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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마을 유달산 詩集

2022. 제18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 정숙자 시인 대표시 「극지 行」외 4편

작성자박종영|작성시간26.06.13|조회수0 목록 댓글 0

<2022. 제18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 정숙자 시인 대표시 「극지 行」외 4편>

 

극지 行

 

    정숙자

 

 

  한층 더 고독해

 

  진다,

 

  자라고

  자라고

  자라, 훌쩍

  자라 오른 나무는

 

  그 우듬지가

  신조차 사뭇 쓸쓸한

  허공에 걸린다

 

  산 채로

  선 채로, 홀로 

 

  그러나 결국 그이는

 

  한층 더 짙-푸른

  화석이 된다

      -전문(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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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검空劍*

 

 

  눈, 그것은 총체, 그것은 부품

  알 수 없는 무엇이다

 

  지운 것을 듣고, 느낌도 없는 것을 볼뿐더러

  능선과 능선 그 너머의 너머로까지 넘어간다

 

  눈, 그것은 태양과 비의 저장고

  네거리를 구획하고 기획하며 잠들지 않는

 

  그 눈, 을 빼앗는 자는 모든 걸 빼앗는 자다, 하지만

  그 눈, 은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눕힐 수 없는

  칼이며 칼집이며 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이다

 

  양날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수천수만, 아니 그 이상의 팔이라 할까

 

  (나부끼지 않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바람  그냥 보냅니다. 대충 압니다. 나누지 않은 말 괜찮습니다. 여태 잎으로 수용하고 뿌리로 살았거든요. 대지의 삶은 적나라한 게임입니다. 간혹 구름이 움찔하는 건 어느 공검에게 허를 찔렸기 때문, ···일까요?)

 

공검은 피를 묻히지 않는다

다만 구름 속 허구를 솎는

 

그를 일러 오늘 바람은 시인이라 한다

공검은 육체 같은 건 가격하지 않는다

   -전문(p. 21)

 

* 공검空劍 : 허를 찌르는 칼(필자의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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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원

 

 

  책상 모서리 가만히 들여다보다

  맑은 이름들 떠올려보다

  나 또한 더할 수 없이 맑아지는 순간이 오면

 

  눈물 중에서도 가장 맑은 눈물이 돈다

 

  슬픈 눈물

  억울한 눈물

  육체가 시킨 눈물···이 아닌

  깨끗하고 조용한 먼 곳의 눈물

  생애에 그런 눈물 몇 번이나 닿을 수 있나

  그토록 맑은 눈물 언제 다시 닦을 수 있나

 

  이슬  눈, 새벽에 맺히는 이유 알 것도 같다. 어두운 골짜기 돌아보다가, 드높고 푸른 절벽 지켜보다가 하늘도 그만 깊이깊이 맑아지고 말았던 거지. 제 안쪽 빗장도 모르는 사이 그 훤한 이슬  들 주르륵 쏟고 말았던 거지.

 

  매일매일 매일 밤, 그리도 자주 맑아지는 바탕이라 하늘이었나? 어쩌다 한 번 잠잠한 저잣거리 이곳이 아닌··· 삼십삼천 사뿐히 질러온 바람. ···나는 아마도 먼   먼   어느 산 너머에서 그의 딸이었거나 누이였을지 몰라.

 

  그의 투강 전야에

  그의 마지막 입을 옷깃에

  ‘중취독성衆醉獨醒’ 담담히 수놓던 기억

  돌덩이도 묵묵히 입 맞춰 보냈던 기억

 

  몇 겁을 다시 태어나고 돌아와도 그 피는 그 피!

 

  이천 년이 이만 년을 포갠다 한들

  그 뜻, 그 그늘이면 한목숨 아낄 리 없지

      -전문(p.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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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형 인간

 

 

  육체가 죽었을 때 가장 아까운 건 눈동자다

  그 영롱함

  그 무구함

  그 다정함

  이, 무참히 썩거나 재가 되어버린다

 

  다음으로 아까운 건 뇌가 아닐까

  그 직관력

  그 기억력

  그 분별력

  이, 가차 없이 꺾이고 묻히고 만다

 

  (관절들은 또 얼마나 섬세하고 상냥했던가)

 

  티끌만한 잘못도 없을지라도 육신 한 덩어리 숨지는 찰나. 정지될 수밖에 없는 소기관들. 그런 게 곧 죽음인 거지.

 

  비

  첫눈

  별 의 별 자 리

  헤쳐모이는 바람까지도

 

  이런 우리네 무덤 안팎을 위로하려고 철따라 매스게임 벌이는지도 몰라. 사계절 너머 넘어 펼쳐지는 색깔과 율동 음향까지도

 

  북극에 길든 순록들 모두 햇볕이 위협이 될 수도 있지

  우리가 몸담은 어디라 한들 북극 아닌 곳 없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녕

 

  햇빛을, 봄을 기다리지. 죽을 때 죽더라도

  단 한 번 가슴 속 얼음을 녹이고 싶지

      -전문(p. 24-25)

 

 

     ------------------------------------------------------------------------

    푸름 곁

 

 

  어떻게 해야 늘 그들이 될 수 있을까

 

  바람 지나갈 때 침묵을 섞어 보낼 수 있을까

 

  마음 걸림

  들키지 않고

  조용히 몇 잎 흔들며

  서 있을 수 있을까

 

  바위 햇살 개미 멧새들··· 사이

  천천히, 느긋이 타오를 수 있을까

 

  베이더라도 고요히 수평으로 쓰러질 수 있을까

 

  구름 속으로

  손 뻗으며

  느리게, 느리게 바다로  깊이로만 울 수 있을까

     -전문(p.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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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2-겨울(88)호 <특집_제18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에서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공검 & 굴원』『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제32회 동국문학상, 제9회 질마재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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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8회 김삿갓문학상 심사평>

 

    칼의 언어와 허무의 힘

      - 시집 『공검 & 굴원』(2022. 미네르바)

  

  

  수상작을 선정하기 위해 먼저 역량 있는 시인, 평론가들로 구성된 추천위원들로부터 작년과 올해 나온 시집들을 추천받았다. 모두 20여 권의 훌륭한 시집들이었다. 하지만 많은 고민과 논란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정숙자 시인의 시집 『공검 & 굴원』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자는 것에 심사위원들이 모두 동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시집의 시들이 가진 작품의 밀도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시에 침윤되어 있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자유의 정신이, 자기 성찰과 탈속을 보여주는 김삿갓의 문학 정신과 통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 시집의 첫 장에 수록된 「극지 行」은 이 시집의 서시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정숙자 시인의 시세계를 아주 잘 대변해준다. 사물과 사물, 언어와 언어의 경계를 넘어선 사유의 경지에서 시인은 고독과 허무에 마주치지만 이러한 허무와 고독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성찰하고 그것을 화석으로 만들어서라도 기록하려는 치열한 시적 정신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이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공검」에서 더욱 명증한 형상화를 이루고 있다. 공검은 허무를 베어내고, 없는 것을 새겨 만드는, 쓸모없는 도구로서의 칼이다. 또한 그것은 항상 칼집 속에 갇혀 있으면서 없는 칼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시인의 언어이고 그 언어로 도달한 시적 정신이기도 하다. 칼집에 갇혀 붕괴되면서도 세상을 베는 칼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 치열한 허무의 힘이 바로 정숙자 시인이 도달한 시의 경지이다. 날카롭고 냉철한 사유에서 도달한 이 허무의 힘은 또 다른 표제시 「굴원」에서 눈물과 피의 이미지를 통해 좀 더 확장된 의미를 획득한다. 쓸모없고 허무한 언어의 칼만을 소유하고 있지만 인간 존재의 억울함과 슬픔의 눈물을 외면할 수 없어 결국 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인의 운명을, 정숙자 시인은 우리에게 굴원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젊지 않은 나이에도 이러한 치열한 문학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정숙자 시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시인의 놀라운 문학적 성취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이번 김삿갓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 (p.19) 

 

  * 심사위원 : 문효치  유자효  황정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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