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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들

신부님과 오이소박이

작성자박순덕(아녜스)|작성시간26.06.23|조회수34 목록 댓글 0

지난 6월 13일, 성모회에서는 본당신자들에게 판매할 오이소박이를 만들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오이와 각종 부추, 채소들이 조리실과 바깥 수돗가를 가득 채웠고, 성모회원들과 형제님들이 함께 정성껏 봉사하였습니다. 오이소박이를 만들면서 문득 영명축일을 앞둔 신부님 생각이 났습니다.

 오이가 오이소박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먼저 오톨도톨한 가시를 칼로 제거하고 물에 깨끗이 씻습니다. 그런 다음 세 토막으로 자르고 깊게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낸 뒤, 일정 시간 소금물에 절여 둡니다. 어느 정도 절여진 오이는 다시 여러 번 씻어낸 후, 다져진 당근과 양파, 매운 고춧가루와 젓갈로 버무린 양념을 몸속 깊숙이 채워 넣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통 안에 담겨 숙성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처음의 오이는 상큼한 오이 맛만 지닌 평범한 오이였지만, 씻김과 절여짐, 그리고 양념 채우기의 과정을 거쳐 우리가 맛있게 먹는 오이소박이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신부님 역시 처음 신학생 시절부터 사제 서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씻김과 절여짐, 그리고 양념 채우기와 같은 과정을 거쳐 사제가 되셨고, 지금도 아름다운 숙성의 길을 걸어가고 계십니다.

때로는 강제로 세 토막이 되는 것 같은 고통의 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때로는 매운 고춧가루와 마늘처럼 마음을 쓰리게 하는 시련이 있었을 것이고, 시원한 물로 씻기는 것처럼 위로와 기쁨의 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마침내 오이가 오이소박이가 되고, 천천히 숙성의 시간을 거치면 모두가 좋아하는 잘 익은 오이소박이가 됩니다. 적당한 소금과 적당한 양념, 그리고 만드는 이들의 정성이 더해져 하나의 훌륭한 음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축하식 때 마지막 선종의 순간에는 제의를 수의처럼 입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이가 오이소박이로 익어 가듯이, 신부님께서도 이러한 과정을 묵묵히 견디며 걸어가고 계시니, 더욱 깊고 향기로운 사제로 익어 가실 것입니다.

때로는 소금물이 너무 짜서 벗어나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고, 매운 양념 때문에 마음이 붉게 물드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손도손 오이소박이를 만들던 신자들의 웃음과 손길이, 신부님께 다시 걸어갈 힘이 되어 드릴지도 모릅니다.

사제의 길은 외롭고 힘들며 때로는 홀로 걷는 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늘 함께 걸어 주실 것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착한 목자이신 주님과, 사제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무실 가족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신부님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은 언제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신부님의 사제서품 성구처럼, 맛있게 익어 가는 오이소박이처럼 날로 더욱 성숙해지시어 거룩한 사제로 끝까지 나아가시기를 늘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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