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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피는 마을

작성자산마을풍경|작성시간21.08.01|조회수37 목록 댓글 0

감꽃 피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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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래

 

 

5월이면 집 주변엔 온통 하얗게 감꽃이 내려앉았다. 숫된 동네 아이들과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걸기도 하고 감꽃을 한주먹씩 입에 털어 넣기도 했었다. 유년 시절 감꽃은 좋은 장난감이었고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아주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싱그럽고 가만한 봄 밤에 주렁주렁 꽃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은은하게 달빛에 젖은 풍경은 너무도 질박하고 그윽했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유난히 감나무가 많았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집 둘레에 30여 그루가 있었다. 지금처럼 감나무를 전지하고 잘 가꾸던 시절이 아니어서 그냥 방치하다시피 하며 키웠다. 감나무는 키가 큰 것은 대략 20m나 되고 덩치 또한 엄청나게 커서 감 수확량도 많았다. 가을이면 집안은 감으로 충만했다. 생감, 홍시, 곶감 그야말로 감 풍년이었다. 감은 대부분 병충해가 없어서 잘 돌보지 않아도 거의 매년 풍작이었다. 감에도 물감, 접시감, 골감, 종감, 둥시감 등 종류도 다양하였는데 우리 집은 주로 물감과 접시감 이었다. 가을 소풍 때는 침감을 싸가지고 갔다. 침감은 생감을 더운 소금물에 3~4일 우려내면 신기하게도 떫은맛은 사라지고 단맛이 살아나는데 싱싱함은 그대로였다.

붉은 생감을 단지 속에 차곡차곡 넣고 카바이드(탄화갈슘)를 수건으로 싸서 단지 가운데 넣어두고 2~3일이 지나면 감쪽같이 홍시가 만들어졌다. 어머니와 큰 형수님은 홍시를 단양 시장에 내다 팔았다. 시장까지 10리도 넘는 거리였지만 하루에 2~3번씩 감을 이고 가서 팔았다. 얼마나 신산하셨을까?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감을 팔아서 생긴 수입도 아마 상당했을 것이다. 이 돈으로 우리들의 수업료를 내고 여러 가지 겨울 준비용 생활용품도 샀다. 감을 수확할 때는 가을 추수기와 겹치기 때문에 어른들은 더욱더 바빴다. 감을 본격적으로 수확할 때는 바쁘기도 하지만 나무가 높아서 감을 따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나무에 잘 오르는 인부를 구해서 감을 따곤 하였다. 우리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님들의 일손을 도왔다. 주로 작은 감나무의 감을 땄는데 긴 대나무 장대로 감을 따는 일은 고개도 아프고 팔도 아파서 무척 힘들다. 나무에 올라가서 따는 경우에는 나무에서 떨어질까 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어머니는 낮에는 하루 내 시장에 감을 내다 팔고 밤에는 곶감을 만들기 위해 이슥토록 감을 깎으셨다. 오늘은 어머니의 고단한 어깨가 자꾸 감친다. 깨진 감은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냥 넓적하게 썰어서 말렸다. 집 앞마당과 지붕 위, 뒤 곁에 광주리나 발을 펴 놓고 감을 널어 말렸다. 홍시도 맛있었지만 말랑말랑하게 숙성된 햇곶감을 먹으면 훨씬 당도가 높고 쫀득한 식감이 좋았다. 가을에는 감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어머니는 겨울에 삼촌이나 집안 어른들이 오시면 정성으로 말린 곶감을 작은 소반에 담아 내놓으셨다. 곶감은 고구마와 함께 겨울철 우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거리였다. 곶감으로 설 명절에 수정과를 담기도 하고 말린 감 껍질은 가을걷이와 탈곡이 끝나면 시루떡을 해 먹었는데 아주 감칠맛이 있었다. 감꽃을 주워 먹으며 즐거워했던 어린 시절을 소환하며 조용히 시 한 편을 묵독해 본다.

 

감꽃

 

 

 

밝은 햇빛 속에

또록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아이들 두셋이 짚오리에

타래타래 감꽃을 엮어 목걸이를 꿰면서

돌중 흉내를 내고 있다.

감꽃 속에 까치발 뒤꿈치도 묻히는 게 보이면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도

크림색 밝은 향기에 실리면서

오월의 햇빛 속에

또록또록 눈을 뜬 감꽃이지고 있다.

감꽃 줍는 애들 곁에서

하나 둘 나도 감꽃을 주우면서

금목걸이를 목에 두를까금

팔찌를 두를까

능구렁이 같은 나의 어두운 노래끝도

실리면서밝은 햇빛 속에

또록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송수권의 감꽃 전문>

 

내가 ‘감꽃 피는 마을’을 떠난 것은 1978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해 나는 공부를 한다며 객지로 떠났었다. 어언 40년 넘었다. 몇 해 전 가을 어느 날 생파 같이 친구로부터 기별이 왔다. 고향 ‘금수산’ 아래서 “감골단풍축제”를 한다는 전갈이다.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갔었다. 월악산 국립공원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금수산은 예로부터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산이다. 조선 성리학의 거두 이황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임 중이던 어느 가을날 ‘금수산’을 둘러보시고 비경과 단풍이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금수산(錦繡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니, 단풍이 참으로 얼마나 고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단풍과 감이 무르익을 무렵인 10월 중순에 축제가 열린다. 단풍은 10월 초가 되면 산 정상에서부터 서서히 아래도 내려오는데 10월 중순이 되면 절정에 이른다.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과 가을의 서정을 대표하는 감나무의 멋진 협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산 입구 넓은 주차장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아침부터 온 동네가 다 시끌벅적하다. 감, 대추, 고구마와 말린 산나물 등의 특산물과 메밀 부침개, 장터국밥, 손 두부, 전통 막걸리 등의 먹거리 시장이 열리고, 특설 무대 위에서는 대중 가수들이 멋진 가요 쇼가 펼쳐진다. 금수산 등반 대회도 함께 열리는데 우승자에게는 푸짐한 경품을 주었다. 축제 때는 제천, 단양, 풍기 등 인근 지역 사람은 물론 ‘금수산’을 사랑하는 전국의 많은 등산객들이 참여하여 함께 어우러져 축제를 즐긴다.

축제장을 올라가는 길 양옆으론 감나무들이 줄 서 있는데 감이 아주 덜퍽지다. 시붉은 노을빛의 감나무를 보니 가을이 더욱 실감 났다. 감 골에 단풍까지 더해지니 가을이 더욱더 넉넉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축제장은 해발 고도가 제법 높은 편이라서 조망이 뛰어나다. 아래쪽으로는 넓은 황금 들판이 펼쳐지고 잔잔한 산 물결과 함께 소백산 비로봉이 아슥하게 눈에 들어온다. 쪽빛의 맑은 남한강 물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주변에 있는 수풀들도 모두 고운 빛으로 채색되어 가을의 운치를 돋운다. 올가을에도 ‘감꽃 피는 마을’에서 “감골단풍축제”가 멋지게 펼쳐질 것이다. 내 유년의 꿈 밭에 가서 감도 따고 단풍놀이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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