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정법은 인간 이성의 명령인 자연법에 근거하고, 자연법은 신의 명령인 영원법에 근거한다.’(윤리와사상 수능특강 p.97)
여기서 ‘인간 이성의 명령인 자연법’은 오류입니다. 오류인 이유는 제가 평가원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시면 아실 거고요(파일 첨부함). 이것에 대해 도덕윤리교사 카페의 어떤 선생님께서 EBS 측에 질의를 한 것으로 압니다. EBS 측의 답변도 카페 게시판에 올려주셨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EBS 측의 답변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학술적 답변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마지막에 강원대 철학과 이진남 교수에게 SOS를 친 것 같았고, 이 교수의 답변 내용 역시 잘 보았습니다. 이제 그게 왜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바로 그 이진남 교수의 논문으로 지적을 하겠습니다.
1. 이진남 교수 : “질문자께서 계속 틀렸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부분은 자연법과 관련해서 ‘이성’과 ‘인간 이성’이 다르다는 점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질문자께서는 신학대전에서 ‘공유한 영원한 이성’과 ‘인간 이성’을 아퀴나스가 예를 들면서까지 구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학대전의 어느 부분(정확히 몇 문제, 몇 절, 어느 부분)에서 아퀴나스가 그러한 주장을 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직 출판은 안 되었지만 제가 신학대전 법률편(ST. I-II, Q.90~Q.97)의 번역(라틴어에서 우리말로)을 이미 마친 상태인데 저는 그러한 구절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한 구절은 다음에 나옵니다.(“신학대전” 영문판 기준)
① Reply to Objection 2: The eternal law cannot err, but human reason can. Consequently the will that abides by human reason, is not always right, nor is it always in accord with the eternal law. 1526
② The human reason cannot have a full participation of the dictate of the Divine Reason, but according to its own mode, and imperfectly. 2272
③ Reply to Objection 1: The natural law is a participation of the eternal law, as stated above (Q[91], A[2]), and therefore endures without change, owing to the unchangeableness and perfection of the Divine Reason, the Author of nature. But the reason of man is changeable and imperfect: wherefore his law is subject to change. 2331
이 대목을 보면 ‘(신적 이성의 명령인) 영원법과 달리, 인간 이성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영원법에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①)’, ‘인간 이성은 신적 이성의 명령에 부분적으로, 불완전하게만 참여할 수 있다.(②)’, ‘신적 이성은 완전하지만, 인간 이성은 가변적이고 불완전하다.(③)’라고 하고 있습니다. 신적 이성과 인간 이성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여기서 미리 두 가지를 언급해두겠습니다. 첫째, 자연법은 영원법과 항상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일까요? 둘째, 인간 이성과 신적 이성이 차이가 없는 것이라면(구분되지 않는 것이라면), 인간 이성이 영원법에 항상 일치하지는 않은 것처럼, 신적 이성 역시 영원법에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 것일까요? 왜 이런 언급을 해두는지, 이 교수는 느끼는 바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2. 이진남 교수 : “법은 이성의 명령인데, 그 법이 어떤 종류인가에 따라 그 이성의 종류도 달라집니다. 영원법의 경우 신적 이성의 명령이 되고, 자연법의 경우 인간 이성의 명령이 됩니다.(이하는 무의미해서 생략. 쓸데없는 설명이 많았음. 즉, 우리도 다 아는 내용을 길게 답변하고 있음).”
이러한 이진남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진남 교수의 논문으로 대답하겠습니다(관련되는 수많은 문헌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을 동원할 필요 없이, 오직 이 교수의 논문만으로 대답하겠다는 것입니다.)
‘아퀴나스는 신이 명령한 것은 모두 옳다는 말과 자연법에 따르는 모든 행위들은 옳다는 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다.(이진남, ‘아퀴나스에 있어서 법으로부터의 예외’, 철학연구 제31집, p.138)’
‘법에 있어서 이러한 의지의 측면은 법이 곧 신의 명령이라는 성서적 전통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법은 인간을 목적으로 인도하는 신의 이성과 의지의 산물이다. 따라서 아퀴나스에 있어 법은 이성과 의지 모두에 연결된다.(이진남, ‘아퀴나스 자연법 이론의 3요소’, p.101)’
‘크로워에 따르면, (중략) 둘째 의미에 있어서 자연법은 자연 위에 더 높은 원리에서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아퀴나스는 神法이 자연법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 높은 원리, 즉 신에서 나오고 신에 의해 주입되기 때문이다.(위 논문, p.104)’
‘포터는(중략) 즉, 스콜라 철학자들은 자연법을 신적 존재의 선언으로 이해했고, 자연법의 계명들은 신의 명령이나 신의 입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위 논문, p.108)’
‘자연법은 이성적 피조물에 대한 영원법의 참여이기 때문에, 자연법의 주요 세 요소들은 모두 신에게서 나왔다고 보아야 한다.(중략)인간은 이성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신의 지혜, 즉 신의 영원법을 파악할 수 있다.(위 논문, p.109)’
‘영원법은 신의 지혜이고, 자연법은 영원법이 인간에 참여한 것이다.(중략) 이성은 자연법의 인식론적 조건이다. 이성은 자연법의 일반원리와 계명들을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위 논문, p.112)’
‘아퀴나스가 법을 정의 내릴 때 제시한 법의 네 가지 구성요소들 중 하나는 권위다. 자연법은 신법에서 나온다. 신의 의지는 자연법에 있어서 능동인이다. 인간 세상의 권위를 통해 실현되는 인간의 의지는 자연법을 실제상황에 적용하는 과정에 참여한다.(중략)아퀴나스의 이러한 생각은 모든 법은 입법자의 이성과 의지에서 나온다는 아퀴나스의 언급에서도 반영된다.(위 논문, p.113)’
‘이 말은 자연법의 저자가 있음을 정확히 명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중략)아퀴나스의 자연법은 특정한 작자에 의해 인간에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아퀴나스의 자연법 개념은 키케로와는 달리 인간에게 만들어준 작자가 있고 그가 神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진남, ‘자연법과 생명윤리’, p.180)’
‘인간은 영원법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중략)따라서 토마스는 자연법의 제1계명이 인간에게만 고유한 인식의 방식 혹은 동물에게도 공통적인 행위와 감성의 방식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영원법에 참여한다고 말한다.(위 논문, p.183)’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법의 정의를 내린다. 그것은 “공동선을 위해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에 의해 공포된 이성의 명령”이다.(이진남, ‘법과 공동선’, p.103)’
‘자파는(중략) 자연법의 경우에 공동체의 책임자는 神에, 공포는 섭리에 해당된다고 말한다.(위 논문, p.105)’
‘인정법은 국가의 공동선을 위해 질서 지어진 것(위 논문, p.110)’
‘자연법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신이 존재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법은 신에 의해 주어졌고,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이진남, ‘토마스주의 유신론적 자연법 윤리에 대한 변호’, p.248)’
이상에서 보듯이, 이진남 교수는 자기 논문들에서 ‘자연법의 제정주체는 神’이라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퀴나스는 ‘법은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에 의해 공포된 이성의 명령’이라고 하므로, 자연법 역시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에 의해 공포된 이성의 명령’일 것입니다. 자연법의 경우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는 바로 神이고, 그 공동체는 아마도 ‘우주(자연)’가 될 것이며, 따라서 자연법을 공포한 자 역시 神이 되고, 자연법은 곧 ‘신적 이성의 명령’이 됩니다.
이처럼 자연법은 ‘신적 이성의 명령’이라고 이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데 반하여, 자연법을 ‘인간 이성의 명령’이라고 한 대목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는 하지도 않았던 말을, EBS 연계교재 오류를 지적하는 분에 대한 답변에서는 갑자기 했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럼 이 교수 입장에 우호적인 이해를 한다는 차원에서, 이제 이 교수가 자신의 논문에서는 하지 않았지만 그 후 더 많은 공부를 해보니 자연법은 ‘신적 이성의 명령일 뿐만 아니라, 인간 이성의 명령이기도 하더라.’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진남 교수가 아퀴나스의 주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증거가 되겠지요. 아퀴나스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법은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에 의한 이성의 명령이다’ → ‘우주(자연)라는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는 神이다.’ → ‘자연법은 우주(자연)라는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인 神에 의해 공포된 신적 이성의 명령이다.’
만일 자연법이 ‘인간 이성의 명령’이기도 하려면, 인간이 ‘우주(자연)라는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이어야 합니다. 이게 벌써 말이 안 된다는 것쯤, 이 교수도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이 교수에게 묻겠습니다. ‘영원법은 신적 이성의 명령이고, 자연법은 인간 이성의 명령이다’라고 했는데, ‘자연법은 인간 이성의 명령’이라는 것은 뭘 근거로 한 말인가요? 아퀴나스가 그렇게 말한 적이 없고, 아퀴나스의 논리를 따라가 보더라도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 없으며, 심지어 이 교수 자신의 논문에서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왜 이 시점에서 갑자기 ‘자연법은 인간 이성의 명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 덧붙이면, 이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인간 이성’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영원법을 인식’, ‘자연법을 인식’, ‘인식조건’, ‘자연법을 파악’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 그대로죠. 즉, ‘자연법은 신적 이성의 명령’이고, 인간은 신이 부여한 이성으로 그 자연법을 파악(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이 왜 인간에게 이성을 부여했을까요? 그 자연법을 ‘인식’하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3. 이진남 교수 : “결국 영원법은 실체적으로는 같은 것이지만, 신 안에 있는 것은 영원법 인간 안에 있는 것은 자연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의 정의를 영원법에 적용하면 법은 신적 이성의 명령이 되는 것이고, 자연법에 적용하면 법은 인간 이성의 명령이 되는 것입니다. (중략-무의미한 내용이라서) 따라서 신을 닮아 지혜롭고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가지는 이성이 명령이 자연법입니다.(중략) 이성적 피조물이 영원한 이성에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참여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답변 내용이 터무니없다는 것은 위에서 이 교수의 논문으로 증명했으므로 여기서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4. 이진남 교수 : “참고적으로 실정법(lex positiva)에는 인정법(lex humana)과 신법(lex divina)이 있는데, 인정법은 인간 이성의 명령이 되고, 신법은 다시 신의 이성의 명령이 됩니다. 아퀴나스에 있어 이성은 신적 이성과 인간 이성으로 나눠지는데, 법이 어떤 법이냐에 따라 그 주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법은 십계명과 같이 인간에게 직접 내린 신의 명령이기 때문에 신적 이성의 명령이 되지만, 자연법은 창조 행위를 통해 신적 이성을 닮게 만들어진 인간 이성이 내린 이성의 명령입니다.”
여기서 이 교수는 친절하게도 ‘인정법은 인간 이성의 명령’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가요? ‘인간 이성의 명령’이라는 표현은 오직 ‘인정법’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말입니다. 자연법이 아니고요. 그런데 위 인용된 글의 말미에서는 다시 느닷없이 ‘자연법은 인간 이성이 내린 이성의 명령’이라고 하고 있네요? 그럼 자연법도 인간 이성의 명령이고, 인정법도 인간 이성의 명령인가요? 그럼 자연법과 인정법은 같은 건가요? 아퀴나스의 다음 글을 봅시다.
I answer that, All law proceeds from the reason and will of the lawgiver; the Divine and natural laws from the reasonable will of God; the human law from the will of man, regulated by reason.
위 대목을 보면 아퀴나스는 ‘모든 법은 법제정자의 이성과 의지에서 나온다’고 하면서, ‘신법과 자연법은 신의 합리적 의지에서, 인간법은 이성에 의해 규율된 인간의 의지에서 나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연법과 인간법을 구분함은 물론, 자연법은 ‘신적 이성에서’ 나오고, 인정법은 ‘인간 이성’에서 나온다고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죠. 이 교수는 이 대목을 못 본 것일까요? 참 이상합니다.
참고로, 십계명은 당연히 신적 이성의 명령입니다. 이 십계명은 그럼 신법일까요, 자연법일까요, 인정법일까요? 이 교수는 ‘영원법은 신적 이성의 명령이고, 자연법은 인간 이성의 명령이다’라고 했으니, 이 교수가 소개한 대로 ‘십계명이 신적 이성의 명령’이라면(저는 십계명이 신적 이성의 명령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자연법은 인간 이성의 명령’이니까 십계명은 자연법이 될 수 없겠죠? 그런데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십계명은 자연법’이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을 보세요.
I answer that, The precepts of the decalogue differ from the other precepts of the Law, in the fact that God Himself is said to have given the precepts of the decalogue;(중략)both kinds of precepts are contained in the precepts of the decalogue;(중략)
Reply to Objection 1: Those two principles are the first general principles of the natural law, and are self-evident to human reason, either through nature or through faith. 2369
‘십계명은 신 자신이 준 것이다.(중략) 십계명의 이 두 원리는 자연법의 첫 번째 일반적인 원리들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이 교수가 말한 바대로 십계명은 ‘신적 이성의 명령’인데, 이것을 아퀴나스는 ‘자연법(의 원리)’이라고 말하고 있네요? 만일 이 교수가 주장하는 바대로 자연법이 ‘인간 이성의 명령’이라면 십계명 역시 ‘인간 이성의 명령’이자 ‘인간이 제정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것쯤 이 교수가 모를 리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명확한 사실을, 심지어 자신의 훌륭한 논문들에서 ‘제대로 한 얘기들’을, 왜 이 교수는 EBS를 위한 답변에서는 곡해하고 있을까요? 무슨 사연이 있을까요?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EBS 측은 오류를 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EBS의 윤리(윤리와사상, 생활과 윤리) 연계교재에 오류가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아서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지경(목불인견)입니다. 이 사실을 EBS 측이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