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현대작가 위화가 쓴 <살아간다는 것(活着)>을 거장 장예모 감독이 영화하한 작품으로, 원작과 줄거리나 주제의식 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원작을 먼저 읽었던 터라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동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음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원작 <살아간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객(독자)에게 고통을 훈련시킨다. 희로애락의 반복 특히, 죽음이 반복되는 삶의 여정을 응집해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인간의 삶에 내재한 무수한 변화들 특히,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변화들을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된다. 이른바, '인생교육' 이것이 이 영화와 원작이 지니는 공통적인 '가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가 원작과 조금 다른 점은 엔딩부분에 나타난다. 영화의 엔딩에선 후꾸웨이를 비롯해 그의 아내와 사위, 손자가 한데 어울려 즐거운 식사를 나눈다. 그러나 원작소설은 후꾸웨이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죽음 속으로 몰아넣고나서야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원작소설은 허무주의에 경도된 작품인가. 그렇지 않다. 소설은 노년의 후꾸웨이가 과거를 회상하며 젊은이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늙은 후꾸웨이의 화법은 '인생을 달관한 노인의 화법'이라 할 수 있다. 고통과 기쁨과 사랑과 죽음의 인생사를 차분하고 애정어린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거기에 내재해 있는 것은 '인생이란 왜 이런 것인가.'라는 탄식 대신 '인생이란, 인생이란 그런 것이더라.'고 하는 달관의 자세이다. 이러한 달관의 화법이 있음으로 해서 독자는 반복되는 죽음에 인생을 비관하거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게 된다. 영화에는 이러한 '달관의 화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원작소설처럼 독자가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비추는 것들을 관객이 엿보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단지 사물을 그대로 비춰내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냉정하다. 이 냉정한 카메라가 반복되는 죽음을 보여주고 끝내 주인공 후꾸웨이를 제외한 모든 주변 인물들의 부재를 비추어낸다면 이 영화는 매우 비정하고 냉혹한 인간의 운명에 초점을 맞춘 것이 돼버려 관객들로 하여금 허무주의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원작소설과 주제의식에 있어 별반 차이를 지니고 있지 않다. 원작소설과 마찬가지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목숨이 붙어있는 한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충실히 이어나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 점을 말하기 위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만큼은 불행과 죽음을 보여주지 않고 단란한 가족의 식사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달관의 화법' 대신 '객관적이고 냉정한 카메라'를 선택한 감독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을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음악이다. 영화에서는 가계의 파산, 가족과의 이별과 재회, 자식들의 결혼과 죽음 등 인생의 굵직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동일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동일한 음악의 선율은 그것이 품는 사건이 기쁜 일이든 슬픔 일이든 그 모두의 경우에 매우 잘 어울린다. 인생사의 희로애락이 모두 본질적으로는 한 가지로 통한다는 것을 음악으로써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처럼 음악으로써 표상되는 희로애락의 동일성이란 '슬픔이든 기쁨이든 그게 그것'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하나가 다른 하나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또 다른 어떤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기쁨과 노함과 슬픔과 즐거움은 각각 따로 존재하거나 단독으로 인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서로 얽히며 소통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그것인 인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쁨이 슬픔이 되든, 슬픔이 기쁨이 되든, 인간은 자기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자기 앞에 펼쳐진 인생을 인정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충실히 살아내야 한다. 이것이 <인생> 혹은 <살아간다는 것>이 줄곧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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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gigibe 작성시간 07.05.04 장예모작품중 많은 인상을 남긴작품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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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울프걸 작성시간 07.05.04 인생에 대한 잠피노님의 해석이 맘에 드네요. 모든것이 서로 얽히며 소통하는 관계...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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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잠파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05.05 인생에 대한 저의... 개똥철학이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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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울프걸 작성시간 07.05.05 개똥 철학도 철학은 철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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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바디 작성시간 07.05.05 이 영화 본 지 정말 오래 됐는데요. 그때 많은 감동을 받은 걸로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