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운 님의 글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댓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저는 다른 분들과 생각이 달라서 욕 먹을 게 뻔하니까
그냥 침묵으로 넘어가자 했습니다
40년 넘는 세월동안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넘치는 효도인데
97세 시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시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요?
70세 넘은 자식 부부의 인생은 희생해도 되는 건가요?
저라면 비용이 많이 드는 재활 병원이 아닌 요양 병원에 모시겠어요
(치료 안하고)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환자가 아닌 상태에서
본인이 원하셔서 요즘의 실버타운 비슷한 요양원에 가셨어요
그 전에 한달 생활비로 300만원 어머니께 드렸는데 그 돈이면 요양원 생활 충분하다고
새로 생긴 요양원이 시설도 좋고 살기에 편하더라고
나는 이제 밥해먹기도 싫다 하시면서
80세에 살던 집 전세금 빼서 막내 아들에게 주고 요양원으로 가셨어요
2012년 11월에 한 달 편찮으시다가 ( 남편의 누나가 간병인 노릇을 했어요) 돌아가셨어요
86세에 돌아가셨으니 요즘의 96세 즈음 될라나요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충분히 효도했으니 더 이상 며느리의 삶을 희생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싶어서 입니다
저는 수시로 죽음을 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어요
아래 글은 어제 블로그에 썼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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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단 한 번도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건 상상이 안 되는 남편은,
휴일에 간단한 드라이브 정도라도 준비 없이 출발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 어린 시절에 일요일 하루 놀러 나가면서
만약에 물가에서 놀 수도 있다고 장화 챙기고, 물에 젖을 거라고 여벌의 옷 챙기고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우산 챙기고
물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일 경우를 대비해서 작은 텐트도 챙기고
그래서 차에 싣고 나가는 짐을 이웃이 보고, 휴가 가냐고 물었었다
평생을 자기가 준비해 놓은 계획표 대로 살아야 마음이 편한 남편은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듯
우리 부부는 자주 그런 내용으로 대화한다.
처음 자가 면역 질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랬고, 치료가 되어가는 중에도
앞으로 남은 수명은 몇 년이라는 말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얘기했었다
22일(금요일) 한 달 만에 신장 내과 의사를 만나고 와서
지난달보다 간수치가 나빠졌다고
스테로이드 약을 지금 한 알에서 한 알 더 늘리는 처방을 받아왔다
(생체 이식 수술 후 먹는 면역 억제 약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안 먹기로 하고 스테로이드 알약을 두 알 먹는 것으로 )
그래서 마음이 좀 복잡한 듯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상황이 달라졌으면 그것에 맞춰 살면 되는 거지 뭐
일상생활은 똑같이 살면 되는 거고, 먹는 것도 달라질 거 없다
싱겁게 먹더라도, 먹고 싶은 음식은 골고루 조금씩 먹는 게 맞다
지금 50대라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오래 사는 걸 목표로 하겠지만
80대에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사는 게 맞다고 했다
만약에 심각한 병에 걸렸더라도 노인은 병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엄마가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신 후로는
남편보다 훨씬 더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았었다
첫아기 낳으러 병원 가기 전 만약에 못 돌아올 경우를 대비해서
안방 정리를 다 해놓고, 가계부와 남은 생활비, 그리고 남기는 편지도 써 놓고 집을 나섰다
평소에도 혹시나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갈 경우를 생각해서
헌 속옷이 아닌 새 속옷으로 바꿔 입고 시장에 갈 정도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았으니
하루하루가 소중해서 더욱 열심히 살았을 거다
갑자기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평소에 내가 누리는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
2020년 1월에 경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병원에 누워서 나의 70년 삶을 필름 돌리듯이 되돌려 보고
이만하면 충분히 누리면서 살았다고,
어렸을 때는 부모님 사랑 많이 받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충분히 행복했다고
그러니 이제 삶을 마무리한다 해도 아쉬움 없다는 마음이었다
퇴원 후 매일 겪는 통증 때문에
나중에는 사고를 가장한 자살도 여러 번 계획했었다
그 게 심한 우울증이었다는 걸
용인으로 이사 와서 주말마다 서울 큰아들 집에 가서
아이들 재롱을 보는 즐거움에 나도 모르게 치유된 이후에
그 해 가을에 겪었던 게 심한 우울증이었구나 알았다
내 아픔을 남편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나 혼자 삭여야 된다고 결심한 것도 우울증의 일종이었던 거다
남편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담담하게 내 의견을 말한다
우리 부부는 (남들과 비교해서) 드물게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잘 살아왔고
전 국민이 가난한 시기에 태어나서 국가가 발전하는 시기에 직접 참여했고
그 혜택도 누렸다
두 아들은 자라면서 부모를 기쁘게 했고,
지금은 우리보다 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무슨 아쉬움이 있겠나
우리에게 앞으로 5년 남았다고 생각하자
5년 후에 죽는다고 가정하고, 남아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잘 쓰자고 했다
서로 더 이해하고, 연민과 사랑으로 아끼면서 살면 된다고
남편은 우리에게 5년 남았다고 생각하고 계획표를 짤 거다
그 후에도 살아있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그레이스 (51년생 용인시 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5.25 new
시댁 형제 중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집에서 책임지라고 해야지요
친정이라도 마찬가지이고요 -
작성자피앙세(62년 전북 남원 여) 작성시간 26.05.25 new
정말 공감가는 글입니다.
병에 휘둘리지 않고 순리대로 살다 가는 것
그저 오늘을 감사하며 사는 삶이 최고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그레이스 (51년생 용인시 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5.25 new
나는 자식들에게도 선언했어요
만약에 암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수술 안하고 항암 치료 안하고 그냥 살 거라고
노인들은 진행도 느려서 천천히 나빠진다 하더군요
그러니 수술하고 치료하느라 병원에 누워서 고생하는 것보다 (끔찍한 재활 치료를 다시 하고싶지 않아요)
남은 나날을 세상 구경하면서 그렇게 살다가 떠나겠다 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유니스( 57년 서울 강남구 여) 작성시간 26.05.25 new
그레이스 (51년생 용인시 여) 저도 연명치료거부 사인 했어요
삶의 구걸 같고
지금처럼 잘살다가 가고싶어요
제 의지대로ㆍ -
답댓글 작성자그레이스 (51년생 용인시 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14 new
유니스( 57년 서울 강남구 여)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말기의 심한 통증 때문에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고통을 모르게 할 수 있으니 죽음을 앞 둔 기간을 편안하게 지내다가 죽을 수 있다고 합니다
펜타닐은 헤로인 보다 100배 센 마약이라는데 의료계에서는 말기 환자에게 본인이 원하면 진통제로 주사 놔 준답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죽을 때도 평화롭게 죽자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