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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황제는 신라의 후손,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새

작성자알마자야|작성시간06.07.13|조회수827 목록 댓글 0

누루하치와 부의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마의태자 후손                           - 김선영 기자 grace@digitalmal.com -

조용한 재판장 안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젊은이를 주목하고 있다.
판사가 젊은이에게 묻는다. "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젊은이는 대답한다. " 애신각라 부의 (愛新覺羅 傅儀) "
판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참 이상한 성이군."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가 모택동에게 재판을 받는 장면이다.  

한족(漢族)인 판사가 듣기엔 이상하기만 했던 청나라 황제의 성 '애신각라(愛新覺羅)'.
만약 '애신각라'에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면...

[애신각라 (愛新覺羅) 의 비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일 뿐이라는 중국의 억지가 10년만의 폭염으로 열이 오를대로 오른 한국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재의 중국영토에서 부흥했던 나라는 모두 중국의 지방정권일 뿐이다?
그들의 논리는 이토록 가볍다. 그러나 섬뜩하게 위험하다.

'섬뜩하게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노리는 것이 단지 고구려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고구려는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이다.
그리고 고조선의 강역은 상당부분 한반도 북부와 동북아시아로 고구려와 비슷하다.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면 고조선도 중국사인 것이다. 고조선과 고구려를 박탈당한다면 우리민족의 역사는 신라 건국 이후 2천년으로, 강역은 한강 이남으로 좁혀질 것이다.


심지어 중국의 현재 논리를 그대로 밀고나간다면 백제도 한국사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백제를 건국한 온조는 '중국인'이라는, 고구려 시조 추모(주몽)왕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청나라(엄격히 말하면 후금은 청나라의 전신이다)를 세운 사람은 누루하치.
그런데 그의 성은 '애신각라'이다. 이 신기한 조합의 한자를 분석해보기로 하자.


애신각라(愛新覺羅)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인들의 '근원'을 살펴 보면 신라와 관련된 성이라는 해석은 상당히 신빙성을 가진다.

[금나라의 금(金)은 신라왕실의 성씨인 김(金) ]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인데,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뜻한다.
'(신라 왕실의 성인) 김씨의 겨레' 혹은 '금, 밝음을 숭상하는 겨레'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청나라 왕조의 성에 '신라'와, 신라 왕조의 성씨 '금(金)'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청나라는 우리나라를 어버이의 나라로 섬겼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청태조 누르하치가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었지요."

역사연구단체 한배달의 오정윤연구원은 먼저 청나라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긴 예를 들었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 청나라의 도움을 거절 : 당시 집권세력의 한심한 작태)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우리 시조는 신라인" ]


역사학자들의 말처럼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는 금나라를 기리며 나라이름을 '후금'이라 지었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계승한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가 신라인이라는 문헌들은 많이 존재한다.
먼저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金史)'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金之始祖諱函普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금나라의 시조인 함보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고려에서 왔는데,
그의 형제는 고려에 남고 혼자만 금나라로 왔다는 이야기다.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도
금나라의 태조에 대해 " 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 한다 '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松漠紀聞)'은,"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이었다 "고 전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비단 중국의 사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부안 김씨들은 그들의 '족보'를 내세워,'금사', '만주원류고', '송막기문' 등의 내용을 이렇게 뒷받침한다.


"함보는 법명이고 그의 본명은 김행(혹은 김준)으로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자 경순왕 김부의 손자이다.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금나라의 역사서 '금사'와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 주장이다.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이라는 점만은 어느 이야기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를 더 보자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안정복 역시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김준은 삼형제인데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때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고 밝히고 있어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 김함보 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기자는 '금나라 시조가 신라 왕족'이라는 주장을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역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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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오는 붉은 해 속에서 불멸의 생명으로 태양을 몰고다니는 태양새다.

삼족오는 강한 능력을 지닌 배달의 태양새로,태양흑점이 강성할 때 불타는 해 속에 삼족오가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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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새 삼족오

 

새 국새 손잡이 삼족오의 정체는?


흉조(凶兆) ‘까마귀’가 아니라 길조(吉兆) ‘태양새’다

MBC 대하드라마 ‘주몽’이 인기를 끌면서 도입부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 1999년 김대중 정부시절에 만든 ‘3호 봉황국새’에 금이 갔다는 감사원의 발표 이후 국민들이 차기 국새의 인뉴(손잡이)에 이 ‘삼족오’를 새기자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럽게 문화계의 화두로 떠오른 문화상징 ‘삼족오’. 과연 ‘삼족오’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삼족오’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비롯해 동이족의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화상징이지만,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에 비해 일반인들의 이해가 지극히 낮은 게 사실이다. 심지어 학자들조차 ‘삼족오’에 대해 ‘세 발 달린 까마귀’라는 터무니없는 해석을 해놓고 있다. 그런데 고대 문헌을 찾아보면 우리 조상들은 ‘삼족오’라고만 기술했지, 학자들이 규정하듯이 ‘세 발 달린 까마귀’라고 한 적이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삼족오’의 ‘烏’를 ‘까마귀 오’로 오독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삼족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먼저 이 ‘烏’의 의미를 살필 필요가 있다. ‘烏’는 옥편을 찾아보면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까마귀’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검다’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오골계(烏骨鷄)’, ‘오죽(烏竹)’, ‘오석(烏石)’, ‘오사(烏蛇)’, ‘오옥(烏玉)’, ‘오수정(烏水晶)’, ‘오동(烏銅)’, ‘오금(烏金)’ 등을 이야기할 때 ‘오(烏)’는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힌다.

‘삼족오(三足烏)’의 ‘오(烏)’도 마찬가지다.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어야 삼족오가 지닌 상징성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4 「고구려본기 2 太武神王條」 에 보면 ‘烏者黑也’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도 삼족오의 ‘오’가 ‘검을 오’임을 뒷받침한다.

삼족오를 이처럼 까마귀로 읽지 않고 ‘검을 오’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점이 바로 태양의 흑점과의 관련성이다. 고대인들은 흑점이 태양의 광채가 응어리진 것으로 보고 양(陽)을 상징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동양사상에서 흑색은 오행(五行)의 ‘수(水)’에 해당하고 역괘(易卦)로는 감(坎)이기 때문에 ‘험(險)’을 상징한다. 고대인들은 태양의 흑점 중 그 중앙에 가장 검은 본영(本影)이 세 발 달린 검은 새의 생김새와 같다고 해서 ‘삼족오(三足烏)’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삼족오’의 ‘오’가 ‘검은 새’를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근거다. 마치 달(月)에 두꺼비와 옥토끼가 산다고 믿은 것과 같은 이치다.

예술가들에 따르면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배경으로 할 경우 어떠한 사물도 검게 보인다. 이 때문에 ‘삼족오’를 ‘세 발 달린 검은 새’로 보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다 결정적인 증거는 ‘삼족오(三足烏)’가 ‘태양(太陽)’의 이칭(異稱)으로 양(陽)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에도 ‘삼족오’가 1)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해 속에 산다는 세발 달린 까마귀’라고 잘못 해석하고 있으면서도 2) ‘태양을 달리 일컫는 말’이라고 해서 삼족오가 바로 태양을 상징함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검을 오(烏)’가 들어가면 ‘태양’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많다. ‘일오(日烏)’, ‘금오(金烏)’, ‘직오(織烏)’, ‘현오(玄烏)’, ‘준오(?烏)’가 그렇다. 특히 이 가운데 ‘금오(金烏)’와 ‘준오(?烏)’는 ‘삼족오(三足烏)’의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태양 안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민족이 바로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다.

‘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 쌍영총, 각저총, 덕흥리 1·2호 고분, 개마총, 강서중묘, 천왕지신총, 장천 1호분, 무용총, 약수리 벽화고분, 그리고 다섯무덤(오회분) 4·5호묘, 중국 요녕성 조양(朝陽)지구 원태자벽화묘(袁台子壁畵墓) 등에 아름다운 벽화로 그려져 있다.

문헌 기록으로는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 중 “甲寅七年三足烏飛入苑中其翼廣三尺”《갑인 7년(B.C.1987년) 세 발 달린 검은 새(三足烏)가 날아와 대궐 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날개 넓이가 석자나 되었다》가 보인다. 하나같이 문헌에는 ‘三足烏’로만 기록되어 있을 뿐인데, 무지한 후손들이 ‘까마귀’로 달갑지 않게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상징 ‘삼족오’를 이야기할 때면 대개 학자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삼족오’가 등장한다며 굳이 우리의 문화상징으로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먼저 중국의 문헌에 등장하는 ‘삼족오’부터 따져 보자. 먼 옛날 중국대륙은 원래 동이(東夷)와 지나(枝那)의 결투의 장이었다. 동이가 중원을 차지할 때는 지나가 변방에 머물렀고, 지나가 중원을 차지하면 동이가 중원에서 점차 변방으로 후퇴했다. 그래서 중원의 주인이 한번은 동이, 한번은 지나로 뒤바뀌면서 역사가 흘러왔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로 평가받는 진의 시황제도 동이족의 한 분파임을 중국의 역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저우스펀은 저서 『중국 역사 11강』에서 《진은 역사가 유구한 씨족으로 동이족의 한 갈래에 속하는데, 황하 하류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 조상은 순(舜)임금 밑에서 날짐승을 길렀고, 그 때문에 영(?)이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리우웨이는 저서 『중국문명박물관-진한시대』에서 《진나라 사람은 동이족의 한 분파이며, 황하 하류 동해 바닷가에서 유목 생활을 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고문헌들이 지금 현재 중국의 땅에 남아 있다고 해서 모두 중국의 기록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 ‘삼족오’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문헌으로 알 수 없다면 그 다음은 유물이나 유적으로 따져 보면 된다. 역사학자들은 ‘삼족오’가 고구려의 문화상징이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호남성 장사시(長沙市) ‘마왕퇴(馬王堆) 1호 한묘(漢墓)’를 든다. 그런데 무덤 주인의 승천을 기원하는 주제인 이 그림에는 신화와 전설을 삽입하여 내용이 풍부하고 구도가 정교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발 달린 까마귀’만 등장하고 있을 뿐 ‘삼족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역사학자들은 ‘삼족오’를 ‘까마귀’라고 단정을 한 나머지 ‘세 발 달린 검은 새’ 삼족오와 ‘두 발 달린 까마귀’를 마구 혼동하고 있다. ‘마왕퇴 1호 한묘’의 그림이 삼족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실 속에 실재하는 평범한 두 발 달린 까마귀임은 그 머리에 볏이 없음에서도 확인된다.

그리고 일본 축구대표 팀의 문장(紋章)으로 삼족오가 사용되고 있다는 데 문제는 간단하다. 일본 축구대표팀의 문장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이 문장은 말만 삼족오이지, 진짜 세 발 달린 까마귀이다. 머리에는 볏이 없으며, 한 발은 축구공을, 다른 두 발은 땅을 딛고 서 있는, 일본에서 길조(吉鳥)로서 숭배 받는 평범한 까마귀인 것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의 머리에는 반드시 볏이 그려져 있다. 삼족오의 볏(一)이 물이나 시원, 즉 태초의 생명성을 상징한다면, 날개(??)는 화합, 부부, 상대적 균형, 따뜻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세 발(??)은 자연의 생명성(싹), 순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초목, 생장-소멸-순환, 시공, 힘, 완성 등을 상징한다.

게다가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삼족오는 왼쪽에는 용을, 오른쪽에는 봉황을 거느리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시기적으로 볼 때 고구려가 당나라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을 때인데, 만일 삼족오가 중국에서 널리 사용하는 상징이라면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고구려가 중국의 상징을 차용해 사용했을 리 없다.

삼족오가 까마귀가 아닌 이상 현실 속의 두 발 달린 까마귀를 옮겨놓은 중국의 ‘마왕퇴 1호 한묘’나 세 발 달린 까마귀를 문장으로 사용하는 일본 축구대표팀의 문장은 삼족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삼족오(三足烏)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아니라 ‘세 발 달린 태양새’로 새롭게 해석함이 타당하다.

태양새 삼족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삼신 신앙으로 발전되었다. 환인·환웅·단군의 삼신 신앙으로 발전됐다가 민간에서 삼신 할미 사상으로 그 성격이 변해왔다. 연구를 게을리하는 학자들 탓에 우리의 신성한 태양새 삼족오는 흉조(凶兆)로 여기는 까마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삼족오의 이름 앞에 길조(吉兆)를 의미하는 당당한 그 이름 ‘태양새’를 붙여주자.

【노정용 파이낸셜뉴스 문화부장】

■사진설명

사진1) 옥새전각장 민홍규 作 '태양새 삼족오 국새'. 국새의 인뉴(손잡이)에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을 대표하는 태양새 삼족오를 새김으로써 우리나라의 國運이 한없이 뻗어나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사진2) 옥새전각장 민홍규 作 '태양새 삼족오 문장'. 두 발 달린 까마귀에 없는 '볏'이 선명해 삼족오가 태양새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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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오의 논란에 대해,

이런 논란에 동국대학교 사학과 윤명철 교수는 “삼족오는 분명 고구려만의 상징물이 아니듯 또한 중국 문화만의 산물도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주목해야 할 것은 삼족오가 고구려인들에 의하여 문화의 주요한 요소로 채택되고, 집요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다”라며 “해의 자손임을 선언한 그들에게 까마귀는 매우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으로 볼 때 “삼족오는 동이족에게 신비스러운 태양의 새로 인식된 반면 한족에게는 북방을 나타내는 흉조였다”라고 피력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금 삼족오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철학적 의미, 미래적 가치를 찾는 계기가 필요하다”라고 성토했다.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5SRW&articleno=8676164#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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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새(國璽),봉황,글자체 훈민정음체

 

새 '국새(國璽)'의 인뉴(손잡이)가 기존의 '국새(國璽)'와 같은 봉황과 한글 훈민정음체가 각각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2006.07.06일 “국새자문위원회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존중, 국새의 손잡이로 봉황을, 글자체로 훈민정음체를 각각 추천키로 했다”며 “조만간 자문위 추천안에 대한 수용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자부가 최근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새 손잡이를 '봉황'으로 해야 한다는 응답이 31.1%로 가장 많았다. 일반인들은 이어 용(26.5%)과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부인(풍백.우사.운사)(21.5%)을 꼽았다. 또 글자체로는 훈민정음 판본체인 한글이 76.4%로 가장 많았다.

 

행자부 관계자는 “기본적인 손잡이와 글자체에 대해 자문위의 의견이 모인 만큼 앞으로 크기와 재질, 공모대상 및 절차 등에 대한 논의가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자부는 8월까지 크기, 재질을 결정한 뒤, △국새모형 제작의뢰(9∼12월)  △국새제작 감리단구성(11∼12월) 등의 일정을 거쳐 2007년1월 국 새모형 당선작을 선정할 계획이다.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6.07.06)

 

봉황(鳳凰)은 용(龍)보다 지위가 한 단계 높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하늘을 받들었기 때문에, 하늘과 우리를 이어주는 새, 봉황. 삼족오(세발 까마귀)를 숭상했다. 그 증거로 고구려 고분벽화에 태양속에 있는 세발 까마귀인 삼족오나 몇십년 전까지 쉽게 볼 수 있었던 마을 입구 마다의 영역표시인 장승과 솟대 등이 있다. 솟대의 새 모양은 봉황. 삼족오(세발 까마귀)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난다면 봉황(鳳凰)이 날지 용(龍)이 하늘을 날지는 않는다. 용은 승천의 꿈을 꾸지만, 봉황은 실제로 하늘을 날며 세상을 본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꼭대기의 새가 봉황 또는 천계(天鷄) 라는 사실이 우리나라가 봉황을 신성시 여겼음을 입증해 준다.

 

우리 동이족(東夷族)은 용(龍)도 신성시 여겼지만, 용(龍) 보다 봉황(鳳凰)을 더 신성시 여겼다. 하늘의 자손이라는 뜻에서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매체로 봉황(鳳凰)을 더 중요시했다. 봉황(鳳凰)에서의 봉(鳳)은 '새 중의 새'를 뜻하며, 황(凰)은 '배달국의 임금(皇) 새'를 뜻한다.

 

중국에 황제가 나타난 것은 '진시황(秦始皇)' 때 부터이다. '진시황'의 '시황(始皇)'은 처음으로 황제가 나왔다는 얘기이다. 진시황 이전에는 배달민족의 나라, 즉 배달국, 고조선의 임금이 황제였고, 그래서 황(皇)자는 '배달나라의 왕'을 뜻하는 '白王' 을 쓴 것이다. 중국의 옛날 역사책에는 배달민족은 백민(白民)으로 나온다. 밝달(밝은 땅), 박달, 백달, 배달의 변천을 통해 배달(倍達)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봉황(鳳凰)'은 '새 중의 새, 배달나라 임금(皇)의 새'를 뜻하는 일이고, 지금도 대한민국(大韓民國) 청와대의 상징문양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원래, 중국의 용(龍) 문화는 신시(神市) 배달국(倍達國)의 홍산문화에서 수입해 갔다. 우리나라 고대 배달국(倍達國)은 신시배달(神市,1~13대 환웅)과 청구배달(靑丘,14대~18대 환웅)로 나누는데, 신시(神市)배달은 제1대 거발한 천황(즉위BCE3898)으로부터 시작되고, 청구(靑丘)배달은 제14대 치우천황(즉위 BCE2707)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신시(神市) 배달국의 홍산(紅山)문화 유적지인 내몽골 삼성타랍 지구에서 1971년 옥룡(玉龍)이 발견된 것이다.

 

여기서 발견된 옥룡(玉龍)은 5,000년 전의 유물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중국의 용(龍)문화가 신시(神市) 배달국(倍達國)에서 시발했고,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왜냐면, 중국의 용(龍)문화는 중국 한족(漢族)의 시조인 황제 헌원(BCE 2,692~2,593)에게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중에, 황제 헌원(軒轅)은 청구(靑邱) 배달국(倍達國)의 치우천황(蚩尤天皇)으로부터 변방의 자치정부의 황제로 임명받았는데, 배달국의 천황(蚩尤天皇)으로부터 독립하고자 군사를 일으켜 치우(蚩尤)천황에게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그래서, 10년간 73회의 전쟁이 벌어지는데, 결국 배달국 치우천황이 승리했고, 고대 동방에서 벌어진 최대 전쟁이었다.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5년간 72회 전쟁을 치룬 것보다 규모가 컸던 전쟁이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모습은 치우천황의 상징인데, 모습은 도깨비의 상(像)이다. 치우(蚩尤) 천황의 모습이 도깨비의 형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중국인들이 동이족(東夷族)을 비하(卑下)하여 동이족인 치우(蚩尤)천황을 도깨비의 형상으로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치우(蚩尤)천황의 상징은 한옥 지붕의 양쪽에 있는 귀면와(鬼面瓦)에서도 볼 수 있었고, 장승에서도 볼 수 있었다.

 

1999년 청와대에서 나라의 도장으로 제작한 국새(國璽)의 손잡이에 조형된 '봉황'은 백제 금동대향로에 있는 봉황을 모델로 제작했었다. 조선시대 경복궁 천정에도 봉황무늬가 있고, 현재 청와대 건축물에도 대통령을 상징하기 위해서 봉황무늬가 있다. 봉황은 성인(聖人)의 탄생에 맞추어 세상에 나타나는 새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 많이 남아있는 고구려벽화의 사신도에도 봉황인 주작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금관에도 봉황이 들어가 있다. 통일신라 왕실도 용보다는 주작(닭, 봉황)을 더 많이 선호했었다.

 

이번 국새제작을 계기로 우리나라 역사의 뿌리가 제대로 바로 잡히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통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덧글: 최병문,010-4607-3746)

 

[펌] 세상을 여는 인간꽃 http://cafe.daum.net/do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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