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 굴은 유다광야의 바위산에 있었습니다. 워낙 지세가 험해 사울의 군사들이 쉽게 추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바위 동굴이라 도망자의 은신처로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어쨌든 간신히 목숨을 구했으나 사울에게 쫓기고 몰린 나머지 이제 다윗의 신세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형국이었습니다. 칠흑같은 좌절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시간은 사울편이고, 자신은 히브리 역사의 대세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느낌에 사로잡히면서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또 지금은 이렇게라도 굴속에 피해 있지만 언제 사울의 군사들이 닥쳐 생명이 위태롭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상한 영혼의 노래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3절). 시인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위급한 지경에 빠져 있고, 얼마나 억울한 사정에 처해 있는지를 처절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 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여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1,2절). 주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4,6,10)고 하셨습니다. 또 시편 51:17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 하시리이다>그랬습니다. 부디 시인처럼 상한 심령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런 자의 기도는 주님이 결코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희망의 노래 사무엘상 22:2를 보면 아둘람 굴에 피신해 있던 당시 다윗에게 어떤 사람들이 몰려왔는지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 이었더라>. 당시 다윗이 대적들 앞에서, 흑암한 굴속에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던 것은 이렇듯 자신을 쳐다보고 자기의 행동 하나하나에 희망을 걸고 삶의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사는 일이 힘들고 낙담이 되어 도피하듯 아둘람의 굴을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에 그냥 주저앉을 수 없는 것은 그 곳에는 차라리 나보다 더 억울하고 더 원통해 하는 사람들이 사백이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기서 그들과 함께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그곳은 더 이상 낙심과 탄식의 음습한 동굴이 아니라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희망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감사의 노래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7절). 사울의 수배를 받아 도망 다니는 신세, 누가 봐도 새벽을 깨우기는커녕(시57:7)도리어 밤의 어두움에 삼킴을 당할 처지에 몰렸음에도 다윗은 이제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몸과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세우자 생에 대한 의지와 기력이 회복되면서 이제 아둘람의 굴은 탄식과 좌절의 자리가 아니라 삶의 새로운 용기를 다지는 희망의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다윗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신뢰와 감사가 솟구쳐 오른 것입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살아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5절). 이는 확실히 감격의 노래입니다. 아프고 가련한 심령들에게 주어지는 위로와 감사로 가득 찬 축복의 선언입니다. 희망의 내일을 함께 여는 노래, 아둘람 굴의 노래가 이 봄 우리 모두의 가슴을 하나님의 기운으로 가득 채우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