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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41 : 유방과 번쾌1

작성자느랑골|작성시간22.04.07|조회수14 목록 댓글 1

*列國誌 41 : 劉邦과 번쾌 1

진시황이 죽고 호해가 황제로 등극했을 무렵, 패현(沛縣)에는 유방(劉邦)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유방은 어려서부터 무술에 능하여 사상(泗上)이라는 마을에 정장 (亭長: 洞長格)이 되기는 하였으나, 본시 벼슬에는 욕심이 없어 낮이나 밤이나 술과 계집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유방은 본시 체구도 장대한데다가 성품도 활달하고 인자하여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특성을 가지고도 있었지만, 얼굴은 용(龍)같이 특이하게 생겼다. 게다가 왼쪽 넓적다리에는 72개의 점이 있어, 관상가(觀相家)들은 그를
<후일 큰 인물이 될 사람> 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방 자신은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말을 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매일 같이 술과 계집만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니, 그를 기대를 가지고 보아오던 사람들조차 실망을 금치 못하면서 차차 그를 <천하의 난봉꾼>으로 손가락질하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그 지방에는 여문 (呂文)이라는 60객 도학자가 있었다. 여문은 일반 학문에도 해박했지만, 특히 관상학에도 조예(造詣)가 깊어서 근방에서는 그를 따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여문이 어느 날 술집 앞을 지나다가 그곳에 앉아 술을 마시던 유방의 관상을 보고 첫눈에 혹해 버렸다. 그리하여 생면부지의 유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내가 자네에게 술을 한잔 대접하고 싶으니, 나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지 않겠나?" 유방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노인장께서는 무슨 연유로 저에게 술을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이 사람아! 늙은이가 술을 한 잔 대접하겠다는 데 무슨 말이 많은가!" "알겠습니다. 저는 워낙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놈이라, 술을 주신다면 무조건 따라가겠습니다."

여문은 유방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술잔을 나누는데, 유방의 얼굴은 볼수록 제왕지상(帝王之相)이 분명하였다. 이에 여문은 내심 굳게 결심한 바가 있어서 안방으로 들어가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마누라, 지금 사랑방에 와 있는 젊은 청년과 우리 집 큰딸 아이를 두말없이 결혼시켜야 하겠소." 마누라는 너무도 뜻밖의 말에 기절초풍할 듯이 놀란다. "영감이 정신이 돌아버린 모양이구려. 그 아이는 이미 현령(縣令) 에게 주기로 약속이 되어있지 않소? 그런데 어떻게 오늘 처음 보는 낯선 청년과 결혼을 시키겠다는 말씀이오?" "그런 약속이야 파기해 버리면 그만 아니겠나?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결정할 테니, 마누라는 나만 믿고 있어요."

그래도 마누라는 화를 벌컥 내면서 극성스럽게 반대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건 안돼요. 현령을 사위로 맞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데 그것을 마다하세요?"

마누라가 강경하게 반대하고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현령이라면 한 고을의 사또가 아니던가. 사또를 사위로 맞이하면 장인도 장모도 호강을 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여문 노인의 생각으로는 사또 따위는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여보 마누라. 당신도 잘 알고 있다시피, 우리 집 큰딸 아이는 보통내기가 아니오. 그런데 황후(皇后)의 기상을 타고난 그 아이를 겨우 현령 따위에게 주어 버리자는 것이오?" "영감은 그 아이가 황후가 된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장하시우? 보자 하니까 엉터리 관상만 보아 가지고 설, 쯔쯧...!" "아이 참! 이 마누라쟁이하곤...! 관상학으로 보아서 우리 큰 아이는 틀림없이 황후가 될 기상이란 말야!"

"영감님 관상 따위를 누가 믿어요?"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런가? 늙은 마누라는 영감님의 관상 실력을 애시 당초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문 노인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헛참! 마누라쟁이하곤...! 남들은 모두 나의 관상을 일등으로 치는데 집안에서는 영 남 모르듯 하고 있으니 쯔쯧, 하여튼 당신이 끝까지 내 의견에 반대할 생각이라면, 딸아이를 이 자리에 불러다 놓고 본인더러 결정하라고 합시다. 됐소?" "맘대로 하시구려. 물어보나 마나 그 애는 현령한테 시집가겠노라 대답할 거예요."

두 내외는 딸을 그 자리에 불러서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 준 뒤에 이렇게 물어 보았다. "너는 현령한테 시집을
갈 테냐, 그렇지 않으면 장차 제왕이 될지도 모르는 청년에게 시집을 갈 테냐?" 불려온 큰 딸은 워낙 기상이 웅장한 성품인지라,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현령은 싫어요. 그 청년한테 시집가게 해 주세요." 늙은 어머니가 너무도 기가 차서 호통을 친다. "이것아! 지금 네가 정신이 있느냐? 어째서 현령을 마다하고 유방인지 젖통인지 하는 <천하의 난봉꾼>에게 시집을 가겠다는 것이냐?"

"어머니! 제 일은 저한테 맡겨 주세요. 사내대장부가 난봉을 부릴 줄 모른다면, 그런 사내를 무엇에 쓰겠어요. 자고로 영웅이 호색한다는 말도 있지 않아요? 유방이라는 청년이 아버님 말씀대로 장차 제왕이 될지 어쩔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젊은 그에게는 그런대로 미래라는 것이 있지 않아요? 그러나 현령이라는 사람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버린 과거의 사람이잖아요."

아버지 여문은 딸의 <똑 떨어지는>명쾌한 대답을 듣고 크게 감탄하였다. "과연 너는 황후의 재목이 분명하구나. 네 뜻을 알았으니, 이제는 이 애비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여문 노인은 다시 사랑방으로 달려 나가 유방과 다시 술잔을 주고받다가 문득 "여보게 유방 청년! 내게는 사랑스런 딸이 있는데, 자네가 내 딸아이와 결혼을 해 주게나. 그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라네."하고 말했다.

처음 만난 청년 유방을 사위로 맞이할 결심이었던 것이다. 유방은 너무도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하였다. "노인장께서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여문 노인은 유방에게 새삼스러이 술잔을 권하면서 말했다. "내게는 자식으로 자매가 있는데, 큰딸의 이름은 <안(顔)>이라고 하네. 그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니까, 자네가 그 아이와 결혼을 하라는 말일세. 다시 말하면, 자네가 내 사위가 되어 달라는 말이지."

"노인장과 저는 오늘이 초면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보고 저한테 따님을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자네가 궁금한 모양이니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줌세. 나는 관상학에 대가(大家)일세. 자네와 나는 오늘이 초면이지만 관상학 상으로 보아 자네는 먼 장래에 반드시 제왕이 될 사람이야. 그래서 자네에게 내 딸을 주는 것일세." "제 얼굴이 먼 장래에 제왕이 될 상(相)이라구요? 아무튼 잘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허기는 사람의 팔자는 알 수 없는 것이지요. 허니, 저라고 제왕이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겠지요. 제왕의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저는 지금으로서는 장가를 들 형편이 못됩니다. 따라서 노인장의 말씀에는 사양을 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유방은 완곡하게 거절해 버렸다. 그러나 여문 노인은 여전히 끈덕지게 설득한다. "이 사람아! 자네가 장가들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은 무슨 소린가? 어째서 장가를 못 가겠다는 것인지, 그 이유나 한번 들어보세."

두 사람이 술잔을 나눠 가며 이런 대화를 주고 받을 바로 그때, 뒷문 밖에서는 아까부터 이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처녀가 있었으니, 그 처녀는 여문의 딸인 <안랑>이었다. 안랑은 문틈으로 엿본 유방의 얼굴이 첫눈에 흡족하게
여겨져서, (아버지가 나의 신랑감을 정말로 잘 골라 주셨구나.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저 청년과 결혼하리라.)하고 혼자 속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다.

그러나 유방은 그런 줄도 모르고 여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지금 형편으로는 결혼할 수 없는 사유가 세 가지 있습니다." "무슨 사유인지 어서 말해 보게." "첫째는 아직 나이가 어려 학문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아직 수양을 제대로 쌓지 못해 인생의 목표를 뚜렷하게 정립(定立)하지 못함 때문이고, 셋째는 집이 가난하여 아직 처자식을 먹여 살릴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뒷문 밖에서 그 말을 엿들은 안 랑은 크게 실망하였다. 거절을 당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문은 단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아! 그게 어디 결혼 못할 사유가 되는가? 자네 말을 들어보니, 자네의
사람됨이 더욱 믿음직스럽기만 하네." 유방은 여문에게 술을 따라 올리며 다시 말했다. "저는 학문도 없고, 용기도
없고, 재산도 없는 놈인데 뭐가 믿음직스럽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여문은 약간 나무라는 어조로 말을 하였다.

"이 사람아! 나는 자네의 재산을 보고 딸을 주려는 것이 아니네. 그 점은 오해하지 말아 주게." "그러나 처자식을 먹여 살릴 재산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불알 두 쪽밖에 없는 저에게 무슨 까닭으로 딸을 주시려는지 저는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불알 두 쪽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장가들 자격은 충분하지 않은가. 하하하!"

여문은 한바탕 큰소리로 웃고 나서 다시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내가 왜 자네를 믿음직스럽게 여기는지 그 이유를 말해 줌세. 사람이란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는 법이네. 그런데 자네는 자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 그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청년인가? 보통 청년들 같으면 내가 딸을 준다고 하면 누구나 감지덕지 했을 걸세. 그러나 자네는 생각이 깊어서 매사를 냉철하게 처리해 나가려고 하니, 그 또한 믿음직스러운 점이 아닌가. 얼굴이 워낙 제왕지상(帝王之相)으로 생긴데다가, 생각하는 바가 이처럼 신중하니, 내가 어찌 사위로 탐을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인장께서 보잘것없는 저를 지나치게 잘 보아 주셔서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면 나의 딸과 결혼을 하겠다는 말인가?" "글쎄올시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면 자네가 믿어 줄지 모르겠네마는, 내 딸 역시 용모로 보나 기상으로 보나, 자네의 배필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일세. 내가 보기에는 자네와 내 딸은 하늘이 정해 주신 천정배필인 것 같아. 내가 자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세."

유방은 아무 대답도 안 하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매우 죄송스러운 말씀이오나, 제 결혼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여문은 크게 실망하며 말한다. "그래애....? 내가 이처럼 애원을 했는데도 안 되겠다는 말인가?" "죄송합니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부득이....." "그렇다면 2,3년쯤 기다려 주면 가능하겠나?" "글쎄올시다, 그때 사정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3년 후에라도...."

유방이 거기까지 말했을 바로 그때, 별안간 뒷문이 사르르 열리더니 안 랑이 유방에게 눈 인사를 하면서 살포시 들어오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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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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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헤비멘탈 | 작성시간 22.04.07 감사합니다
    잘 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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