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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등산

작성자공부하자|작성시간12.03.08|조회수141 목록 댓글 8

신의 돌기둥, 무등산

“네모퉁이를 반듯하게 깎고 갈아 층층이 쌓아올린 품이 마치 석수장이가 먹줄을 튕겨 다듬어서 포개놓은 듯한 모양이다.” 1574년 무등산 입석대를 처음 본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1533~1592) 선생은 무등산 산행기인 <유서석록(遊瑞石錄)>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이어 “천지개벽의 창세기에 돌이 엉키어 우연히 이렇게도 괴상하게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신공귀장(神工鬼匠)이 조화를 부려 속임수를 다한 것일까. 누가 구워냈으며, 누가 지어부어 만들었는지, 또 누가 갈고 누가 잘라냈단 말인가”라며 입석대의 형성과정을 궁금해 했다.

무등산 천왕봉이 있는 봉우리 좌우에 늘어선 주상절리
왼쪽이 서석대 오른쪽이 입석대

10~18m인 5각·6각 기둥 30여 개가 40여m 늘어서

요즘 무등산을 오르는 이라면 천연기념물인 무등산의 주상절리대가 화산활동의 결과라는 것쯤은 안다. 그렇다면 돌기둥은 어떻게 생겼으며 왜 산꼭대기에 남았을까. 지난 26일 안건상 조선대 과학교육과 교수(암석학)와 함께 무등산에 서 벌어진 일을 더듬어봤다.

서석대 부근의 주상절리(왼쪽), 마치 공룡의 등뼈처럼 돌기둥만 남았다.
입석대(오른쪽), 주상절리가 풍화와 침식을 받아 돌기둥으로 분리돼 쓰러지는 단계를 보여준다.

광주와 화순의 경계인 장불재(해발 900m)에 올라 정상쪽을 바라보니 포근한 흙산의 분위기가 바뀐다. 무등산의 정상인 천왕봉(해발 1187m) 쪽으로 가다 보면 서석대와 입석대가 호위하듯 서 있다. 장불재에서 입석대를 바라보고 산길을 오르다보면 등산로 오른쪽에 누워있는 거대한 돌기둥 무더기를 먼저 만나게 된다. 단면이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이고 길이가 10m에 이르는 돌기둥이 마치 교각이 무너져내린 듯 널부러져 있었다.

장불재에서 바라본 서석대(위), 저녁노을을 받아 수정처럼 반짝인다고 해서
수정병풍이라고도 불린다. 서석대 주상절리 틈에 핀 철쭉(아래)


안 교수는 “미래 입석대의 모습”이라며 “입석대는 돌기둥이 하나씩 무너지며 뒤로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석대(해발 1017m)는 한 면이 1~2m이고 높이가 10~18m인 5각 또는 6각 기둥 30여 개가 동서로 40여m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돌기둥 사이의 벌어진 틈에는 작은 관목이나 이끼가 자라고 있다. 같은 주상절리이지만 서석대(해발 1100m)는 입석대보다 침식이 덜 진행돼, 직경 1~1.5m인 돌기둥이 30m 높이로 촘촘하게 병풍처럼 서 있다. 동서방향으로 늘어선 서석대에 저녁노을이 비치면 수정처럼 반짝인다 해서 ‘수정병풍’이라고도 불린다.


서석대의 까마득한 절벽을 쳐다 보다가, 절벽 틈새에서 불꽃이 일어나듯 핀 철쭉을 발견했다. 안 교수는 “용암이 절벽 높이보다 훨씬 깊게 흘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무등산을 중심으로 직경 약 40㎞ 범위는 주변보다 땅이 꺼진 함몰지대였다. 최근 아이슬란드 화산처럼 얇아진 지각을 찢고 여기저기서 마그마가 분출했고,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가 흘러내렸다. 무등산 정상은 오히려 다른 곳보다 지대가 낮아 화산분출물이 두텁게 쌓인 곳이었다.


무등산의 화산암을 연대측정한 결과 화산활동은 약 4500만~8500만년 전 사이에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공룡시대가 종말을 고한 중생대 말에서 신생대 초까지의 기간이다. 3조각으로 나뉘어 남반구로부터 북상한 한반도는 중생대 말 백악기 때 봉합을 마쳤다. 그러나 뒤이어 북상한 인도대륙이 아시아와 충돌해 히말라야 산맥이 형성되고, 그 여파로 동해가 열리고 태백산맥이 솟는 등 지각변동이 끊이지 않았다. 무등산은 그런 한반도 탄생과 성장에 따른 산통과 성장통을 고스란히 겪었다.

침식을 견디고 우뚝 살아남은 이유는 두 가지

윤성효 부산대 과학교육학부 교수(화산학)는 백악기 말 아직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나가기 전에 옛 태평양판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면서 한반도는 현재의 일본처럼 대륙이동의 직접영향권에 놓여있었다고 설명했다. 격렬한 화산활동이 부산-대구 일대와 함께 영동-광주에 이르는 길이 230㎞, 평균 폭 30㎞의 쐐기형 함몰지대에서 벌어졌다. 이 가운데 무등산은 직경 40㎞의 광주함몰체의 중심으로서, 화산분출로 형성된 화구호인 칼데라의 상부와 외곽이 모두 침식돼 사라지고 칼데라 안에 쌓였던 화산암이 당시 화산분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등산이 침식을 견디고 우뚝 살아남은 이유는 무얼까. 안건상 교수는 무등산의 해발고도 400m 이상을 이루는 석영안산암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해양지각이 대륙 밑으로 파고들 때 생기는 석영안산암은 규암(차돌)처럼 이산화규소 성분이 많아 단단하다.

무등산 주변에는 안산암과 화강암이 분포하는데, 이들은 석영안산암보다 약해 상대적으로 먼저 침식된다. 예컨대 무등산 북사면의 원효계곡은 안산암보다 무른 화강암으로 돼 있는데, 쉽게 침식돼 완만한 지형에 맑은 물이 흐르는 지형이 형성됐다. 또 다른 이유는 화산분출의 영향이다. 화산활동이 끝나자 석영안산암으로 이뤄진 화산체가 용암이 흘러나간 빈 공간으로 무너져내려 두껍게 쌓여, 이후의 풍화와 침식을 견딜 수 있었다. 무등산엔 9천만년의 풍상을 겪고도 석영안산암이 아직 600m 깊이로 남아있다.


너덜은 주상절리의 미래상이다. 무등산의 너덜은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의 흔적을 담고 있다. 서사면에 발달한 무등산 최대의 덕산너덜은 동화사터에서 바람재와 토끼등 사이에 길이 600m, 최대 폭 250m 규모로 펼쳐져 있다. 안 교수는 “최근 빙하기에 형성된 대구 비슬산이나 밀양 만어산 암괴류와 달리 훨씬 오래 전인 중생대부터 주상절리가 절벽에서 떨어져나와 붕괴되는 과정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어 매우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덕산너덜 절벽에서 떨어진 주상절리가 풍화 침식된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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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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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공부하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3.10 네 감사합니다.
  • 작성자둥이부 | 작성시간 12.03.12 작년 봄에 다녀왔는데 그림으로 보니 새롭네요
  • 답댓글 작성자공부하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3.13 네 감사합니다.
  • 작성자마음바다 | 작성시간 12.04.20 함,가보고 싶은 산이기도 헌데여~
    이렇게 나마... 잘,보구갑니다.
    고맙습니다.님!
  • 답댓글 작성자공부하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4.30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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