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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마을 유달산 詩集

신경림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

작성자박종영|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신경림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인간적 감정마저도 외면하고 살아야 하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 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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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전문

서양 속담에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이 대문으로 도망간다’는 말이 있다. 법정 스님은 마음의 가난, 즉 무엇에든 집착하지 않는 ‘무소유’를 설파했다. 박경리 소설가는 생의 말미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했다. 신경림 시인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고 두려움을 모르고 그리움을 모르겠냐’며 가난 때문에 사랑을 취하지 못하는 연인들을 안쓰러워한다. 가난은 소유의 반대편에서 많은 의미로 머무는 말이다. 가난의 어떤 층위에 있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나 사랑, 행복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다독여도 가난은 슬프고 때로는 괴로운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가난을 겪을 때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그리움과 사랑 등의 정신적 감정이 심화되거나 제한받는 존재다. 시인은 ‘두 점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 등으로 가난하고 소박한 삶의 공간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분명 이 소리들은 조금은 삭막한 도시에 생동감을 부여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시인은 이런 사사로운 소리를 빌려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인간적 감정마저도 외면하고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이 시를 통해 가난한 사람의 핍진한 삶, 소외된 삶에 대한 깊은 연대 의식과 유대감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시대의 삶이 그렇다.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도 거부하고 결혼도 거부하고 하물며 자기 자신조차도 끌어안지 못한다. 인간은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추구하지만, 조금은 추상적인 행복이란 게 물리적 가난 앞에서 맥없이 항복할 때가 있다. 세상은 모든 것이 넘치고 또 넘치는 데 사람들은 오히려 더 공허하고 결핍을 느낀다. 나이 드신 어른들은 “우리 때는 단칸방에 밥그릇 두 개만 있어도 사랑이 가능했고 결혼도 가능했고 그래서 행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은 물질이 가득 채워져야 사랑도 결혼도 가능하니 풍요 속 빈곤의 또 다른 양상인가.

노 스님은 무소유야말로 삶이라는 얽매임에서 놓여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진리라고 역설했다. 노 작가는 정한 목숨의 끝이 보이는 자리에 와서 갖은 풍상 속에 사람들과 부대끼며 물질에 집착하고 시간에 끌려가는 삶이 오히려 괴로웠다고 말한다. ‘다 버리고 가난해지니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했다. 진심 어린 가난의 역설이다.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인간의 탐욕. 그 탐욕을 버리기 위해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시대다. 정작 버릴 것은 무엇이며 또 정작 지녀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물질의 가난과 마음의 가난 앞에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시인의 말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두려움을, 그리움을, 사랑을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라는 문장은 얼마나 처절한 현실인가. 어둠이 가장 깊어져야 불빛이 더 환해지듯이 가난한 젊은이의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뒤에는 더 절정의 사랑이 존재할 터인데 말이다. 도종환 시인이 말한 “거창한 것을 내세우거나 허세를 부리거나 하지 않고, 작은 것, 하찮은 것, 낮은 데 있는 것을 향한 연민과 애정”이야말로 진정한 가난 속에 행하는 사랑일 것이다. 분명한 건 인간은 사랑해야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함께 어깨를 걸고 마음을 붙여갈 때만이 가난에서 벗어나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문학인신문(http://www.munhak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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