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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符都誌) - 박제상/ (김은수 역),(윤치원 편저)

작성자알마자야|작성시간06.07.14|조회수1,235 목록 댓글 0

부도지에 대한 명상

부도지(符都誌,박제상), 김은수 역주,한문화출판사,'02,1.10.

우리민족의 역사는 숯한 전란과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귀중한 사서들을 외세에 빼앗기거나 불타버렸고,조선조 유학의 사대주의가 민족의 정통사상을 계승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뜻있는 학자들이 간직해온 사서나 개인문집을 통하여,사라진 우리의 역사와 사서들을 파상적으로 접해볼 수가 있다. 우리가 "부도지","한단고기" 등을 검토연구하는 것은 매우 뜻있는 일이다.


"부도지" 초판 서문(김은수)

<부도지> 는 신라 충렬공 박제상 선생이 삽량주 간으로 있을때,보문전 태학사 제직 당시 열람할 수 있었던 자료와,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비서(秘書)를 정리하여 저술한 책이라고,김시습은 그의 <징심록 추기>에서 추정하고 있다. "부도(符都)"라는 말은 하늘 뜻에 부합하는 나라, 또는 나라의 수도라는 뜻으로,곧 단군의 나라를 말한다.


<부도지>는 한국에서 기록연대가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징심록>15지 가운데 제1지이며, <징심록>은 상교(上敎)5지인 <부도지>,<音信誌>,<歷時誌>, <天雄誌>, <星辰誌>와 중교 5지인 <四海誌>, <契불지>, <物名誌>,<歌樂誌>,<醫藥誌>,그리고 하교 5지인 <農桑誌>, <陶人誌>, 그밖에 알려지지 않은 3지를 포함하여 모두 15지로 되어있다. 후에 박제상 아들 백결선생이 <金尺誌>를 지어 보태고,김시습이 <징심록추기>를 보태어, 두 17편으로 된 책이다.


그러나 현재 원문은 모두 전하지 않고 있으며, 여기 소개하는 <부도지>는 1953년에 "박금"씨가 울산의 피난소에서 과거에 <징심록>을 번역하고 연구하던 때의 기억을 되살려 거의 원문에 가깝게 되살려낸 것이다.


박제상 선생이 일본의 목도(木島)에서 순절하기전, 그러니까 적어도 서기 419년 이전에 기록한 이 책은, 그동안 영해박씨 족가에서 필사하여 대대로 비밀리에 전해져왔다고 하나,조선 세조 이전까지는 이 책의 내용이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고려 태조 왕건은 왕사를 보내 부도의 일을 상세히 물었다고 하며, 강감찬 장군도 여러차례 영혜(지금의 경북 영덕)를 방문하여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영해박씨 종가(宗家)와 차가(次家)의 후예들을 서울로 불러들여 성균관 앞에 거주하게 하고, 장로(長老)에 임명하여 편전에 들게 했는가 하면,김시습선생은 훈민정음 28자를 이 <징심록>에서 취본(取本)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신라와 고려, 조선초기의 왕들은 영해박씨에 대해 은근한 대우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부도지>는 영해박씨의 몰락과 함께 수난을 격지 않을수 없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기를 들고 김시습,조상치(曺尙治)선생과 함께 금화(金化) 초막동(草幕洞)으로 잠적하여 구은사(九隱祠) 구현(九賢)중 무려 칠현을 배풀해낸 영해박씨 문중은, 당시 세조의 눈에는 그야말로 눈엣가시보다 더 껄끄러운 존재들이었는데,끝내는 체포령이 내려졌다. 이 때문에 영해박씨 대소가(大小家)는 더욱 깊은 산속으로 숨어버렸으며,심지어는 선대의 비(碑)를 땅속에 묻어 흔적마저 없애가면서 연명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박금씨에 따르면, 이 무렵 <부도지>는 김시습의 손에 의해 금강산의 운와(雲窩) 계손공(季孫公)댁에서 포신(浦臣) 계손공(季孫公)의 집으로 옮겨지고,다시 계손공의 아들 훈(薰)씨가 함경도 문천(文川)으로 가지고 들어가 운림산(雲林山) 속으로 숨어버렸다고 한다. 그후 몇백년 간 삼신궤(三神櫃) 밑바닥에 감춰두고 출납을 엄금하여 박금씨 대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박금씨는 <부도지>를 해방후 월남할 때 문천의 금호에 있는 금호종합 이학원에 남겨두고 내려왔다. 그 일로 한을 품은 박금씨가 자신의 손으로 <부도지>를 되살려냈으나, 이 <부도지>는 <징심록> 15지 중 단 1지에 불과하다. <징심록>의 유실은 비단 박금씨 개인이나 영해 박씨 문중에게만 한을 남긴 것이 아니라,우리 한민족 전체에 해아릴수 없을 만큼 커다란 손실과 한을 남겼다고 아니할 수 없다.

 

<징심록>에 실린 15가지 이름만 보아도 다른 역사서와 성격이 다른,정치와 문화 전반에 걸친 괄목할 만한 사서사서임을 쉽게 알수 있다. 혹 박금씨가 남겨 놓았다는 <음신지>,<역시지>,<천웅지>,<성신지>의 남은 일부만이라도 찾을 수 없을까? <부도지>의 여러 역사적 증언과 역법(歷法),허실 기화수토설(虛實 氣火水土設)은 한국문화의 원형을 여실히 보여주는 주옥같은 기록들이다.

 

<부도지>에 따르면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에서 출발한 우리민족은 궁희,황궁,유인,한인,한웅,단군에 이르는 동안 천산,적성산,태백산과 청구를 거쳐 만주로 들어왔으며,그 사이 지구상의 동서남북에 사방으로 퍼져나가 천도정치의 한국문화를 전세계에 심어놓았다. 천부의 한국문화는 오늘날까지도 메소포타미아,인도,이집트,그리스,프랑스,영국,동남아시아,태평양,아메리카 대륙에 역법,거석,세석기,빗살무늬 토기 신화,전설,종교,철학,천문학,음악,수학에 그 잔영을 남겨놓고 있다.

 

<부도지>는 단군의 사자(使者)인 순의 아버지 유호씨(有戶氏)가 서방으로 건너가,그곳에서 전고자(典古者)를 만나 천부의 본리를 술회하여 전했다고 했는데,이것이 바로 수메르에 근원을 둔 기독교사상의 뿌리가 되었으며,스키타이족에 의해 이루어진 불교와 그리스의 고대문화도 한국의 천부문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유호씨는 피라미드나 지구라트와 같은 높은 탑이나 재단이 마고성에서 소를 만들던 옛풍속에서 유래하였다고 했다.


하프구트 교수는 그의 저서<고대 해양왕의 지도>에서 1만년 정도 전의 태고시대에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있었으며,그것은 중국에서 아매리카까지 지구전역에 퍼져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1986년 3월 7일 김 은 수

 

부도지 제1장

마고성(麻姑城)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다.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하였다. 성 중의 사방에 네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관(菅)을 쌓아놓고 음(音)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黃穹)씨요, 둘째는 백소(白巢)씨요,셋째는 청궁(靑穹)씨요,넷째는 흑소(黑巢)씨였다.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穹姬)씨요,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巢姬) 씨였다. 궁희화 소희는 모두 마고(麻姑)의 딸이었다. 마고는 짐세(朕世)에 태어나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으므로 선천을 남자로,후천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精)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두 천인과 두 천녀를 낳았다. 합하여 네 천인과 네 천녀였다.

부도지 제2장

선천시대에 마고성은 실달성 위에 허달성과 나란히 있었다. 처음에는 햇볓만이 따뜻하게 내려쬐일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려(呂)의 음(音)만이 하늘에서 들려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音)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 또한 이 음(音)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朕世)다.

짐세 이전에 율려(律呂)가 몇번 부활하여 별들이 출현하였다. 짐세가 몇번 종말을 맞이할때,마고가 궁희와 소희를 낳아 두딸에게 5(音)7(調)의 음절을 맡아 보게 하였다.

성(城)에서 지유(地乳)가 처음으로 나오니, 궁희와 소희가 또 네 천인과 네 천녀를 낳아 지유를 먹여 그들을 기르고, 네 천여에게는 여(呂),네 천인에게는 율(律)을 맡아보게 하였다.

부도지 제3장

후천의 운이 열렸다. 율려가 다시 부활하여 곧 향상(響象)을 이루니 성(聲)과 음(音)이 섞인 것이었다. 마고가 실달대성을 끌어당겨 천수(天水)의 지역에 떨어트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수운(水雲)이 위를 덮고, 실달의 몸체가 평평하게 열려 물 가운데 땅이 생겼다. 땅과 바다가 나란히 늘어서고 산천이 넓게 뻗었다. 이에 천수의 지역이 변하여 육지가 되고,또 여러차례 변하여 수역(水域)과 지계(地界)가 다함께 상하를 바꾸어 돌므로 비로소 역수(歷數)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기,화,,수, 토(氣火水土)가 서로 섞여 빛이 낯과 밤,그리고 사계절을 구분하고 풀과 짐승을 살찌게 길러내니,모든 땅에 일이 많아졌다. 이에 네 천인이 만물의 본음(本音)을 나누어 관장하니, 토를 맡은 자는 황(黃)이 되고 수를 맡은 자는 청(靑)이 되어,각각 궁(穹)을 만들어 직책을 수호하였으며, 기를 맡은 자는 백이되고 화를 맡은자는 흑이되어 각각 소(巢)를 만들어 직책을 지키니, 이로 인하여 성씨(性氏)가 되었다. 이로부터 기(氣)와 화(火)가 서로 밀어 하늘에는 찬 기운이 없고 수와 토가 감응하여 땅에는 어긋남이 없었으니, 이는 음상(音象)이 위에 있어 언제나 비춰주고 향상(響象)이 아래에 있어 듣기를 고르게 해주는 까닭이었다.

 

박제상저 -김은수역,  부도지에 대한 명상(편집), cafe시인대학21c[펌]

 

부도지 전문은 아래 김은수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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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第一章 
 

마고성麻姑城 1)은 지상地上에서 가장 높은 성城이다. 2) 천부天符 3)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 4)을 계승하였다. 성중의 사방四方에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관管 5)을 쌓아놓고, 음音 6)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黃穹 7)씨요, 둘째는 백소白巢 8)씨요, 셋째는 청궁靑穹 9)씨요, 넷째는 흑소黑巢 10)씨였다.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穹姬씨요, 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巢姬씨였다. 궁희와 소희는 모두 마고麻姑의 딸이었다. 마고는 짐세朕世 11)에서 태어나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으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두 천인天人과 두 천녀天女를 낳았다. 12) 합하여 네 천인과, 네 천녀였다.

麻姑城은 地上最高大城이니 奉守天符하야 繼承先天이라. 地中四方에 有四位天人이 諸管調音하니 長왈 黃穹氏오 次曰 白巢氏오 三曰 靑穹氏오 四曰 黑巢氏也라. 兩穹氏의 母曰穹姬오 兩巢氏之母曰 巢姬니 二姬는 皆麻姑之女也라. 麻姑ㅣ生於朕世하야 無喜怒之情하니 先天爲男하고 後天爲女하야 無配而生二姬하고 二姬ㅣ亦受其情하야 無配而生二天人二天女하니 合四天人四天女也라.

1) 麻姑城
① 麻姑가 사는 城. 8呂의 音에서 나왔으며, 地上의 가장 높은 곳에 있고 가장 오래된 성이라고 함. 方形의 城으로 天國이나 樂園을 의미하기도 하며, 가운데에는 天符壇이, 그리고 사방에는 각각 堡壇이 있고, 보단과 보단의 사이는, 세겹의 도랑으로 연결하였음. 城의 위치는 제 8장에서 天山州의 남쪽에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파밀고원으로 추정이 되며, 동쪽에는 雲海州, 서쪽에는 月息州, 남쪽에는 星生州가 있었음. 城의 기능이나 성격으로 보아, 蘇塗城이라고도 할 수가 있으며, 三神, 産神, 三侍郞과 관계가 있음. 마고는 女性이며, 표면상 單性生殖을 하였고, 8呂의 音도 女性音임. 단군조선 때는 수도를 符都라고 하여, 마고성의 모양을 본받았음.

②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에덴동산과는 많은 점에서 합동을 이루고 있으며, 포도로 인한 추방은 더욱 일치에 가까움. 또 25장에 의하면, 서.남쪽의 월식주와, 성생주 사람들이, 마고성에서, 巢를 만들던 습관으로, 高塔과 層臺를 쌓았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이 점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그리고 아메리카의 지규랏이나 피라밋이, 마고성에서 유래된 것임을 확증하는 것임.

③ 지리산에도 마고할미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祭壇도 있음.

④ 寧海에는 麻姑山이라는 山名이 있음.

⑤ 슈메르어로 MAG는 남성 성기가 발근한 모양의 상형문자에서 나온 높은,치솟는,고상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GU는 땅이나 나라의 뜻임.(〈C.J.Ball.Chinese and Sumerian. p. 103, p.77.〉참조)

⑥ 孫普泰씨의 支石墓와 관계된 麻姑傳說을 소개한다. 이것은 西北兩道를 통하여 가장 보편적인 전설이다. 그러나 그 傳說的 潤色에 있어서는 地方에 따라 多少의 차이가 있으니, 成州, 江東地方의 소문은 麻姑할미를 위해서 將帥들이 만들어준 것이라 하며, 陽德郡 文興里民은 麻姑할미 자신이 將帥이어서 자신이 그 大石을 運來建造한 것이라 하였고, 孟山邑民의 所說은 麻姑할미는 극히 인자한 이라 貧寒한 사람에게 저고리를 벗어주고,치마를 벗어주고,고의도 벗어주고,나중에는 속옷까지 주었으므로,赤身으로는 나다닐 수가 없어 부끄러우니까,支石을 만들어,그 속에 隱居한 것이라 하였다. 또 黃海道 鳳山地方의 전설은,麻姑할미가 그 偏平石을,一枚는 頭上에 이고,二枚는 兩峽에 一枚씩 끼고,一枚는 잔등에 지고와서 건조한 것이라 한다.(朴容淑,<韓國古代美術文化史論>,一志社,1981,p.299에서 재인용)

⑦ 중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변화하였다.「열고야(列姑射)가 바다 한가운데의 섬속에 있다.」「야고국(射姑國)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데,열고야에 속하며,서남쪽을 산이 에워싸고 있다.」 (鄭在書,<山海經>,民音社,1985,p.269 참조).


「그가 말하기를 막고야산(姑射山)에 神人이 있어, 살빛깔은 눈과 같이 희고,단아하기는 처녀같은데,곡식을 먹지 않고,바람을 호흡하고,이슬을 마시며,구름 위에서 나는 용을 타고 四海 밖으로 놀러다닌다고 한다. 그의 정신이 끌리는 때에 온갖 사물에서 부패를 제거하고,오곡이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堯임금은 천하의 백성을 다스리며 海內를 統治했다. 막고야산의 四聖人을 방문한 뒤에,汾水의 陽에 돌아오며,자기의 天下는 이미 상실한 것으로 감각했다 하였다.(堯는 治天下之民하고 平海內之政하다가 往見射子 姑射之山하고, 汾水之陽에서 ○然喪其天下○ 하다.) (金東成, (莊子)乙酉文化社, 1969, pp.20~25참조)


「漢의 孝桓帝 때에 神仙 王遠,字 方平이 蔡經의 집에 내려왔다. 도착시간이 가까워지자 金鼓,簫,笛,人馬의 소리가 들려왔다. 家人들이 도열하여 알현한즉,王方平은 머리에 遠遊冠을 쓰고 朱衣를 입고,호랑이 머리를 장식한 패물이 달린 큰 띠와, 五色의 끈을 매고,칼을 차고,누런 수염이 듬성듬성 나있는,보통키의 사람이었다. 羽車를 탔는데,다섯필의 龍이 끌었다. 용은 각각 색이 달랐다. ○○에서부터 從者들에 이르기까지 威儀를 갖추어 마치 大將軍과 같았다. 奏樂隊는 모두 기린을 타고,天空에서 내려와,뜰에 모였다. 侍從官은 모두 키가 한길 남짓되었다. 보통의 길로는 통과할 수가 없었다. 곧 도착하자 侍從官은 모두 모습을 감춰버려서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王方平만이 蔡經의 父母兄弟를 찾아뵈었다. 혼자 앉아있다가 잠시후,使者를 시켜서 麻姑를 방문하게 하였다. 蔡經의 집에서는 麻姑가 어떤 분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王方平이 麻姑어른께 삼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민간이 되었었으나 지금 여기에 와 있습니다. 麻姑 어른께서는 잠시 왕림하시어 말씀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고 전하게 하였다.

 

잠시후,사자가 돌아왔으나,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麻姑의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麻姑가 재배합니다. 뵈옵지 못한 채 어느덧 500년이 지났습니다. 尊卑의 서열도 있는 것인데,이렇게 뵈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듣고,곧 달려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곧 돌아오겠나이다.'고 하였다.

 

二刻이 지나자 麻姑가 왔다. 도착하기 전부터 人馬와 簫,鼓의 소리가 들렸다. 도착하는 것을 보니 시종은 王方平이 올 때보다 약 반 수였다. 麻姑가 도착하자,蔡經의 一家는 모두 배알하였다. 麻姑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로서,나이는 열 일곱여덟 정도였다. 머리는 위로 틀어올리고,남은 머리는 허리에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입은 옷은 金은 아니지만,모양이 있었다. 눈빛도 눈부시게 반짝이고,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울 뿐이었다.

 

방에 들어가 王方平에게 배례하였다. 方平도 일어섰다. 좌석이 정해지자,가지고 온 음식을 내놓았다. 모두 금접시와 玉杯로써,음식은 거의 과일따위 였으며,그 향기는 내외에 진동하였다. 마른 고기를 찢어 내놓았는데, 숯불에 구운 기린의 乾肉이었다.

 

麻姑가 이렇게 말하였다. '뵈온 이래 벌써 동해가 세번 桑田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번 蓬萊산에 오셨을 때는 물도 먼저번 大會 때에 비하여,그 반정도가 얕아졌었습니다. 곧 陸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王方平도 웃으면서,'聖人도 모두 海中에서 먼지가 오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 하였다.

 

 麻姑는 蔡經의 어머니와 아내를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당시 동생(第)의 처가 출산후,수 일이 지났었는데,麻姑는 멀리서 이것을 보고 알고 있었다. '여기에 다시 오기 어려우니'라고 하고, 쌀(米)을 조금 가져오라 하였다. 쌀을 받아 손에 들고 땅에 뿌렸다. 쌀은 모두 眞珠가 되었다. 方平이 웃으면서 '麻姑어른은 역시 젊습니다.나는 늙어버렸습니다.벌써 이처럼 교묘한 변화를 하는 기분은 없어져 버렸습니다.'고 말하였다.

 

方平은 蔡經의 家人을 가리키며,'그분들에게 술대접을 하고 싶다. 이 술은 天宮의 부엌에서 나온 것으로, 맛이 짙기 때문에,世俗人이 마시기에는 적당치 않다. 마시면 창자가 녹아내릴지도 모른다. 지금 물을 타려 하니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하며,1되의 술에 물 1말을 부어서 흔들어 섞고 蔡經의 家人들에게,각각 1되 정도씩 나뉘주었다. 잠시 후 술이 없어졌으므로,方平은 좌우사람들에게 '먼곳까지 사러갈 필요가 없다. 千文 余杭의 노파( )에게 가서 술을 사오라'고 명하였다.

 

곧 오동나무 기름을 바른 자루에 가득히 술을 가져왔다. 5말 정도의 양이었다. 余杭의 노파로부터 '地上의 술은 입에 맞지만'이란 傳言이 있었다. 麻姑는 새와 같은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蔡經이 그것을 보고 등이 가려울 때 저 손톱으로 긁으면 꽤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方平은 벌써 蔡經의 마음 속을 알고 곧 蔡經을 묶어놓고,매를 때리게 하였다.

 

'麻姑 어른은 신인이시다. 너는 왜 손톱으로 등을 긁고 싶어하였는가'하고 꾸짖었으나, 매가 蔡經의 등을 때리는 것만 보일 뿐,매를 든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方平은 蔡經을 향하여,'내 매는 절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그날 또 한 通의 護符를 蔡經의 이웃사람 陳尉에게 주었다. 그것은 흔히 鬼魔를 소환하고 사람의 병을 고칠수 있는 것이었다. 蔡經도 또 解(해태)의 도를 전해받았다. 그것은 매미의 脫○하는 법이었다.

 

蔡經은 항상 王方平을 따라서 山海를 여행하고,가끔 일시 집에 돌아올 때도 있었다. 方平은 또 陳尉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있는데,대부분 篆書 또는 楷書體으로 대단히 활달한 大字였었다. 陳尉는 그것을 대대로 가보로 하였다. 이제 宴會가 끝나자 王方平도,麻姑도,羽車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주악과 행렬은 올 때와 마찬가지였다.」


生産,創造의 神이 중국에서 하나의 神仙으로 변하였으나,어렴풋이 生産神으로서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本田濟. 〈抱朴子·列仙傳·神仙傳·山海經〉. 平凡社, 東京, 1985, pp.409~411 참조)

2) 地上에서 가장 높은 城一麻姑城은 高山地域에 있었다. 이 말은 우리민족을 중심으로 한,현생 인류가 산악민족임을 시사하는 말이다. 新羅의 금관이나,최근에 복원이 된 狎督國의 '山'자형 입식과 쿼초 출토의 위굴왕자 '山'자형 관과 폐루 모체족의 산의 형태를 한 容器의 도판,그리고 신 구 대륙에 널리 산재하고 있는,각종 피라밋을 증거로 들 수 있다.

3) 天符 - 天符란 天理 즉 天數之理에 符合한다는 뜻이며, 동시에 天의 印章 즉 言標의 뜻도 가지고 있다. 天理 또는 天數之理는 우주의 법칙 즉 天道를 숫자로 이해하거나,표현하였다. 천리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 天符經이며, 이 천부경을 새겨서 天權을 표시한 것이 天符印이다. 天道政治를 천명하던, 한국의 고대국가에서는, 천부인을 천권의 상징으로 여기고,후계자에게 傳受하였다. 천부인은 맑은 소리를 내어 만물을 창조한다고 생각하던,옥돌이나 옥피리,그 외의 악기와 자기 성찰을 뜻하며 태양을 상징하는 거울,번성을 의미하는 칼등에 새기었다. 四節五寸으로 되어 1부터 9까지의 虛數와 實數를 나타내는 金尺도,天符印의 일종이다.

4) 先天- 後天과 대립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先天時代나 後天時代라고 하면, 구체적인 연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수에 있어서 先天數는 1, 2, 3, 4, 5, 6, 7, 8, 9를, 後天數는 2, 3, 4, 5, 6, 7, 8, 9, 10을 말한다. 우주의 1회전 기간을 전·후로 나눠, 우주력 전반 6개월을 선천, 후반 6개월을 후천으로 보기도 한다. 우주의 1개월을 지구의 역으로 10,800년으로 계산하면 우주력 12개월 1년은 지구력 129,600년이 된다. 이 중, 29,600년은 빙하기이므로, 인간이 살 수 없기 때문에 100,000년을 전·후로 나누면, 선·후천이 각각 50,000년이 된다고 한다. (洪大容, 〈○山問答〉, 〈梅月堂集〉 龍虎. 李能和, 〈朝鮮道敎史〉 p.302, 洪萬宗, 〈海東異蹟〉참조)

5) 管 - '堤管調音'이란 말을 管을 쌓아 놓고 音을 만든다로 번역하였다. 管은 피리(笛)다. 음을 만든다는 말, 즉 소리를 낸다는 말은 만물을 창조한다 또는 창조된 만물을 천리에 맞춰 修證한다는 뜻이다.

6) 音 - 고대문화를 이해함에 있어 '音'은 '數'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도지에서의 音은 바로 天地創造者다. 성경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였다. 말은 음으로 이루어졌다. 부도지 2장은 實達城과 虛達城 그리고 麻姑城과 麻姑가 모두 음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이 때의 音은 8呂의 音이었다. 呂는 女性音이다. 후에 律呂는 五音七調가 된다. 天女는 呂를, 천인은 律을 맡아보았다.

 

부도지 3장에 의하면, 律呂는 다시 音象과 響象으로 나눌 수가 있다. 律呂는 聲과 音이라고 하였다. 音象은 위에서, 響象은 아래에서 서로 고르게 퍼져나가므로, 氣火水土가 감응하여, 천지에 어둠과 어긋남이 없다고 하였다. 曆數도 이 음에서 처음으로 나왔다고 하였다. 音이 天地를 창조하였다는 설은 부도지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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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신라 박제상,윤치원 편저

 

부도(符都)란 하늘의 부름을 받은 도시, 또는 하늘에 부합한 도시라는 뜻이다. 따라서 부도지는 태초에서부터 부도란 도시가 탄생하기까지의 역사와 그 전통이 소멸되기까지의 역사를 밝히는 책이다.

 

부도지는 한민족 최고의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시원을 밝혀주는 위대한 서적이다. 부도지를 통해서 우리는 한민족의 고향을 찾을 수도 있고, 아득한 태고에 일어난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발원지인 마고대성을 접하게 된다.

 

부도지를 통해서 우리가 소위 중국인들과 서구인들에게서 배운 지난 2000년 동안의 지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된다. 이러한 역사서가 우리 손에 의해, 소멸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내려온 것은 한민족의 크나큰 축복이다.

 

1. 지구역사는 일직선의 역사가 아니라 창조와 소멸이 반복되는 순환의 역사이다. ‘부도지’가 보여주는 순환의 주기는 천문학 또는 점성학에서 말하는 2만5,920년의 세차주기와 관련이 있고,소강절의 ‘황극경세서’에 나타난 12만9,600년 주기와도 관련이 있다.

 

2. 지금으로부터 약 1만5,000년 전 지구표면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활동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 전체는 물 또는 얼음으로 덮여있는 상태였다. 이것은 ‘성서’의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태초의 기록과 일치한다.

 

3. 그 태초를 관장하는 어머니신의 이름을 마고라고 하였다.

4. 인류의 조상들은 마고의 대성에서 태어나서 지구의 조화를 담당했던 신적인 존재였다.

 

5. 마고대성(에덴동산)의 위치는 현재의 파미르고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6. 지금으로부터 약 1만3천년전 원시지구와 또 하나의 천체가 충돌함으로써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7. 창조 이후 고대의 지구는 토성과 같은 고리를 지니고 있었다. ‘성서’의 창세기에서 말하는 궁창이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이를 단순히 천공(天空)으로 본 것은 잘못 해석한 것이다).

 

8. 처음 창조 이후 수천년 동안 지구는 주기적인 혜성과의 충돌이 있었다. 그중 상당수는 원시지구에서 떨어져나간 것들이었다.

9.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달은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탄생한,불과 몇 1000년밖에 되지 않는 천체이다. 

10. 그 동안 지축이 세번이나 바뀌는 대개벽이 있었고, 이러한 와중에 마고대성으로부터 인류의 대이산이 이루어졌다.

 

11. 인류 최초의 대홍수는 지금으로부터 약 9,500년 전에 일어났다. 홍수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서 약 7,500년 전 ‘성서’의 노아의 홍수에 해당되는 두번째 홍수가 일어났다.

12.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현 중국의 섬서성 태백산 아래,지금의 서안(옛 장안성) 부근에 한(환)웅씨의 고대왕조가 일어나 혼란과 암흑에 빠진 세계에 문명의 빛을 가져왔다. 한웅이란 하늘의 아들(天子)이란 뜻이다. 한웅씨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아누(Anu)’라고 불려진 신이었다.

 

13. 바빌로니아 전설에 우안(Oannes)이라고 불리는 물고기 인간이 나타나서 짐승과 다름없는 그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는데,이들은 환부(鰥夫)라고 불리는 한웅씨의 수행원들이었다.

 

14.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 임검(단군)께서 나셔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시키고,한웅씨의 고도가 있던 태백산 기슭에 새로 부도(하늘의 위임을 받은 도시)를 건설하고,광대한 지역에 걸쳐서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우리말의 임금님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15. 중국 왕조역사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세명의 성군들(요, 순, 우)은 부도의 영역에 침투해서 약탈과 억압을 일삼은 범죄인물들이었다. 소위 고대중국의 역사는 임검(단군)의 역사에 깡패두목의 이름을 바꿔치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6. 임검의 치세에 유호라는 현자가 있어서 단군을 도와서 교화에 힘쓰고 특히 요, 순, 우의 학정을 제거한 후 서아시아 쪽으로 가르침의 여행을 떠났다. 본서에서는 유호씨와 유대민족 간의 연결가능성, 특히 ‘성서’에 나타난 멜기세덱이란 신비로운 인물, 이스라엘 12부족 중 유대 지파(히브리 어로는 ‘예후다’) 그리고 그 유대 지파에서 출생한 예수의 메시지 등에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符都誌가 세상에 나온 과정

 

부도지는 신라의 중신 박제상(朴堤上363-419?)공에 의해 집필되었다. 신라 내물왕28년(서기 383)에 간관(諫官),보문전(寶文殿) 태학사(太學士),요직을 거쳐,414년에 삽량주( 良州)의 간(干)으로 임명되었다.태학사 당시 열람자료와 가전비서(家傳秘書)를 정리하여 징심록(澄心錄)15지를 저술하니 부도지가 그중 첫번째 책이다.

 

그후 418년,박제상은 고구려로 들어가 인질로 잡혀가 있던 눌지왕(訥祗王)의 아우 복호(卜好)를 구해오고,왜국으로 건너가 또다른 아우 말사흔(末斯欣)을 탈출시키고 본인은 왜왕(倭王)에게 붙잡혀,목도(木島)에서 화형에 처하게 되었다.

 

공의 부인 김씨는,그 죽음을 듣고 세딸을 거느리고 치술령( 述嶺)에 올라 치술령가를 짓고 동해를 바라보며 자진하였다. 장녀 아기(阿奇)와 삼녀 아경(阿慶)도 모친을 따르니 석상(石像)으로 화했다 한다. 차녀 아영(阿榮)은 홀로 남아 5세된 남동생을 기르니,가야금의 달인 백결선생(百結先生) 문량공(文良公)이었다.

 

… 조선 세종조에도 집안이 중용을 받았다. [징심록 중 한권이 음신지(音信誌)라 하였으니 혹시 한글 복원(창제 아님)에 도움되지 않았을까?] 그러나,세조 왕위찬탈후,반대하던 영해 박씨의 후손들은 김시습 등과 함께 산중으로 숨어들었고,그후 수백년간 삼신궤 밑바닥에 감춰두어 후손인 박금(朴錦1895 - ?)씨 대에까지 전해졌다.

 

박금씨가 동아일보 재직시,징심록 전편을 번역하여 잡지에 기재하려 하였으나 일제의 정책에 위배되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해방 후 6.25 동란이 발생하자 박금씨는 문천에 있는 금호종합이학원(錦湖綜合理學院/통칭 양산댁)에 원본을 남겨두고 월남하였다. 울산의 피난소에 도착한 후 징심록의 대의를 정리하고 암기한 내용을 재생(1953년)하고 김시습의 징심록추기,박금씨의 후기 등을 덛붙여 프린트본으로 출간하였다. 그외에 음신지,역시지,천웅지,성진지를 출간중이었으나,찾아볼 길 없고 부도지마저 거의 멸실(滅失)단계에 있었으나, 다행히 효성(曉星) 정시화(鄭時和)선생 소장 한문본의 번역을 김은수(金殷洙)선생께 위촉하여 1986년 가나출판사를 통해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되었다.

 

태백산,환웅,환인,단군임검

 

태백산이 어디인가? 한국의 강원도 태백산에는 사해제족의 총화를 이룰 곳이 없다. 그럼 백두산인가? 백두산은 한민족의 성산(聖山)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근처에 부도와 같은 대도시의 유적이 발견된 적도 없고,아시아 전역에서는 동북쪽의 후미진 곳에 있다.

 

예를들어,한단고기는,3세단군 가륵8년(BC 2175)에 강거(康居)가 티벳트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되어있는데,티벳트인이 백두산쪽에 반란을 일으켰다기에는 무리가 있다. 부도지가 말하는 곳은 높은 산맥이 있고,거대한 강줄기가 뻗쳐나가고,수륙의 교통이 사방팔방으로 열려서, 해안지역의 민족들과 산악지역의 민족들이 모여서 총화를 이룰 수 있는,즉,광대한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정치,경제,교통의 중심지라야 한다.

 

눈을 돌려 중국을 보자.중국의 중심부,티벳트와 곤륜의 산악이 끝나고 중원의 평야가 시작되는 곳,즉 섬서성(陝西省)에 3767m의 높은 태백산이 있다. 바로 뒷편(서쪽)에 광대한 티벳고원이 펼쳐져 있으니,강거가 이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면 이치에 닿는다고 할 수 있다.

 

이곳 태백산을 기점으로 광대한 평원지대가 부챗살처럼 해안까지 동쪽으로 퍼져나간다. 크고작은 강줄기들이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데,황하와 양자강이 포함된다. 실제로 양자강의 큰줄기 한수(漢水)와 황하가 막 갈라진 위수(渭水)가 태백산을 끼고 흐르니, 이곳은 중국의 남북 및 해안지역을 수운으로 연결하는 교통요지이다. 배후에는 곤륜산맥과 티벳트고원이 있어 산악민족과 연결되고 감숙성의 협로를 통서 몽고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과 연결된다. 남쪽으로는 사천성(四川省) 요지를 통과해서 미얀마와 갠지스강 유역,즉 동남아시아 및 인도 북부의 민족과 연결된다. 임검(단군)께서 사해제족의 총화를 이루기 위해 부도를 선정할 장소라면 이보다 더 적합한 장소가 있을 수 없다.

 

바로 이곳 태백산 동북쪽 가까이에 자리잡은 큰 도시가 전통적으로 비단길(Silk Road)의 시발점으로 알려진 지금의 서안(西安)이다. 서안은 예로부터 세계 최대규모의 국제도시들 중 하나였다. 주(周)나라,진(秦)나라,한(漢)나라,당(唐)나라를 비롯해서 자그마치 11개 왕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이지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수도없이 많은 전쟁이 벌어졌고, 이곳을 차지면 스스로 천자(天子)라 여겼다. 왜 그랬을까? 

 

해답은 한가지,이곳이 단순히 중국문명이 아닌,노아의 홍수이후 세계 고대문명의 기원,즉 천자 한웅(桓雄)씨가 문명을 일으킨 신(神)의 도시가 위치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옛날 이 지역은 밝달(밝은 땅=明地, Balktar)이라고 불렸고,한웅(桓雄=하늘의 아들=天子, Son of Heaven)씨가 이곳을 도읍(神市City of God)으로 하여 전세계를 다스렸다.

 

한웅씨는 서기전 4000년경 고대문명사회를 창출했으며 이 문명은 해양문명이었다.수메르문명,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모두가 중국의 태백산(서안)을 기점으로한 한웅씨의 문명권이었다.

 

한웅씨는 인류를 육신의 고통과 영적인 어두움,즉 짐승과 같이 된 상태에서 구하기 위해 문명시대를 열었다. 홍수로 곳곳에 범람하는 물과 지나친 습기의 문제 이외에는 정복의 대상이 없었다. 우리 신화의 쑥과 마늘 이야기는 냉기와 습기와 기생충으로 고생하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한웅씨는 농사짓는 법과 불 사용법,또 집짓고 배와 탈 것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동시에 세계 곳곳을 돌며 인류가 하늘의 자손으로서 한뿌리에서 나온 것을 상기시켰다. 이 시기는 영적인 지혜와 물질적인 지식이 조화를 이룬 시기였으니,일컬어 홍익인세(弘益人世)라 하였다. 이가 곧 태백산의 위치와 한인 한웅 단군임검 옛부처이다. (절에 가면 본당을 대웅전(大雄殿)이라 하지 않는가?)

 

이러한 한웅씨의 대통을 이어받은 것이 임검씨였다. 서기전 2400년경의 일이다. 한웅이 '하늘의 아들(Son of Heaven)'을 뜻한다면,'임검'은 '제사장-왕(Priest-King)'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신인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시대'에서 '제정일치'의 시대로 이행한 것이다. 임검씨는 세계 방방곡곡을 순행하면서 '하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부도를 건설하여 제 민족의 총화를 이룰 것을 약속하였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300년전에 국제연합을 설립하고,부도에서 세계민족대회를 연 것과 마찬가지이다.

 

부도지의 내용은 성서의 창세기 이상이다. 연대기로만 따져도 6000년전 아담의 탄생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부분이 일치하는가 하면 서로 배치되는 곳도 많다.그 교훈과 철학적 깊이는 '원본창세기'라고 할만하다.

 

부도의 전통은 앞서 언급한 태백산기슭에서 1200년간 지속되었다.부도가 유지되는 동안 중국과 주변지역은 비교적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나,문제의 요인들은 상존하고 있었다. 처음부터,이 지역에는 부도의 이상과 궤를 달리하는 이질적인 요소(인물과 사상)들이 침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검씨는 중국역사에 성군으로 일컫는 요(堯),순(舜),우(禹)와 동시대 인물이었다.

 

부도지에 의하면,이들은 성군과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사리사욕을 좇는 모리배였고,민중을 박해하고 재산을 가로챈 불한당들이었다. 부도가 강성한 동안,이들은 활개를 펼 수가 없었다. 그러나,부도가 지도력을 상실한 후,중원은 천년 혼란기로 접어들었다. 마침내 서기전 221년 진(진)나라가 철권으로 중원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르렀으니,이가 진시황이다.

 

부도가 비게 되자,후발국 주(周)가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은(殷)나라와 한바탕 쟁탈전을 벌여 은이 멸망(BC 1122)한 후의 일이다. 1986년에 사천성 광한시 지역에서 서기전 1200년경으로 추측되는,즉 하남성 안양을 중심으로한 은나라(같은시기) 유적을 능가하는 엄청난 청동기문화의 유적지를 발견하는 고고학적인 성과가 있었으니 주나라의 세력근거지가 아니었나 한다.

 

중국은 부도의 이념을 상실한 후 정치적,지리적 공백기를 맞이했다. 부도는 동북쪽 구석으로 이동하여 동이(東夷)족의 중심지 역할은 했으나 중원지역에 대해서는 그 권위를 상실했다. 이러한 혼란기에서 새로운 사상적인 구심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결국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로 나타났다. 그 중에 가장 후세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공자(孔子)라 할 수 있겠다. [영어로 혼란을 'confusion'이라 하고,공자를 'Confucius'라 부르니,그 이름이 혼란시기를 대표하는 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민중은 부도를 그리워하였다. 공자도 동이(東夷)나라에 가서 살고싶다 하지 않았는가? 경제적으로 풍요해서가 아니다. 그곳에 옛 부도의 유습(遺習)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한 동이란 결국 부도의 유중을 가리킨 것이다. 공자는 그곳을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라 불렀다. 즉 착한사람이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니,중토의 피비린내나는 상황에 대한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펌] 한민족의 뿌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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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금척은 곧 천부경

 

부도지(符都誌),매월당 김시습의 징심록 추기(금척은 천부경의 글을 일부 옮긴 것)

금척은 곧 천부경

<금척지>에 대한 김시습의 글이 매우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금척의 내용,형태,소재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척은 천부경의 이치를 본떠 만들었으며,천부경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하여 금으로 만들어 보존한 신기(神器)라는 점을 뚜렷이 밝혀준 점이 중시된다.

"소위 입언이나 구언이란 것은 반드시 금척의 수리(數理)에 있으나,지금 공의 집 종가의 후손이 이미 세상을 달리하였고,집안사람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풀어볼 수 없게 된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아는 사람이 없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내가 <금척지>를 읽으니 그 수사(數辭)가 매우 어려워 알 수가 없었다.
대저 그 근본은 곧 천부의 법이다. 그것을 금으로 만든 것은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요,자로 제작한 것은 다같이 오류가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其所謂立言求言者는 必在於金尺之數理而 今則公家宗嗣已 逝하고 諸家離散하여 不講이 久矣라. 故로 今無知者하니 惜哉라. 余嘗讀金尺誌하니 其數辭甚難하여 不可了解라. 大抵其本은 卽天符之法而製之以金者는 爲其不變也오 作之以尺者는 爲其無誤라"

윗글에서 '금척지수리(金尺之數理) 기수사심난(其數辭甚難)'이란 표현으로 보아,금척은 수리(數理)를 새겨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본은 천부지법이제지(天符之法而製之)'라는 표현으로 보아,천부경의 법을 본떠 만든 것이며,수리는 곧 천부경의 수리(數理)임을 알 수 있다.


9장에서는 금척의 생김새를, "그 형상은 삼태성이 늘어선 것 같으니,머리에는 불 구슬을 물고,네 마디로 된 다섯 치이다(其形象則如三台之列 頭含火珠 四節而五寸)"라 설명하고 "그 허실의 수가 9가 되어 10을 이루니,이는 천부의 수다(其虛實之數 九而成十 此則天符之數)"라고 그 수의 내용을 풀이했다.
이로써 금척이 81자로 되어있는 천부경에 대한 설명임이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다.


10. 11,12장의 내용은 최상수씨가 소개한 내용과 비슷하나 그 내용이 훨씬 자세하고 정확하다. 신라를 세운 근본이 부도 즉 금척의 법에 있으며,이것이 단군시대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박혁거세 신화를 보면,그가 알에서 태어났으며,여섯 촌장이 길러 13세에 왕위에 올랐다는 내용이 있는데,어떻게 13세 아이가 실질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여섯촌장에 의해 한 나라의 지배권을 행사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금척지>는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박혁거세는 연리지가(硏理之家)이며 왕위의 징표가 되는 금척 곧 천부경을 보유하고 있는 집안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즉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한 제천군주(祭天君主)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3장에서 김시습은 <금척지>라도 남았으니,그 도를 연구하여 복제할 길이 있을 것이며,그렇지 못할지라도 그 법리를 아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했다.

 

14장에서는 진리불역지전(眞理不易之詮)이 묻혀버리고 생민시원고사(生民始原古史) 적연무문(寂然無聞)을 한탄했다. 단종이 죽어 크게 부끄러운 때여서 이를 더욱 절감한다고 했다.


끝으로 제13장의 끝에 '항차 훈민정음 28자를 <징심록>에서 취본하였음에야'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훈민정음 창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할 중요한 단서라 생각된다. 우리 상고사를 바르게 아는데 <금척지>야말로 귀중한 문헌일진대 그 원문을 잃었음이 크게 애석할 뿐이다.

금척과 천부경의 비밀은
십오진주원방각(입체마방진) 금척도(金尺圖)에 있다.

진리사이트 http://www.hanajang.com 하나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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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하나 모든 것의 원리 天範惟一 弗二厥門

격암유록의 주인공,정도령 궁궁을을 십승도령 궁도을서....등은 금척(천부경)을 지칭한 말이다.

격암유록은 금척(천부경)을 해설한 책이다.

금척(천부경)은 우주를 관장하는 근본원리이며 우주법칙이며 진리의 정도령은 금척(천부경)이다.

인간 정도령은 언제 나타나는가?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나타나지 아니한다. 우리국민 대다수가 천부경의 뜻을 받들고 마음과 온몸으로 정성을 다하고 간절하게 바랄때 집단무의식의 기운이 천부경의 법칙에 의하여 인간 정도령(진인, 미륵불)이 탄생할 것이며 이 지구를 평정하게 되는 것이다.

 

[펌]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4AdP&articleno=7924980#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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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符都誌)-박제상(朴堤上) <전문>

1 : 마고(麻故)의 시대 -김은수역-

第一章

마고성(麻姑城)은 지상(地上)에서 가장 높은 성()이다.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하였다. 성중(成中)의 사방(四方)에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을 쌓아 놓고, ()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黃穹)씨요, 둘째는 백소(白巢)씨요, 셋째는 청궁(靑穹)씨요, 넷째는 흑소(黑巢)씨였다.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穹姬)씨요, 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巢姬)씨였다. 궁희와 소희는 모두 마고(麻姑)의 딸이었다. 마고는 짐세(朕世)에서 태여나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으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의 정을 받아,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두 천인(天人)과 두 천녀(天女)를 낳았다. 합하여 네 천녀였다.

麻姑城은 地上最高大城이니 奉守天符하야 繼承先天이라, 成中四方에 有四位天人이 堤管調音하니 長曰 黃穹氏오 次曰 白巢氏오 三曰 靑穹氏오 四曰 黑巢氏也라. 兩穹氏之母曰穹姬오 兩巢氏之母曰巢姬니 二姬는 皆麻姑之女也라. 麻姑ㅣ生於朕世하야 無喜怒之情하니 先天爲男하고 後天爲女하야 無配而生二姬하고 二姬ㅣ赤受其精하야 無配而生二天人二天女하니 合四天人四天女야라.

第二章

선천(先天)의 시대에 마고대성(麻姑大城), 실달성(實達城)의 위에, 허달성(虛達城)과 나란히 있었다. 처음에는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 쪼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 ()의 음()만이 하늘에서 들려 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도, 또한 이 음()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朕世). 짐세 이전에, 율려(律呂)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星辰)이 출현하였다.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 할 때, 마고가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아, 두 딸로 하여금, 오음칠조(五音七調)와 음절(音節)을 맡아보게 하였다. 성중(城中)에 지유(地乳)가 처음으로 나오니, 궁희와 소희가, 또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아, 지유를 먹여, 그들을 기르고, 네 천녀에게는 여(), 네 천인에게는 율()을 맡아보게 하였다.

先天之時에 大成이 在於實達之上하야 與虛達之城으로 ?列하니 火日暖照하고 無有具象하야 唯有八呂之音이 自天聞來하니 實達與虛達이 皆出於此音之中하고 大城與麻姑ㅣ赤生於斯하니 是爲朕世라. 朕世以前則律呂幾復하야 星辰巳現이러라. 朕世幾終에 麻姑ㅣ生二姬하야 使執五音七調之節하다. 城中에 地乳始出하니 二姬又生四天人四天女하야 以資其養하고 四天女로 執呂하고 四天人으로 執律이러라.

第三章

후천(後天)의 운()이 열렸다. 율려(律呂)가 다시 부활하여, 곧 음상(音象)을 이루니, ()과 음()이 섞인 것이었다. 마고가 실달대성(實達大城)을 끌어당겨, 천수(天水)의 지역에 떨어드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수운(水雲)의 위로 덮고, 실달의 몸체가 평평하게 열려, 물 가운데에 땅이 생겼다. 육해(陸海)가 병렬(?)하고, 산천(山川)이 넓게 뻗었다. 이에 천수의 지역이 변하여, 육지가 되고, 또 여러 차례 변하여, 수역(水域)과 지계(地界)가 다 함께 상하가 바뀌며 돌므로, 비로서 역수(曆數)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 () () ()가 서로 섞여 빛이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을 구분하고, 초목(草木)과 금수(禽獸)를 살찌게 길러내니, 모든 땅에 일이 많아 졌다. 이에 네 천인이 만물(萬物)의 본음(本音)을 나눠서 관장(管掌)하니, ()를 맡은 자는 황()이 되고, ()를 맡은 자는 청()이 되어, 각각 궁()을 만들어, 직책을 수호 하였으며, ()를 맡은 자는 백()이 되고, ()를 맡은 자는 흑()이 되어, 각각 소()를 만들어, 직책을 지키니, 이것으로 인하여 성(姓氏)이 되었다. 이로부터 기()와 화()가 서로 밀어, 하늘에는 찬 기운이 없고, ()와 토()가 감응(感應)하여, 땅에는 어긋남이 없었으니, 이는 음상(音象)이 위에 있어, 언제나 비춰주고, 향상(響象)이 아래에 있어, 듣기를 고르게 해 주는 까닭이었다.

後天運開에 律呂再復하야 乃成響象하니 聲與音錯이라. 麻姑ㅣ引實達大城하야 大城之氣ㅣ上昇하야 布幕於 水雲之上하고 實達之?ㅣ平開하야 闢地於凝水之中하니 陸海?列하고 山川이 廣圻이라. 於是에 水域이 變成地界而雙重하야 替動上下而斡旋하니 曆數始焉이라.
以故로 氣火水土ㅣ相得混和하야 光分書夜四時하고 潤生草木禽하니 全地多事라.
於是에 四天人이 分管萬物之本音하니 管土者爲黃하고 管水者爲靑하야 各作穹而守職하고 管氣者爲白하고 管火者爲黑하야 各作巢而守職하니 因稱其氏라. 自此로 氣火共推하야 天無音冷하고 水土感應하야 지무흉戾하니 此는 音象이 在上하야 常時反照하고 響象이 在下하야 均布聽聞姑也라.

第四章

이 때에, 본음(本音)을 관섭(管攝)하는 자가 비록 여덟 사람이었으나, 향상을 수증(修證)하는 자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여 났다가, 잠깐 사이에 없어지며, 조절이 되지 못하였다. 마고(麻姑)가 곧,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겨드랑이를 열어 출산(出産)을 하게 하니, 이에 네 천인이 네 천녀와 결혼하여, 각각 삼남(三男) 삼녀(三女)를 낳았다. 이가 지계(地界)에 처음 나타난 인간의 조상(人祖) 였다. 그 남녀가 서로 결혼을 하여, 몇 대()를 지내는 사이에, 족속(族屬)이 불어나, 각각 3000명의 사람이 되었다. 이로부터 12사람의 시조는 각각 성문(城門)을 지키고, 그 나머지 자손은 향상(響象)을 나눠서 관리하고, 수증(修證)하니, 비로서 역수(曆數)가 조절되었다. 성중(城中)의 모든 사람은, 품성(稟性)이 순정(純精)하여, 능히 조화(造化)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血氣)가 맑았다.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천음(天音)을 모두 듣고, 길을 갈 때는, 능히 뛰고, 걷고 할 수 있으므로, 내왕(來往)이 자재(自在)하였다. 임무를 마치자, ()은 변하여 먼지가 되었으나, 그 성체(性體)를 보전하여, 혼식(魂識)이 일어남을 따라, 소리를 내지 않고도 능히 말을 하고, 백체(魄體)가 때에 따라 움직여, 형상을 감추고도 능히 행동하여, 땅 기운(地氣) 중에 퍼져 살면서, 그 수명(壽命)이 한이 없었다.

是時에 管攝本音者ㅣ雖有八人이나 未有修證響象者故로 萬物이 閃生閃滅하야 不得調節이라. 麻姑ㅣ乃命四天人四天女하야 ?脇生産하니 於是에 四天人이 交娶四天女하야 各生三男三女하니 是爲地界初生之人祖也라. 其男女ㅣ又復交娶하야 數代之間에 族屬이 各增三天人이라. 自此로 十二人祖는 各守城門하고 其餘子孫은 分管響象而修證하니 曆數始得調節이라. 城中諸人이 稟性純精하야 能知造化하고 飮?地乳하야 血氣淸明이라. 耳有烏金하야 具聞天音하고 行能跳步하야 來往自在라. 任務己終則遷化金塵而保己性體하야 隨發魂識而潛能言하고 時動魂體而潛能行하야 在住於地氣之中하야 其壽無量이러라

2 : 부도(不渡)의 시대

第五章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支巢)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을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작으므로, 여러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마시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차례나 되었다. 곧 돌아와 소()에 오르니, 배가 고파 어지러워 쓰러졌다. 귀에는 희미한 소리가 울렸다. 오미(五味)를 맛보니, 바로 소()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였다. 일어나 펄쩍 뛰었다. 그 독력(毒力)의 피해 때문이었다. 곧 소()의 난간에서 내려와 걸으면서 노래하기를
  [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능가한다.
  이 어찌 도()인가!
  포도의 힘이로다.] 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소씨의 말을 의심하였다. 지소씨가 참으로 좋다고 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포도를 많이 먹었다,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이에 제족이 포도를 많이 먹었다.

白巢氏之族 支巢氏ㅣ與者人으로 往飮乳泉할새 人多泉少어늘 讓於諸人하고 自不得飮而如是者五次라. 乃歸而登巢하야 遂發飢惑而眩倒하니 耳嗚迷聲하야 呑嘗五味하니 卽巢欄之蔓籬萄實이라. 起而偸躍하니 此被其毒力故也라. 乃降巢闊步而歌曰浩蕩兮天地여 我氣兮凌駕로다. 是何道兮요 萄實之力이로다. 衆皆疑之하니 支巢氏曰眞佳라하거늘 諸人이 奇而食之하니果若其言이라.於是에 諸族之食萄實者多러라.

第六章

백소씨(白巢氏)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수찰(守察)을 금지하니 이는 또 금지하지 아니하되, 스스로 금지하는, 자재율(自在律)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에 덮혀 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가 생겼으며, 그 침()은 뱀의 독()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혈육이 탁()하게 되고, 심기(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하였다. 명기(命期)가 조숙(早熟)하여, 그 죽음이 천화(遷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가 얽혀 미혹(迷惑)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白巢氏之諸人이 聞而大驚하야 乃禁止守祭하니 此又破不禁自禁之自在律者也라. 此時에 食實之習과 禁祭之法이 始하니 麻姑閉門撤冪이러라. 已矣오 食實成慣者ㅣ皆生齒하야 唾如蛇毒하니 此는 强呑他生故也오 設禁守祭者ㅣ皆眼明하야 視似치目하니 此는 私 公律故也라. 以故로 諸人之血肉이 化하고 心氣ㅣ酷變하야 遂失凡天之性이라. 耳之烏金이 化作兎沙하야 終爲天聲하고 足重地固하야 步不能跳하며 胎精不純하야 多生獸相이라. 命期早熟하야 其終이 不能遷化而 하니 此는 生命之數ㅣ 惑 縮故也라.

第七章

이에 사람(人世)들이 원망하고 타박하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서, 권속(眷屬)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 또 포도의 열매를 먹은 자와, 수찰을 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가니, 황궁(黃穹)씨가 그들의 정상을 불쌍하게 여겨 고별(告別)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의 미혹(迷惑)함이 심대(甚大)하여 성상(性相)이 변이(變異)한 고로 어찌할 수 없이 성중(城中)에서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오. 그러나, 스스로 수증(修證)하기를 열심히 하여, 미혹함을 깨끗이 씻어, 남김이 없으면, 자연히 복본(復本) 할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시오.]하였다. 이 때에 기()와 토()가 서로 마주치어, 시절(時節)을 만드는 광선(光線), 한 쪽에만 생기므로, 차고 어두웠으며, ()와 화()가 조화를 잃으므로, 핏기 있는 모든 것들이 시기하는 마음을 품으니, 이는, 빛을 거둬들여서 비추어 주지 아니하고, 성문이 닫혀 있어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於時에 人世ㅣ怨咎하니 支巢氏ㅣ大恥顔赤하야 率眷出城하야 遠出而隱이라. 且氣慣食萄實者와 設禁守祭者ㅣ亦皆出城하야 去各地하니 黃弓氏ㅣ哀憫彼等之情狀하야 乃告別曰 諸人之惑量이 甚大하야 性相變異故로 不得同居於城中이라. 然이나 自勉修證하야 淸濟惑量而無餘則自然復本하리니 勉之勉之하라. 是時에 氣土相値하야 時節之光이 偏生冷暗하고 水火失調하야 血氣之類ㅣ皆懷猜忌하니 此는 冪光이 卷撤하야 不爲反照하고 城門이 閉隔하야 不得聽聞故也라.

第八章

더구나 성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전날의 잘못을 뉘우친 사람들이, 성 밖에 이르러, 직접 복본(復本)을 하려고 하니, 이는 복본에 때가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곧 젖샘을 얻고자 하여, 성곽의 밑을 파해치니, 성터(城址)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흘러 내렸다. 그러나, 곧 단단한 흙으로 변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 안에 마침내 젖이 마르니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일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混濁)이 지극하여, 청정(淸淨)을 보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황궁(黃穹)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 백모(白茅)를 묶어 마고(麻姑)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와 제족(諸族)에게 고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꺼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도(理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혹량(惑量)이 불어 났기 때문이다. 청정(淸淨)은 이미 없어지고, 대성(大城)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를 어찌할 것인가.]하였다. 이 때에 천인(天人)들이 분거(分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본전하고자 하므로, 황궁씨가 곧 천부(天符)를 신표(信標)로 나누어 주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사방에 분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청궁(靑穹)씨는 권속(眷屬)을 이끌고 동쪽 사이의 문을 나가 운해주(雲海洲)로 가고, 백소(白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서쪽 사이의 문을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가고, 흑소(黑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남쪽 사이의 문을 나가 성생주(星生洲)로 가고, 황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북쪽 사이의 문을 나가 천산주(天山洲)로 가니,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떠나 복본(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已矣오. 出城諸人中悔悟前非者ㅣ還到城外하야 直求復本하니 此未知有復本之時所故也라. 乃欲得乳泉하야 掘鑿城廓하니 城址破損하야 泉源이 流出四方이라. 然이나 卽化固土하야 不能飮철이라. 以故로 城內에 遂乳渴하니 諸人이 動搖하야 爭取草果하니 混濁至極하야 難保淸淨이라. 黃穹氏ㅣ爲諸人之長故로 乃束身白茅하고 謝於麻故之前하야 自負五味之責하여 立誓復本之約이러라. 退而告諸族曰五味之禍ㅣ反潮逆來하니 此出城諸人이 不知理道하고 徒增惑量故也라. 淸淨已破하고 大城將危하니 此將奈何오. 是時에 諸天人이 意決分居하야 欲保大城於完全하니 黃穹氏ㅣ乃分給天符爲信하고 敎授採葛爲量하야 命分居四方이라. 於時에 靑穹氏ㅣ率眷出東間之門하야 去雲海洲하고 白巢氏ㅣ率眷出西間之門하야 去月息洲하고 黑巢氏ㅣ率眷出南間之門하야 去星生洲하고 黃穹氏ㅣ率眷出北間之門하야 去天山洲하니 天山洲는 大寒大險之地라. 此는 黃穹氏ㅣ自進 難하야 忍苦復本之 盟誓러라.

第九章

분거제족(分居諸族)이 각 주()에 이르니, 어느덧 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과 판(?)의 현상이 있었다.

分居諸族이 繞倒各洲하니 於焉千年이라. 昔世出城諸人之裔ㅣ難居各地하야 其勢甚盛이라. 然이나 殆忘根本하고 性化猛獰하야 見新來分居之族則作群追跡而害之러라. 諸族이 已定住하니 海阻山隔하야 來往이 殆絶이라. 於時에 麻故與二姬로 修補大城하고 注入天水하야 淸掃城內하고 移大城於虛達之上이러라. 是時에 淸掃之水ㅣ大漲於東西하야 大破雲海之地하고 多滅月息之人이라. 自此로 世界之重이 變化하야 曆數生差하니 始有朔?之象이라.

第十章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 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주()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황궁,유인,환인)가 수증하기 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黃穹氏ㅣ到天山洲하야 誓解惑復本之約하고 告衆勸勉修證之業이라. 乃命長子有因氏하야 使明人世之事하고 使次子三子로 巡行諸洲러라. 黃穹氏乃入天山而化石하야 長嗚調音하야 以圖人世惑量之除盡無餘하고 期必大城恢復之誓約成就러라. 於是에 有因氏ㅣ繼受天符三印하니 此卽天地本音之象而使知其眞一根本者也라. 有因氏ㅣ哀憫諸人之寒冷夜暗하야 鑽燧發火하야 照明溫軀하고 又敎火食하니 諸人이 大悅이라. 有因氏千年에 傳天符於子桓因氏하고 乃入山하야 專修契불不出이라. 桓因氏ㅣ繼受天符三印하야 大明人世證理之事하니 於是에 日光均照하고 氣侯順常하야 血氣之類ㅣ庶得安堵하고 人相之怪ㅣ稍得本能하니 此는 三世修證三千年에 其功力이 庶幾資於不 者也라.


3 : 배달국 시대

第十一章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는 태여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천부 삼인을 계승하여, 수계제불 (修계除불) 하였다. 천웅(天熊)의 도를 수립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유래한 바를 알게 하였다. 어느덧 인세(人世)가 의식(衣食)의 일()에만 편중하므로, 환웅씨는 무여율법(無餘律法) ()를 제정하여, 환부(鰥夫)로 하여금 조절하게 하였다.

 

1조는, 사람의 행적(行蹟), 때때로 깨끗하게 하여, 모르는 사이에 생귀(生鬼)가 되지 않게 하고 번거롭게 막혀, 마귀(魔鬼)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통명무여일장(通明無餘一障)하게 하라.

 

2조는, 사람의 취적(聚積), 죽은 뒤에 공을 제시하여, 생귀의 더러움을 말하지 않게 하고, 함부로 허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보흡무여일감(普洽無餘一憾)하게 하라.

 

3조는, 고집이 세고 사혹(邪惑)한 자는 광야(曠野)에 귀향을 보내, 때때로 그 사옥함을 씻게 하여, 사기(邪氣)로 하여금, 무여어세상(無餘於世上)하게 하라.

 

4조는, 죄를 크게 범한 자는 섬도(暹島)에 유배시켜 죽은 뒤에 그 시체를 태워서, 죄집(罪集)으로 하여금, 무여어지상(無餘於地上)하게 하라 였다. 또 궁실(宮室)을 짓고, 배와 차()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거주(居住)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에 환웅씨가 바다에 배를 띄워 시승(始承)하여 사해(四海)를 순방하니,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제족의 소식을 소통하여 근본을 잊지 않을 것을 호소하고, 궁실을 짓고, 배와 차를 만들고, 화식(火食)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었다.
 
환웅씨가 돌아와 82(八音二文)을 수학하고, 역법(曆法)을 정하고 의약술(醫藥術)을 수업하며,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저술하니, 홍익인세(弘益人世)였다. 이는, 세대는 멀어지고, 법은 해이하여져서, 모든 사람들이 몰래 사단(詐端)을 모색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용(日用)하는 사물 사이에서, 근본의 도를 보전하여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비로소 학문을 하는 풍조가 일어나니, 인성(人性)이 혼매(昏昧)하여, 배우지 않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桓因氏之子桓雄氏ㅣ生而有大志하야 繼承天符三印하고 修계除불하고 立天雄之道하야 使人知其所由러라. 於焉人世ㅣ偏重於衣食之業하니 桓雄氏ㅣ制無餘律法四條하야 使鰥夫로 調節하니 一曰人之行蹟은 時時淸濟하야 勿使暗結生鬼하며 煩濟化魔하야 使人世로 通明無餘一障하라. 二曰人之聚積은 死後堤功하야 勿使陳垢生鬼하며 濫費化魔하야 使人世로 普洽無餘一憾하라. 三曰頑 邪惑者는 謫居於曠野하야 時時被其行하야 使邪氣로 無餘於世上하라. 四曰大犯罪過者는 流居於暹島하야 死後焚其尸하야 使罪集으로 無餘於地上하라. 又作宮室舟車하야 敎人居旅러라. 於是에 桓雄氏ㅣ始乘舟浮海할새 照證天符修信하고 疏通諸族之消息하며 訴言根本之不忘하고 敎宮室舟車火食之法이너라. 桓雄氏ㅣ歸而修八音二文하고 定曆修醫藥하며 述天文地理하니 弘益人世라. 此는 世遠法弛하야 諸人之暗취摸 이 增詐端故로 欲保根本之道於日 用事物之間而使昭然也라. 自是로 始興修學之風하니 人性昏昧하야 不學則不知故也라.


4 : 임검(壬儉)씨 시대(조선시대)

第十二章

환웅씨가 임검(壬儉)씨를 낳았다. 때에 사해의 제족(諸族)이 천부의 이치를 강()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미혹(迷惑)속에 빠져,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천웅의 도(天雄之道)를 닦아, 계불의 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갈고, 심고, 누에치고, 칡을 먹고, 그릇을 굽는 법을 가르치고, 교역(交易)하고, 결혼하고, 족보를 만드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임검씨가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므로, 몸에는 털이 길게 나가지고, 사해를 널리 돌아다니며, 제족을 차례로 방문 하였다. 백년사이에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해혹복본(解惑復本) 할 것을 맹서하며, 부도(符都)를 건설할 것을 약속하니,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은 끊어져, 제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로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모여 협화(協和)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강()하여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후일에 회강(會講)의 실마리가 되니, 인사가 번거롭고 바빠, 강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桓雄氏生壬儉氏하니 時에 四海諸族이 不講天符之理하고 自沒於迷惑之中하야 人世因苦라. 壬儉氏懷憂於天下하고 修天雄之道하며 行계불之儀하야 繼受天符三印이라. 敎耕稼蠶葛陶 之法하고 布交易稼 錄之制러라. 壬儉氏ㅣ啖根吸露하고 身生毛 하야 遍踏四海하야 歷訪諸族하니 百年之間에 無所不往이라. 照證天符修信하고 盟解惑復本之誓하며 定符都建設之約하니 此는 地遠信絶하야 諸族之言語風俗이 漸變相異故로 俗講天符地理於會同協和之
而使明之也라. 是爲後日會講之緖하니 人事煩忙하야 不講則忘失故也라.

第十三章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부도(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자방(磁方)이었다. 이는 2 6이 교감(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 8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9 1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 칠색보옥(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 3 5 7의 자삭(磁朔)의 정()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곧 태백산 밝은 땅의 정상에 천부단(天符壇)을 짓고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였다. 보단의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량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길의 사이는 천리였으며, 도랑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麻故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부도의 하부를 나눠 마을을 만들었다. 삼해(三海)의 주위에 둥그렇게 못에 잠기었다. 사진(四津)과 사포(四浦)가 천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과 포()사이에 다시 6부를 설치하였다. 6부에는 제족(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니, 웅려(雄麗)하고 광명하여 사해를 총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제족의 생맥(生脈)이었다.

壬儉氏ㅣ歸而擇符都建設之하니 卽東北之磁方也라. 此는 二六交感懷核之域이오 四八相生潔果之地라. 明山麗水ㅣ連선萬里하고 海陸通涉이 派達十方하니 卽九一終始不 之其也라. 三根靈草와 五葉瑞實과 七色寶玉이 托根於金剛之臟하야 遍滿於全域하니 此一三五七磁朔之精이 會方成物而順吉者也라. 乃築天符壇於太白明地之頭하고 設保壇於四方이라. 保壇之間에 各通三 道溝하니 其間이 千里也오 道溝左右에 各設守關하니 此取法於麻故之本城이라. 劃都坊於下部之休하고 圖涵澤於三海之周하니 四律四浦ㅣ連隔千里하야 環列於東西라. 律浦之間에 又設六部하니 此爲諸族之率居也라. 符都 成하니 雄麗光明하여 足爲四海之總和요 諸族之生脈

第十四章

이에 황궁씨의 후예 6만이 이주하여 지키고, 곧 나무를 베어 뗏목 8만을 만들어서, 신부(信符)를 새겨,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보내,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들어, 박달나무 숲에 신시를 크게 열고, 수계정심(?淨心)하여, 천상(天象)을 살핀 후, 마고의 계보(系譜)를 닦아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의 음에 준하여 그 어문(語文)을 정리하였다.
 
또 북진(北辰)과 칠요(七耀)의 위치를 정하여 반석의 위에서 속죄의 희생물을 구워 전()을 올리고, 모여서 노래하며 천웅(天雄)의 악()을 연주하였다. 제족이 방장산(方丈山) 방호의 굴(方壺之堀)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를 새기고 그것을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하여 칠난(七難)을 없애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매 10년마다 반듯이 신시를 여니, 이에 어문(語文)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인세가 태화(太和)하였다. 인하여 바닷가에 성황(城隍)을 지어 천부에게 전을 올리고, 제족으로 하여금 머물러, 집을 지어 살게 하니, 그 뒤에 천년 사이에 성황이 전역에 널리 퍼졌다.

第十五章

또 예와 양()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어,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행하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 바쳤다.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쳐 송축하기를,
[
고기와 양을 희생으로 조제에 공진하니,오미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창생의 재앙을 그치게 하네] 하였다.

이를 가르켜 조선제(朝鮮祭)라 하였다. 이 때에 산악과 해양의 제족이 물고기와 육()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이 거개가 저린 어물과 조개와 가죽류이기 때문에 곧 희생제(犧牲祭)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 하고, 공에 보답하게 하였다.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니, 이는 물체가 대신 오미의 잘못을 보상하여, 재앙을 먿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즉 육친고충의 고백이었다. 언제나 세제(歲祭) 때에는 물화(物貨)가 폭주하므로 사 진과 사 포에 해시를 크게 열고, 몸을 깨끗하게 하여, 지리(地理)를 거울삼아, 교역의 법을 시행하여, 그 값과 분량을 정하며, 물성(物性)의 근본을 분별하여 이용하는 법을 밝혔다.
 
또 부도 팔택의 모양을 본떠서 뭇을 파고, 곡수(曲水)의 사이에서 보새(報塞)를 지내고, 회연(會燕)하여 제물(濟物)하는 의식(儀式)을 행하였다. 제족이 봉래산 원교봉(圓嶠峯)에서 오서(五瑞)의 열매를 얻으니, 즉 잣나무 열매였다. 봉래 해송(海松)이라 하여, 은혜롭게 오행(五幸)을 얻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가 산업이 일어나서 교역이 왕성하게 되므로, 천하가 유족하였다.

第十六章

()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해삼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대개 인삼이 그 수격(數格)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서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 1기로 휴먼하고, 13기를 1()으로 축정(蓄精)하고, 4삭을 경과하여 씨()를 맺어 화()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영효(?)가 있으므로, ()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은 진실로 불암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천혜(天惠)였다.


5 : 오행(五行)의 화()

第十七章

이 때에 도요(陶堯)가 천산(天山)의 남쪽에서 일어났다. 일차로 출성(出城)한 사람들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의 간()에게서 도()를 배웠다. 그러나 원래 수()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95(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5(中五) 이외의 8, 1이 즉 8이라고 생각하고, ()로써 외()를 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고, 그것을 거절하였다.

 

요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를 쫓아냈다.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有因)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壬儉)씨가 여러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비어 있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三方)으로 흩어졌다. 요가 곧 9(九州)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중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여,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세 두번째의 큰 변이었다.


第十八章

이에 임검씨가 그것을 심히 걱정하여, 유인씨(有因氏)의 후손 유호씨(有戶氏)의 부자로 하여금 환부(鰥夫)와 권사(權士) 100여인을 인솔하고 가서 그를 깨우치도록 하였다. 요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을 하고, 공순하게 대접하여 하빈(河濱)에서 살게 하였다. 유호씨가 묵묵히 그 상황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여러 번 그 거처를 옮겼다.
 
이보다 먼저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에 칡을 먹고 오미를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키는 열 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보다 나이를 100여살이나 더 먹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사자(使者)가 되어, 완미(頑迷)한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때에 요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 가운데 딴 뜻이 있어, 일을 맡기고, 도와주며, 두 딸로 유혹하니, 순이 곧 미혹하여졌다. 유순이 일찍이 부도의 법을 행하는 환부가 되어, 마침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두 딸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

第十九章

이 때 유호씨가 수시로 경계를 하였으나, 순은 예, , 하고 대답만 하고는 고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다.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꾸짖고, 그를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하였다.
 
유호씨가 이르기를, 오미의 재앙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오행(五行)의 화를 만들었으므로, 죄는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은 하늘을 가리어, 수사(數事)가 많이 어그러져, 인세(人世)가 곤고(困苦)하여 졌다.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나, 알고 범하는 자는 비록 지친(至親)이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하고 곧 차자(次子) 유상(有象)에게 명하여 권사(勸士)를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그를 치게 하니, 수년 동안 싸워서, 마침내 당도(唐都)를 혁파(革罷)하였다.
 
요는 유폐(幽閉) 중에서 죽고, 순은 창오(蒼梧)의 들에 도망하여, 도당(徒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의 무리 우()가 순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그를 추격하여 죽여버렸다. 순의 두 처()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우가 곧 정명(正命)으로 입공(立功)한다고 말하고, 상의 군사를 위로하고 돌아가므로 유호씨가 물러나서 우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 때에 우가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을 보수하고 유호씨에게 항거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였다.

第二十章

우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단()을 설치하였다.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는 부도 제시(符都際市)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었으나, 폭돌(暴突)한 것이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 부도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가 곧 수륙(水陸)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 때에 유호씨가 서벙에 살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여, 소부와 허유가 사는 곳과 통하고, 서남 제족과 연락하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읍()을 이루웠다. 유호가 곧 권사(權士)를 보내, 우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요는 천수(天數)를 몰랐다.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다. 기회를 틈타 독단(獨壇)을 만들고,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되어, 혼자서 처리하였다. 세상은 토석(土石)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천리(天理)는 거꾸러 흘러, 허망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천권(天權)을 훔쳐,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제왕이 만약 천권을 대행하는 것이라면, 능히 일월(日月)을 개폐(開閉)하여, 만물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왕이란 수의 요체(數諦), 사람이 거짓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다만 사기와 허망의 나쁜 장난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증리(證理), 세상의 일이란 그 증리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니, 이 이외에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명확하게 증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무(本務)를 수행하게 하고, 그 본복(本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비록 선후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하고 생소한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내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해가 평등하며, 제족(諸族)이 자행(自行)하는 것이다. 오직 그 오미(五味)의 죄책을 보속(報贖)하는 것과, 대성의 일(大成之業)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일인 희생의 주관아래 있는 것이요, 여러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일은 예로부터 세상 일(人世之事)에 섞이지 아니하였다. 황궁(黃窮)씨와 유인(有因)씨의 예가 바로 이것이다.

第二十一章

또 그 소위 오행(五行)이라는 것은, 천수(天數)의 이치에 이러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위(方位)의 중앙 5는 교차(交叉)의 뜻이요, 변행(變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1로부터 9까지이므로, 5는 언제나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9가 윤회하여, ()과 여()가 서로 조화를 이룬 후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기수(基數)를 이르는 것이요, 57이 크게 번지는 고리(大衍之環)에 이르면, 그 자리가 5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47이 있는 것이다.
 
또 그 순역(順逆) 생멸(生滅)의 윤멱(輪冪) 4, 5가 아니니, 즉 원수(原數) 9는 불변수이기 때문이다. 또 윤멱이 한번 끝나는 구간은 2X4=8 사이의 7이요, 5가아니다. 또 그 배성지물(配性之物)은 금()()()()()의 다섯 중에서 금()과 토()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을 하고자 한다면, ()()()()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 않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가 없는 것이요, 엄별해서 들자면, 금목수화 혹은 토목수화의 넷이요, 다섯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물성(物性)을 어떤 이유로 수성(數性)에 짝지우는가, 수성지물(數性之物)은 그 원수가 9, 5가 아니다. 그러므로 5행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괘한 말인 것이다. 이로써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무혹(誣惑)하여, 곧 천화(天禍)를 만드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第二十二章

또 그 역제(曆制),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못하고, 거북이나 명협의 미물(微物)에서 근본을 취하였으니, 요는 또 무슨 속셈인가. 천지의 만물이 다 수에서 나와, 각각 수를 상징하고 있는데, 하필 거북과 명협 뿐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물사(物事), 각각 그 역()이 있으니, 역이라는 것은 역사(歷史). 그러므로, 요의 역제는, 즉 거북과 명협의 역이요, 인간의 역이 아니니, 그것이, 인세(人世)와 불합(不合)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삼정(三正)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 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여들였다.
 
()이라는 것은, 인생증리(人生證理)의 기본이므로, 그 수는 몸소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면, 천리(天理)와 인사(人事)가 증합(證合)하여 복이 되고,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에 어긋나 화가 되니, 이는 복은 이()가 존립(存立)하는데 있고, 이는 정증(正證)에 존립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인세 화복(禍福)의 발단이니, 감히 삼가 하지 않을 것인가.
 
옛날, 오미(五味)의 화(), 한사람의 미혹에서 나와서, 만대의 산사람(生靈)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 다시 역의 화가, 장차 천세(天世)의 진리에 미치고자 하니, 두렵기만 하구나.

第二十三章

천도(天道)가 돌고 돌아, 종시(終始)가 있고, 종시가 또 돌아, 4단씩 겹쳐 나가, 다시 종시가 있다. 1 종시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고, 종시의 종시를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겹친 종시를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의 1()를 사()라 하니, 사에는 13()가 있고, 1기에는 28일이 있으며, 다시 4()로 나뉜다. 1요에는 7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이라 한다. 그러므로, 1사에 52요복이 있으니, 364일이다. 이는 147성수(性數), 매 사의 시작에 대사(大祀)의 단()이 있으니, 단과 1은 같기 때문에 합하여 365일이 되고, 3사의 반()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니, 판은 사의 2분절이다. 이는 258법수(法數), 달이 긴 것이 1일과 같기 때문에, 4의 사는 366일이 된다. 10사의 반()에 대회(大晦)에 구가 있으니, 구는 시()의 근원이다. 300구가 1(?)가 되니, 묘는 구가 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9633묘를 지내서 각(), (), () 1일이 되니, 이는 369의 체수(體數). 이와 같이, 끝나고 또 시작하여, 차차 중력(中曆)과 대력(大曆)에 미쳐서, 이수(理數)가 곧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의 이 세가지 잘못은, 허위(虛僞)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가히 부도 실위(實爲)의 도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허위는, 안에서 이()가 불실하여,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실위는, (), 나를 언제나 만족하게 하여, 스스로 함께 존립한다.

第二十四章

유호(有戶)씨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제법(諸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올 것을 권하였으나, ()가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고, 모욕이라 하여,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수차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모산(茅山) 진지(陣地)에서 죽었다. 이에 하중(夏衆)들이 비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 만이였다. 이는 거의가 우와 함께 치수(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 천이었다.
 
그러나, 하군(夏軍)이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번도 전적을 거양하지 못하였다. 계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양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중(夏衆)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제족(西南諸族)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이 자연히 없어졌다.


6 : 잃어버린 부도의 법

第二十五章

이로부터, 천산(天山) 남쪽 태원(太原)의 지역이, 뒤숭숭하고 떠들썩하며, 주인이 없는 것과 같아서, 소위 왕이란 자는 눈이 멀고, 소위 장님은 백성이 되어, 암흑이 중첩하였다. 강자는 위에 있고, 약자는 아래에 있어, 왕과 제후를 나라에 봉하고, 생민(生民)을 제압하는 풍폐(風幣)가 만연하여 고질이 되고 마침내 서로 침탈하기에 이르니, 헛되게 생령(生靈)을 죽이고, 한가지도 세상에 이로운 것이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하은(夏殷), 다 그 법으로 망하고서도, 끝내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는 스스로 부도에서 떨어져나가, 진리의 도를 들을 수 없게 된 까닭이었다.
 
어느덧 유호씨가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성생(月息星生)의 땅에 들어가니, 즉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의 후예가, 오히려 소()를 만드는 풍속을 잊지 아니하고, 고탑(高塔)과 층대(層臺)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천부(天符)의 본음(本音)을 잊어버리고, 탑을 만드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여, 도를 와전하여, 이도(異道)가 되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싸우고 정벌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마고(麻姑)의 일은 거의가 기괴하게 되어, 허망하게도, 형적이 아주 없어지니, 유호씨가 두루 제족의 지역을 돌고, 마고와 천부의 이()를 설()하였으나,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 전고자(典古者)가 송구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하였으므로, 이에 유호씨가 본리(本理)를 술회하여, 그것을 전하였다.

第二十六章

임검씨가 유호씨의 행상(行狀)을 듣고, 그 길을 장하게 여겨, 유호씨의 족()에게 교부(敎部)에 취업하게 하여 살도록 하였다. 이때에, 임검씨가 하토(夏土)의 형세를 심히 걱정을 하고, 마침내 입산(入山)하여, 해혹복본(解惑復本)의 도를 전수(專修)하였다.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천지가 하나의 이치가 되는 것을 증명하여, 인생이 일족(一族)이 되어, 크게 부조(父祖)의 도를 일으키고, 널리 <천웅(天雄)의 법을 행하여, 인세 증리(證理)의 일에 전념하였다.
 
일찍이 <운해족(雲海族)과 긴밀하게 연락하여, 하토(夏土)가 하나로 돌아오기를 시도하더니, 이도(異道)가 점차 성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를 아들 읍루씨(?婁氏)에게 전하고 입산하였다. 읍루씨가 날 때부터, 대비(大悲)의 원()이 있어, 천부삼인을 이어받고, 하족(夏族)이 도탄에 빠진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진리가 사단(詐端)의 지역에 떨어진 것을 슬프게 생각하여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에 천부를 봉쇄하고, 곧 입산하여, 복본의 대원(大願)을 전수(專修)하며, 백년동안 나오지 아니하니, 유중(遺衆)이 통곡하였다.

임검씨가 후천(後天)의 말세의 초에 태어나, 사해의 장래를 미리 살피고, 부도 건설을 시범하니, 천년 사이에 그 공업이 크게 이루어졌다. 이에 이르러 천부의 전해짐이 끊어져, 마고 분거(分居) 이래로, 황궁(黃穹), 유인(有因), 환인(桓因), 환웅(桓雄), 임검(壬儉), 부루(夫婁), 읍루(?) 7세에 천부가 전해진 것이 7천년이었다.


7 : 삼한에서 삼국으로

小 符 都 誌

第二十七章


()의 망명자 기자(箕子), 패군과 난민을 이끌고, 부도의 서쪽에 도망하여 왔다. 명예를 위하여 당우의 법을 행하고, 오행 삼정(五行三正)을 써서, 홍범 무함(洪範巫咸)을 시행하였다. 천웅의 도와는 절대로 서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은의 군민(軍民)이 무력으로 부도의 유중(遺衆)을 억압하므로, 유중이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을 봉해버리고, 동해의 물가로 피하여 살았다. 즉 옛날의 사례벌(斯禮筏)의 공지(空地)였다. 사해벌은 긴 기(長旗), 광야(曠野)에 유배된 사람이, 아침에 내걸고, 저녁에 거둬들여, 먼곳에서 살면서 지키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망가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곧 육촌(六村)을 설치하고, 입접의 제족과 분담하여, 함께 지키되, 각각 한()이라 하고, 보위(保衛)하였다. 한은 보위의 뜻이다.

북의 마한(馬韓), 남의 변한(卞韓), 동의 진한(辰韓)의 삼한이 부족의 자치를 행하고, 선세(先世)의 도를 굳게 지켜, 이후 천년 사이에 기자의 법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보위 방비하는 일에 전념하여, 거의 여력이 없었다. 이 때 하토(夏土)의 쟁탈의 바람이 점차 격심하여, 동요와 혼란이 삼한에 파급되므로, 육촌의 사람들이 서로 모의하고, 서쪽의 화가 점차 임박하여, 보수(保守)하기가 장차 위태로우니, 어쩔 수 없이 통합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마침내 경계를 정하고, 요새(要塞)를 세워, 혁거세를 추대하여, 통어(統御)하는 일을 위임하였다. 남은 백제(百濟), 북은 고구려(高句麗)였다. 고구려가 곧 북보(北堡)의 땅을 회복하여, 서침(西侵)하는 사람들을 쫓아버리고, 그 지역을 완전하게 보위하였다.


9 : 어둠속으로

第二十八章


이보다 먼저, 육부(六部)의 촌장(村長)들이 약()을 캐는 날에 모여서, 선도산 단묘(仙桃山壇廟)의 성모(聖母)가 알을 낳았다는 말을 듣고, 여러 사람이 가서 보았다. 동쪽의 우물을 보로 덮어 가리고, 껍질을 벗겨서, 남아를 얻었다. 몸에서는 빛이 나고, 귀가 부채만큼 컸다. 곧 박()으로써 성을 삼고,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박은 단의 어음이 박달이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여 성을 삼았으며, ()은 빛이니, 즉 광명으로써 암흑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뜻이다.

육촌의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니, 점차 자라면서, 신기(神氣)가 수명(秀明)하고, 대인(大人)의 도가 있었다. 13살에 여러 사람이 추거(推擧)하여, 거서간(居西干)이 되니, ()는 거(), ()은 방()이요, ()이다. 즉 서방에 의거하여, 경계하는 방어장(防禦長)의 뜻이다. 서방은 즉 저들 서침하여 사도(詐道)를 행하는 자들이다.

第二十九章

혁거세씨는, 천성(天性)은 신과 같고, 지혜는 성인과도 같았다. 또 현비(賢妃) 알영(閼英)을 맞이하니, 그 때 사람들이 그들을 가르켜 이성(二聖)이라 하였다. 능히 여러 부족을 통솔하여, 선세(先世)의 도를 행하며, 제시(祭市)의 법을 부흥하고, 남태백산(南太白山)에 천부소도(天符小都)를 건설하였다. 중대(中臺)에 천부단을 축조하고, 동서남북의 사 대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여, 계불(??)의 의식(儀式)을 행하고, 대인(大人)으로 하여금, 금척(金尺)의 이치에 따라, 천지시원의 근본을 증리(證理)하여, 옥관(玉管)의 음을 내서, 율여화생법(律呂化生法)을 수증(修證)하였다. 해마다 10월에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으니, 이는 황궁(黃穹)씨의 속신백모지의(束身白茅之義)를 따르는 것이었다. 달구(達丘)에 조시(朝市)를 배풀고, 율포(栗浦)에 해시(海市)를 열어, 육해 교역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항상 순행(巡行)하여, 농상(農桑)과 방적(紡績)을 권장하니, 들에는 노적(露積)이 쌓이고, 집에는 베()가 저장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착한 일을 크게 일으켜, 여러사람과 함께 그 고락(苦樂)을 같이 하고, 밖으로 방패와 창을 쓰지 아니하며,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보존하였다. 한 마음으로 복고(復古)하고, 중건(重建)하는 일에 전념하니, 경내가 도가 있어, 옛날과 흡하사였다. 이 때에 변진(弁辰) 제족이 합동하여 협력하니, 비록 경계를 두고 방비하나, 나라를 칭하지 아니하고, 또 왕을 칭하지 아니하였다. 경내를 다스리는 일은 선세(先世)의 법을 준수하여, 제회(祭會)에서 의결되지 아니하면, 일찍이 한가지의 일도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영수계위법(領首繼位法), 역시 혈계(血系)를 한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영수를 삼았다.

第三十章

남아 나이 20살이 된, 아름답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택하여 마랑(馬郞)이라는 직을 주고, 명령을 받들어 원행(遠行)하게 하였다. 혹 성생월식의 옛 땅에 나아가며, 혹 운해천산의 여러 지역에 가니, 이 원행은 부도 수신(修身)의 유제(遺制) 였다. 동해에 피하여 산 지 천여년사이에 제시의 회(祭市之會)를 열지 못하여, 서로 내왕이 오래 끊어지고, 또 봉국쟁탈(封國爭奪)의 풍조가 사해에 만연하여, 제족이 각자 나라를 칭하고, 오랜 세월에 전란이 반복하니, 겨레()가 종횡으로 나뉘고, 말이 잡다하게 변하였다.
 
천부는 거의 망각하기에 이르고, 혹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어도, 다 변형(變形)하여, 음이 다르니, 마랑들의 원행이 심히 어려워, 순절(殉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랑들이 만리 원행에서도 절조를 지켜, 능히 굳은 뜻을 가지고, 백난을 극복하여 사명을 완수하니, 그 거룩한 인격이 진실로 호매(豪邁)하였다. 장하게도 귀환하면, 반드시 직사(職事)에 임명하여,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와 역수(曆數)와 박물(博物)을 공부하게 하니, 이는 즉 선세에 사해를 통화하여, 인세(人世)를 하나의 법에 맞추는 유업이었다.

第三十一章

서례벌(西禮筏)을 창도(創都)한 후로, 어느덧 삼세(三世)를 지나니, 백여년이 되었다. 세상의 풍조가 크게 변하여 보수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국왕(國王)을 세워, 대권을 행사하게 하자는 여론이 대두하여, 이러니 저러니 하고 시끄러웠다. 그 반대자들은 선세의 유법이 밝고 밝게 천부를 비추니, 지금 비록 시대가 어려우나, 보수하고 튼튼히 방비하여,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 어찌 사단(詐端)에 굴종하여 스스로 소자(小子)가 되어, 패리지중(悖理之中)에서, 모독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와 같이 된다면, 의롭게 목숨을 바쳐, 진도(眞道)를 뚜렷하게 나타내어, 후세에 남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 찬성하는 사람들은, 외세가 긴박하여 파동이 격심하니, 어떻게 방비를 하겠는가. 담장 안에서도 이반하여 시끄러움이 그치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보수한단 말인가.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같이 경쟁하는 마당에 뛰어들어, 부강하게 된 후에, 유업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지금 사해 제족이 사도에 미쳐 날뛰어, 봉사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멸하여 버리면 누가 진도를 현창하며, 후세에 누가 있어, 이를 알 것인가. 만약 능히 방비하여, 보수한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고립되면, 새 백마리 가운데 백로 한 마리가 되어, 오히려 이도(異道)가 되고 세상에 존립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니, 장차 또 그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 같은 것은 다 옳지 못하여, 오직 택할 바는, 나라를 세우고 왕을 높여, 대권(大權)을 집행하며, 군마를 호령하여, 파죽지세로 전진하고, 부도 전역을 회복하는 것 뿐이다. 부도를 다시 세워, 그 근본을 명시하면, 제족이 비록 완강하더라도, 반드시 각성하여, 근본으로 돌아올 것이다.

第三十二章

이에, 마침내 중론(衆論)이 결정되었으므로 인망(人望)이 왕국 수립을 주장하는 석()씨에로 돌아 왔다. 석씨는 동보(東堡) 유배인의 후예로, 옛날부터, 해빈(海濱)에서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체격이 장대하고 지략이 있었으므로, 남해씨(南海氏)가 딸을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대중의 여망에 따라, 자리를 이어 탈해왕(脫解王)이라 칭하니, 즉 보수(保守)의 질고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또 서라국(徐羅國)이라 칭하고, 비로소 방패와 창을 사용하여 경내(境內)를 평정하였다. 용병(用兵)을 과도하게 하여, 필경은 배척당하였다. 중론이 다시 박씨의 보수계로 돌아오니, 이에 박씨가 다시 계승하고, 왕국의 칭호를 폐지하였다. 4세를 지나, 중론이 또 석씨에게로 돌아 갔으나, 단 정벌하는 일을 원하지 않으니, 이가 벌휴씨(伐休氏)였다.
 
석씨 4세 사이에 정벌을 다시 시작하니, 중론이 김씨의 중화(中和)로 돌아왔다. 김씨는 원래 부도에서 동쪽으로 옮겨와 살던 비족으로, 온양덕후(溫讓德厚)하여, 지마씨(祗摩氏)가 손녀를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자리를 이으니, 이가 미추씨(味雛氏) 였다. 이 때를 당하여 서북의 환()이 계속해서 일어나되, 하나도 조치된 바가 없으므로, 중론이 다시 석씨에게로 복귀하였다. 이에 석씨가 다시 자리를 이어, 3세 사이에 정사(征事)가 허다하여, 민물(民物)을 탕진하므로, 크게 시대의 배척을 받았다. 중론이 다시 김씨에게로 돌아가니, 이에 김씨가 다시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第三十三章

오직 우리, 근본을 지키는 족들이 동해에 피하여 살면서, 방비하고, 보수한 지 삼백여년 사이에, 중론의 번복이 이와 같으니, 가히 역외(域外) 풍운이 어떠함을 살필 수가 있을 것이다. 또 가히 천부의 진리가 사단의 세상에서도 의연하게 살아있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세 중론이 반드시 이 도가 무너지지 않는 것에 근거하여, 역대 영수가 오히려 중론의 소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과격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능히 조절하여, 보수를 크게 전하였으니, 마침내 오늘의 사람들로 하여금 가히 천부의 실재를 알게 하며, 또 장차 후인으로 하여금 때를 만나 그것을 행하게 하여, 능히 부도를 다시 건설하고, 사해를 통화하며, 인세가 복본하여, 진리를 명증(明證)하게 하면, 당시 석씨의 논이 과연 불행 중에서 행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題詩
[
아지랑이 초초(??)하게 흐르는 걸 바라보니,나그네의 마음도 가을처럼 지는구나.
세간(世間)의 견백(堅白)도 유유(悠悠)한 일도 징강(澄江)을 대하고 앉아 근심을 잊는다.]

觀雪堂
음신지, 역시지,천웅지,성신지 계속 출간중.

 

[펌] 대한민국역사 바로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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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성 이야기

 

우리 역사에도 창세(創世) 이야기가 있음이 신라때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誌)가 최근 발간 됨으로서 알려졌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麻姑城)의 여신(女神)인 마고에게 두 딸이 있고 이들에게서 황궁, 백소, 청궁, 흑소씨의 남녀 각 1명의, 8명이 태어났고, 이들이 각각 3남 3녀를 낳앗는데, 이것이 인간의 시조이며 몇대를 지나 자손이 3000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성(城)안의 사람들은 품성이 순수하여 능히 조화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았고 수명은 한없이 길고 누구나 스스로 지키는 자재율로 질서를 이루었다.

어느날 백소씨의 일족인 지소씨가 지유(地乳)대신 포도를 먹고 다른 사람에게도 먹게 함으로써 5미(味)의 맛에 취하고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천성을 잃게 되고 수명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들은 성에서 쫒겨나게 되었고 성안에도 지유(地乳)가 끊어져 모든 사람들이 풀과 과일을 먹게 되었다.
이런 사태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의 어른인 황궁씨가 책임을 지고 마고 할머니 앞에 복본(復本: 근본으로 돌아감)을 서약하고 모든 사람의 4파로 나누어 성을 떠남에 있어 황궁씨는 일행을 이끌고 북쪽 문으로 나가 동북 아시아 지역의 천산주(天山州)로 갔다.

황궁씨와 그의 자손인 유인씨 그리고 유인씨의 자손인 한인씨가 천년씩 3천년동안 복본을 위해 몸과 마음을 열심히 닦은 결과 기후가 안정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상승하여 인성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창세기
"짐세朕世 이전에 율려律呂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이 출현하였다. 그리고 오직 8려八呂의 음만이 하늘에서 들려오더니, 실달성實達城과 허달성虛達城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麻姑大性과 마고麻姑도 또한 이 음에서 나왔다." (<부도지> 제 2장)

신라시대 박제상공이 정리한 우리 민족 최고의 사서인 <부도지>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창세 기록을 담고 있다. 즉, 율려음이 창조주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현재에 알려져 있는 음의 체계에 의하면, 율聿은 양성음, 여呂는 음성음에 속하는 데,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율려란 곧 양적인 요소와 음적인 요소가 어울리는 상태, 즉 태극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그러나 율려 자체가 의미하는 음악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그 뜻하는 바는 크게 달라진다. 즉, 태극에서 전개되는 창조과정은 기하급수적이며 기계적인 측면이 있으나, 율려음에서 비롯되는 창조과정은 창조의 근원과 진화의 방향과 목적이 내포되어 있는 조화로움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율려음은 조화의 원리가 전개되는 순수한 원초의 리듬이다. 즉 조화주의 마음과 숨결이 빚어내는 빛(光)이며 음(音)이며 파장(波)이며, 만유의 생명이자 그 모습이다. 그리고 율려음은 우주만물에 깃든 조화주의 본디 성품이며, 얼이며, 혼이다. 개인에 내재한 율려음을 밝혀 우주의 본음本音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부도지>에서는 수증修證이라 하였거니와, 이는 곧 만유를 아우르는 천지마음, 천지기운과 하나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개인의 율려가 살아나 우주의 율려와 하나되어 살아감을 일러 곧 승유지기乘遊至氣라 하였고, 또한 풍류風流라 하였다. 여기에서 개인의 수증은 개인의 얼과 혼을 살리겠거니와, 나아가 전체의 율려를 살리는 일은 곡 민족과 세계의 얼과 혼을 살리는 일과 직결되어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전체의 율려가 되살아난 세계가 곧 이화理化, 신명神明의 세계이다.

창세기
"선천시대의 마고대성은 실달성의 위에 허달성과 나란히 있었다. 그리고 햇빛이 따스하게 비칠 뿐 눈에 보이는 물체는 없었다.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할 때, 짐세에서 태어나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는 마고가 선천을 남자로 후천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 없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았다. 두 딸로 하여금 오음칠조(五音七調)의 음절을 맡아보게 하였다. 궁희와 소희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精)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각각 두 천인과 두 천녀를 낳았으니, 모두 네 천인과 네 천녀였다. 첫째가 황궁(黃穹)씨요, 둘째가 백소(白巢)씨요, 셋째는 청궁(靑穹)씨요, 넷째는 흑소(黑巢)씨인데,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씨요, 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였다. 네 천인에게는 율(聿)을 네 천녀에게는 여呂를 맡아보게 하였다.

마고성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성이다.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고 선천을 계승하였다. 마고성 내에 지유(地乳)가 처음 나오니 궁희와 소희는 지유를 먹여 그들을 길러, 네 천인에게는 율을 맡기고 성중의 사방을 맡아 음을 조절하고 관리하도록 하고, 네 천녀는 여를 맡아보게 하였다.
" (부도지 제1,2장)

창조의 주인공이었던 율려음은 선천, 후천시대를 통하여 다채로운 창조적 전개를 거듭한다. 짐세가 있기 전 율려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등이 나타났고, 그 후 8려음에서 마고, 마고성, 실달성, 허달성이 나타났으며, 짐세가 끝날 무렵 마고가 낳은 궁희와 소희가 오음칠조를 맡았다. 그 후 후천이 열리고 율려가 다시 부활하자 음상(音象)이 나타났는 데 성(聲)과 음(音)이 섞여 있었고, 곧 후천창조가 일어나 만물이 자리하였는데 위에는 음상(音象)이 아래에는 향상(響象)이 있어 서로 조화롭게 상응하였다. 이러한 창조과정의 특징은 율려음을 바탕으로 한 음악적인 전개에 있으며, 그 주된 주제는 곧 조화와 화합이다.

마고성에 봉수된 천부가 하늘의 법을 이었다는 직접적인 상징이라면, 궁희와 소희가 오음칠조를, 그리고 그들이 낳은 천인과 천녀가 율과 여를 맡았음은 하늘 법을 이었다는 간접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천부인(天符印)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전법(傳法)의 상징이라면, 율려의 전례는 이심전심(以心傳心)하는 전법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오미(五味)의 화(禍)가 있은 후 모두가 마고성을 나올 때, 황궁씨가 나머지 부족에게 천부의 신표를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8장)

여기에는 역사의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황궁씨가 곧 한민족의 직계 조상으로 마고와 궁희씨의 뒤를 이은, 네 천인 중 장자(長子)였다.
창세기
후천이 열리고, 마고가 율려를 타고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만들고 초목금수를 키운다. 한편 황백청흑(黃白靑黑)이 된 자들은 사방에서 만물의 본음을 관장한다. 성음(聲音)과 음향(音響)이 나타나고, 역수(曆水)가 시작되니 주야(晝夜)와 사시(四時)의 구분이 생긴다. 여기에서 마고가 실달성을 통하여 지구상의 모든 것에 대한 사실적인 질서를 잡아갈 수 있었던 것은 율려가 음상(音象)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상 창조과정의 한 부분으로, 음상이란 곧 음의 결, 혹은 무늬로서 음의 사실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음의 사실적인 모습이 드러나고 지구가 삶의 터전으로 변하는 과정은 율려가 나타나 창조가 이루어지는 과정과 같은 과정으로, 모든 것이 '하나'의 품 안에서 율려로서 이루어져감을 뜻한다.
 
특이한 것은 '음상(音象)'이 위에서 '향상(響象)'이 아래에서 서로 조화롭게 상응한다는 점이다. 이 음상에 성聲이 섞여 있다는 사실은 마고의 말씀으로 후천창조가 이루어졌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만물의 질서를 위하여 인간이 해야 할 일이 곧 향상(響象)을 수증하는 일임을 상기할 때, 마고의 일이나 인간의 본분사가 곧 율려 속에서 하나로 조화롭게 어우러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후천창조 속에는 이미 잊혀져 버린 한민족 본래의 중요한 철학이 담겨져 있다. 즉, 창조의 중심자리에 있는 율려음이 수數로, 수數가 역曆으로, 역曆이 역易으로, 역易이 역歷으로 발전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옛날에는 사사로이 역제曆制를 변화시키는 것을 크게 금기시하였는데, 이는 곧 우주의 본음과 멀어짐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율려와 멀어진 후, 역사상 흔히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면 먼저 역제의 변화를 일으켜 스스로가 중심자리에 있음을 내세우려 하였던 때가 많았다. 그리고 자국의 역을 버리고 타국의 역을 따르는 일도 흔하였는데, 이는 곧 스스로의 얼과 혼을 포기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역사를 잃어버림은 그 역사를 통하여 면면히 이어져온 율려음을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는 곧 스스로의 얼과 혼의 상실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누구를, 무엇을 통하여 이어져오는가 하는 점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기수화토(氣水火土) 4요소설이다. 이 4요소설은 흔히 말하는 오행과 흡사한 듯하지만 많은 차이점이 있다. 이 기수화토(氣水火土)설은 인간과 자연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조화의 근본 매카니즘인 수승화강水昇火降을 이루는 근본 요소이다. 이 4요소는 인간과 자연계의 질서를 조율하고 만물을 화육하는 실질적인 바탕을 이루고 있지만, 오행의 요소들은 사실상 기화수토의 활동을 기반으로 운행되는 사물의 변화와 그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어 서로 크게 다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의 음양오행설은 오미의 화와 오행五行의 변變이 일어나고, 인간이 율려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역曆과 역易이 사사로이 바뀌고, 다시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정립된 것이다. 마고시대의 수화기토설의 뜻은 현재 불교의 지수화풍(地水火風)사대 속에 그 자취가 남아 있다.
마고성 시대

 

"이 때에 본음을 관섭(管攝)하는 자가 비록 여덟 사람이었으나 향상(響象)을 수증하는 자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어났다가 잠깐 사이에 없어지며 조절이 되지 않았다.  마고가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갈빗대를 열어 출산하게 하니, 이에 네 천인과 네 천녀가 결혼하여 각각 3남 3녀를 낳았다.  이들이 지계(地界)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시조였다.  그 남녀가 서로 결혼하여 몇 대를 지나는 사이, 족속이 불어나 각각 3,000사람이 되었다.  이로부터 12사람의 시조는 각각 성문(城門)을 지키고 그 나머지 자손들은 향상을 나누어 관리하고 수증하니, 비로소 역수(曆水)가 조절되었다." (제4장)

네 천인과 네 천녀가 마고의 명을 받아 12개 지파 24명의 인류 최초의 시조들을 생산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12,000명의 인류의 조상들이 태어난다.  오미의 화가 있은 후 이들은 모두 마고성을 나와 사방으로 흩어지지만, 처음에는 천계(天界)의 인물들이었다.  이들이 모두가 마고성에 있을 때의 조화로운 모습은 아마도 전 인류의 유전인자 속에 반드시 되찾아야 할 이상향(理想鄕)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네 천인과 네 천녀는 각각 천지 만물의 본음本音인 율과 여를 관장하고, 12시조는 성문을 지키고, 그 후손들은 향상을 수증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절대적인 자재율의 바탕 위에서 스스로 이루어지니, 이것이 천과 지와 인이 한 덩이로 어우러지는 원초적인 모습이다.  서로의 역할들을 나누어 맡으니, 비로소 음상과 향상이 위와 아래에서 조화롭게 상응하였으며, 사람들은 향상을 수증하는 본분사(本分事)가 있게 되었고, 따라서 만물이 질서를 찾고 역수(曆水)가 제대로 조절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인간들이 율려 속에서 같이 어울려 살았던 파라다이스의 본 모습이며 그 실질적인 운영체계였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제자리에 있었고, 알과 얼과 울이 조화롭게 어울린 모습이며, 수승화강이 온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마당이었다.  여기에 사람이 태어나는 본래의 목적이 암시되어 있다.  그들은 곧 만물과 역수의 조절을 위하여 태어났으며, 해야 할 일은 네 개의 문을 지키는 일과 향상을 수증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들의 현대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아니 인간을 위하여 만물과 역수를 조절한 결과는 무엇일까?
 
중앙에 천부가 봉수되고 있고, 사방을 천인들이 지키며, 그 후손들이 함께 어울려 살았던 마고성의 모습이, 곧 한민족의 전통 놀이기구인 윷판과 고누판의 모습에 잘 나타나 있다.  이로 보아도 삼태극의 문양과 함께 윷놀이와 고누놀이를 지니고 있는 한민족은 곧 하늘의 법을 이어왔던 천손족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삼태극(三太極)과 마고성 내의 구조가 암시하는 3과 5의 구조는 한민족 고유의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의 근본을 이루고 있고, 이 삼신오제 사상은 애초에 율려와 자재율과 조화와 화합의 바탕 위에 있었다.  특히 중앙에 봉수 되어 있었던 천부는, 지금은 그 자취만 남아있지만, 황제중경(黃帝中經)에 나타나 있는 '중일中一철학'의 근간이 되었고, 마고성을 출성한 뒤 장자였던 황궁씨가 여러 족속들 중 유일하게 천부의 법을 올바르게 지킴으로서 '황(黃)'이 곧 중앙을 나타내는 효시가 되었다.
 
마고성 시대
"성중(城中)의 사람들은 품성稟性이 순정(純情)하여 능히 조화(造化)를 알았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았다.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모두 천음天音을 들었고, 길을 갈 때는 능히 뛰고 걷고 할 수 있었으므로 내왕이 자재하였다.  할 일이 끝나면 금진金塵으로 변하였으나 그 성체性體를 보존하였으므로, 혼식魂識이 일어남에 따라 소리를 내지 않고 능히 말을 하고, 때에 따라 백체魄體가 움직여 모습을 감추고 능히 활동을 하였다.  지기地氣 중에 퍼져 살면서 수명壽命이 한량이 없었다." (제4장)
 
그들은 고도로 순수한 영적(靈的)인 동시에 기적(氣的)인 존재였으며, 물들지 않은 온전한 성性, 혼魂, 백魄을 지니고 있었다.  항시 천음을 들으며 조화를 알았고 한량없는 수명을 지닌 천인이자 신인神人이었다.  스스로 항시 향상을 수증하면서 다만 맡은 일을 할 뿐 차별과 욕심이 없는 맑은 사람들이었다.  성체를 보존하면서 할일에 따라 혼백을 자유로이 하니 그들의 생활은 마음이 나타남에 따라 기와 혈과 정이 움직여지는, 심기혈정心氣血精의 원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원리의 삶을 살았다.
 
여기에서 귀거리의 본래 목적을 고증할 수 있는 대목은 상당히 이채롭다.  그것은 애초에 천음을 듣기 위한 것이엇음을 알 수 있다.  후에 종종 발굴되는 속이 비어있는 귀거리와 금관에 달려있는 각종 장식, 그리고 부처나 성현들의 귀가 항시 크게 표현되어 있음은 곧 천음天音과 깊은 연관성이 잇을 것으로 추정되어, 천인들의 귀에 있었던 오금의 존재를 더욱 사실적으로 부각시켜주고 있다.  마고성의 천인들이 들었던 천음은 율려의 음상(音象) 중, 성(聲)이었을 것이다.
마고성 시대
12,000명이나 되는 인류의 조상들이 함께 살았던 마고성은 어디에 있었을까?
 
김은수님의 연구에 의하면,
"마고성은 구대륙의 심장부인 파밀고원에 있었다.  파밀고원은 동북으로 천산산맥을 통하여 알타이 산맥에 이어지고, 동남으로는 곤륜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을 통하여 중국과 인도 대륙에 접하고 있으며, 서남으로는 슐라이만 산맥과 이란 고원을 통하여 메소포타미아에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아랄해, 발라시호, 카스피해와 키르키츠 초원에 닿아있다."
고 지적하고 있어, 그 위치가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부도지>에 의하면 마고성은 지구상의 중심이 되는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  오미의 화가 있은 이후에 제족은 그 곳에서 출성하여 동서남북의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는데, 지구상에서 그러한 분파가 이우러질 수 있을 만큼 중심되는 위치는 곧 파밀 고원지대이다.  황궁씨는 스스로 성城의 북쪽에 위치한 제일 험난한 천산天山으로 나아갔고, 그 후 그 곳을 중심으로 천법을 잊고 사는 제족을 순행巡行하면서 그들을 일깨우게 된다.

사실상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이곳에서 흩어져 나간 제족의 후손들에 의하여 세계의 종교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 근본이 되는 뿌리는 이 곳 마고성의 기억에서 출발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마고성 시대

이상적인 상태에서 삶을 영위하던 인류의 조상들은 인류 최초의 환란을 겪는다.

마고성 내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일한 식품은 지유(地乳)였으나, 백소씨의 일족인 지소(支巢)씨가 기다림에 지쳐 배가 고픈 나머지 포도열매를 먹게 되었다.  인류가 겪은 최초의 환란이란, 그 포도를 통하여 地乳의 맛이 아닌 다른 맛을 보게 된 것에 따른 감각적 변화와 온전했던 성性, 혼魂, 백魄의 변화를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곧 오감五感의 문을 열었음을 암시하는데, 이 때문에 인간은 율려를 아는 감각을 잃어 버리고, 번잡하고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에 휩싸이게 되어 인간 본연의 일을 망각하게 된다.  이러한 감각적인 타락은 조화롭고 이상적인 ‘하나’의 세계를 등지고 모두가 성城을 떠나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이러한 오미의 화로 인한 변화는 실로 지대하였다. 아무런 구속과 방해가 없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던 자재율이 파괴되어 금지하고 수찰(守察)하는 법과 열매 먹는 습관이 생겼다.  다른 생명을 강제로 먹는 습관으로 인하여 이가 생기고 뱀의 독과 같은 타액이 생겼다.  맑았던 혈기가 탁해졌고, 몸이 무거워지고 땅이 굳어져 걷되 뛸 수 없게 되었으며, 태정(胎精)이 맑지 못하여 짐승처럼 생긴 아이가 많이 태어났다.
 
그리고 공률公律을 훔쳐 본 때문에 눈이 올빼미처럼 변하였다. 귀에 있어 천음을 전해주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니 천음을 듣지 못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능히 조화를 알았던 품성이 혹독해지면서 천성天性을 잃게 되었다.  명기命期가 조숙하게 되어 한량없던 수명도 짧아졌고, 일이 끝나도 몸은 금진金塵으로 화하지 못하고 부패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자연계에서도 기토氣土가 서로 상치相値하여 때와 시時를 나타내던 빛이 치우치게 되어 차고 어두운 곳이 생겼고, 수화水火가 조절되지 않아 혈기를 가진 부류들이 모두 시기심을 갖게 되었다.
 
천부경에 나타난 지화 창조의 과정과 삼일시고의 5장을 참조하면, 이러한 변화의 원초적인 의미를 더욱 명백하게 살필 수 있다.
마고성에서 인간의 조상들은 상대가 없는 절대의 율려세계에 살다가, 미혹에 빠짐으로서 상대적인 이원二元의 세계에 빠진다. 따라서 착함(善)과 악함(惡)을 보는 마음의 세계가 나타났고, 맑음(淸)과 탁함(濁)이 있는 기적인 세계를 느끼게 되었으며, 후함(厚)과 박함(薄)을 구별하는 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을 가짐으로서, 화와 복, 오래 살고 일찍 죽음, 귀하고 천함 등의 구별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창조의 과정에서, 근원에서 ‘형상화되기 이전의 상태’를 거쳐 ‘형상화된 상태’가 나타나고, 이 두 과정이 서로 어울려 작용하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심기혈정의 원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뭇 부족의 장자인 황궁씨가 오미에 물들어 더 이상 성 내에서 살 수 없는 이유를 “미혹迷惑이 심대하여 성상性相이 변이變異(제7장)”한 결과로 본 것은 원리에 입각한 분명한 판단이었다.  삼일신고에 의하면, 인간에 있어 성상이 변이하면 곧 마음이 나타나 선과 악의 개념이 생기며 길흉화복을 구별하고, 기쁨과 두려움과 슬픔과 성냄과 탐냄과 싫어함과 같은 여섯 경계에 빠지기 때문이다.
 
본시 온 곳이 하나이고 갈 곳도 하나인 하늘과 땅과 사람은 서로 뗄 수 없는 한덩어리이다.  오미의 화로 인하여 사람의 성품과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자 자연계의 수승화강 역시 그 조절력을 잃고 만다.  인간과 자연에 있어서 수승화강의 실조는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의 연결에 부조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보아 지금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계의 변화는 무엇에서 기인하였는지 분명해질 것이며,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그 근원적인 치유책이 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자명하다.

[펌] http://blog.daum.net/yusuk10/7367743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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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성(麻姑城)은…

신라시대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하고 뜻 깊은 창세 설화가 있다.

이 책에는 모든 사람들이 깨달음에 이르러 완전한 평화와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이상적인 공동체 이야기가 나온다. 부도지에는 천지창조의 주인공 율려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이 나타났고 그 별들은 끝없는 순환을 거듭하면서 우주의 어머니인 마고를 잉태 했으며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麻姑城)을 창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조주는 율려를 통해 세상만물을 창조했으며 율려가 창조한 마 고성은 깨달음에 이른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살았던 근원적인 세상의 모습이며 우리가 가장 깊은 영적 단계에 올라간 후에 반 드시 돌아가야 할 세상이다.

 
 기사제공 ]  문화일보   |   문화일보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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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할미'신화 지리산 산신… 중앙아시아에서 왔다는 설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

 

우리나라 민족신화에는 단군신화만 있는 게 아니다.
또다른 창세 신화로 마고(麻姑) 할미 신화가 있다. 지리산 반야봉은 높이 1751m의 제2봉우리로, 지리산 산신인 천왕봉(天王峰·1915m)의 마고할미와 결혼한 반야가 불도를 닦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여러 큰 산에는 마고할미 전설이 발견된다. 환웅과 단군이 남성성을 띤 천신이라면 마고할미는 여성성을 띤 산신이라고 할 수 있다.


5세기 신라 때 충신 박제상이 썼다고 알려진 ‘부도지(符都誌)’라는 책에도 마고신화가 나온다.
부도지의 마고는 중앙아시아에서 왔으며,지구를 생명이 있는 별로 만들기 위해 궁희와 소희를 낳고 율과 려를 맡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황궁,청궁,백소,흑소의 네 천인과 천녀를 낳는다. 이들은 마고성(麻姑城) 가운데 천부(天符·하늘과 하나되는 이치)를 중심으로 율(律)과 려(呂), 음(音)과 향(響)을 맡아서 만물이 자랄 수 있게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졌고 이것이 인류의 시원이 됐다.


세계문명의 시원을 찾아나선 첫번째 여행지로 김지하 시인은 마고할미가 살았다는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을 선택했다. 우리 문명의 첫 샘물을 그 원형(原型·아키타이프)으로 탐색해서 그 연결고리를 짐작하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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