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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중독증 환자의 병상 일기 5

작성자차대식|작성시간26.06.18|조회수22 목록 댓글 0

세상에는 부르지 않아도 오는 것이 있고 원하지 않아도 떠나가는 것들이 있다. 죽음이 전자에 해당하고 젊음이나 시간이 후자에 속하는 것들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도 노인 인구의 증가로 인한 논의들이 많다. 그것도 초고령화사회가 담론의 초점이 된 지가 오래되었다. 출산율의 감소로 인한 절대 인구수의 가파른 감소와 함께 노인인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사회적 생산력과 활력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들을 반복적으로 듣게 된다. 최근에 TV 프로그램에서 90대 중반의 목포 할머니가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하시면서 활기차게 사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을 늙었다고 꺼리는 사람들을 향해서 웃으면서 날린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느그도 늙어야!' 그렇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인간은 태어나서 유년기를 거쳐 청장년기를 살고 종내는 늙은이가 되어 죽는다. 제 아무리 갑부고 권력자고 유명인이고 상관없이 공평하게 주어진 조건값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500인의 동남동녀와 함께 서불을 파견했었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진시황조차 죽음을 넘어서지 못하고 죽었다.

파시즘 하의 독일의 절멸 수용소에서 죽어간 것은 타국인이나 다른 인종만이 아니었다. 국가 권력이 타자로 규정한 자국인 장애인이나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않다고 규정된 사람들도 소멸의 대상이 되었다. 온갖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는 이와 비슷한 신체적 심리적 우생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자마이찐의 <우리들>, 영화 <가타카>를 비롯해서 많은 자료들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발상들은 이제 우리 마음에서 영구히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다른 논리적 외피를 입고 변형되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가끔 그것이 궁금하다. 한 번 떠오른 생각은 언제든 다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본 영화 <플랜 75>를 보았다. 시의적절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마>의 문제의식은 클론용으로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것이라면 <플랜 75>는 일종의 국가가 장려하는 생명 단축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국가적인 부양의 부담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생산력이 별로 없는 연령이 줄어듦으로써 통계적인 지표와 수치들이 개선될 수 있는 공리적인 관점의 행복값이 총량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일석 몇 조의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일본에서 노인에 대한 혐오로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살해한 일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노인에 대한 집단적인 살해나 공격은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나 적대감의 표출과 동일한 것이다. 이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이러한 갈등의 극단적인 형태가 이런 사건의 모습을 띨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것이 사회적 숙의를 거친 국가적인 입법과 행정의 차원에서 집행되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원시사회 혹은 채집사회에서 구성원들에게 부담이 되는 노인을 버려두고 떠난다든지 고려장이라는 말의 맥락을 들어보지 못한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인류 사회는 그런 방식의 생존 전략을 극복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도덕적인 감수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인간의 모든 단계는 인간의 실존과 정체성에 연결되어 있다. 어린아이에 대한 학대나 노인에 대한 학대는 모두 약자에 대한 학대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모든 종류의 맥락도 역시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고 달리 취급되어서도 안 된다. 75세가 된 노인들이 건강상의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부양가족 부재나 국가적 복지의 영역에서 제외됨으로써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표면적인 자발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강요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는 현대판 고려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노인의 연륜이 내포하고 있는 삶의 지혜가 더 이상 사회에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잉여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될 때 남는 것은 공리주의적 수리통계적 합리성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인간의 심장에서 울리는 섬세한 떨림이 존재하는 않는다. 인간의 삶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의 도전이자 선물이다.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 온전히 삶을 떠안는 용기에 해당한다. 어떤 순간도 제외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와 함께 노령화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소위 지공남, 지공녀의 문제가 있다. 지하철 운영 적자의 주범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65세가 되면 원하지 않아도 이런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버스를 무료로 탑승할 수 있도록 하는 서울시의회 조례의 대상 연령은 70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에 직면해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목포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느그도 늙어야!' 그렇다. 처음부터 노인은 없다. 오직 인간이 있을 뿐이다. 갓난아이의 얼굴을 한 인간, 그리고 젊은이의 얼굴을 한 인간, 중년의 얼굴을 한 인간, 노인의 얼굴을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 모든 순간의 얼굴이 인간의 표정을 구성하는 것이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나라도 없고 젊은이만의 나라도 없고 장년들만의 나라도 없고 노인들만의 나라도 없다. 모든 연령대의 인간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어떤 플랜을 수립할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60을 코 앞에 두고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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