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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52 : 지록위마 (사슴을가리켜 말이라하다)

작성자느랑골|작성시간22.06.11|조회수5 목록 댓글 0

*列國誌 52 : 지록 위마(指鹿爲馬)

조고는 아첨하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 소질 덕분에 시황제 때는 일개 내시가 시황제를 등에
업고 천하의 권세를 지멋 대로 휘둘러 왔고, 二世 황제가 등극한 후에는 놀랍게도 승상의 자리에 앉아 천하를 호령해 오고 있었다.

환관에서 승상으로!~ 불알조차 없는 內侍가 一人之下 萬人之上(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의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趙高는 <그 있을 수 없는 일>을 실현시키고야만 者였다. 이 사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조고의 奸智(간지)가 얼마나 비상한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승상이 될 수 없는 者 (당시 내시는 사람 취급을 안했다 : 그러기에 진시황 이 방사를 벌일 때, 내시인 조고가 방구석에 쭈구리 고 앉아서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황제의 性 행위를 즐기고 있었으니 실제로 이 者는 觀淫症(관음증) 환자가 승상이 되자 세상에는 온갖 구설수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趙高가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는 것은 이러한 비난이었다. 그러기에 조고는 지위고하를 불문 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엉뚱한 죄를 뒤집어 씌워 三族(삼족)을 滅(멸)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이 무려 3~4천 명이 나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는 조정의 大夫들조차 趙高 앞에서 는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하였다. 그 무렵, 항우에 게 참패한 秦나라의 대장군 장한은 함곡관 (函谷關 : 중국 河南省 북서부에 있으며 동쪽의 中原에서 서쪽의 <關中 : 陝西>으로 통하는 관문. 黃河 南岸 의 링바오<靈寶> 남쪽 5km 지점에 있다. 이곳은 동서 8km에 걸친 黃土層(횡토층) 의 깊은 골짜기로 되어있어 양안(兩岸)이 깎아지른 듯 솟아있고, 절벽 위의 수목이 햇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낮에도 어두워 그 모양이 함(函)처럼 깊이 깎아 세워졌다하여 이러한 이름이 생김.)에 秦을 치고 <지원군을 급히 보내 달라>는 장계를 함양에 올렸다.

<楚將 項羽가 20萬의 군사로 머지않아 장하를 건너 咸陽으로 쳐들어올 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들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환영을 받아 군사가 자꾸만 불어가고 있어, 저들을 함곡관에서 막아내지 못하면 咸陽이 위험하오니 한시바삐 지원군을 보내주시기 바라옵니다.>

이렇게 보내 온 장한의 장계는 위급한 상황을 구구절절이 담고 있었다. 그러나 趙高는 이러한 장계를 일소에 붙여버리 고 황제에게는 아예 알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고는, (章悍, 이자가 무슨 꿍꿍이속으로 咸陽에 있는 군사를 몽땅
자기에게로 보내 달라는 것일까!?.... 그 意中(의중)이 매우 의심스럽구나....)

趙高(조고)는 자기 이외에는 그 누구도 권력이 커지는 것을 지극히 경계해 왔다. 특히 大將軍(대장군) 장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이렇게 권력 장악에만 눈이 먼 趙高에게 국가의 흥망은 한참 뒷전으로 밀려있었다.

조정의 대부들은 연이어 올라오는 章悍의 장계문을 읽어 보고 모두들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조고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워서 누구도 감히 황제에게 그런 사실을 직접 품고(稟告) 하지 못했다. 내시 출신인 조고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지 않는다 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벼슬이 제아무리 높기로 불알도 없고 그것도 할 수 없는 병신 중 上 병신을 그 누가 존경할 것인가? 그러기에 조고는 승상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항상 불안하여,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숙청해 버렸다. (나에게는 심복이 하나도 없으니, 나는 저 者들을 권력으로 굴복 시키리라. 굴복시켜 절대 복종한다 면, 그것은 심복이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이것이 秦나라의 멸망을 재촉한 희대의 奸臣(간신)이자 불알이 없는 內侍가 승상이 된 趙高의 政治哲學(정치철학)이었고, 그 철학을 현실화시킨 것이 <피의 숙청>이었다. 또 이것은 조고가 일찍이 진시황으 로부터 배운 것이기도 했다. 조고 휘하의 秦나라 조정의 만조백관 들은 하나같이 조고에게 절대 복종하는 무리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趙高는 사람을 쓸 때는 자신에게 절대 복종할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쓰지 않았다. 조고는 그리하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한 번은 대신들의 속마음을 직접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조고가 황제를 모시고 만조백관들과 朝會(조회)를 끝낸 직후의 일이었다. 조고는 황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폐하! 폐하께 서 사냥을 좋아하시옵기 에, 臣이 좋은 말을 한 필 구해 놓았습니다. 사냥하실 때, 그 말을 애용하시도록 하시옵소서." 황제는 평소부터 말을 좋아하던 터라 조고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卿(경)이 朕(짐)을 위해 좋은 말을 구해 놓으셨다니, 이런 고마운 일이 없구려. 그 말을 만조백관들과 함께 구경하고 싶으니, 지금 곧 宮庭(궁정)으로 끌어 오도록 하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황제가 만조백관들과 함께 뜰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후 조고가 직접 말을 끌고 정원으로 들어선다. 황제를 비롯하여 만조백관들은 조고가 끌고 온 동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조고가 끌고 온 동물은 말이 아니고 사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슴은 덩치가 워낙 커서 우선 보기에는 말과 비슷하기는 하였으나, 어디로 보나 말이 아니고 틀림없는 사슴이었다. 황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승상! 이 어이된 일이오? 이것은 말이 아니고 사슴이 아니오?" 그러나 조고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고, "폐하! 이것은 사슴이 아니옵고 말이옵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만조백관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황제는 조고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며 다시 말했다. "이 짐승은 누가 보아도 사슴이 분명하오. 이것을 말(馬)로 보았다면, 승상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오?" 그러나 조고는 고집스럽게 다시 주장한다. "아니옵니다. 이것은 분명히 말이 옵니다. 폐하께서 이처럼 의심스러우시다면, 소신 이 만조백관들에게 직접 물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앞으로 불러내어 이렇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이 짐승을 사슴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말이라고 여쭈었소. 대부는 어느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시오?" 조고는 자기에 대한 대부들의 충성심을 시험해 보려고 계획적으로 이번 일을 꾸몄던 것이었다. 대부들은 조고의 의중을 간파하자 대답하기가 곤란하였다. 눈앞에 있는 짐승은 사슴이 틀림없으나, 사실대로 말을 했다가는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맨 먼저 불려나온 大夫는 눈 딱 감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짐승은 승상의 말씀대
로 사슴이 아니옵고 말이옵니다." 그러자 그 다음부터는 저마다 서슴치 않고 <이 짐승은 사슴이 아니라 말이옵니
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들 중에는 양심적인 사람도 없지 않아서 한 두 사람은 "글쎄올시다. 제가 보기에는 말이 아니옵고 사슴인 것 같사옵니다." 하고 엉거주춤 대답하였
다. "아, 그래요!? 그러면 내 말이 틀렸다는 말이구려." 그런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후, 사슴이라고 대답한 大夫 들은 조고에 의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없었다.

<지록 위마 (指鹿爲馬 :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四字成語(사자성어)는 그때에 생겨났으며, 이 사건이 있은 뒤부터 조고의 권력은 절대적이 되어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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