을 느끼게 된다.3) 황폐화된 고향의 모습은 작품에서 피폐하고 쓸쓸한 정조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현실에 대한 백석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北關에 혼자 앓어 누워서

어늬 아춤 醫員을 뵈이었다

醫員은 如來 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녯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드니

문득 물어 故鄕이 어데냐 한다

平安道 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氏 故鄕이란다

그러면 아무개氏ㄹ 아느냐 한즉

醫員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醫員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짱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고향> 전문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중략)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중략)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 <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위의 시에서 <고향>에서 시적 화자는 유년 시절에 풍요롭고 행복했던 고향을 상실하고 타향살이의 슬픔과 함께 육신의 병으로 인해 더욱 외로움과 쓸쓸함만이 고조된 상황이었을 것이다. 타향에서 만난 의원에게서 가족을 느끼고 고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시작 화자는 타향에서 혼자 앓아 누워 의원을 불렀던 어느 날을 회상하고 있다. 의원이 문득 물은 '고향'은 아버지와 의원, 그리고 나를 동시에 이어준다. 아버지의 친구 분인 의원을 만남으로써 나와 아버지의 고향을 환기해내고, 나는 고향의 평온한 세계로 돌아간 것과 같은 아늑함을 느끼게 된다. 또 다른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의 시적 화자는 타향 객지에서 골방에 앉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좁은 방안에서 흰 바람벽을 쳐다보고 있다. 작은 방은 단절되어 있어 '세상'을 인식하게 한다. 유랑에 지친 화자가 잠시 머문 곳에서 흰 바람벽을 보면서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 시의 시적 화자가 흰 바람벽에서 발견한 것은 쓸쓸함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풍경이다. 쓸쓸한 내면에는 만주 유랑 중 '다 낡은 무명샤쯔'처럼 지칠 대로 지쳐버린 절망만이 남아 있다. 시적 화자는 그 바람벽을 보면서 고향의‘가난한 늙은 어머니’와‘내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 위의 두 시는 타향이라는 배경을 통해 가족 등을 떠올리게 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면서 고향 상실과 유랑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고향은 삶의 모태이면서, 삶을 형성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친숙한 고향을 상실했을 때, 인간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시인은 세계의 고통과 환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고향을 상실했을 때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는 본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향은 이념을 초월하는 공간이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기억되는 세계는 안온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래서 고향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태반이나, 어머니 이전의 원형 세계로 자리한다. 그러므로 암울한 시기에 백석이 복원한 '원형적 공간'은 잃어버린 의식이며, 그러한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지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를 견뎌내려는 그의 현실 대응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비극적 현실을 탐색하는 시인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백석 역시 피폐한 고향을 바라보면서 고향이 존재의 출발이면서 뿌리이고, 인간을 지탱하는 중심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백석은 고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Ⅲ. 가난 체험과 유랑 생활을 통한 고향 상실 의식 - 이용악

1) 가난 체험과 탈출 의식

 한국인의 정서의 원형질이요, 최대 공약수는 고향에 되돌아가고자 하는 향수4) 라는 이야기는 새롭게 강조할 바가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적 주권 침탈과 산업화를 겪으면서 농경적 질서에서 고향을 지키고 공존해왔던 대다수의 민족 개체는 자의든 타의든 고향을 버리고 떠났다. 그 중에 다수는 이 땅을 떠나 만주나 일본 등의 이국으로 흘러들었다.

 이용악의 고향은 이러한 유이민들의 참상을 확연히 파악할 수 있는 함경북도 경성이었다는 점이 향수(고향)의 정서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확대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용악의 시 세계는 극도의 가난에서 비롯된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의 비극적 삶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계기로 발현된다.5) 그의 시에 나타난 고향은 가난한 곳이다. 그의 시에서는 유년 시절의 가난이라는 개인적 체험이 일제 치하 유이민의 참담한 삶과 궁핍한 현실로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그의 시에서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궁핍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삶의 현장으로서 고향을 인식한다. 백석의 시에서는 유년 시절의 화자를 등장시켜 순수하고 행복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지만 이용악의 시에서는 삶의 현장으로서의 고향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이는 1930년대 중반 이후 1940년대 말까지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고향 상실 의식은 민족 상실 의식, 즉 국권 상실 의식, 망국 의식의 반어적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중략)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중략)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 <낡은 집> 부분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沈床없는 최후 最後의 밤은

풀버렛 소리 가득 차 있었다


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생략)                                

 - <풀버렛 소리 가득차 있었다> 부분


 <낡은 집>은 식민지적 궁핍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이다. 이 시에서는 어린 시절 친구의 집안 사정을 다루고 있다. 지금은 비록 흉가가 되어버렸지만 낡은 집의 주인인 털보 네는 가난으로 인해 더 이상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먼 타향으로 떠나야 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 대대로 고향을 지키면서 살았어도 가난을 면하지 못하던 털보 네는 곡식을 빻아서 항구에 가져다가 팔아 생계를 유지했지만 마을에 찻길이 생기면서 유일한 생계 수단을 잃고 가난이 극에 달하자 야반도주를 하게 되지만 결국 고향을 버리고 유랑 생활을 하는 것조차도 가난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는 비극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 체제 하에 서 우리 민족은 이처럼 빈곤한 생활을 벗어날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 고향마저도 버리고 유랑 생활을 해야했던 것이다. 즉 한 가족의 파멸을 통해 민족 공동체의 파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이용악 가족사의 비극은 식민지 시대 민족의 수난사로 집약되기 때문에, 개인의 절실한 체험에서 비롯된 그의 시는 민족의 보편적 경험을 반영하면서 심정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일제 강점하의 참담한 민족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효과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용악 시의 높은 성취의 수준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 현실주의 시의 정상에 오른 것으로 판단된다.

  <풀버렛 소리 가득 차 있었다>는 이용악 자신과 가족이 겪은 시베리아 유이민의 체험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서정적 자아의 고향에 대한 태도는 일단 가족사적인 궁핍 의식이 지배한다. 가족 빈곤의 원인은 아버지의 부재이다. 아버지는 가족의 구성원이지만 가족으로 등장하지 않고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객사를 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그의 시에서 가족 구성원은 늘 어머니와 누이만 등장하명 생계를 어머니가 꾸려야 하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내몰린다. 따라서 이용악은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진 궁핍한 생활로 인해 일제에 의해 수탈 당하는 식민지 농촌의 현실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서 장사를 다닌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시인 자신은 가난과 현실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시베리아 유랑민의 참담한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유랑 생활과 향수 의식

 1930년대 후반 소위 전시 체제로 접어들면서 일제의 식민 통치는 우리 민족에 대해 더욱 악랄하고 혹독한 탄압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한 가난과 궁핍한 생활상은 결국 고향을 등지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즉 시대 상황이 고향 상실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도망을 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의 일차적 환경에서 긍정하고 살 수 없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도망하는 삶은 그 자체가 패배적인 삶이며, 자신이 안주할 정해진 삶의 터전이 없는 것이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 <北쪽> 전문


 (중략)

기름기 없는 삶을 보지만 말어도

토실토실 살이 찔 것 같다

뼉다구만 남은 마을……

여기서 생활은 가장 平凡한 因襲이었다


가자 씨원히 떠나가자

흘러가는 젊음을 따라

바람처럼 떠나자

- <도망하는 밤에서> 부분


 위의 시 <북쪽>에서 '북쪽'은 이용악의 고향인 경성이다. 북쪽의 고향은 상실된 고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우선 '북쪽은 고향'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함으로써 풍경의 미국적 정취를 처음부터 제거한다. 또한 산맥과 바람과 추위가 북방지역의 정서를 환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적 현실, 혹은 삶의 문제가 은밀히 도사리고 있다. 인간적 현실의 측면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라는 구절에 의해 일단 표면에 부상된다.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즉 고향보다 더 북쪽인 만주 등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가난을 이기지 못해 고향을 떠나 팔려 가는 여인들을 통해 고통스런 삶의 현실을 너무도 여실하게 보여준다. 고향 풍경을 묘사하거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이면에는 고향을 떠나려는 탈출에의 욕구, 혹은 유랑의 심리가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화롭고 안정된 고향은 어느새 궁핍한 삶의 현장으로 변하게 되었고, 결국 고향마저도 등지게 만드는 것이 가난이라는 것이며,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유랑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슬픔을 보여준다. 그 북쪽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 눈을 감아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이 화자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시는 일제 하 궁핍한 현실과 폐허의 과정, 이에 따른 유랑민의 생활상을 가장 뛰어난 시적 성취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절실한 개인적 체험을 거친 북방 정서를 기조로, 일제 말기의 유랑민들의 비극적 삶의 현실을 민족 현실의 당면적 문제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용악의 시에 나타나는 북방 체험은 결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북방은 시인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온 삶의 터전이지만 추위와 가난, 죽음 등이 자리하는 어둡기만 한 공간이다. 이 시는 북방의 황폐화된 현실을 담고 있다. 즉 그에게 있어서 고향은 궁핍한 삶의 현장으로서 고향이 변화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고향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가난이라는 현실 인식이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의 고향 상실은 현실을 직시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북쪽'이라는 고향은 개인적인 그리움의 차원을 넘어 북방적 정서를 기조로 일제 말기 유랑민들의 비극적인 삶의 현실을 민족적인 문제로까지 확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즉 고향의 저 북쪽은 “女人이 팔려간 나라”라는 표현과 같이 일제의 토지수탈 정책으로 만주나 간도, 시베리아 등지로 떠나야 했던 유이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유랑민으로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위의 시 <도망하는 밤>에서 고향은 곤궁한 살림으로 인하여 삶의 활기와 생기를 잃어버린 곳이다. 이 작품에서 그의 삶터인 마을은 '묘지'나 '무너진 성굽이' 같은 황폐한 모습이다. 이러한 고향은 시인에게 있어서 절망의 현실로 기억되고 결국은 도망치고 싶은 혹은 도망쳐야 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을 등지고 유랑하려는 민족의 아픔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고향을 탈출한 사람들이 처한 구체적인 생활을 그리면서 그의 고향은 이제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민족의 차원으로 확대된다. 1차적인 환경인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떠돌아다니면서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민족적인 제유로서의 고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 고향이지만 그의 시에서 고향에 대한 부정은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가난과 탈출 의식적인 면에서 고향 의식은 궁핍한 상황에서 비롯되며 결국은 서정적 자아가 고향을 등지고 떠돌게 되는 데까지이다. 등지기 이전의 고향은 '어머니와 누나(누이)', 그리고 '부락민' 부류가 주체이고, 이 주체들이 병이나 죽음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용악의 시에는 가난이라는 극단의 고통과 그 가난의 공간(환경)을 탈출하려는 이중적인 성격이 드러나는데 이러한 것이 그의 일차적인 고향 의식으로 형성되어 나타나고 있다. 유랑 생활과 향수 의식은 어쩔 수 없이 떠나온 고향을 애써 부정하려고 하고, 같은 처지의 동포들을 보면서 더욱더 고향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유랑 생활을 하면서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반복되는 유랑 생활은 향수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즉 일제 강점기의 현실에서 기층 민중들이 겪는 비극적 삶을 시적 형상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유이민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비극적 삶의 이면에 감추어진 식민지 현실의 근본적인 모순을 비판하고 현실 극복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Ⅳ. 結論

 이상에서 백석과 이용악의 시에 나타난 고향 의식에 대해 알아보았다. 백석의 고향은 그의 시에서 어린 아이를 화자로 내세워 유년 시절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로 인한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공간으로서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을 통해 고향을 재현해내고 고향과 어린 시절의 결합으로 인해 궁핍한 시대에 풍요로움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고향 상실의 비애를 유년 시절의 재현을 통해 극복해 나가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용악의 고향은 단순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현실적 상황을 총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즉 일제 강점기의 현실에서 우리 민족이 겪는 비극적인 삶과 절망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고향은 궁핍한 삶의 현장으로 변해 버렸고 그로 인해 유랑민으로 전락하여 결국에는 고향을 잃어버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의 시에서는 가난 체험과 탈출 의식, 유랑 생활을 통해 환기되는 향수 의식을 드러낸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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