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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중독증 환자의 병상 일기 2

작성자차대식|작성시간26.06.17|조회수43 목록 댓글 0

몇 년 전에 '미생'이라는 드라마의 배경은 무역상사였다. 그 전설적인 상사맨들이 주인공이었다. 직장인들의 풍경도 참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또 어느 정도 어폐가 있게 마련이다. 직장생활의 본질이 달라진 것이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모두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집안 어른들이나 아니면 다른 어른들로부터도 종종 들었겠지만 '남의 돈 먹기가 쉬운 줄 아니'라는 말 말이다. 삶의 풍경이 전체적으로 한눈에 파악되던 시대에서 시간이 갈수록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변수들에 의해 카오스적으로 얽혀 작동하는 요즘의 세상은 먹사니즘의 영역을 양자역학적 차원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일명 '모자무싸'라는 무협지 같은 드라마를 보고 나니 서사 중독증 환자 앞에 '나도 봐줘. 제법 재미있다고.'라며 꼬리를 치는 미늘 달린 낚시가 어른거린다. 맛보기 화면이 지나가고 결국 덥석 나는 그 미끼를 물고 낚여버린 고기 신세가 되었다. 그 드라마의 제목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다. 참 요즘 드라마들 친절해진 것인지 투명해진 것인지 모르겠다.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세상 세태의 가슴 시린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는 제목이다. 수도권 진입에 성공한 삶?, 그 수도권에서 자가의 꿈을 이룬 사람?, 대기업에서 나이 오십 줄까지 살아남아 부장에서 임원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 안 봐도 이야기의 골격과 근육과 살덩이가 눈에 훤하다. 그래도 내가 쓴 것이 아니니까 서사 중독증 환자는 병상에서 이열치열의 임상 치료에 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야기의 컨베이어는 돌아간다.

대한민국의 직장 풍경과 함께 먹고사는 세계의 질적인 차원의 변화가 생겨난 시기는 언제일까. 아마도 1997년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IMF 이후가 아닐까. 사회적 변화를 추적하는 학제적 영역에 문외한인 나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그 시기를 겪어낼 수밖에 없었고 비교적 실존적인 위기에 맞닥뜨리는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제일은행을 비롯해서 외환은행, 상업은행, 대동은행 등 많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거기에 몸 담고 있던 많은 남녀 가장들이 어떤 나락을 경험했던가를 듣고 보아서 어렴풋이 알고 있다. 개인 자영업자들이 몰락한 상황들은 지금도 일종의 원형적 체험처럼 떠돌고 있다. IMF는 그렇게 우리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긴 채 어떤 사회 정치적 정변 못지않게 기억되고 있다. 2008년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여파가 또 한 번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었고 그 후로도 수시로 발생하는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어 왔다. 즉, 먹사니즘의 생태계는 여전히 치열하게 작동 중이다.

그러나 한 번 달라진 세상은 절대로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고용시장은 세계화, 유연화라는 구호와 명목으로 세분화되어 노동자의 성격도 인도의 카스트 제도 못지않은 복잡함으로 분기되어 버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육아 휴직과 경력 단절 등의 요소들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의 엄청난 폭증과 질적 변화들. 이제 동질적인 노동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외쳤던 노동운동가들이 와서 지금의 노동시장을 들여다보고 세상을 들여다보면 빛의 스펙트럼처럼 분광되어 있는 노동의 세계, 먹사니즘의 현실을 목도하고 전율하게 될 것이다. 이제 AI가 대체할 수많은 노동의 양상들과 심지어 근육노동과 서비스 영역의 노동 등을 생각할 때 아찔할 뿐이다.

근대 산업사회의 기획자들에게 의해서 입안되었던 보건, 교육, 복지 등의 시스템들이 이제 근본적으로 붕괴되거나 질적으로 다른 성격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목도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나 하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국가에 의해서 제공되는 교육 시스템에 잘 적응하면 거의 완전고용에 가깝게 취업이 되고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처럼 농촌에서 힘들게 사는 집의 자제도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아파트를 사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던 시절에서 이제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더 이상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교육 현장은 그 기본적인 신뢰를 상실해 버렸고 부모가 가진 것을 대물림하듯 이어주는 통로로만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최근의 '참교육'이라는 드라마가 아닐까. '스카이 캐슬'보다도 더 나간 버전으로 돌아온 유사한 상황들에 대한 다소 과장되었지만 나름대로 핍진한 진실을 담고 있는 세태 반영의 한 자료가 아닐까.

서론이 길었다. 김 부장은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을 대표하는 하나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고지식하고 일중독증에 사로잡힌 채 살았고 가족을 건사하고 아이 대학 보내고 중형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직장인들의 자화상 말이다. 주식 시장에서 부호화되어 오고 가는 숫자들의 움직임이 사람들의 실물자산에 쓰나미와 같은 영향을 몰고 오는 원리를 알지도 못하고 일하고 월급날이면 꽂히는 월급이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믿고 열심히 살아가는 직장인인 것이다. 부동산 찬스로 수십 억의 차익이 생기면 호봉제에 의해서 착실하게 직장 생활을 한 20년 30년의 세월에서 얻은 소득을 순식간에 우습게 만드는 마법을 보고는 바보처럼 웃고 마는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 우리 김 부장은 있다. 오십이 넘어가면 임원이 되거나 퇴사해야 할 순간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 어느 날 책상이 치워지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발령이 나고 모욕을 받거나 보상을 받고 나오면 살아가야 할 장수시대가 축복이 아닐 수도 있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벼랑으로 내몬 적이 있을까.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희생한 적이 있을까. 이 드라마는 가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직장 동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직장 선후배, 경쟁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가. 누구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가끔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자원을 밑 빠진 독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반도체의 호황이 끝나고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지나 인간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게 되면 우리는 그 인공지능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우리의 책상을 빼버릴까. 아니면 인공지능이 우리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평화로운 도구로 자리매김될 것인가. 기술에 대한 문제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물어야 할 시간이다. 교황 레오 14세가 내놓은 회칙 '고귀한 인류'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묻고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김 부장의 아들 수겸이가 살아갈 세상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유행가에도 진리가 담겨 있듯이 드라마에도 시대를 꿰뚫는 논쟁의 화두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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