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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가론

[사진가론]김장섭

작성자워커에반스/김영태|작성시간04.05.25|조회수552 목록 댓글 0
제    목 : <한국사진110년 작가열전>(19)김장섭
날    짜 : 98년 05월 21일

    

김장섭 (金壯燮. 1953~ )

전통 동양화에서 밤하늘 달을 그릴 때 흔히 달 주변의 구름자락을 통해 간접적으로 달을 드러낸다. 이런 간접 묘사의 방식으로 사진작가 金壯燮(김장섭.44)을 드러내보자.
이 경우 배병우를 통해 김장섭을 드러내는 방식이 편리하다. 우선 두 사람은 형님 아우하는 사이이다. 또 현대사진 편입이 채 이뤄지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동시대 사진’의 맨 앞줄에 선 간판스타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들의 관계는 이들의 선배인 주명덕-강운구쌍과 흡사하다.
주명덕-강운구는 “혼자서라면 10리 갈길을 친구가 있어 30리 갔다”고 서로 말한다.
김장섭-배병우도 마찬가지다. “배병우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미 지쳐버렸을 것이다.” 김장섭이 고백하는 이 말을 배병우도 한다. 91년 ‘한국사진의 수평전’을 전후해서 ‘붙어살다시피해 온’ 두명이 풍경사진을 하고 있다는 외양도 엇비슷하다.
단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출발한 주명덕-강운구가 절친하지만 경쟁속의 긴장관계에 있다면, 김장섭-배병우는 서로 부딪치는 측면이 별로 없다. 사진어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명을 직접 비교해 보자. 둘은 90년대 사진계의 최대 사건이었던 ‘한국 사진의 수평전’을 같이 했다. 아니 그 전시에서 두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상 ‘주도했다’고 해야 옳다. 차이가 있다면 이런 ‘사고’치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언제나 김장섭쪽이고, 연배가 다소 위인 배병우는 사람을 끌어모으고 일을 만들어낸다. 괜찮은 궁합이요, 역할분담이다.
배병우는 학생시절 미들급 유도선수 생활을 했다. 기골이 큰 배병우에 비해 김장섭은 크지않은 키에 섬세한 성격이다.
사진이론에도 매우 밝다. 별명은 ‘마포 김’(마누라가 포기한 김장섭)이다. 배병우가 대학훈장으로 안정된 생활을 한다면, 김장섭은 돈 안되는 프리랜서 작가로 사서 고생하니까 아내가 그를 환영할리 없다.

작품도 각자의 사람됨을 닮았다. 이 점은 그들의 작품이 肉聲(육성)이라는 얘기와 통하는데 배병우가 에너지로 차근차근 축적해 작업하는 쪽이라면, 섬세한 김장섭은 작품에서 개념적 요소가 훨씬 강하다. 두 사람 작품이 ‘미니멀하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차별성도 그만큼 크다. 배병우의 풍경이 모던하면서도 이것을 한국적 서정으로 한겹 감싼 형태라면, 김장섭의 풍경은 물기(서정성)를 완전히 빼려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드라이하다. 물론 비상업적, 비타협적이다. 일종의 결벽증이다.
작품의 완성도와 별도로 누구의 작품이 보다 현대적이냐고 묻는다면 손이 올라가는 쪽은 젊은 김장섭이다.

두 사람은 미술 일반을 전공했다가 사진으로 ‘개종’한 공통점도 갖고 있다.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수채화와 디자인을 공부했던 배병우에게 미술은 암시 형태로 스며들어 있다. 설치작업으로 제11회 파리비엔날레에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했을 정도로 잘 나가던 미술작가였던 김장섭은 극적인 ‘업종 전환’케이스에 해당한다. 그의 이런 개종을 ‘극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실은 잘못된 것이다. 깜짝쇼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의 개종은 자기세계를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과정이고, 논리가 뒷받침된 작가적 용기라고 봐야 한다. 김장섭의 사진 개종은 70년대말 이후 세계미술계의 집단개종 현상과 관련이 있다.

보자. 매년 발표되는 독일 카피탈誌(지)의 세계 미술작가 랭킹 1백위중 10위권을 오르내리는 특급중의 특급인 신디 셔먼, 루카스 사라마스, 메이플소프 등은 모두 ‘미술에서 사진으로’ 개종한 작가들이다.
본디 75년부터 현대미술에 중요한 그룹인 ST 그룹전에 참가하며 설치작가로 명성이 높았던 김장섭 본인도 이런 점을 의식하고 있다.

“70년대말 이후 회화 설치미술 등의 작가들은 막다른 골목에 부닥쳤다.
회화의 경우 캔버스위에서 온갖 실험을 하면서 추상 표현주의, 미니멀 등을 실험하다가 ‘새로운 미디어의 신대륙’을 발견했다.
바로 사진대륙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회화가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기호가 매력 있었고, 일루전과 작가의 내면을 묘사하기에 엄청 위력이 있다는 점을 작가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비촉각적 세계이지만 실제에 가장 가깝고 손의 호흡이 느껴지는 촉각적 특성이 사진에 나타난다는 매력을 확인한 것이다.

” 김장섭 업종전환의 계기는 80년 제11회 파리비엔날레 참가다.

<趙祐奭기자>(1998.5.21)



::: 김장섭 사진전 [풍경을 넘어서]

1997년 (가인갤러리)

얼마전 인터뷰를 갔다가, 얘기 끝에 사진작가 김장섭이 화제에 올랐다. 김장섭 씨가 한 번 촬영한 적이 있다는 그는 김장섭 씨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있는 그대로를 찍으려는 자세" 때문이란다. "다른 사람들은 사진 찍을 때 웃어보라느니, 제 모습하고는 다른 모습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김 선생님은 전혀 다르시더군요. 아무 말 없이 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가셨습니다."

풍경을 주로 찍는 사진작가라서일까, 그래서 그의 얼굴도 한 장의 풍경처럼 담아 간 것일까. 그러나 김장섭의 작품들은 그가 단순히 "있는 그대로"만을 추구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단적으로, 압구정동 가인화랑에서 연 그의 이번 개인전 제목이 [풍경을 넘어서]이다. 이에 대해 "그의 관심이 풍경 그 자체가 아니라 사진에 있어서의 풍경의 프레임을 뛰어넘는 일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세계는 고정적인 시각으로 인식될 수 있는가--그의 작품은 표현자로서가 아니라 사진의 프레임으로 완결된 시각의 틀을 벗어 나려는 탐구자로서의 그런 질문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평론가 김승곤은 평론가다운 말 투로 설명한다.

김장섭 씨는 원래는 사진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70년대에 회화 쪽에서 소위 '잘나가는' 작가 였으며, 설치미술 분야에서 분명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사 실 문득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파리 퐁피두 센터에 있는 엄청난 양의 장서를 '과장 섞어서 반을 읽고' 나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그 책의 대부분은 사진 관련책 이었다.) 사진 쪽으로 '전향'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의 '화가로서의 경력'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음 을 즐겨 지적한다. "사진은, 그 중에서도 특히 풍경사진은 우연성이 많이 작용합니다. 그런 데 선생님은 사진을 찍을 때부터 결과를 거의 예측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사진 은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시각적 감각이 뛰어나신 것 같아요."라고 그의 작업 을 오래 지켜보았던 조수 박진명 씨는 말한다.

회화 쪽에서도 그의 재능은 대단했던 듯하다. 홍익대 회화과에 다닐 때에도 데생 실력은 최 고였다고. 회화에서 사진으로 넘어오는 과도기, 뭉치로 꾸린 신문지를 사진으로 찍은 뒤 그 위에 드로잉한 작품들을 내놓았는데, 박진명 씨는 서슴없이 엄지손가락을 추켜 보인다. "대 단했다"고.

전시에 다녀간 시인 신현림 씨는 그의 작품에서 '사진을 넘어서려는 사진'을 만난다. "김 선 생님은 사진 가장자리에 필름의 상표를 남김으로써 [이것은 사진이다]를 증명, 의도적인 충 돌을 유발시키는 듯해요. 다시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사진이에요."

또한 그녀는 그의 작품을 "한국의 풍광을 독특한 어법으로 찍는 소중한 기록"이라며 높이 평가한다. "원경과 근경을 유사성에 의해 대비시키면서 사람들에게 [한국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묻는 것 같아요." 한국의 모습을 남기는 데 있어 김장섭 씨가 가지는 위치의 중요성 에 대한 그녀의 평가는 대단히 후하다.

그녀는 또 그의 사진을 "우리 나라의 아름다움을 전하면서도 위트가 있다."고 덧붙이며 그 의 성격 자체에 '위트'가 있음을 암시한다. 사실 그것은 김장섭 씨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공 통된 의견. 한달, 일주일, 하루 단위로 계획을 짜면서 세심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꼼꼼한 성 격과 함께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호탕한 성격이 한 몸 안에 공존해 있 다. 그의 위트는 때때로 독설로 이어지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가 사진계에 깊은 애정을 가지 고 있음을 반증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위에는 따르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그가 위트가 있다는 사실이 사진을 통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마치 '매직아이'와 같이 풍경에 깊이가 느껴지는 신기한 체험 을 하게 된다. 누군가 "현실을 찍었지만 현실을 넘어선 불안정한 공간을 체험케 하는 것이 그가 사진을 통해 말하려는 숨은 의도다"라고 지적했듯이, 그의 사진 속의 공간은 '비현실의 공간'이며, '시간의 의미마저 정지되어버린 공간'인 것이다.

그의 전시는 27일까지 압구정동 가인화랑(02-518-3631)에서 열릴 예정이다. 시간이 너무 촉 박해서 보기 힘든 사람은 타임 스페이스에서 나온 사진집 [김장섭 사진 Beyond Landscape] 을 구해서 보시기를.


[사진 이미지의 물화(物化)] 중에서 발췌........................김승곤(사진평론)

그의 풍경은 공간과 시간의 미묘한 어긋남과 시각적인 울림을 가진 중층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서로 다른 시간을 겹치게 하는 것은 물론 그가 처음은 아니다. 문제는 확장된 공간을 통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다.
"그것이 과거에 있었다."라는 짧은 말로 사진의 본질을 정의한 것은 롤랑 바르트였다. 말하자면 사진은 현실인 동시에 과거의 존재라고 하는 분열된 환각인 것이다.

김장섭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의 정신사의 수준에까지 시간을 확장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땅바닥에 널려 있는 나뭇잎이나 그 위에 떠도는 오후의 대기에서, 경사진 비탈에 비스듬하게 서 있는 늙은 잡목과 흙담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나는 어쩐 일인지 어느 동네 어귀에 자리잡은 서낭당을 떠올린다.
서낭당은 영원한 시간을 내재시킨 공간이다.
그 공간은 오랜 시간의 경과와 함께 한국인의 정서적인 원풍경으로서 정착되었고, 우리의 그것을 일상으로 영위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이번 작품에서 다룬 풍경들은 분명 한국어로 된 이름을 갖고 있다.
그는 이러한 시간을 사진의 공간으로 외면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사진에서 그 '방법'을 읽게 된다.

그는 비논리적인 세계를 다루고는 있지만, 그것을 분할이라고 하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것은 두 개의 상황을 통해서 하나의 세계를 창출해내려는 시도다.
사진은 지극히 중립적인 기계의 눈으로 현실을 보고, 그렇게 형성된 2차원의 광학상을 화학적인 표면 위에 정착시키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 출현하는 공간은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사진가의 자의적인 의식이 작용하는 인위적인 공간이다.
일상적으로는 체험되는 공간과는 다른 극명한 사진상을 들여다 보면 볼수록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전율하게 된다.
인간의 눈은 물론 그런 식으로 현실을 바라보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수준의 것이 되었건 인간의 의식은 개인의 역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김장섭은 화면의 분할에 의해서 출현하는 어긋남과, 사진상(像)의 물화(物化)의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시선을 사진의 표면을 꿰뚫고 들어가 민족적 기억의 깊은 장소로 유도한다.
그 장소는 우리의 의식의 장소, 역사의 장소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익명의 장소가 가진 이름을 찾게 된 것이다.



1994, From the Earth 


1994, From the Earth


1994, From the Earth


1995, From the Earth


1995, From the Earth


1995, From the Earth


1995, From the Earth

 
1997, 구례, ILFOCHROME PRINT


1997, 오대산, ILFOCHROME PRINT

 
1997, 오대산, ILFOCHROME PRINT


1997, 오대산, ILFOCHROME PRINT


1997, 지리산, ILFOCHROME PRINT


1997, 고양, ILFOCHROME PRINT


1997, 안면도, ILFOCHROME PRINT


1997, 안면도, ILFOCHROME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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