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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너(Bruner)의 지식의 구조론과 듀이(Dewey)의 경험중심 교육에서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의 비교 분석
Ⅰ. 序 論
일반적으로 많은 지식을 주된 내용으로 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교육과정 이론 중에 부르너(Bruner)의 지식의 구조론과 듀이(Dewey) 의 경험중심교육과정을 가장 대표 이론으로 들 수 있다. 브루너(Bruner)의 지식 구조론은 1960년대 미국의 보수정치인들은 미국이 인공위성 발사경쟁에서 소련에 밀리게 되자 잘못된 학교교육, 즉 진보주의교육 때문으로 비난하였고, 소련의 군사력 우위에 대한 우려와 위기의식을 느낀 미 국방부역시 학교교육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착수 하였다. 당시 미 국방부는 진보주의 교육에서 소홀히 여겼다고 판단한 수학. 과학. 외국어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부의 거대한 연구비를 마련하여 해당분야에 최고 전문가들로 하여 초,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교육과정과 교수. 학습 자료를 개발하도록 하였는데. 이때 개발된 교육과정이 학문중심교육과정이고, 이 새로운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에 대한 워크숍에서 지식의 구조라는 개념이 제안 되었으며, 이 워크숍에 인지심리학자로 참석한 브루너가 워크숍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여 출판한 책이 바로 교육과정이다. 이후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학문중심 교육과정이라는 사조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경험. 학생중심교육을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진보주의 교육이론 또는 운동을 의미하는데,
미국에서는 유럽에서 들어온 헤르바르트의 경험. 학생중심 교육이론에 근거하여 문학과 역사와 같은 고전적 교과가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주장한 맥머리 형제의 전통적 교육이론이 비판을 받으면서 등장하였다. 이러한 교육이론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형성된 진보주의학회에서 본격적으로 전개 되었다.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이론가 으로 대표하는 철학자 듀이(Dewey)는 자신의 교육이론과 진보주의 교육이론이 서로 다른 것임 을 저술을 통하여 주장하였다. 듀이자신은 아동과 교과의 연속성을 강조하였으나 진보주의 교육자들은 교과를 무시하고 오로지 아동의 흥미나 관심만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또한 듀이는 교육과정에서 아동의 경험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동의 교육활동에서 성인의 세심한 지도 또한 필수적임을 지적하였고. 학교와 사회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민주주의를 경험한 학생들이 민주사회를 만들것 이라 믿었다. 그리고 교육은 아동에게서는 삶 그 자체이지 미래의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듀이의 사상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듀이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결함에 맞서 학교를 사회화하고 교육에 의한 사회를 개조하려 했다. 이 이론들은 대두 되었을 그 당시 뿐 만 아니라 오늘날의 교육과정에도 여전히 많은 영향을 행사하고 있으며, 좀 더 발전된 교육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각각의 기초적인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Ⅱ. 本 論
1) 브루너(Bruner)의 지식 구조론 「교육의 과정」 이란 책이 나온 시기는, 1959년에 열린 우즈 호울 회의의 결과 보고서에서 미국교육의 근본적인 문제가 당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과에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식의 구조라는 개념이 제안 되었고, 회의 참석자들의 연구에 기반을 둔 지식의 구조라는 개념이 브루너(Bruner)의 「교육의 과정」 (The Process of Education)이라는 책을 통해 출판 되었는데, 이때 브루너는 이 책의 출판 배경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1959년은 당시 학교들의 병폐로 여겨지던 지적인 무목적성에 관해 관심이 높았던 시기이다. 많은 지식의 분야에서 커다란 진전이 있었음에도 이러한 진전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에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었다. 학문의 대열에서 머리(학자)와 꼬리(학생)라고 불릴 수 있는 양자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 스푸트닉 발사 직후 메샤츄세츠 캠브리지 대학에 있던 나의 동료 중 일부는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커다란 문제는 현대 물리학과 수학의 성과가 중등학교 교육과정에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Bruner, 1971)
브루너의 지식의 구조론은 당시(1950년대) 진보주의 교육사조에 입각한 학교교육의 중심을 경험교육으로 일관함으로써, 무엇인가 중요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에 실패하고 있음을 인정하여, 지식의 방향으로 선회하려 시도된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브루너(Bruner)는 학자들의 지식과 학교지식 사이에서 발생되는 간극의 괴리현상을 해소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학자들과 동일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식의 구조'를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지식의 구조가 무엇인가를 브루너는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대신 생물학에서의 성향이라는 개념이나, 대수학에서의 교환, 결합, 분배법칙, 또는 언어학에서의 문장전환원리 등을 지식의 구조에 대한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지식의 구조란 해당 학문의 핵심적인 개념이나 일반적인 원리 및 아이디어를 의미하며, 이러한 지식의 구조를 가르치게 되면, 하나의 현상을 다른 여러 가지 현상들과 관련지어 이해 할 수 도 있고, 전이 역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교과의 구조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브루너(Bruner)가 제시하는 교과구조의 예시를 통해 나름 교과구조가 무엇인지를 추론해 볼 수 있다. 교과의 구조란 사실이나 현상을 엮어주는 핵심적인 개념과 원리를 뜻한다, 또한 각 학문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핵심적인 개념과 원리의 뜻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사실이나 정보를 서로 연계하고, 체계화하는 주요 개념. 원리들의 체계라고 볼 수 있다. 교과를 효과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은 곧 그 교과의 범위뿐만 아니라, 교과가 나타내고 있는 구조도 충분히 고려하여 제시한다는 것으로, 학생들이 배우는 모든 과목에 이 논리가 통합적으로 적용된다는 특징이 있다. 수학, 과학, 국어, 역사, 음악과 같은 과목에는 각 과목의 특성에 도달하기 위한 구조와 원리가 있다. 수학에는 공식이라는 구조가 있으며, 과학에는 자연과 우주를 포괄한 현상을 연구하는 실험과정, 국어는 문장과 어휘력의 상관관계를 이어주는 복합적인 구조가 있다. 때문에 브루너는 교과구조를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이유를 다음 네 가지 이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교과의 구조를 학습한 사람은 학습내용을 ⓵ 쉽게 이해할 수 있고, ⓶오래 기억할 수 있으며, ⓷학습 이외의 사태에 적용할 수 있고, ⓸ 고등지식과 초보지식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Bruner.1960) 브루너가 말하는 지식의 구조론은 교육에 있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하여 보다 중점적인 의미를 두고, 학문의 기본적인 개념이나 원리를 학습하면 다양한 현상들 사이의 관련을 이해하고 새로운 현상에 이를 적용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이러한 교육은 적어도 단편적인 사실이나 개념 등이 그들 사이의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방식보다는 지식의 이해나 기억, 전이 등에 있어 분명히 장점을 지닌다.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 나선형 교육과정
교육과정을 나선형으로 조직한다는 것은 각 교과의 핵심적인 아이디어인 지식의 구조를 반복. 심화 하는 학습으로, 학생의 연령이나 학년 증가에 따라 이를 점점 폭넓고 깊이 있게 가르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을 의미 한다. 브루너는 나선형 교육과정의 대하여 그의 교과구조와 교수방법에 대한‘대담한 가설’에서‘어떤 교과이든지 지적으로 올바른 형식으로 표현하면 어떤 발달단계에 있는 어떤 아동에게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고 한다. 그 하나의 예로 문학의 핵심인 인간비극의 의미와 그것에 대한 공명감을 가르쳐주는 것을 어린나이에서 부터 시작하여 나이가 든 학생에게도 이것을 반복하여 가르치고, 어린학생들이 인간의 비극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료를 번역하여 제시해 줄 때 , 그 결과 비극문학에 대한 학생의 이해가 명백해지고 성숙되어 진다는 것이다. 과학 역시 아동의 사고방식에 맞추어, 되도록 지적으로 올바르게, 일찍부터 가르치며, 고학년에 가서도 재학습이 전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어른이 알아야 하는 내용을 어릴 때부터 배우면 보다 훌륭한 어른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교과구조에 해당하는 핵심적 내용이며. 이와 같은 과정은 초, 중, 고, 대학 등의 교육기관에서 각 발달단계에 알맞은 형태로 가르쳐야 한다고 브루너는 말한다. 이것은 아동의 발달 단계에 따라 학습에 내재해 있는 지식의 구조, 즉 핵심개념, 기본원리, 일반 아이디어를 잘 조직하면 아동, 학생의 사고방식에 알맞게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으며 학년의 진전에 따라 점차 심화, 확대해 가는 교육과정으로 교육내용 조직의 원리로서 나선형 교육과정은 교과의 구조 즉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계속성과 계열성의 원리에 따라 조직하는 방식의 유사함을 찾을 수 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 왜. 가르칠 것인가 .라 는 교육과정에 대한 사유. 실천 패러다임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용어로 개념화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발견학습
브루너(Bruner)의 교수방법이 발견학습 또는 탐구학습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핵심적 확신’즉‘ 지식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가는 학자들이 하는 일 이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하는 일 이나 를 막론하고 모든 지적활동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에 근거한다. 이와 같은 활동에서의 차이는 하는 일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지적 활동의 수준에 있다는 것이다. 브루너에게서 발견학습이란‘최소의 필수 사실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가장 풍부한 시사를 뽑아내도록 하는 것’이며, 브루너에게서 학습과 관련된 세 가지 활동, 즉 사실을 아는 획득과정과 사실을 다루는 변형과정, 자기 사고를 점검하는 평가과정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서는 발견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발견학습은 교과구조의 핵심적 아이디어를 가르치는 방법상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2) 듀이(Dewey)의 경험중심 교육
듀이(Dewey)의 교육이론의 핵심개념은 경험이다. 듀이(Dewey)의 교육은 경험에 의한, 경험을 위한, 경험의 과정으로, 사고와 경험은 따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서, 듀이에게서 경험이란 모두 해보는 것 과 당하는 것 의 결합 이며, 듀이에게서 사고를 한다는 것 은 경험의 두 측면의 관련성을 정확히 파악하려는 것 이고, 경험이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경험 속에서 지력이 작동되는 것이다. 듀이의 경험은 인간 유기체와 환경사이의 상호작용으로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할 때 인간의 삶이 영위 된다, 때문에 경험은 이전의 경험을 확대할 때 환경과의 괴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평형상태를 이루려는 노력이다, 경험은 문제 사태와 더불어 경험주체에 의해 자각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은 유기체와 환경이 만나서 상호작용한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며, 이 둘의 관계는 서로 분리된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연속성을 가진다. 경험은 시작. 발전. 종결로 이라는 하나의 연속성을 가진 활동으로 경험의 과정에서 경험주체의 충동과 욕망은 지력에 의해 가시적인 목표(end-in-view)를 달성하기 위한 의지를 드러낸다. 경험이 시작. 발전단계를 거쳐 종결상태가 되었을 때 듀이는 비로소 주체가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경험의 이러한 특성으로 교육은 계속적인 경험의 성장으로 규정된다.
경험성장을 위한 교과발달의 세 단계
듀이의 교육과정은 경험의 끊임없는 재조직. 재구성. 변형의 과정으로 현재의 경험에서 과거의 경험을 활용하고 미래경험에 방향을 제시해 줄때 경험은 계속적으로 성장 한다. 듀이에게서 학교는 학생의 경험이 계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특수 환경 이다. 따라서 학교는 사회 환경보다 단순화된 환경. 정화된 환경. 균형 잡힌 환경이어야 한다.
듀이는 교과발달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교과의 성격이 신체활동에서 출발하여 언어적 상호 작용을 거쳐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발전해 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듀이는 아동에게 의미있는 교과를 ❶단계- 놀이나 일은 성장초기단계에서 무엇을 할 줄 아는 것이며, 그 일을 하는 동안 사물에 익숙해지는 것, ❷단계- 지리와 역사로 그 익숙한 사물이나 행위가 언어화된 지식 또는 정보를 통하여 점차 그 의미가 깊어지고 풍부해 지는 것, ❸단계- 과학적 논리적 지식의 단계로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조직되어 교과전문가가 지니고 있는 지식으로 발전하는 것, 이것이 듀이가 강조한 행함을 통한 학습 이다.
일상생활에서 놀이나 일은 성장초기의 경험과 특성에 상응한다. 최초의 지식이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상응하는 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동은 놀이나 일 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의 의사소통은 아동개인의 경험에 연결되어 경험의 성장을 가능케 해주는 중요한 교과가 된다.
교육자의 교과와 학습자의 교과
듀이는 교과과정을 교육자의 교과와 학습자의 교과로 구분 한 다음 학습자의 교과가 최종 발달단계에서는 교육자의 교과와 일치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둘 간의 연속성을 강조 한다. 듀이에게서 논리와 심리는 서로 대립되기 보다는 연속성을 갖는 동일한 경험의 미성숙과 성숙의 양끝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반성적사고의 결과는 논리이며, 반성적사고의 과정은 심리라는 듀이의 규정방식은 그의 또 다른 논리적 형식과 논리적 방법에 연계시킬 때 그 의미가 분명해 진다. 학습자의 경험이 초기에는 논리적 형식과 논리적 방법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 그러나 학습자의 경험이 성장함에 따라 논리적 방법은 논리적 형식에 일치되거나 근접해 간다. 학습자의 교과는 아동 각각의 발달수준에서 학습자의 현재경험에 활용되어 경험의 계속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교과가 현재의 환경으로 활용될 때 그 교과는 학습자의 경험안 에서 성장하는 교과가 된다. 놀이와 일. 역사와 지리. 과학적이고 논리적지식이라는 학습자의 교과는 학생의 경험을 계속적으로 재조직하면서 경험의 성장을 돕는 수단의 연속성을 가진다. 따라서 의미 있는 교육을 위해서는 교과를 진보적으로 조직해야 하며 경험주체의 이해 가능한 내용의 범위와 수준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교과의 가치와 교과의 교육적 가치
듀이는 교과의 가치와 교과의 교육적 가치를 삼각함수에 비유하고 있다. 그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유아에게 비프스테이크를 먹이지 않는 것은 비프스테이크의 영양분이 질적으로 좋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나 5학년 학생에게 삼각함수를 가르치지않는것은 삼각함수의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 아니라 교과 그 자체만으로는 교육적이라거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학습자의 성장단계와 무관하게 어떠한 교과가 본래부터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없다. 교과가 개인의 필요 및 역량에 적합하지 못할 때 우리는 특정교과가 본래부터 교양적 가치를 지닌다거나 정신적 도야에 유익하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하게 된다. 학습자의 맥락을 벗어난 추상적인 의미의 교육적 가치와 같은것 은 없다.’위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비프스테이크자체로는 영양적 가치를 지닌 음식이지만 섭취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유익한 음식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 도 있다. 삼각함수역시 배움의 준비가 되어있는 학생과 전혀 그렇지 못한 학생과에서 보면 전자는 교육적 가치 외 에도 학생의 경험의 성장에 기여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에게서는 학문적 가치는 있으나 교육적 가치를 가질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듀이의 교육에서는 교육활동이 교과보다 더 중요하다. 교과는 학습자의 경험의 성장을 돕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특정내용자체가 가치를 지닌다하더라도 학습자의 경험 성장에 기여를 못한다면 그것은 교육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반면 비록 낮은 수준의 가치를 지닌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학습자의 경험 성장에 크게 기여한다면 높은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Ⅲ . 結 論
브루너의 지식의 구조론은 교육에 있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하여 보다 중점적인 의미를 두고, 교육과정은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칠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주로 다룬다. 다시 말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는 지식의 본질 혹은 교육내용에 관한 문제이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는 교수-학습상의 방법론적인 문제로, 브루너(Bruner)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적절한 답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교육과정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브루너의 이론은 교육과정 학문에 큰 영향력을 미친 학자라고 할 수 있으며, 학문의 기본적인 개념이나 원리를 학습하면 다양한 현상들 사이의 관련을 이해하고 새로운 현상에 이를 적용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듀이(Dewey)는 전통적인 철학 체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출발한다. 관념론적 접근의 비판을 시작으로, 성장적 교육개념으로 접근하여 상대적. 상황적 진리에서 주된 시사점을 찾고 있다. 듀이는 교육방법이 교육내용으로부터 유리되는 데서 파생되는 교육의 폐단을 지적하고 경험이 외면당하는 사태에 대하여, 학습내용이 사례와 동 떨어진다면 적절한 학습방법을 찾아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사실을 가르치는 것보다 실제 체험에 중점을 두고 학생들의 흥미와 능력에 따른 학습법을 강조한다. 경험중심 교육과정에서 교육이란 학교의 지도하에 학생들이 가지게 되는 모든 경험으로 정의되며, 교육과정구성의 기초에서 학생의 직접적인 흥미나 필요, 경험의 체계에 두고 이를 통해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하나의 경험’을 갖게 되는 동시에, 그 수준간의 차이를 알아내어 점차 높은 단계로 나아가려는 경험의 반복성을 경험중심교육의 핵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교육자의 교과가 직접 학습자에게 설명되어 주입되어 지는 것 보다는 학습자의 사고와 경험에 의한 학습자의 교과를 통한 학습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듀이의 학습자의 교과에 대한 생각은 이원론적인 기존의 생각과는 달리, 교사와 학습자, 교과 및 경험 모두 함께 하는 교육과정으로 교과와 아동을 이원화 시키지 않는‘교과의 심리화’즉, 교과와 아동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경험중심 교육과정이 교과 자체를 배격한 것은 아니다. 다만 교과와 아동 경험 간의 간격을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서, 모든 교육과정은 아동의 계속적이고 일반적인 발달방향에 맞추어 진행하되 그 목적은 아동 발달에 있으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아동의 경험이다.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과 이에 대한 학생들의 행동반응, 감정, 사고 등이 모두 포함되는 광범위한 것으로서, 경험 자체가 중요한 교육내용이 되고, 학생 개개인의 경험내용이 다르므로 교육과정 역시 같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브루너와 듀이는 각각의 다른 교육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 각각의 교육이론과 관점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아동관에서 상이함이 드러난다.
브루너는 아동을 성인의 축소판으로 보는 관점에서 출발 하였고, 듀이는 아동은 축소판 성인이 아니며, 능동적인 존재라는 관점으로 서로 다른 출발을 보였다. 두 이론의 아동관은 그들이 서로 다른 교육관을 전개하는 전제가 되었다.
듀이는 아동의 흥미와 요구를 반영한 경험중심 교육과정이 되도록 어려운 교과의 논리적 조직에 앞서 심리적 조직을 우선하는 교육이론을 제시 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어려운 교과도 흥미와 필요가 있는 아동 이라면 의욕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브루너는 어려운 교과도 논리적 조직에 맞게 배우다 보면 흥미를 가지게 된다는 논리적 조직에 우선하고 있다.
듀이는 교과와 경험을 모두 중요시 하여 교육과정을 심리적 조직에서 논리적 조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와는 반대로 브루너는 논리적 조직에서 심리적 조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따라서 듀이는 흥미를 중요시 여겨 자칫 심리적 조직만을 강조한 사람으로, 브루너는 지식의 구조를 강조하여 논리적 조직 즉, 교과 만 을 강조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심리 + 논리 모두를 중요시 한 부분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무엇을 먼저 구성하는가에 대한 차이는 있을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지식구조론은 교과ㆍ학문 중심의 교육과정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으며, 경험중심교육론은 경험ㆍ인간 중심 교육과정과 그 내용이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지식의 구조론과 경험중심 교육론에서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학습은 어떻게 일어나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학교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등에 대한 대답에서 그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지식의 구조론은 발견과 탐구의 학습으로 계속성과 계열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경험중심교육은 경험의 단계별학습과 역시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두 이론들의 장점이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어 질 수 있는가에 따라 우리교육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사의 임무가 어디에 있는가? 에 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