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허벅지 장단과 나침반
: 나만의 박자를 멈출 때 열리는 화음
**(부제: 요한 성가대 테너 파트의 작은 소동)**
**[때]** 어느 평일 저녁, 요한 성가대 집중 연습 시간
**[장소]** 무실동 성당 연습실 (마리아방)
**[등장인물]**
* **엘리사벳 (30대 여, 지휘자):** 단원들을 음악적으로, 영적으로 이끄는 따뜻하고 단단한 나침반.
* **야고보 (테너):** 신앙심과 열정이 넘치는 단원. 엇박자가 두려워 늘 시선은 악보에 고정하고, 아내(반주자)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 열심히 허벅지를 치며 '나만의 박자'를 센다.
* **아녜스 (반주자):** 오르간으로로 전례의 공기를 완성하는 조력자이자, 야고보 형제님의 아내. 남편의 몹쓸(?) 습관을 가장 먼저 매의 눈으로 찾아낸다.
* **안드레아 (60대 남, 테너 부회장):** 꼼꼼하게 악보를 분석하며 테너 파트를 다독이는 베테랑.
* **토마스 (50대 남, 단장/베이스):** 성가대의 든든한 기둥.
**(요한 성가대가 엇박자(당김음)가 유독 많은 까다로운 성가를 연습 중이다. 지휘자 엘리사벳이 섬세하게 손을 젓고 있지만, 유독 테너 파트의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늦거나 빨라지며 묘하게 엇갈린다. 답답한 표정의 엘리사벳이 양손을 들어 노래를 멈춘다.)**
**엘리사벳**: 자, 여러분 잠시만 멈춰볼게요. 소리는 너무 훌륭한데, 오늘따라 테너 파트의 박자가 아주 미세하게 어긋나네요. 음정은 다 맞는데 왜 이렇게 묘하게 템포가 밀리는 느낌이 날까요? 원인을 잘 모르겠네요.
**(이때, 피아노 앞에 앉아 매의 눈으로 테너석을 째려보던 아녜스가 참지 못하고 마이크를 켜듯 입을 연다.)**
**아녜스**: 지휘자님! 제가 그 원인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저기 테너석 두 번째 줄에 제 남편... 아니, **야고보 형제님!** 연습 중인데 또 제 피아노 반주 소리에 맞춰서 혼자 허벅지 치고 계시죠?
**야고보**: (화들짝 놀라며 치고 있던 오른쪽 허벅지에서 손을 뗀다) 아, 아니... 여보, 아니 아녜스 자매님! 내가 박자 틀릴까 봐 조마조마해서, 자매님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속으로 카운트하면서 조심조심 장단 맞추고 있었지!
**안드레아**: (무릎을 탁 치며) 아하! 어쩐지 우리 테너 파트가 자꾸 미세하게 갈라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야고보 형제님의 그 '허벅지 장단' 때문이었군요.
**엘리사벳**: 아... 야고보 형제님께서 지휘를 안 보시고 혼자 박자를 세고 계셨군요! 사실 지난번 연습 때도 제가 "스스로 박자 치지 마시라"고 단호하게 말씀드려서 내심 미안하고 마음에 걸렸거든요. 형제님의 그 뜨거운 정성과 노력은 100점 만점인데, 합창에서는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답니다.
**야고보**: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지휘자님이 미안해하실 게 뭐가 있습니까. 제 몹쓸 습관인 걸요. 그런데 이 엇박자 많은 곡에서 제 나름대로 정확하게 치려고 피아노 소리에 딱딱 맞춰 허벅지를 두드린 건데, 그게 왜 전체 화음을 깨뜨리게 되는 걸까요?
**토마스**: 야고보 형제님,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생체 리듬이 다 다르지 않습니까. 형제님이 아무리 속으로 정확하게 박자를 친다고 해도, 혼자서 발을 구르거나 허벅지를 치면 결국 **'우리가 맞추는 박자'가 아니라 '형제님만의 박자'**가 되어버립니다. 10명이 각자 자기 허벅지를 치며 템포를 맞춘다고 생각해 보세요. 음악이 산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엘리사벳**: 단장님 말씀이 정확합니다. 지휘자를 보지 않고 반주와 악보에만 의존하면, **시작과 끝의 음절(아티큘레이션)을 동시에 맞출 수가 없게 돼요.** 게다가 악보에 적힌 여리게(p)나 점점 느리게(rit.) 같은 기호들은 수학 공식이 아니잖아요? '얼마나 여리게 할 것인가, 어떻게 감정을 담아 밀당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저, 지휘자입니다.
**아녜스**: 맞아요, 야고보 형제님! 제 반주 소리만 듣고 눈을 악보에만 콱 박고 계시면 관객들과 교우들 눈에는 '연습이 덜 돼서 악보 보기 급급한 사람'으로밖에 안 보여요. 악보는 **'지도'**고, 엘리사벳 지휘자님은 **'나침반'**이란 말이에요!
**야고보**: (눈이 동그라지며) 지도와... 나침반?
**안드레아**: 네, 형제님. 지도를 아무리 달달 외우고 잘 본다 한들, 험난한 산속(엇박자)에서 나침반을 보지 않고 내 보폭(허벅지 장단)만 믿고 걷다 보면 결국 일행과 뒤처지거나 길을 잃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야고보**: 아... 듣고 보니 제 행동이 우리 테너 일행들의 발걸음을 다 엉키게 만들고 있었군요. 엘리사벳 지휘자님, 지난번 연습 때 저를 단호하게 멈춰 세워주신 게 오히려 정답이었습니다. 미안해하실 일이 전혀 아니었어요! 여보... 아니, 아녜스 자매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적해 줘서 고마워요.
**엘리사벳**: (활짝 웃으며) 야고보 형제님의 노래를 향한 그 간절한 진심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조심스러웠답니다. 자, 악보는 이미 연습을 통해 다 머리에 들어오셨죠? 이제 무대 위에서는 악보 대신, 제 손끝과 눈빛이라는 나침반에 여러분의 숨결을 얹어주세요.
**야고보**: (허벅지에 올렸던 양손을 다소곳이 등 뒤로 돌리며) 좋습니다! 오늘부터 제 허벅지는 얌전히 휴업입니다! 제 두 눈은 엘리사벳 지휘자님의 손끝만 뚫어지게 보겠습니다. 우리 테너 파트, 엇박자 한번 기가 막히게 맞춰봅시다!
**토마스**: (호탕하게 웃으며) 역시 우리 야고보 형제님, 포기가 빠르고 수용력은 세계 1등이십니다! 자, 요한 성가대 모두 나침반을 향해 시선 고정!
**(아녜스의 경쾌한 피아노 반주가 다시 시작된다. 야고보가 꾹 참고 허벅지 대신 가슴을 활짝 편 채 엘리사벳의 지휘를 똑바로 응시한다. 제각각 흩어졌던 테너 파트의 엇박자 리듬이 마법처럼 톱니바퀴 맞물리듯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완벽한 밸런스가 담긴 하모니가 마리아방을 가득 채우며 유쾌하게 막이 내린다.)**
**- 幕 (막) -**
***
*(덧붙임)*
야고보 형제님의 솔로 데뷰를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