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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생윤 수능 15학년도 7번 문항에 대해 (문항분석 및 약간의 논평)

작성자한삶|작성시간17.07.31|조회수466 목록 댓글 6

지문을 어디서 가져온 건지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발견한 것들입니다. 그냥 버리긴 아까워서 기록해 둡니다.

이번 분석은 예전 것들과 달리 제 스스로가 확신감이 잘 들지는 않네요.


하여튼 글을 써두어야 의견교환이나 피드백이 되겠죠. 시작합니다.


우선 문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5학년도 본수능 생윤 7번)




(가)는 아래의 본게시글에서 말했듯 『논어』「양화」의 지문입니다. 원문을 보면 공자가 저 말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석가들 사이에서는 진짜 공자의 말씀인지 의심스럽다고는 하는데, 하여간 공자왈로 쓰여져 있기는 하니까 일단은 공자 말로 취급하기로 하죠.


그런데 (나)는, 곧 논의하겠지만 12년도 학평과 15년도 학평 지문을 뒤섞어 재구성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문헌 이름부터 말하지 않고 학평 지문이라고 먼저 말하는 이유는, 해당 학평(15년) 문항의 출제자가 원문에 없는 어휘를 있는 것처럼 표기해서 인용문에 넣었는데 그 부분을 해당 해의 수능 출제자가 계승해서 지문에 활용한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제가 검색한 범위 안에서 발견된 자료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의 문항은 2012학년도 6월 고2 전국연합학력평가 생윤 12번 문항입니다. 해당 지문은 『사자소학』에서 가져온 것 같은데 이 문항의 경우는 지문상에 문제점이 딱히 없습니다. 해당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兄弟姊妹, 同氣而生. 兄友弟恭, 不敢怨怒. 骨肉雖分, 本生一氣; 形體雖異, 素受一血. 比之於木, 同根異枝; 比之於水, 同源異流. 兄弟怡怡, 行則雁行. 寢則連衾, 食則同牀. …
형제와 자매는 한 기운을 받고 태어났으니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히 하여 감히 원망하거나 성내지 말아야 한다. 뼈와 살은 비록 나누어졌으나 본래 한 기운에서 태어났으며, 형체는 비록 다르나 본래 한 핏줄을 받았느니라.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는 같고 가지는 다른 것과 같고, 물에 비하면 근원은 같고 흐름은 다른 것과 같다. 형제는 서로 화합하여 길을 갈 때는 기러기 떼처럼 나란히 가라. 잠잘 때에는 이불을 나란히 덮고 밥먹을 때에는 밥상을 함께하라.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생윤 교육과정에 '동기간(同氣間)'이라는 어휘가 육친관계 내용에서 주요 개념어로 나오나봅니다. 14학년도 문항의 선지 ①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위의 문항은 2014년 6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생윤 4번 문항입니다. 선지 ①을 보면 '동기간(同氣間)'이라는 개념어가 등장합니다. 이는 바로 다음 해인 2015년 학평의 지문에 재등장합니다.






위의 문항은 2015년 충남 8월 고3 수능모의학력평가 생윤 5번 문항입니다. (가)지문을 보시면 '동기간(同氣間)'이라는 개념어가 들어 있는 듯한 원문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지문을 보기에 앞서 수능 연계교재인 EBS를 잠깐 보겠습니다.





사실 위의 사진은 2016학년도용 EBS입니다만 아마 시중의 어느 번역서에서 따 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 번역표현을 그대로 검색하면 통째로 검색결과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보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이 15년도 학평 5번 문항의 지문은 『동몽선습』이 출처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방금 주목하였던 15년 학평 5번 문항 지문에 바로 이 '동기간(同氣間)'이라는 개념어가 삽입되어 있었습니다. 원문에 있는 어휘인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長慈幼, 幼敬長然後, 無侮少陵長之弊, 而人道正矣. 而況兄弟, 同氣之人, 骨肉至親, 尤當友愛, 不可藏怒宿怨, 以敗天常也. 昔者, 司馬光與其兄伯康友愛尤篤, 敬之如嚴父, 保之如嬰兒, 兄弟之道當如是也. 孟子曰: 孩提之童, 無不知愛其親, 及其長也, 無不知敬其兄也.
어른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어른을 공경한 연후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고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져서 사람의 도리가 바로 설 것이라. 하물며 형제는 (부모의) 기운을 함께 받아 태어난 사람이라 뼈와 살이 같은 지극히 가까운 육친이니 더욱 마땅히 우애하여야 할 것이요 성냄을 숨기거나 묵은 원망을 지녀서 천륜을 깨뜨려서는 아니 될 것이라. 옛날에 사마광이 그 형 백강과 더불어 우애가 더욱 두터워서 형을 공경하여 엄한 아버지같이 하고 (형은) 그를 보호하여 갓난아이같이 하니 형제의 도리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느니라. 맹자가 말하기를, 배냇웃음 웃는 어린아이라도 그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모르지 않으며, 그가 자라기에 이르러서는 그 형을 공경하기를 모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보다시피 원문에는 '동기지인(同氣之人)'으로 되어 있는 부분을 '동기간(同氣間)'으로 고쳐서 문항 지문에 실어놓았다는 점이 확인됩니다. 이런 방식은 이미 여러번 소개된 바 있으므로 그렇게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학술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기는 합니다. 교과서에서 다룰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라면 학생들이 저 기출지문을 가지고서 해당 어휘가 등장하는 원문이라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제푸는 데야 지장이 없겠지만 분명 학문적으로 잘못된 오류가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이렇게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학평 문항을 가지고 분석을 가하는 이유는,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그 본수능 기출문항에서 이와 유사한 오기를 반복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해당 문항의 사진을 다시 싣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지문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원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위에 제가 인용했던 두 문헌, 즉 12년도 학평과 15년도 학평의 지문들을 뒤섞어서 재구성한 것은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 해당 원문을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長慈幼, 幼敬長然後, 無侮少陵長之弊, 而人道正矣. 而況兄弟, 同氣之人, 骨肉至親, 尤當友愛, 不可藏怒宿怨, 以敗天常也. 昔者, 司馬光與其兄伯康友愛尤篤, 敬之如嚴父, 保之如嬰兒, 兄弟之道當如是也. 孟子曰: 孩提之童, 無不知愛其親, 及其長也, 無不知敬其兄也.
어른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어른을 공경한 연후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고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져서 사람의 도리가 바로 설 것이라. 하물며 형제는 (부모의) 기운을 함께 받아 태어난 사람이라 뼈와 살이 같은 지극히 가까운 육친이니 더욱 마땅히 '우애'하여야 할 것이요 성냄을 숨기거나 묵은 원망을 지녀서 천륜을 깨뜨려서는 아니 될 것이라. 옛날에 사마광이 그 형 백강과 더불어 우애가 더욱 두터워서, 공경하기는 엄한 아버지같이 하고 보호하기는 갓난아이같이 하니 형제의 도리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느니라. 맹자가 말하기를, 배냇웃음 웃는 어린아이라도 그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모르지 않으며, 그가 자라기에 이르러서는 그 형을 공경하기를 모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상 『동몽선습』 중)


兄弟姊妹, 同氣而生. 兄友弟恭, 不敢怨怒. 骨肉雖分, 本生一氣; 形體雖異, 素受一血. 比之於木, 同根異枝; 比之於水, 同源異流. 兄弟怡怡, 行則雁行. 寢則連衾, 食則同牀.
형제와 자매는 한 기운을 받고 태어났으니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히 하여 감히 원망하거나 성내지 말아야 한다. 뼈와 살은 비록 나누어졌으나 본래 한 기운에서 태어났으며, 형체는 비록 다르나 본래 한 핏줄을 받았느니라.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는 같고 가지는 다른 것과 같고, 물에 비하면 근원은 같고 흐름은 다른 것과 같다. 형제는 서로 화합하여 길을 갈 때는 기러기 떼처럼 나란히 가라. 잠잘 때에는 이불을 나란히 덮고 밥먹을 때에는 밥상을 함께하라. (이상 『사자소학』 중)



위에서 붉게 표시한 내용들을 합쳐보면 문항지문 (나)와 대강 9할 이상의 일치율을 보인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추론한 대로 이 문항이 합성지문이 맞다면, 원문상에 '동기간'이라는 개념어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위에서 말했듯이 일차적인 사실관계[fact]부터 어긋난 학문적 오류가 퍼져나가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여기서 저에게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이 두 가지가 가능할 것 같군요.


첫째, 문항지문에는 '제(悌)'라는 한자어가 표기되어 있는데 제가 인용한 원문들에는 그런 글자가 없으니까 출처를 잘못 찾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앞서 15년 학평에서 원전에 '동기지인(同氣之人)'으로 되어 있는 부분을 '동기간(同氣間)'으로 고쳐서 지문에 넣은 사례가 있었듯이, 위 본수능 문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출제자가 지문을 인용할 때 원전에 없는 한자어를 넣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제 추론대로 이 문항지문이 두 원전의 내용을 합성한 것이라면, 지문에서 '공경'에 해당하는 원래의 한자어는 '경(敬)'일 것입니다.


둘째, 제가 붉게 표시한 내용들은 너무 흩어져 있으니까, 설마 문항지문이 저 조각들을 합성했다고 봐야 할 정도로 원문 훼손을 심하게 했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출제자가 (가)지문도 원문을 자유롭게 뜯어서 재배치하고 고쳤다는 점을 보면 (나)지문도 얼마든지 그렇게 재구성했을 가능성을 부정하기가 어렵다고 저는 말하겠습니다. 아래에 (가)지문의 출전도 밝혀둡니다.


子張問仁於孔子. 孔子曰: "能行五者於天下, 爲仁矣." "請問之." 曰: "恭、寬、信、敏、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자장이 공자께 인(仁)을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능히 천하에 다섯 가지를 행할 수 있으면 인을 실행하는 셈이다." "청컨대 그것에 대해 여쭙겠나이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공손함, 관대함, 믿음직함, 민첩함, 은혜로움이다. 공손하면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관대하면 많은 사람들을 얻을 것이고, 믿음직하면 사람들이 신임해줄 것이고, 민첩하면 공적이 있을 것이고, 은혜로우면 타인을 거뜬히 부릴 수 있게 된다." (이상 『논어』「양화」 17-6)



원문과 문항지문(가)를 대조해 보면 이 문항의 출제자는 자유롭게 원문의 앞뒤 문구를 재배치하고 변형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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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통해 2015학년도 본수능 생윤 7번 문항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몇가지의 비판거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우선 인용문 사용에 있어 학술적 엄밀성이 지적될 수 있습니다. 교육과정상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학술개념어를 쓸 적에 그 어휘가 없는 원문을 인용하면서 있는 것처럼 출제한다든가, 서로 다른 책이나 사상가를 합성해서 한 사상인 것처럼 제시한다든가 하는 일은 학술적 오류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만드는 일입니다.


원문을 추적하면서 우리가 확인했듯이 지문(나)는 하나의 지문에 두 사상가의 서로 다른 글이 혼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만약 제 추론이 맞다면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의 지문에서 두 사상가의 주장을 섞어놓는 일은 허용되기 어렵다고 보입니다.


설령 제 추론을 뒤집을 수 있는 반증사례가 제시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나)사상가는 어쨌든 (가)사상가와는 다를 테니까요. 공자가 과연 ㄴ, ㄷ, ㄹ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우애(友愛)'와 결부지어 긍정한 적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내용상'으로, '해석'을 그렇게 할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내용상' 해석으로 빠지려면 애초에 문항에서 '빈칸'에 들어갈 개념을 정확하게 요구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원문에 즉한 빈칸을 뚫어놓았다는 것은 이미 '해석'의 자유를 없애겠다고 선포한 셈이기에 그렇습니다. '내용상' 해석을 허용한다면 빈칸에 들어갈 개념이 한두가지가 아니게 되고 복수정답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빈칸 문항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공자가 그 빈칸에 들어갈 개념어인 '우애'와 뭘 결부지어서 언급하는 일은 아마 텍스트적 근거를 찾기가 어려울 겁니다. 제가 알기로 '友愛'라는 개념 자체가 한나라 때 들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물론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헌에서 반증사례를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저는 환영입니다. 한편, '효제' 사상을 가지고 '우애' 내용으로 볼 수 있다고 반론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이 문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왜냐하면 문항 지문에서 이미 '悌'를 '공경'으로 해석하겠다고 못박고 있으며, 출처로 여겨지는 『동몽선습』에서 '우애'와 '공경'을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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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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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힉스 | 작성시간 17.07.31 '유교 입장'에서 (나)에 나오는 '우애'를 해결하면 됩니다. ㄴ, ㄷ, ㄹ은 '유교 입장'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네요(반드시 공자가 그렇게 말한 사실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유교 입장에 부합하면 됩니다.).

    아무튼 '동기간'이라는 용어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는 건 의외입니다. 생각지 못한 지적이네요. 그리고 출처에 관한 나머지 내용도 참 좋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한삶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31 본수능 지문에 쓰인 '동기간'은 별다른 기호가 없으니 '형제'를 일상어로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15년 학평 지문처럼 대괄호[]에 원어를 병기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인가요? 저는 대괄호가 쓰이면 원문상의 개념을 밝히는 경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보니까 12년 학평 지문은 번역문도 무리가 없고 대괄호 속 원어도 원문에 맞게 표기되어 있네요.)
  • 답댓글 작성자힉스 | 작성시간 17.07.31 한삶 그렇군요. 저는 교육청 문제는 잘 안 보는 사람이라서...예컨대, '동기간'이라고 썼는데 한자 병기하는 경우 ( )를 쓰고, 뜻풀이를 썼는데 원문을 병기할 필요가 있는 경우 [ ]를 씁니다. 후자의 경우 원전에 사용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同氣間'이라는 용어가 원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사한 제시문을 서로 베끼고 있는 상황에서 님이 말한 대로 '동기간'이라는 용어가 원전에 안 나오는 것 같다면 문제가 있네요.

    학문적으로는 당연히 용납되지 않는 태도입니다만, 평가원도 저런 짓을 하고 있는데 교육청 정도라면 뭐, 하는 생각도 드네요. 오류 아닌 것만 해도 어딥니까?
  • 답댓글 작성자한삶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31 힉스 역시 출제할 때도 대괄호는 원문에 있는 내용을 쓰는 기호가 맞는 거였군요. 저런 문제점은 비단 기출문항 뿐 아니라 교과서에서도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교과서 관련 문제는 곧 개정된 교과서 나올테니 그때 가서 얘기해보겠습니다
  • 작성자한삶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9.16 당시 평가원 답변서를 보니 빈칸에 들어갈 말을 평가원은 '형우제공'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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