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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도다(시75:7-10)

작성자하늘산소|작성시간26.06.10|조회수7 목록 댓글 0

75편 7절-10절: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또 악인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7절: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세상에서는 쌍방 간에 서로가 법정에서 판가름을 받겠다고 할 때 재판을 받는다. 재판에서 진 사람이 부당하다고 생각이 되면 또 상소를 한다. 이런 와중에 억울한 재판이 있을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죽일 사람이 아닌데도 인간들의 재판을 통해 죄를 둘러쓰고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인간들의 재판은 절대 정확하지 못하다. 그래서 국민들이 사형 제도를 없애자고 떠들면 사형을 안 시키다가 워낙 악행을 하는 자들이 많으면 국민들이 또 다시 사형을 시키자고 들고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재판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없으면 억울해서 못 살 것 같다.

 

성경에 보면 재판은 인간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의 재판장들의 재판은 신중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도를 위한 재판은 성도의 진리를 잡은 양심을 보고 판단을 하신다. 따라서 믿는 우리도 사람의 양심이 진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인지를 판단을 해야지 인간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을 했다가는 큰일 난다. 이렇게 했다가는 하나님 앞에 징벌을 당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세상의 재판은 신앙으로 하는 판단은 아니지만 최고의 기준을 세워야 되겠는데, 이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최고의 도덕성으로 사람을 심사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를 않다. 그래서 같은 죄인데도 어떤 재판관은 벌을 더 주고, 어떤 재판관은 벌을 덜 주고 한다.

 

요즘 많은 사람을 많이 죽인 자가 잡혔는데,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자기 인권을 포기한 거다. 그런데 ‘범죄자의 인권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하나님이냐? 하나님은 이런 자는 죽이라고 한다. 성경에 보면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는 도피성으로 도망을 가게 한다. 도피성으로 도망을 가면 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에 계속 거기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억지로 사람을 죽이면 도피성으로 들어가도 소용이 없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억지로 죽이면 네 스스로가 사람 되기를 포기한 것이니 죽이라고 하신다. 우리는 성경의 원칙을 놓고 일반적인 세상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보는 눈으로 세상적인 죄를 보면 정확하다. 이룰구원의 차원을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 찾기가 쉽다. 그런데 이걸 모르는 사람은 사람의 말에 치우치게 된다. 이러면 일반적으로도 옳은 재판이 안 된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은 그만큼 바르게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게 들어있다.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와 행불행이 재판 속에 들어있는 것이니 함부로 재판을 할 수 없는 거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다. 인간 외에 동식물도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지만 우리 인간보다는 못한 거고, 같이 지음을 받았지만 지은 목적이 다르다. 그래서 같은 피조물이지만 다른 피조물들은 인격을 가진 인간들에게 가치와 평가와 판단적으로 다스림을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인간만이 생활에 건설에 진보 발전을 하고 누림을 갖는다. 초가집보다 양철집, 양철집보다 스레트집, 스레트집보다 벽돌집, 이런 집을 가지고자 한다. 그러나 창조 때의 까치는 나뭇가지로 집을 지었고, 지금도 그렇다. 진보 발전이 없다. 그래도 원망 불평이 없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왜 그렇게 원망 불평이 많은 거냐? 그리고 인간은 도덕성에 양심이 있어서 가치와 판단을 가진다. 인간만이 이것을 안다. 인격의 수치심과 부끄러움과 존귀 영광성과 행복과 비참성을 아는 존재다.

 

하나님의 재판이 왜 절대 정확하냐? 선악과를 따먹은 세상도 선악과를 따먹은 입장에서의 기준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것은 올려주고, 보기에 나쁜 것은 욕을 하고 알아주지 않는다. 세상에도 이런 기준이 있듯이 하나님의 본질에 맞는 것은 높이 올라가고, 맞지 않는 것은 낮아지게 되어 있다. 인간의 원리가 이렇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을 할지라도 자기가 하나님의 본질에 맞지 않으면 올라가지느냐? 못 올라간다. 왜냐? 인간이 지어지기를 하나님의 원리에 맞아야 올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스스로는 못 올라간다. 이게 도덕적인 세계다.

 

신령적으로 높아지면 자동적으로 올라간다. 반대로 땅에서 난 것은 자동적으로 내려간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자동적으로 하늘로 올라가고, 땅으로부터 올라간 것은 아무리 높아도 자동적으로 내려간다. 일반적으로 물속의 물방울은 물 아래에서 물 위로 올라온다. 그러나 물속에 던져진 돌멩이는 아무리 작더라도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런 것처럼 신령성으로 되면 고상한 것이기 때문에 품위가 올라가고, 개같이 살면 품위가 내려간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러쿵저러쿵 판단을 하고 논하면서 재판을 할 수 있느냐? 인간들은 창세 이후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자들이다. 우리에게 성경을 준 것은 ‘하나님의 법에 맞춰라. 그러면 네가 올라간다’ 하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네가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지혜지식을 닮고, 그 품성을 닮으면 올라가게 되어 있다. 올려주기로 되어 있다.

 

불 켜진 등잔은 깔고 앉는 게 아니라 등경 위에 올려놓는다. 깔고 앉는 사람은 없다. 영적인 눈을 가지고 사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으면 이는 ‘등잔불을 깔고 앉은 것과 같아서 네가 손해를 보겠구나. 네가 피해를 당하겠구나’ 이렇게 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이치를 바로 깨닫는 거다. 삶의 이치, 신앙의 이치를 깨닫는 거다.

 

8절: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술을 먹는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에게 뭘 깨닫게 해 주려는 말씀인데, 어떤 큰 사건을 말한다. 즉 앞에서 말한 교만한 자, 거만한 자, 오만한 자들이 특별히 마실 하나님의 진노를 말한다.

 

이 잔을 땅의 모든 악인이 마신다고 했으니 이것은 믿는 자들이고 안 믿는 자들이고 간에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거만하고 오만한 자들은 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된다는 거다. 특별히 믿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거만하고 오만한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나 당신의 백성을 두들겨 팰 때는 안 믿는 사람들은 그냥 포함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누가 억울하냐? 믿는 사람처럼 죄를 짓지 않은 안 믿는 사람이 억울하다. 그러니 믿는 자가 잘 해야 한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여호와의 손은 하나님의 역사를 말한다. 손은 일하는 손이니 하나님의 역사를 말한다. 역사 속에 들어있는 구원역사를 말한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눈에 보이는 세상의 역사에 맞추는 게 아니라 세상역사가 흘러가는 그 속에 우리가 입어야 할 구원도리가 들어 있으니 이 구원역사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가져와서 성도들로 하여금 눈에 안 보이는 면을 깨달게 하신다. 그래서 믿는 우리에게는 눈에 안 보이는 구원역사가 주된 역사다. 즉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닮아나가는 주된 역사를 놓고 이 목적을 위해 눈에 보이는 역사를 껍데기로 둘러씌운 거다.

 

여호와의 손에 술잔이 있다고 하는데, 이 술은 누가 마시느냐? 하나님께서 마시느냐, 모든 악인이 마시느냐? 땅의 모든 악인이 마신다. 그리고 술거품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는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분노가 치밀어 오르실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 자연은총도 베풀고 특수은총도 베풀었는데, 즉 진리말씀을 듣게 했고, 우로지택으로 먹고 마시는 양식을 주었는데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을 도리어 역이용하고, 이방인들과 합세해서 선지자들을 죽이고, 성도들을 박해하고,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지으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무시한 채 인간되기를 포기하고 개처럼 돼지처럼 살기 때문에 분노하시는 거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징계를 하거나 심판을 하실 때 다른 사람을 붙잡아서 역사하기도 하지만 그 당사자를 들어서 그에게 피해가 되게 하는 역사도 있다. 예를 들면 성질이 나쁜 사람은 자기가 화를 내면서 벽에 자기 머리를 들이받는 일이 있다. 이것은 자기의 성격과 성질이 자기를 죽이는 거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자기를 들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막고, 자기가 자기를 들어서 사랑을 못 받고, 자기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욕을 먹거나 미움 받을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잘 살핀다. 진리를 무시하고 말씀을 무시하면 그 자기가 어떻게 되겠느냐? 말씀무시는 바로 자기 자신을 무시하는 거다. 그러니 하나님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어떻게 올려주겠느냐?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뭘 섞었느냐? 이런 것 저런 것, 여러 가지를 합친 거다. 그러니 맛이 어떻게 될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중복적으로 오는 환난이요,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인 환난이다. 성경에 ‘안식일에나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다. 6. 25가 여름에 났는데, 만일 한 겨울에 일어났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얼어 죽었을 거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렇게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거다. 그러니까 계절적으로 여름일 런지, 아니면 겨울일 런지? 그리고 인위적인 환난에 자연적인 환난까지, 그리고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이변이 일어나서 인간이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을 말한다.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찌꺼기까지도 마신다고 했는데, 찌꺼기를 마시려면 흔든 후에 기울여서 마신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이렇다는 거다. 누가 하나님의 이런 고난과 환난과 분노를 마신다고 하느냐? 땅 위에 있는 모든 악인들이 마신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자가 악인이냐? 하나님의 진리말씀을 부정하고 산 자들, 하나님의 성품으로 자라지 않는 자들이 악인이다. 이런 악인은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녀도 세상바람에 잘 불려 다닌다. 즉 세상바람에 잘 불려 다니는 것은 악인이다. 이 사람과 같이 다니는 사람은 이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하나님 앞에는 악인이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자들이 악인이요, 즉 선악과 따먹은 자들도 악인이요, 예수님을 믿을지라도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입지 않는 자들이 악인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닮지 않는 자들, 그리고 성령 훼방자들, 양심에 찔리면서도 그 마음을 짓밟고 죄를 짓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악인이다. 그 다음에 진리운동 복음운동을 방해하는 자들, 세상이 좋아서 세상에 협조 동참한 자들이 악인이다. 통틀어서 인간 자기의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모르고 무시하며 제 멋대로 사는 자들이 악인이다. 이런 자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에 들어간다.

 

9절-10절: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또 악인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을 주고 싶고, 사랑해 주고 싶고, 번창케 해 주고 싶어 하신다. 인간 편에서 보면 야곱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고자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고, 후손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도 했고, 광야에서 훈련을 시키신 후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에게 영능의 실력대로 누림의 축복을 주신다.

 

지금도 성경에 기록된 역사대로 우리들에게도 영적으로 그 역사를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할 마음이 있고, 영원히 찬양을 한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역사를 못 깨달으니 눈에 보이는 것에만 자극이 되고, 이런 것에만 신경을 쓰는 거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 역사를 선포해야 한다. 시편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자신이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을 해서 나온 찬양이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이다.

 

‘또 악인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선포하고 찬양하는 자는 8절의 하나님께서 악인의 뿔을 자르고 의인의 뿔이 높이 들어 올리는 역사를 영의 눈으로 확실히 본 거다.

 

의인의 뿔과 악인의 뿔은 다르다. 악인의 뿔은 선악과 따먹은 지식으로 된 것이고, 육체의 부패성적 소원 목적적으로 된 것이고, 세상적 물질성적 종교적 요소로 된 것이고, 교만과 오만과 패역으로 똘똘 뭉쳐진 뿔이다. 반면에 의인의 뿔은 지식적인 면에서도 영원히 가는 지식이요, 지혜 면에서도 영원히 효력이 있는 지혜요, 도덕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의 도덕성이니, 선도 사랑도 거룩도 진실도 전부가 하나님의 것으로 영원히 효력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능력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다. 뭐가 능력이냐? 무엇이든지 옳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게 능력이 있는 거다.

 

하나님의 것은 지식적인 면에서도 옳음, 지혜적인 면에서도 옳음, 선 사랑 거룩 진실 면에서도 옳음이다. 사랑에도 옳은 사랑이 있다. 세상의 사랑은 하나님 앞에 옳지 못하다. 진리로 되는 사랑이라야 옳은 사랑이다. 영원히 옳은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게 능력이고, 이 주장성은 주권이 있다.

 

의인의 뿔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체화 실상화 된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성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람의 언행심사 전부는 하나님의 것으로 맞춰져 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높이신다. 어느 지역, 어느 나라,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 살던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높이신다. 그러나 타락되고 속화된 세상은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이런 사람을 짓밟고 높이지를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에게 분노하여 심판을 하시는 거다. 그렇다면 현재 자기는 어떤 뿔로 커지고 싶고 높아지고 싶으냐? 커지기는 커지는데 무엇으로 커질 것이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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