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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 2003) - 뒷북이지만!

작성자잠파노|작성시간07.05.06|조회수1,006 목록 댓글 1


 

딱 꼬집어 무엇이라고 언명하기 어려운 이유로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워지게 만드는 영화다. 3분의 2 정도까지는 그저 그런 범죄 수사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서 조금 더 진행되었을 때는 봉준호 감독의 2006년작 <괴물>과의 주제적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 정도로 의미를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박해일이 용의자로 지목된 상태에서 또 한 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지점에 오면 영화는 단순한 범죄 수사물도 아니요, <괴물>과 같은 재치 있는 알레고리도 넘어선다. 관객은 김상경, 송강호 등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범인을 '미치도록 잡고 싶다'(최근 영화 <그 놈 목소리>의 카피처럼)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울러 그럴 수 없다는 좌절감도 같이 맛보게 된다. 이 절망감, 비애, 분노... 영화는 그만큼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송강호가 최초 범죄 장소였던 논바닥 배수로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참으로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지저분하고 구린내 나는 전사(前史)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배수로 들여다보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의 솔직한 과거사이며 우리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대부분의 한국민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몰아내었듯이, 더럽고 치사하고 아픈 과거들을 우리는 어서어서 떨쳐내려고만 한다. 그것이 요즘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쿨한 사람'이다. 그러나 뒤가 켕기지 않는가. 옷깃을 바로잡고 짙은 향수로 샤워를 했음에도 어디선가 모르게 자꾸만 구린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은가. 20년 가까이 지난 마당에 직업까지 다른 걸로 바꾼 송강호가 길을 가다 최초의 살인 현장을 들여다보는 것도 바로 그런 구린 냄새, 뒤가 켕기는 증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누구였을까. 영화의 맥락은 박해일을 지목한다. 물론 영화상에서 그에겐 범죄자라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단지 심증만이 있을 뿐이다. 그를 범죄자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정액 감별)는 미국의 전문가에 의해 '증거 없음'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봉준호 감독이 문제삼는 부분이다. 송강호와 김상경,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우리 관객들 모두는 무엇이 잘못된 일이고 그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다만 증거가 없으므로 함부로 말하지 못할 뿐이다. 이에 반해 무엇이 잘못된 일이고 그 잘못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모르는 건 오직 상부의 권력에 자리잡고 있는 이들뿐이다. 중앙 공권력과 그 잘난 전문가 집단인 미국이 그들이다. 우리들 민중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사태를 직시함에 비해 그들은 오로지 서류와 실험기구에만 눈을 집중시키고 있다. 과연 누가 더 옳은 방법인가. 그것을 명확히 따질 수는 없지만, 최소한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집단들이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 사실만으로 우리 민중들은 그러한 집단을 비판할 권리가 있다.

 

지난 시절(혹은 지금도 여전히) 그 집단은 불필요한 곳에 지나치게 주의를 쏟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온통 '국민의 안전과 발전'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전과 발전'이었다. 그리하여 정작 모든 열정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에서 그들은 무관심과 나태로 일관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상당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박해일이 시종일관 지어보이는 그토록 반항적이면서도 자신만만한 표정은 바로 이러한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냉소, 조롱을 함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송강호, 박해일, 김상경, 김뢰하 등의 열정적이고 감칠맛나는 연기가 없었더라면 과연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특히, 송강호에 대해 이번에 나는 전적인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송강호의 여러 영화들을 봤지만 사람들이 왜 송강호, 송강호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이제사 송강호의 진면목을 보게 된 것 같다. 더불어 감독인 봉준호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자면, 사회학과 출신인 그의 정치적 마인드는 사실 그다지 심오한 것도 아니고 참신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서로 무관해 보이는 현상들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묶어서 볼 수 있는 통찰력과 그것을 영화적 설정으로 풀어내는 수완만큼은 근래 그 어떤 영화감독들보다도 뛰어나 보인다. 부디 인식의 성장까지도 적극 도모하여 '늘 새로워지는 봉준호'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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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EBAstian | 작성시간 07.05.06 국내 작품중에서 뛰어난 10 작품중에 한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단한 작품이였죠.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보고 싶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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