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시어머니와며느리

아들 며느리가 보내 준 여행

작성자그레이스 (51년생 용인시 여)|작성시간25.11.23|조회수1,211 목록 댓글 18

 

내가 영국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뭐 그렇게나 가고 싶어 하나?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84년 12월 말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5~6 년 지나, 아이들도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일상생활이 순조로워졌을 즈음

런던이 그리워서 밤마다 영국 가는 꿈을 꿨었다

비행기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는데, 꿈속에서는 차를 타고 또 걸어서 가느라 고생하고

아무리 가 봐도 끝이 없는..... 안타까운 노력을 하다가 잠을 깨 곤 했다

 

그런 내용을 남편에게 푸념하니까, 그러지 말고 다녀오라고 해서

용기를 내서 여권을 만들고 준비를 했으나

중학생 고등학생 있는 엄마가 여행이 무슨 말이냐 싶어서 고민하다가 포기했었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감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영국은 언제나 그리운 곳이 되었던 거다

 

본사 회의가 있어서 한국에 다니러 왔다가 우리 부부를 만난 런던 지사장 부부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 우리가 영국으로 가는 날 같이 갑시다 하는 말에

사양도 안 하고 따라나섰던 게 2006 년 8월이다

김 전무님 부부는 1981년~ 84년 사이에 초임 과장으로 런던에서 함께 근무했고

주말여행은 물론이고 스코틀랜드도 이태리도 같이 여행 다녔고,

남편이 가장 신임하는 직원이어서 시동생 같은.... 가까운 사이였다

 

그 댁에서 일주일 신세 지는 중에,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2박 3일 콘웰도 다녀왔었다

소현 엄마는 백화점과 쇼핑 몰에도 함께 갔었고 매일 나를 에스코트하고 다녔다

 

1 년 후 2007년 봄에 큰아들이 스위스 투자은행에 스카우트되어

싱가포르에서 런던으로 직장을 옮긴 이후로는 아들에게 가서 한 달 있기도 했었고

2008년 여름에는 런던에서 가까운 곳 여행과 12월 한 달은 연말 공연 보러 다니느라 즐거웠다

그렇게 런던은 나에게 꽃피는 봄날 같은 즐거움을 준 곳이다

런던에서 있었던 시기는 모두 내 인생에서 걱정 없고 즐거움만 가득했던 시절이어서

더욱 그리운 곳이 되었을 거다

 

큰아들과 며느리는, 앞으로는 더 여행 가시기 어렵다면서 

50주년 결혼 기념 선물로 영국 여행을 다녀 오시라고 계획을 했었는데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병으로 여행 가는 걸 포기하려는 엄마의 그 마음을 알고

그냥 떠나시라고 등 떠밀듯이, 호텔 결제도 다 했으니 혼자라도 가셔야 한다고 했다

날짜를 절반으로 줄이고 남편 비행기표는 취소하고 떠난 여행이다 

 

2008년 12월 이후, 17년 만에 런던에 도착하고 첫 감정은

낡고 칙칙하다는 느낌보다 수 십 년 만에 고향에 다시 온 뭉클한 기분이었다

 

아들이 예약해 놓은 택시 기사님과 통화하면서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고 

통역 앱이 작동을 안 해서 호텔 프런트에서 기본 단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보증금 100 파운드를 내고, 서류에 사인하고 방을 배정받았다

아들이 일러 준 대로 가방을 8층 방으로 옮겨 준 직원에게 5 파운드 팁을 주고

( 5 파운드 지폐를 20 장 바꾸어 갔는데 그런 용도로 거의 다 썼다)

 

29, 30, 10월 1일 - 3 일, 엄마가 못 미더운 아들은

서울에서 수시로 카톡 문자로 엄마 상황을 체크하고,

히드로 공항에서 콜택시 기사와 연락이 되었느냐 호텔에 도착했냐

다음 날, 가이드가 몇 시에 호텔에 도착할 거라고 또 도착했냐고 확인하고

옆에서 돌보는 듯이 엄마를 든든하게 해 줬다

그게 고마워서 나는 수시로 뭉클하고.

 

런던에서 엄마 혼자 다니기 힘들다고 여행사에 부탁해서 가이드 계약을 해 줬는데

하루 가이드와 운전을 해 줬던 비용이 300 파운드, 이틀이니까 600 파운드다 (팁 포함 120만원 정도)

일행이 4~5 명 되어 나누어 부담하면 큰 액수가 아닌데 혼자 부담하기에는 큰 비용이다

윈저성 갔던 날 

호텔에서 창밖으로 본 풍경 

남편이 여행을 포기해서 넓은 침대를 나혼자 쓰고 

아들 가족이 런던 도착한 이후로는 

8인용 벤츠를 빌려서 함께 타고 구경 다녔고 

40년 전에 살았던 동네에도 갔었다 

1982년 1월 큰아들이 첫 학교 가는 날 집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만 4세 10 개월)

 43년이 지나 나무가 저렇게 컸더라고 (손자 형제가 그 자리에서 비슷하게 ) 

할머니와 손자 손녀들 - 영국 여행 기념으로 

 

 

아들은 엄마를 위해서 비행기 표, 호텔비 말고도

가이드를 계약하고 콜택시를 부르고, 많은 돈을 썼지만, 나는 거의 돈을 안 쓴 여행이 되었다

 

무턱대고 걸어서 가겠다고 나섰다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고

그 길에서 40년 전에 런던에서 친하게 지냈던 지인의 딸을 만나는

드라마 같은 우연이 생기기도 했다

(아래 사진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기가 어른이 되어 추석 연휴에 런던으로 여행 왔다고

나는 그 애가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본 적이 없어서 기억을 못 하는데 

어른들은 얼굴이 안 변하니까 나를 알아 보더라고)

 

여행 가방을 쌀 때는 색조 화장품도, 헤어 드라이기도 두 개나 챙겨 갔는데

10일동안 한 번도 화장을 안 했고, 선 크림을 바르지도 안 았으며,

화사한 치마와 소매가 비치는 스웨트를 입지도 못 했다

여행 가서 그렇게나 안 꾸미고 다닌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거다

(평소에도 꾸미고 다니는 걸 유난히 좋아했던 사람이다 )

 

런던에서 소매치기나 날치기꾼을 조심하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눈길도 안 줬을 차림이었다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여행 기분에서 나오지 못했다

오랫동안 이 행복감에 빠져 있으려고 아침마다 여행 사진을 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그레이스 (51년생 용인시 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1.23 아들과 며느리를 예쁘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작성자흥터길(66)정선.여 | 작성시간 25.11.23 오래도록 여행의행복 간직하며 살아가셔요~~
  • 답댓글 작성자그레이스 (51년생 용인시 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1.24 사는 동안 행복한 기억으로 생각이 날 겁니다
    아들이 결혼하기 전에도 부모님 모시고 여러 번 여행을 다녔지만
    결혼한 이후에 며느리가 임신해서 배가 부를 때인데 보름 휴가가 생겼다고, 부모님과 큰아들 셋이 일본 남쪽으로 여행 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 기억이 세월이 지나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듯이, 이번 여행도 행복한 추억꺼리가 될 거에요
  • 작성자푸른날들 (55년 서울 금천 여) | 작성시간 25.11.24 우리도 어릴때 자식 키우던 곳은 나이가 들어 가보곤 합니다
    영국에서 자식을 키우시고 오랫동안 사셨으니 얼마나 그리웠겠어요
    자식의 효도로 행복한 추억 돌아 보시는 그 기분 영원도록 안 잊쳐질거에요
    행복한 기억 영원히 간직 하시길요
  • 답댓글 작성자그레이스 (51년생 용인시 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1.24 행복한 기억들은,
    가슴 속에 차곡차곡 보물이 쌓여가는 기분이에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