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페.톡Cell)회원에게 함께 있을 지어다▷
💖생명의 말씀을 마음밭에 받아들이고,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살기(1/4)💖
*축복(祝福)* 해방동이 행전(行傳) (Ezre)⇨(正直)⇨(觀心)⇨(信賴)⇦(義理)⇦(順從)
복음성가 CCM 1588②약(弱)한 나를 강(强)하게
*내가 -건너 야할 강 거기서 내-죄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 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다시 사셨네.
마24:23-51절) 미래(未來)를 준비(準備)하는 자세(姿勢)
Ⅱ.무화과(無花果)나무의 가지(중)
예수님께서는 친절(親切)하게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審判)이 다가올 때에 어떤 징조(徵兆)가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무화과(無花果)가지 비유(比喩)*를 말씀하셨습니다.
24:32-34절)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軟)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前)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아마 유대 나라도 봄에서 여름이 갑자기 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이런 현상(現相)을 많이 보게 되는데,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꽃이 많이 폈다가 지면, 바로 여름인 것입니다.
옛날처럼 봄이 긴 것이 아니라, 봄이 오면, 언제 여름이 오는지, 모르게 계절(季節)이 바뀌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도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꽃들이 피고. 지면서 바로 무더운 여름이 왔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無花果)나무 가지가 연(軟)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온 줄 알라고 했는데, 여기서 *무화과(無花果)나무 가지'가 무엇이고,*여름*이 무엇인지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여름*을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審判)이라고 본다면, 예수님께서 그 뒤에 *이 세대(世代)가 지나가기 전(前)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문제(問題)입니다.
그러면 결국(結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마지막 심판(審判)이 왔어야 한다는 말인데, 마지막 심판(審判)은 아직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무엇을 *잘못' 아셨든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신 것이 되는데, *그럴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24:36절)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天使)
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결코 *자신(自身)도 모르는 마지막 순간(瞬間)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름’을 심판(審判)의 의미(意味)로 말씀하셨다면, 이것은 봄이 오고 갑자기 여름이 오는 것처럼 인간(人間)들이 *잘 먹고 잘 살면서 흥청망청(興淸亡淸)살 때'에 오히려 갑자기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온다'는 의미(意味)일 것입니다.
아마 유대인들이 로마와 전쟁(戰爭)을 일으키기 전(前)에 봄날 같이 *경제(經濟)가 부흥되고, 잘 살게 되었던 것'같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더 교만(驕慢)하게 되어서 로마와
*전쟁(戰爭)'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대(世代)가 지나가기 전(前)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고 하신 말씀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생각(生角)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경제적(經濟的)으로 어렵고, 쪼들릴 때보다'는 오히려 돈을 많이 벌어서 *흥청망청(興淸亡淸)쓸' 때가 더욱 위험(危險)하고, 또 *경제적(經濟的)'으로 어려워서 늘 힘들게 살아가야 할 때는 늘 *정신(精神)을 차리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오히려 덜 망(亡)한다'는 것입니다.
24:37-39절)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 때 홍수(洪水)가 나서 몽땅 망(亡)하게 될 때도 사람들은 홍수(洪水)의 징조(徵兆)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 세상(世上)이 영원(永遠)히 계속(繼續)될 줄 알고, △백세 인생△
*육십세에 저세상에서 날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저세상에서 날데리러 오거든 할일이 아직남아 못간다고 전해라.
*팔십세에 저세상에서 날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간다고 전해라.
*구십세에 저세상에서 날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 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날데리러 오거든 좋은날 좋은시에 간다고 전해라.
면서,죄(罪)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를 가다가, 홍수(洪水)심판(審判)이 갑자기 나면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영원(永遠)히 멸망(滅亡)하개 될 것입니다.
이것을 통(通)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심판(審判)은 우리 인간(人間)들이 전혀 예상(豫想)하지 못하고 있을 동안에 갑자기 덮친다는 것입니다.
질문 :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目的)이 무엇일까?
대답 :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目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永遠)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世上)에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나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멸망(滅亡)당할 사람들은 자신(自身)들이 이 세상(世上)에 무엇 때문에 사는지, 그 목적(目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目的)을 모른다면,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집(강남 아파트)에서 먹고 마시고 결혼(結婚)을 해서 자식(子息)들을 키우면서 사는 게 전부(全部)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人間)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특별(特別)한 목적(目的)아래 한정(限定)된 시간(時間)을 가지고 이 세상(世上)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世上)에서 하나님의 시험(試驗)을 치는 학생(學生)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삶의 목적(目的)을 알아야 하고,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이때 우리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이 세상(世上)에서 성공(成功)한 사람들의 소리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세상적(世上的)인 방법(方法)으로 성공(成功)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우리도 이 세상(世上)을 살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살고 싶지만, 그것이 곧 멸망(滅亡)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5:6)
그래서 우리는 *무화과(無花果)가지가 연(軟)하여 진다'는 것을 두 가지로 생각(生角)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世上) 사람들이 성공(成功)해서 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심판(審判)의 징조(徵兆)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이 세상(世上)에만 만족(滿足)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노아의 홍수(洪水)같은 심판(審判)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拒否)한 이유(理由)를 잘 압니다. 그들은 이 세상(世上)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거부(拒否)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징조(徵兆)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놀라운 성령(聖靈)의 역사(役使)가 있고, 회개(悔改)의 역사(役使)가 있고, 은혜(恩惠)가 충만(充滿)한 부흥(復興)의 시기(時期)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分明)히 영적(靈的)인 봄의 계절(季節)이고, 축복(祝福)의 계절(季節)입니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聖靈)으로 놀랍게 축복(祝福)하실 때, 무서운 영적(靈的)인 전쟁(戰爭)이 일어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더 가깝다는 것을 늘 깨닫고, 영혼(靈魂)이 잠자지 않도록 조심(操心) 또 조심(操心)해야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문(門)밖에 서서 *들어오려고 하신다'는 것을 생각(生角)하라고 하셨습니다. 대개(大槪) 그리스도인들은 부흥(復興)의 역사(役使)가 일어나면, 세상(世上)의 모든 욕심(慾心)과 영광(榮光)이 헛된 것인 줄 알고, 더욱 더 주(主)님을 사랑하며, 노아같이 심판(審判)을 준비(準備)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때에 영적(靈的)으로 혼탁(混濁)한 때에 여러분은 방주(方舟)를 준비(準備)하셨습니까? 우리의 피(避)할 방주(方舟)는 세상(世上)에 있는 나라나, 지역(地域)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살아 있고, 성경적(聖經的)인 규칙(規則)이 있는 교회(공동체)를 잘 준비(準備)하고, 그 안에 있어야 안전(安全)할 수 있습니다.
결국(結局) 우리는 개인적(個人的)인 종말(終末)도 준비(準備)해야 하고, 인류(人類)의 마지막 종말(終末)도 준비(準備)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 중간(中間) 형태(形態)에 해당(害黨)이 되는 전쟁(戰爭)과 같은 하나님의 재앙(災殃)입니다.
이것에 대(對)하여 예수님은 이런 약속(約束)을 하셨습니다.
24:28절)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독수리는 주로 들판에 죽어 있는 짐승이나 사람의 시체(屍體)를 뜯어먹는 육식(肉食) 새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독수리가 많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거기에 시체(屍體)가 있든지,
죽어가고 있는 동물(動物)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독수리라 하더라도 살아서 걸어가고 있는 짐승이나 사람을 뜯어먹지는 못합니다. 단지(但只) 하늘에서 빙빙 돌면서 죽을 때까지 기다릴 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독수리'는 하나님의 심판(審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審判)은 죽어 있는 시체(屍體)에 임(臨)하는 것이지, 살아 있는 것에는 내리지 않습니다. 즉 여기의 *주검'이라는 것도 영적(靈的)으로 완전(完全)히 죽어 있는 상태 (狀態)를 말한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외쳐도 눈물도 흘리지 않고, 변화(變化)도 없는 자(者)들은 죽어 있는 좀비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고, 세상적(世上的)으로 *똑똑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변화(變化)가 없는 자(者)들은 죽은 자(者)들이며,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독수리같이 임(臨)합니다.
다시 말해서 형식적(形式的)인 신앙(信仰)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곧 이런 형식적(形式的) 인 신앙(信仰)이 독수리들을 불러들인다는 사실(事實)을 기억(記憶)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전쟁(戰爭)이나,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審判)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自身)이 살아있는 자(者)가 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앞에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내가 잘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悔改)하고,고백(告白)하며, 어떻게 하든지 깨끗한 양심(良心)을 가지고 살려고 애를 쓸 때, 독수리들이 머리 위로 날아다닐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덮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화인(火印) 맞은 양심(良心)(좀비)처럼 감각(感覺)이 없으면, 안 되겠습니다. 즉 양심(良心)이 굳어버리면, 죄(罪)를 지어도 전혀 양심(良心)의 가책(苛責)을 느끼지도 못하고,
더욱더 뻔뻔스럽게 살아가게 되는데, 결국(結局) 독수리는 그런 사람들을 노리고 있습니다.아-멘 찬송가 278장 *여러 해 동안 주(主) 떠나*
| 오늘의 묵상 ◇선(善)한 양심(良心)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善行)을 욕(辱)하는 자(者)들로 그 비방(誹謗)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善)을 행(行)함으로 고난(苦難)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惡)을 행(行)함으로 고난(苦難)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3:16-17) |
💖진리의 복음*축복의 통로💖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소통의 시대, 친절한 댓글 소통☞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서로가 시간 낭비(浪費)하지 않도록 *아-멘*(所屬)*거절* 반응(反應)을 분명히 합시다.
不純者 防止위한 共同體 行政
6월-12월=敎籍簿. 병오년 5월 7일 프로필 編輯을 참고로 代表 外 假名, 未定着,不通은 正理할 것이며, *聖徒의 交濟* 器能을 위한 組織編成이 實質,效果的 有形敎會로 完成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